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496호(화천 계성리 석등)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
▲ 화천 계성리 석등 모습 |
화천 계성리 석등(華川 啓星里 石燈)은 계성리 마을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석등이다. 이 마을에는 계성사(啓星寺)의 옛터가 있으며, 절터에는 쓰러진 석탑의 일부와 종모양의 부도 등이 흩어져 있다. 이 석등은 일제 때 절터에서 약 200m밑으로 강제로 옮겨진 것으로 정확한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
▲ 원래는 지도 우측 화살표 지점인 계성리에서 계성리 석등을 갑니다만, 코로나19로 인하여 군부대 출입 불허로 지도 좌측 빨간선 시작점인 용담리 코스로 다녀 왔습니다. 용담리 코스로 갔어도 화천군청을 통해서 군부대에 명단을 제출하였습니다. |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로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신라시대에는 8각, 고려시대에는 4각인 일반적인 것에서 벗어나 독특하게 6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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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담리 도로가 끝나는 지점(용담리 산1-28)에 주차를 하고 임도를 따라 올라갑니다. |
▲ 차량 통제 철문을 통과합니다. 오프로드 차량으로는 계성리 석등까지 갈 수 있습니다. |
▲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서 조금 올라가다가 이후로는 흙길로 계속 올라갑니다. |
▲ 임도를 따라서 지그재그로 계속 올라 갑니다. |
아래받침돌은 거의 묻혀 있어 윗부분만 보이며, 가운데받침돌은 원통형의 기둥에 띠를 두른 것으로, 띠를 이루는 부분에 각종 무늬를 새겨 놓았다. 원통형의 기둥은 고려시대 석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나, 그 모양이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했던 장고 모양을 닮아 있어 흥미롭다. 화사석은 특히 주목되는 부분으로, 6개의 돌을 세워 6각을 이루게 하였다. |
▲ 넓은 공간에 트럭도 한 대 보입니다. |
▲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갑니다. 좌측은 공사 차량 전용... |
▲ 이제부터 경사가 심해집니다. 언덕에 올라서 내려다 보면 산림청에서 벌목과 환경 개선 작업을 하는 것 같습니다. |
▲ 언덕에서 올라 온 방향으로 내려다 보면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올라갑니다. |
▲ 능선이 가까이 보입니다. |
각각의 돌은 좌우를 반타원형으로 깎아낸 것으로, 옆돌과 맞추어져 6개의 타원형 창이 만들어 졌다. 지붕돌은 각 귀퉁이선이 뚜렷하고 추녀 위로는 꽃조각이 작게 돌출되어 있어 멋스럽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놓았는데, 지나치게 커서 아래를 누르고 있는 듯 하다. |
▲ 능선에 오르기 직전에 올라 온 방향으로 다시 조망을 하고 마지막 힘을 내서 올라갑니다. |
▲ 드디어 화천 두류산(993m) 명지령(765m)을 37분만에 올라섰습니다. 우측 계단을 오르면 군부대에서 1989년에 조성한 명지령 기념 비석이 있습니다 |
현재까지 알려진 6각형 석등은 북한지역에 2기를 포함하여 모두 4기가 남아 있는데, 이 석등도 그 중의 하나이다. 높은 기둥 위에 놓여 있어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균형감이 흐르고 있으며, 건립연대는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
▲ 계성리사지 전경 |
사지(寺址)의 석탑 도굴범 6명 구속 1990.04.11 (화천(華川)=연합(聯合)) 江原도 화천(華川)경찰서는 11일 宋鳳勉(40.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8의207).陳龍植(55.경남(慶南) 창원시 용지동 349).方錫峰씨(30.경남(慶南) 마산(馬山)시 석전동 254)등 6명을 특수절도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宋씨등은 화천(華川)군 하남면 계성리 산1의11 啓星사지(寺址)의 고려 시대 석등(石燈)이 파손된채 방치됐다가 지난 68년 12월 보수된후 보물 496호로 지정된 것을 알고 이 절터를 도굴하면 또 다른 귀중한 문화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지난 7일 하오5시께 절터를 파헤쳐 땅속에 묻혀 있던 석탑 기단부분 1점.상층부분 2점등 모두 3점을 도굴, 경남7더9092호 트럭에 싣고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혔다. 한편 화천(華川)문화원은 이 절터에서 올해 부터 문화재발굴조사를 할 예정이다. |
▲ 명지령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계성리 석등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
▲ 오르는 길은 직선 거리로는 짧으나 경사가 심하고, 내려가는 길은 완만하게 길게 내려 갑니다. |
▲ 지그재그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계성천 상류를 만납니다. |
화천 개성리 절터에서 확인된 '육각형' 법당…북한 금강산 정양사와 쌍둥이다 경향신문 이기환 2019.09.30 강원 화천 하남면 추정 계성리 절터에서 국내 최초로 육각형 금당지가 확인됐다. 이 육각형 금당지는 북한 금강산 정양사 법당과 거의 쌍둥이 모양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고려시대 차 문화와의 관련성이 주목되는 화려하고 격조높은 화덕 시설도 찾아냈다. 보물 제496호 계성리 석등의 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정 계성리 절터를 발굴한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고려전기 본존불을 모신 금당으로 추정되는 건물터에서 고맥이 초석(주춧돌)을 사용한 육각형의 기단을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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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성천을 건너고도 한참을 내려 갑니다. |
▲ 드디어 전방에 먼저 내려간 일행이 계성리 석등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
▲ 명지령에서부터 43분만에 계성리 석등 앞에 도착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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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성리 석등 전경 |
윤석인 책임조사원은 “육각형으로 만든 고려시대 금당을 조선시대에 평면 직사각형 형태로 재건한 것”이라면서 “고려시대 금당에서도 육각형 기단의 한가운데에 불대좌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즉 금당터의 북쪽 기단 가운데에서 6각형 연화 지대석이 확인됐는데, 이것이 고려시대에 존재했을 불대좌의 하대석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 계성리 석등을 전면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며 바라 본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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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성리 석등을 후면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며 바라 본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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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성리 석등 상대석 모습 |
▲ 화사석 안을 바라 본 모습 |
▲ 계성리 석등 중대석과 하대석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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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계성사와 정양사를 조성한 고려전기의 문신 최사위(964~1041)이 주목된다. <고려사> ‘열전·최사위전’과 최사위의 묘지명에 따르면 고려 목종~현종 시대에 활약한 최사위는 나말여초 낭천(화천) 지방을 기반으로 한 호족인 수주 최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사위는 특히 사원이나 궁궐의 창건과 수축에 큰 역할을 했다. |
▲ 계성리사지 전경 |
최사위가 창건 수축한 절 중에는 금강산 정양사와 화천 계성사를 비롯해 현하사·봉은사·대묘 등이 있다. 따라서 최사위가 정양사와 계성사의 금당(법당)은 물론 석등까지 6각형 형태로 거의 쌍둥이 구조로 설계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최사위가 왜 이 두 절의 컨셉트를 육각형으로 정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 계성리사지는 계성리 석등 좌측 방향, 임도 우측으로 진입합니다. |
▲ 계성천을 건너서 우측으로 오르면 계성리사지가 나타납니다. |
▲ 계성리사지에 올라서 좌측 상단부 방향과 우측 하단부를 바라 본 모습 |
▲ 계성리사지 하단부 부재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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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자락에서 내려다 본 계성리사지 하단부 좌우측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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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성리사지 상단부로 가 봅니다. |
▲ 계성리사지 상단부 방향으로 걸어가며 돌아 본 하단부 모습 |
윤석인씨는 “표면의 장식성 및 정밀한 치석으로 미루어보면 난방이나 조명 등 일반적인 시설이라기 보다는 분위기 있게 차 등을 달여 마셨던 화덕일 가능성이 짙다”고 추정했다. 윤석인씨는 “남북교류가 재개되면 남북한 학자들이 건축의 컨셉트가 같은 금강산 정양사와 화천 계성사를 공동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 계성리사지 상단부 좌측 권역에 발굴된 부재들을 모아 놓아... |
▲ 계성리사지 상단부를 올라서며 돌아 본 하단부 모습 |
▲ 계성리사지 상단부는 발굴 이후에 푸른 커버로 덮어 놓은 상태입니다. |
▲ 계성리사지 상단부 발굴 현장에도 발굴 부재들이 여러 점 보입니다. 답사를 마치고 원점회귀까지 총 3시간 10분 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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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 보고서] 화천 계성사지I |
조사 내용 : 일제강점기인 1943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55항 화천군 12 사지불상탑 조에 의하면 계성사에 대해 "계성서지는 계성리 마을 내에 있다. 와편이 산재하고 탑은 3기가 있는데 1기는 사리탑으로 도괴되었고, 1기는 기부 직경이 7척 5촌으로 6층의 방형인데 역시 도괴되었다. 형상을 알 수 없는 나머지 1기는 높이 약 9척 직경 3척이다. 6각의 등롱[계성리 석등]은 완전한다. 불상은 높이가 약 9척 5촌의 좌상으로 조각이 정교하나 머리가 없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3동과 중문지, 탑지, 석등지 2개소 둥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고려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로 보인다. 1차 발굴조사 확인된 1호 건물지는 원래 평면 육각형 건물로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 방형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와 비교되는 자료는 금강산 정양사 약사전 건물을 들 수 있다. 《화천 계성사지I - 화천 하남면 추정 계성리 사지(계성리석등 주변) 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 |
화천 계성리 석등 위치도 |
지도 하단의 빨간선 시작점에 계성리 석등, 빨간선 끝 지점에 계성리사지가 위치. 소재지 : 강원 화천군 하남면 계성리 산1-2 |
다음에 가시는 분들은 지도 우측 하단 빨간선 시작 지점인 계성리에서부터 계성천을 따라 가시면 쉽게 않게 다녀 오실 수 있습니다. |
지도 좌측 화살표 지점에 오색리 삼층석탑이 위치. 지도 우측의 양양군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아는 지인이 하남면 계성리에 살아서 며칠전 다녀왔습니다 시간되면 함 올라가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