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단체 성직자들도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여론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목사들이 동료 목사들도 납세 대열에 동참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교단 설립 초기부터 소속 목회자들이 자발적으로 갑근세를 납부하고 있는 기독교 교단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와 부천 예인교회 정성규 목사는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강영안 김동호 김일수, 이하 기윤실) 주최로 10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열린 목회자 세금납부 설명회 및 기자회견에서 "목사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신교 목회자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대표 이드, 이하 종비련)' 등 시민단체의 종교인 세금 납부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앞으로 기독교내 목회자들의 납세 참여와 다른 종교로 계속 확산될 것인지 여부가 주목된다.
"한국교회가 나라 생각은 하지 않고, 교회만 생각한다"
▲ 1982년부터 세금을 납부한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
ⓒ 김범태
'목회자 세금 납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설명회에서 김동호 목사는 "목회자들의 세금납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젯거리가 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끄럽다"며 "사회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기 전, 우리가 자발적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영락교회 부목사 시절인 지난 1982년부터 고 한경직 목사를 따라 세금을 납부해 왔다는 그는 "목사도 월급을 받는 직업인이자 '월급쟁이'로써 합당하게 얻은 자기 수입에 대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목사도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금은 납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가난한 목사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세금을 낼 수 있는 목사는 응당 내야 한다"고 지적하며 "교회도 국가 안에 있고, 목사도 국민인데 오늘날 한국교회가 나라 생각은 하지 않고, 교회만 생각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정성규 목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방의 의무가 당연하듯, 세금 납부도 당연한 국민의 도리로 여겨졌다"며 "세금 납부에 특별한 생각이나 합리적인 이해가 굳이 필요치 않았다"고 말했다.
2년 전부터 비영리법인 신고를 통해 연간 단위로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는 정 목사는 "목사도 사회적 책임을 같이 지어야 한다"며 "교인들은 세금을 내고, 목사는 내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이원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교회는 합리적이고 투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목사는 특히 "세금을 내려고 세무 공무원들을 만나도 '사례가 없다'거나 '목사가 왜 세금을 내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등의 의문 섞인 반응이 반복되었다"면서 납세 과정에서 정부와 공무원들의 인식이 매우 빈약했음을 꼬집었다.
재림교회... 교단 소속 800여 목회자 근로소득세 일괄 납세
▲ 교단 소속 목회자 전원이 납세하는 재림교회.
ⓒ 김범태
이와는 별도로 전국 800여명의 소속 목회자들이 매월 일괄적으로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는 기독교 교단이 있어 화제다.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선교본부를 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회장 홍명관)가 바로 그곳.
이 교단 성직자들은 한국선교 초기 당시부터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납부해 왔다. 이미 한국선교 100년의 역사를 넘어섰기에 정확한 연도는 확인되지 않지만, 이들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 세무행정과 납세제도가 기틀을 잡기 시작한 때부터 세법에 따라 자신의 봉급을 근거로 매달 근로소득세를 납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른 종교단체나 종교인들과는 달리 이들이 성직자임에도 소득세를 납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자, 성경적 원칙에 따른 해석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라는 게 교단 측의 설명이다.
손기원 목사(한국연합회 재무부장)는 "목회자 역시 납세의 의무를 지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근로에 대한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며 "권리주장에 앞서, 법적으로 국가재정을 위해 이행해야 할 것은 당연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입장"이라고 전했다.
손 목사는 또 "재림교단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성경적 원칙에 따라 세계적으로 모든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국법에 따라 세금을 내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지난 6일 국세청 앞에서 진행된 종교인 탈세방지 범국민서명운동 현장에서는 인천평화교회 윤인중 목사 등 그간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던 현직 목회자 4명의 소득세 납부 선언이 있었으며, 기타 개혁적 성향의 목회자들이 지지와 동참의 뜻을 알려오기도 했다.
종비련의 이드 대표는 "목회자가 아무리 심정적으로 납세에 동의한다 해도 개교회가 단독으로 법인을 설립하기 어려운 현실인데다, 교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각 교단과 노회, 총회들이 솔선수범해서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윤실은 앞으로 목회자들의 소득세 납부 현실화를 위해 홈페이지에 관련 콘텐츠를 개설, 세금 납부의 필요성과 방법을 안내하고 세금납부 관련 절차 및 업무 대행, 목회자와 회계 담당자 교육 등을 시행해 나갈 방침이다.
"소득세 귀속주체 달라 이중과세 아니야"
[인터뷰]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집행위원 최호윤 회계사
▲ 기윤실 집행위원 최호윤 회계사.
'목회자 세금 납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이중과세 및 조세부담' '소형교회 성직자들의 저소득' 등 그간 종교인 소득세 납부를 두고 기독교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 제기되어 온 문제점들이 포괄적으로 논의됐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 집행위원 최호윤 회계사는 "국가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비용분담 성격인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 것은 다른 구성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위"라며 성직자 납세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최 회계사는 '교인들이 이미 소득세를 부담한 소득으로 헌금한 교회재정에 원천 징수를 하는 것은 이중과세가 아닌가' 하는 의문제기에 "교인들의 소득은 근로, 사업, 배당 등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 소득이고, 목회자가 수령하는 소득은 목회사역에 대한 것이므로 종류가 다르다"며 "소득세의 귀속주체가 서로 다르므로 이중과세가 아니"라고 정리했다.
또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저소득이어서 세금 부과는 비현실적'이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현재의 소득세법상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월평균 146만 원 이하의 수입을 신고하는 가구는 면세 기준점 이하에 속하기 때문에 소득신고를 해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계사는 이와 관련 "실제로 대부분의 중소형교회 성직자들은 소득세 면세점 이하를 수령하므로 소득세 신고 및 납부절차를 이행하더라도 납부할 세금이 거의 없다"면서 "정상적인 절차만 따른다면 교회가 탈세기관으로 오해받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 사회의 건강성과 투명성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성직이 갖는 일의 대가성 여부와 특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획득하는 일의 대가는 명칭과는 상관없이 부여되는 산출물이므로 명칭에 따라 그 속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며 "성직자가 수령하는 금전의 속성은 그 명칭이 '사례비'든 '성역비'든 '사역비' 등 상관없이 일의 대가 또는 무상으로 수령하는 수증금 중 한 가지에 속한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현재 성직자들이 각각의 능력과 경험, 일의 특성에 따라 보수를 차등지급 받고 있으므로, 일의 대가성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며 이는 세금을 내야 하는 근거로 작용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최 회계사는 "국가의 재정수요를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세금은 국가의 존재기반이 되며, 국가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인 국민은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 운영비를 부담하여야 한다"며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부담하는 세금은 사역 이전에 구성원으로서의 분담"이라고 종교인 납세의 당연성과 세법규정의 준수를 강조했다. / 김범태
납세 목회자, 늘어나지만 공개는 못한다?
기윤실, 소득세 납부 목회자 구체적 수치 공개 꺼려
▲ 목회자 세금납부 기자회견 장면.
10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열린 '목회자 세금 납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설명회에는 주최 측인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 관계자 이외에도 지난 2월부터 종교인 탈세방지 범국민서명운동을 벌여온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 회원들과 기타 NGO 단체 활동가, 언론사 기자 등 30여명이 모였다.
이날 인사말을 한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와 사례발표를 한 부천 예인교회 정성규 목사, 향후 기윤실의 활동계획을 설명한 이진오 사무처장 등 단상에 오른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현재 생각보다 많은 목회자들이 소득세 납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목회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윤실은 앞서 각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기윤실에서는 그동안 이웃사랑실천과 신앙의 덕, 선교, 교회재정 투명성 등의 목적으로 목회자 세금납부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고, 이런 기윤실의 주장에 동참해 많은 교회들이 실제로 목회자 세금 납부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일부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탈세나 치부를 위해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목회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법적, 절차적 방법을 모르거나 복잡해 적극적인 납세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기윤실은 정작 현재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구체적인 수치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수준까지도 공개를 꺼려했다. 현재 파악 중이지만 정리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대해 이진오 사무처장은 "기윤실을 후원하는 80여개 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고, 김동호 목사는 "100여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정확한 데이터도 확보하지 못한 채 대략적인 상황판단만으로 목회자들의 자발적 소득세 납부가 늘어나고 있다고 선언하며 공식화한 셈이다.
이들은 또 현재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목사들이나 앞으로 납부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목회자, 현재 납부를 하고 있지만 파악되지 않은 목사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로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어 공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모임이 마무리될 즈음, 기윤실은 "앞으로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명단을 확보, 참여 리스트를 일괄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공개 시점마저도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다. / 김범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