예멘, 폭발물 테러... 한국인 4명 사망
![예멘, 폭발물 테러... 한국인 4명 사망](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db.chosun.com%2Fhistorydat%2F2009%2F03%2F20090316_0001.jpg)
- 예멘 남동부 하드라마우트주의 고대 도시 시밤.
2009년 3월 15일 오후 5시 50분쯤(현지시간) 예멘 남동부 하드라마우트주(州)의 고대 도시 시밤에서
자살폭탄으로 추정되는 폭발이 발생해 예멘인 1명과 한국인 관광객 일행 18명 중 4명이 숨졌다.
한국인 사망자는 박봉간(70·서울 삼성동), 김인혜(여·64·서울 목동), 주용철(59·서울 암사동),
신혜윤(여·55·암사동)씨 등 4명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주씨와 신씨는 부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선희(여·54·서울 상도동), 박정선(40·서울 홍제동), 손종희(암만 현지 거주) 씨 등 4명도
부상을 입고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중 3명은 심각한 화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오후 11시 55분 (이하 한국시간) 에미레이츠항공을 이용해 인천공항을 출발한
16명의 관광객들은 9박10일 일정으로 예멘과 두바이 관광지를 둘러보는
1인당 495만원짜리 여행상품을 이용했다.
특정 단체 소속은 아닌 개인 참가였으며 현지에서는 여행사 인솔자 1명과
요르단에서 건너온 가이드 1명이 동행했다.
예멘 당국에 따르면 이 날 공격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시밤 인근 지역에서 사진을 찍던 중 발생했다.
예멘의 시밤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높이 솟은 진흙벽돌 빌딩이 있어
‘사막의 맨해튼’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 지역을 포함한 예멘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선조들이 살아온 지역으로 끊임없이 테러가 발생해왔다.
2000년 10월에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폭탄을 적재한 소형 보트를 타고
예멘 아덴항에 정박해 있던 미 해군 구축함 콜 호를 공격해 미 해군병사 17명이 숨졌으며,
2007년 7월에는 예멘 중부 고대 사원에서 자살폭탄테러로 스페인인 8명과 예멘인 2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월에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하드라마우트주에서 벨기에 관광객 2명이 총에 맞아 숨졌고,
두 달 뒤인 지난해 3월에는 미 대사관을 겨냥한 박격포 공격으로 2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 알-카에다 예멘 지부는 올 1월 인터넷에 올린 영상 메시지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와 예멘 지부를
‘아라비아 반도 알-카에다’로 통합한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예멘을 여행 경보단계 3단계인 ‘여행제한’ 지역으로 지정해
긴급한 용무가 아니면 여행을 가급적 삼가도록 당부해왔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3월 초 여행이나 방문 시 신변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위험한 나라 8위에 예멘을 올려놓은 상태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의 결혼](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focus.history.chosun.com%2Fhistorydat%2F2015%2F01%2F20150116_0001.jpg)
-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가 2011년 3월 23일 눈을 감았을 때 뉴욕타임스는
부고기사에서 ‘미의 화신’이 죽었다고 보도했다.
테일러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전 세계 남성들은 새카만 머리카락, 보랏빛 눈동자,
부드러운 목선과 어깨선, 21인치의 잘록한 허리, 터질 듯한 가슴, 그리고 뛰어난 연기력에 빨려들어갔다.
테일러는 시대를 풍미하며 7명의 남자와 8번 결혼을 한 것으로도 화제를 몰고 다녔다.
아역배우로 데뷔한 후 죽는 날까지 유명하지 않았던 순간이 한 번도 없었던
‘세기의 미녀’였으며 혹자는 ‘20세기 미의 표준’이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테일러는 영국 런던에서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2차대전 발발 직후인 1939년 미국에 정착했다.
11살때 스크린에 데뷔했고 이듬해 아역스타로 발돋움했다. ‘신부의 아버지’(1950)에서
첫 성인 역할을 하고, ‘젊은이의 양지’(1951)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이 함께 출연한 ‘자이언트’(1956)에서는 정상급 배우로 위상을 다졌다.
테일러가 리처드 버튼(1925~1984)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은
‘클레오파트라’(1963년 6월 개봉)를 촬영하던 1962년 로마였다. 당시 테일러는
4번째 남자와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고, 리처드 버튼은 부인과 두 딸이 있었다.
리처드 버튼은 영국 웨일스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3년 연극배우로 데뷔하고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부터 수년간 영국 공군의 조종사로 종군했다.
1949년 영화배우로 데뷔하고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명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연극, 뮤지컬, 라디오 방송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연극에서는 유명한 셰익스피어 연기자로 이름을 날리고 라디오 방송에는 600편의 드라마에 성우로 출연했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빠져들어 영화 촬영장에서도 격렬한 애정 표현을 마다하지 않았다.
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져 팬들이 부적절한 관계를 비판하고 교황청까지 나서서 비난할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1964년 3월 15일 결혼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애정과 존중보다 소동과 증오, 과도한 음주로 더 유명했다.
버튼은 상대에 대한 조롱을 자제하지 못했고, 테일러는 욕을 참지 못했다.
사석에서건 대중 앞에서건 가리지 않고 불같이 싸웠다. 그러면서도 밤이면 서로의 품에 안겨
사랑을 불태웠다. 기묘하고도 열정적인 기질로 인해 싸우면서도 서로를 사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부부로 지내는 동안 10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사라졌다. 싸움이 없어지니 사랑까지 식어
결국 10년간의 폭풍 같은 결혼생활을 접고 1974년 6월 이혼했다.
하지만 이혼은 16개월을 넘지 못했다. 1975년 10월 재결합했으나 예전과 같은 일이 반복되자
결국 9개월 만인 1976년 7월 다시 이혼했다.
첫댓글 역사와 함께 모든것은 사라져 갔습니다.
귀한 정보 감사합니다^^~~
행운이 넘치는 하루 되시고~~즐거운 마음으로 오늘도 활기차고 건강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