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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청주] 끝까지 붙어 사세요.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여호 24,1-13
+ 복음 마태 19,3-12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은 1894년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한 그는 1917년
성모 신심 단체인 ‘성모의 기사회’를 설립하였다. 이듬해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은 콜베 신부는 평생을 선교사로 살아가다가 독일의 폴란드
침공 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
여기서 한 수감자가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수용소에서는 한 명이
탈출하면 열 명을 지목하여 처형하는 벌이 있었다. 이에 따라 지목된 열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에게는 가족이 있다며 울부짖자 콜베 신부는
그를 대신하겠다며 앞으로 나갔다. 결국 콜베 신부는 다른 아홉 명과 함께
굶겨 죽이는 아사 형벌을 받고 처절한 옥중 생활을 하다가 1941년 지하
감방에서 선종하였다. 이러한 그를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비의 순교자’라 부르며 시성하였다.
★ 여호수아는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마쳤다. 이제 그들 모두는 스켐에 모여,
아브라함 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온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본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해 주시고 그들에게 땅을 주셨음을
기억한다(제1독서).
★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율법 규정에 따라 아내를 버릴 수 있는지 예수님께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창세기의 말씀을 토대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본디
계획을 일깨워 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혼인에 대한 말씀도 독신에 대한 말씀도 그러합니다.
혼인하면서 부부가 서로에게 사랑과 존경을 약속하지만, 죽는 날까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모세 시대
사람들은 마음이 완고해서 모세가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혼인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차라리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도 그들에 못지않습니다. 자녀가
결혼을 하면 안심이 됩니까, 걱정이 앞서십니까? 창세기에 기록된
하느님의 계획은 머나먼 이상처럼 보입니다. 적지 않은 신자 부부도 오직
신앙의 힘으로 주어진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하늘 나라를 위하여 독신으로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신을 약속한
이들 모두가 끝까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이가 그런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요?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혼인이나 독신에
대한 충실함이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그 시대 사람들의 약함을 인정했습니다. 충실치 못한 인간의
약함을 탓하기보다, 오늘 하루 내가 성실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질그릇 같은 저는 오늘 하루만,
내일도 하루만, 매일같이 그렇게 하루마다 독신 서약을 갱신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느님께 약속한 바를 철저하게 지키고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것을 열렬히 갈망하면서……!
- 매일 미사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 19,6)
여러분은 이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즈음 젊은이들의 이혼이 급증하고 소위 '황혼이혼'이란
신조어도 생겨났으니 살다가 영 안 맞으면
헤어져야지 어떡하겠냐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면 여전히 이혼은 '절대불가'라 여기십니까?
요즈음은 대세가 전자에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혼이 아니라 결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맺어주신 천생연분이라 여기고 결혼을 한다면
살다가 이런저런 어려움이 닥쳐도 그나마 견뎌나갈 힘이라도 있을텐데
하느님께서 맺어주셨다는 생각보다는 이런저런 조건과 스팩을 따져보고
나에게 유리한가 아닌가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조건적이고 계약적인 결혼이라면 그 조건과 계약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쉽게 헤어지는 수순을 밟지 않을까요.
결혼하셨습니까? 그럼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우자를 바라보십시오.
아직 결혼 안 하셨다면 조건보다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인연인지 아닌지를 깊이 성찰하고
그런 인연이라면 결혼하고 그렇지 않다면 홀로 사십시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포기하는 것이랍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 마태오 19,3-12
모든 것을 불태워도 희망은 결코 불태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희망할 이유는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있기 때문입니다.
희망때문에 죽어가는 생명이 아니라 희망으로
부활하는 생명이 됩니다.
아주 작은 희망이 인간이라는 존재가치를 다시금 주님께
물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콜베 사제는 상황과 세상을 결코 탓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아이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께로 걸어가는 것이 실종된 사랑과 희망을 찾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되살리는
희망의 역사이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희망의 힘을 믿습니다. 희망의 빛을 믿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희망의 해답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망을 다시 배워야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다시 닮아야합니다.
절망의 십자가가 아닌 희망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흩어진 마음을
오롯한 하나의 사랑으로 이어줌을 믿습니다.
참된 희망은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커지셔야하고 우리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끝까지 붙어 사세요|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나는 너희 조상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왔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된 땅으로 데려갔다.>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24,1-13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2
끝까지 붙어사세요.
남성은 결혼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여성은 경제적 안정을 얻으려 한다고
합니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미혼 남녀 5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결혼을 통해 보완하고 싶은 것으로 남성의 54.6%가‘
정신적 안정 및 풍요’를 꼽았고, 12.1%는‘가사에 도움’이라고 답했습니다.
반면에 여성들은 47.2%가‘경제적 안정’을 꼽았고, 정신적 안정 및 풍요가
25%, 사회적 지위가8.3%로 나타났습니다.
남성의 지향과 여성의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살겠다며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초호화 결혼식을 올린 부부도, 잉꼬부부로 알려진 부부도 쉽게 헤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많은 경우‘성격 차’'경제적 이유' 때문에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며 각자의 길을 갑니다.
성격이야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상대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이 다를진대 어찌 성격이 똑같겠습니까? 쌍둥이로 태어난 사람도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가운데 더
깊은 사랑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너무도 쉽게 너와 내가
다른 것을 ‘네가 틀렸어'로 몰아 부치고 맙니다. 그래서 마침내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등을 돌립니다. '너 아니면 안 된다.'고 하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19,6). 혼인을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헤어질 수 없지만 단순히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혼을
쉽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하느님과 일가친척
앞에서 서약을 하였습니다. 남녀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이지,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닙니다. 서로는 동반자이면서 서로 사랑 받고
존경 받아야 할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과 우리 자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에서부터 인간의 신랑이시고 인간은 하느님의 신부입니다(예레31,3).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관계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의롭고 착한 사람을
소크라테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불행하게도 결혼만은 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의 아내 크산디페는 세기의 악처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물론 집안 살림에는 관심도 없는 남편을 좋아할 아내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남편에게 바가지는 예사이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태산 같은 인내심으로 이겨
나갔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마구 욕을 해 대다가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
소크라테스로 인해 화가 풀리지 아니하자 걸레를 빤 물을 남편의 머리에
끼얹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태연하게 “뇌성벽력이 대단하더니
종래는 비가 오고야 마는군”하였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부부간에 크고 작은
고민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참고 견디면 성공하는 것이요,
인내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 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하고, 아내 된 사람은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에페5,33). “결혼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인데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됩니다. 만일
헤어졌거든 결혼하지 말고 혼자 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남편과
다시 화해해야 합니다. 또 남편은 자기 아내를 버리면 안됩니다”
(1고린7,10-11).
서로간의 관계 안에서도 신의를 지키고 부족함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던히 참아주고 변화를 기다려주는
넉넉함이 우리를 풍요케 할 것입니다. 헤어지자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로
항해를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며, 결혼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한다”(러시아
속담).고 했습니다. 결혼해서 일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나 풍랑이 몰아치는 험한 바다보다도 더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 순간 기도하며 애쓰지 않으면 서로의 다른
점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시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지금의 내 자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나는 너희 조상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왔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된 땅으로 데려갔다.>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24,1-13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2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도시에서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방학을 이용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계신 시골에 놀러 가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개울가에서 물장구도 치고, 개구리를 잡으면서 놀았던 일, 무엇보다도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소나 돼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시골의
신나는 일이었지요. 여기에 손주가 왔다가 해주시는 닭백숙도 잊지 못할
시골에서의 추억입니다. 이렇게 시골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골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이런 꿈을 가지고 있어서
신학생 때에도 시골 본당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품었습니다.
농사도 지으면서 사목을 하는 시골신부 말이지요.
사제가 된 후,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강화도에
있는 갑곶성지에 부임한 것이었지요.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이었기에 처음에 얼마나 포부가 대단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환상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시골의 삶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상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었지요.
쉽지 않는 시골의 삶을 지내면서 점점 ‘어렸을 때의 꿈은 그저 꿈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행복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지금의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 몰랐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시골의 삶이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금 해야 할 일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하면서
시골의 삶이 재미있고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먼저 지금의 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마련해주신 이 자리, 이 자리가 가장 내게 좋은 자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 분명히 행복 역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나의 자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가정 안에서 그런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내를 버리는 당신의
관습을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시지요. 물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헤어질
수밖에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교회가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원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지금의 내 자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혹시 환상 속의 자리만을
생각하면서 어렵고 힘들다는 이야기만을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의 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바뀔 때 인생도
바뀐다( 앤드류 매튜스).
띄어쓰기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띄어쓰기에 관한 예문을 아직까지
기억합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글을
칠판에 적고서는 어떤 뜻인지를 물으셨지요. 한 아이가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는 것이지요.”라고 답하자, 선생님께서는 칠판에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라고 다시 쓰시면서 “방이 아니라 가방에 들어가시는
것인데?”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어떻게 띄어 쓰냐에 따라서
문장의 뜻이 달라짐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는 띄어 쓰는 간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러한 간격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솔직히 사람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소유하려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자녀를, 형제를, 친구를,
그밖에 다른 사람들에 집착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기를
원합니다. 꽉 붙어서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띄어쓰기가 전혀
안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람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간격이 필요합니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때,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나의
만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막시밀리아노 콜베 성인.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둘이 한 몸 되는 결혼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나는 너희 조상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왔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된 땅으로 데려갔다.>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24,1-13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2
둘이 한 몸 되는 결혼
가톨릭에서는 결혼을 '둘이 한 몸' 됨이라고 항상 고수하고 있습니다.
못나건 잘나건 좋건 싫건 서로가 상대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조건부로 보거나 나와 구분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게속 생기게 마련이지요.
결혼이 무엇인지 학교나 사회가 성장과정에서 필수로 가르쳥할 일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정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매우 중요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자연의 원천 에너지님)의 노선 말고는 정답이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오 19,5-6)"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서울]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나는 너희 조상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왔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된 땅으로 데려갔다.>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24,1-13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2
정부에서는 오늘, 8월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이유는 광복
70주년이고, 15일이 토요일이기 때문이랍니다. 메르스의 여파로 국내
경기가 많이 위축되었는데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들은
유급으로 하루를 쉬게 해 준다면 싫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14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 여름의 마지막 휴가를 알차게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공장을 가동해서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하루 쉬는 것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임시 공휴일로 지정을 했지만 많은
중소기업은 쉬는 것이 녹녹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생각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는 문득 생각합니다.
작년 8월 14일에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8월
14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었다면 교황님 방한 1주년을 기억하면서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일반 예비신학생들과 고3 예비신학생들은 이제 곧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피정을 하면서 면담을 하였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명문대학교를 나왔고, 좋은 직장을 다녔지만 사제의 길을 가고 싶어서
예비신학생이 되었습니다. 본인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고, 착실하게 준비를
하였기 때문에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고, 본인의 의지도 확실한데 성적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주위의 권유도 있었고,
막연하게 사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예비신학생이 되었습니다.
면담을 하면서 좀 더 확실한 의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재능이 있고, 확고한 의지도 있고, 기도생활도 충실하게
하지만 아직 신자가 아닌 부친 때문에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장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들보나 기둥은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는 유용하지만 구멍을 막는 데는
소용이 없다.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는 살쾡이만 못하다. 재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올빼미는 밤에 벼룩을 잡고 털끝까지 헤아릴 수 있지만, 낮에는 눈을
뜨고도 큰 산조차 보지 못한다.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분쟁과 문제들은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때로 갈등하고, 다투는 것은
‘존재와 소유’를 혼동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잠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사위는 사람이 던지지만 결정은 하느님께서 하신다.’
동양문화의 ‘盡人事待天命’과 비슷한 말입니다. 나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편견과 선입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참된 것들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정한 여인을 향해서 돌을 던지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들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혼한 사람들, 재혼한 사람들도 모두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단죄하기 전에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곤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다려 주시고 용서를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행복한 연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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