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는 달리고 싶지만....."

철마는 달리고 싶지만 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큰소리치던 제국도 일찌감치 망하고 새로운 대제국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반드시 거꾸러지는 운명을 맞는다.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나라가 칭기스칸의 몽고지만 오늘날 그들의 후손으로 남은 몽골의 백성들은 척박한 땅과 기후를 이겨내지 못하고 빈민의 나라로 전락해 있다. 무력만으로 남의 나라를 도륙질하던 제국주의 역사는 퇴조한지 오래고 비록 인구는 적고 땅덩이도 좁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인재를 양성하여 기술을 습득하여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강국이 될 수 있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게 되고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된다. 물론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라를 통치하며 이웃나라와의 선린외교 관계를 무시하거나 자기의 개인적인 고집을 국가적 신념으로 강조하다가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되어 자멸을 재촉하는 수가 없진 않다.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정권이나 이라크의 후세인이 그 실례다. 이들을 공격하여 깔아뭉갠 미국에 대한 여론도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알카에다를 격려하여 여객기 납치 자폭으로 수천 명을 죽이는 테러까지 용인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제거된 뒤 미국에서 선언한 ‘악의 축’은 이란과 리비아 그리고 북한이다. 이란과 북한은 공공연히 핵개발을 선언하고 심지어 핵폭탄의 보유를 공언하고 있어 각기 협상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주선으로 6자회담을 통하여 핵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듯 말 듯 아리송하고 이란은 대통령의 친서를 백악관으로 보내는 등 강온작전을 구사중이다. 다만 리비아의 카다피만이 모든 핵개발에 대한 작업을 중단하고 미국과의 화해를 모색하여 부시의 입을 함박 만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이란과 북한에 바라는 바가 리비아식 해법이다. 핵 폐기를 통하여 신뢰를 회복하기만 하면 모든 압박을 풀고 경제 원조를 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세계 최대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핵무기의 확산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 민족끼리”를 최대의 화두로 내세우고 있는 한국과 북한은 국제적 시각은 제쳐두고 오직 민족공조만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환상을 국민들에게 부추기고 있다. 그 덕분에 북핵을 견제하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영삼이 정권을 잡자마자 김일성과의 면담약속을 받아내 역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뻔 했다. 이런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YS는 북한이 원하는 이인모 등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정상회담은 불발되고 뒤를 이은 김대중이 김정일과 만나는 상황변화가 이뤄진 셈이다. 5억 달러의 돈을 주고 만났지만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한 징검다리였다는 폄하도 있지만 이 후 북한에 대한 지원은 사회단체는 물론이요 노동계, 지방자치단체, 체육계 등 이름 붙은 단체는 모두 나서 경쟁적으로 변모했다. 더구나 먹을 게 없어 3백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소문이 떠돌며 인도주의를 앞세운 지원이 끊임없게 되었다. 남북협력자금이 조성되고 적십자사의 이산가족 만나기가 활발해졌다. 오죽하면 ‘퍼주기’라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금강산이 열리고 개성에서 공장을 돌린다. 언론인도, 학자도, 과학자도 여기에 끼지 못하면 팔불출이다. 비판의 날을 세우던 야당정치인도 부르기 무섭게 달려간다. 그런데 이들이 북한에 들어가려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축구나 바둑시합을 해도 예외는 없다. 도와주려는 사람과 단체에게 입국료를 받는 나라가 북한 말고 또 있을까. 필자도 연전에 얼마간의 관광요금을 내고 금강산에 다녀왔다. 일방적이지만 이렇게 해서 북한이 개방된다면 바람직스럽다. 그러나 이번에 중단된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시험운행은 남북관계를 먹구름에 싸이게 만들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휴전선상에 멈춰선 녹슨 기차의 사진은 국민의 가슴을 울린지 오래다. 그 기차가 역사적인 개통을 위해서 새로운 기찻길을 만들도록 남북을 합의시켰다. 일제하 독립의 푸른 꿈을 안고 이 기차를 타고 만주 땅으로 망명한 선열들이 달렸던 길이다. 평양으로 달리고 신의주로 빠지면 만주와 시베리아로 들어가 대륙과 연결한다. 이 모든 것이 장관급 회담에서 결정 합의됐는데 북한 측의 일방통보로 취소되었다. 그런데 모든 책임은 남측에 있단다. 뭔지 모를 그들만의 거래가 깨진 탓일까. 허망하다. 질질 끌려 다니는 정부가 딱하다. 그렇다고 물러날 일도 아니다. 확실한 책임소재를 밝히고 당당하게 열차시험운행을 재개할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