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천군 내면 - 마지막 은둔의 땅 | 삼둔사가리/오지 | |||||||||||||||||||||||||||||||||||||||||||||
▒ 홍천군 내면 - 마지막 은둔의 땅
○ 내면의 일반현황
○ 홍천 내면은 넓고 높고 깊고 맑다.
* 내면은 넓다.
홍천군이 우리나라 시, 군 중에서 가장 넓다면 내면은 우리나라 읍, 면 중에서 가장 넓다. 다른 면가 비교하자면 글쎄.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교하는 식이다. 쉽게 서울 면적의 70%를 넘는다면 짐작이 갈까. 내면은 홍천 동쪽 끝에 있다. 지도에서 면 경계를 따라 색칠을 해보니 딱 중국처럼 생겼다. 동북쪽으로는 양양과 동남으로는 강릉, 평창과 북서로는 인제와 맞닿아 있다. 백두개간을 분수령으로 영동과 영서를 통하게 하는 두개의 관문(운두령과 구룡령)이 있는 곳이다. 남북을 잇는 31번 국도와 동서를 잇는 56번 국도가 내면에서 교차한다. 그렇다고 내면을 교통의 요지로 오해해선 안 된다. 그 넓은 땅에 큰 길은 딱 2개뿐이다. 나머지는 1개의 지방도와 임도, 산길로 통한다. 그나마도 길로 갈 수 있는 곳은 몇 곳뿐이다. 내면은 넓되 발 닿을 수 있는 땅은 손바닥만 한 곳이다. 그 넓은 여백을 산과 물줄기가 채우고 있다. 그래서 내면의 땅 임자는 '자연'이다. * 내면은 높다. 동쪽으로 오대산(1,563m)과 계방산(1,577m), 북쪽으로 가칠봉(1,240m)과 구룡덕산(1,388m), 서쪽으로 응봉산(1,103m), 남쪽으로 문암산(1,146m)이 에워싸고 있다. 그 사이 사이를 1,000m가 넘는 고봉 30여 개가 비집고 솟아 있다. 내면은 사방이 1,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 자락에 걸터앉아 있는 셈이다. 평균 해발 600m. 내면은 고산 마을이다. 산 속에 갇힌 '육지의 섬'같은 곳이다. 홍천 내면 자운리와 평창 용평면 노동리를 가르는 운두령(1,088m). 구름도 쉬어간다는 이 험준고령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높은 고갯길이다. 차로 오를 수 있는 고개로는 제일 높다. 90도가 넘는 굽잇길을 꺾고 돌아 고갯마루에 오르면 손바닥 만하던 하늘이 열리고 백두대간 연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내면으로 가는 길, 달리 이정표를 찾지 않아도 된다. 구룡령, 아홉사리고개 같은, 차도 힘들어하는 고개가 이정표다. 높디높은 고개를 올랐다 싶으면 그 아래 땅이 내면이기 때문이다. 내면은 ‘사람 길’은 막히고 ‘하늘 길’만 뚫렸다.
* 내면은 마지막 은둔의 땅이다 위성방송시대에 국군방송만 나오는 곳이라면 확실한 '오지'일 것이다. 이태 전인가. 전기가 들어왔다고 신문에 나온 마을이 있었다. 누구라도 "여기 우리나라 맞아?"라고 실소하고 의아해 했겠지만 그런 오지 마을들이 내면엔 많다. 찾아가는 사람은 불편하겠지만 사는 사람은 살던 대로 사는 곳, 그 곳이 '오지'다. 내면, 산만 봐도 안다. 모두 험산 오지이다. 방태산, 개인산, 가칠봉, 구룡령, 응복산, 오대산, 계방산…. 온통 산뿐이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고, 찾기도 힘든 곳, 그래서 정감록은 이 백두대간 서편 산중을 '피장처'(避藏處)로 찍었다. 난을 피할만한 곳, 그게 '삼둔사가리'이다. 삼둔은 생둔(살둔), 월둔, 달둔. 사가리는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거리. 삼둔은 홍천 내면에, 사가리는 내면에 잇댄 인제 기린면에 있다. 살둔. 삼둔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살둔이다. 살둔은 원래 생둔(生遁)인데, 사람들이 살둔이라고 더 자주 부른다. 왜냐. 생둔의 둔은 산골 안 너른 땅, 그러니까 평평한 둔덕을 뜻한다고 한다. 때문에 삼둔(三遁)은 3곳의 둔덕이란 뜻이고 생둔(生遁)은 그중에서도 '살만한 둔덕'이란다. 살둔은 은둔의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 세조 때 사육신 후예들이 세상을 등지고 이 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 삼둔 중에 사람이 사는 곳은 살둔 뿐이다. 살둔에는 명소가 있다. 살둔산장이다. 마을 초입, 감자밭으로 산자락 밑에 다살색 2층집이 보인다. 그런데, 눈길을 끌게 생겼다. 귀틀집에 2층 누각을 얹었다. 내를 따라 3분거리. 이 집이 '한국 사람이 살고 싶은 집 100선'에 뽑혔던 집이란다. 내력도 많다. 1985년, 산악인이자 백담사 산장지기를 했던 윤 모 씨가 오대산 월정사를 복원한 대목을 데려다 지었단다. 통나무를 우물 정자로 쌓고 그 사이를 황토로 메운 귀틀 양식이다. 원래는 함석지붕이었는데, 기와로 지붕을 새로 올렸다. 운치 있는 집이다. 원래 이 집은 미진각(未盡閣)이었다고 한다. '다 못다 지은 집'이라. 산이 반, 물이 반이라서 '산반수반정'(山半水半亭)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했다. 2층 다락방의 이름엔 풍류가 넘친다. 침풍루(寢風樓). 바람을 베고 눕는다. '육침선방'(陸沈仙房)이라는 글을 쓴 액자도 띈다. 나오는 때를 못 만나 땅에 사는 신선이라는 뜻이라는데. 술 좋아하고 산 좋아한다는 이 집 주인의 면모를 알 듯 싶다. 그대로 들어 집으로 옮겨 놓고 싶다. * 내면은 깊다. 산 너머에 산, 그 너머에 또 산이 있다. 참 깊고 깊은 심심산천이다. 떡쌀과 고물처럼 켜켜이 봉우리와 골짜기가 이어져 있다. 깊으니 어둡다. 숲은 참빗처럼 촘촘하다. 한 낮인데도 햇볕 한 줌 스미질 못해 어둡다. 내면의 물길은 높은음자리표 같다. 굽이치고 휘어지고 합쳐졌다 갈리고. 눈으로 잡기 어지러울 정도다. 기기묘한 흐름을 오죽했으면 '궁궁을을(弓弓乙乙) 흐른다' 했을까. 내면이 얼마나 깊은 곳인지는 고개에 서 봐야 안다. 산이 끊었다 이어주니 사라졌다 나타나고…사행(蛇行)치는 물길은 수도 없는 태극 문양을 만들고서야 내린천으로 잦아든다. 산과 물길만 깊은 게 아니다. 내면은 사람에게도 깊은 곳이다. 예언서인 정감록의 '피장처'에 기록된 '삼둔사가리'. 난리를 피해 살만한 곳으로 일곱 곳이 나오는데, 삼둔 즉 생둔, 월둔, 달둔'이 내면에 있다. 내면은 옛 사람이 보기에도 도참서에 쓸만한 은둔의 땅이었던 것이다. 오지 내면. '오지'란 단어는 내면 앞에 붙고서야 제 뜻을 온전히 살려 쓰게 될 것이다. * 내면은 맑다. 바람부터 달랐다. 인제 상남에서 우회전, 446번 지방도를 탔다. 미산계곡 쪽으로 접어들자 바람부터 달랐다. 끈적끈적했던 바람기에 냉기가 실려 왔다. 맑고 상큼했다. 바로 이런걸 두고 아마 '청량한 바람'이라고 하는가 보다. 생둔(살둔)쪽으로 갈수록 바람이 달다. 향긋하기도 하다. 허브 밭을 걷는 것 같다. 삽상한 바람이 코와 머리를 뚫어줬다. 개인약수를 지나 생둔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아름다운 산골'(美山)의 풍경을 와이드 화면으로 영사했다. 청산은 촉촉했다. 물안개가 물 안골 마다 피어 산허리 허리에 실루엣으로 걸쳐있다. 참 깨끗하고 맑아 보였다. 오대산, 계방산, 응복산 어느 이름 모를 골짜기, 이슬과 샘이 모여 도랑을 만들고 개울, 내, 시내가 되어 천이 되고 강이 됐다. 합치고 갈라지며 그 물길에 여울과 폭포와 소를 냈다. 천년 전의 물빛이 이랬을 것이다. 물 속에 바늘을 떨어뜨려도 찾아내겠다. '맑다'는 말 밖에는 다른 단어를 못 찾겠다. 태어날 때 그대로인 간난아이의 속살처럼 맑다. 내면은 강원도의 속살이다. ■ 문의 033-435-5928 ▶즐기고 먹을거리: 내린천 최상류 래프팅을 할 수 있다. 6km 코스로 1시간 30분 ■문의:월든레저 033-435-5661. 원시의 계곡미를 자랑하는 문암골 트레킹 4~5시간. 식사는 생둔수련장 식당에서 가능하다. ■문의:033-434-6466 ○ 계방산 구름과 함께 걷는다,하늘 전망대 남한의 산들을 한 곳에 모아 키재기를 한다면 순서는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 계방산은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서쪽으로 태기산(횡성)이 그 맥을 받아 용문산(양평)으로 넘기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되는 두물머리에서 산세를 묻는다. 기세차지 않지만 위엄이 있다. 높되 앙칼지지 않고 유순한 산이다. 그래서 강원도 사람의 마음을 닮은 산이다. 백미는 전망에 있다.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설악산, 점봉산, 동쪽으로 오대산과 대관령, 서쪽으로 백두대간의 파노라마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산길 운두령 정상 '노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맛도 그만이다.
산행정보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속사인터체인지-31번 국도-이승복 기념관-운두령 ▶등산 코스: 운두령-동북능선-1496봉-계방산-운두령(5.6km,3시간) ▶맛보기: 운두령 아랫마을 창촌리 산채백반과 자운리 송어회가 유명하다. ■문의: 내면사무소 033-430-2610 여행 프러스 ▶가까운 좋은 곳: 명개리 계곡이 유명하다. 이 곳 역시 깊고 맑다. 오대산국립공원 홍천방향 등산 기점이다. 3년 전에야 전기가 들어 왔으나 아직 전화가 없는 오지 중의 오지. 해발 900m. 여름에도 불을 때고 자야 할 만큼 고산마을이다. ■잠잘 수 있는 곳: 삼봉약수 옆에 있는 삼봉산장 033-435-5858. 맛 볼 수 있는 곳: 산채가든 033-435-4436. 달구미 식당 033-435-5230. 오대산내고향 033-435-7787 ○ 내면의 연혁
내면은 홍천군 1읍 9면의 하나로 본래 강릉군에 속해 있다가 1895년에 내일면과 내삼면 두면으로 분할됐다. 내일면에는 가미동, 율전리, 조항리, 이현동, 광원리, 자운리, 창촌리, 생둔리, 원당리, 하북동, 소한리의 11개리를 내삼면에는 용연동, 미산동, 여차동, 아계동, 방내동, 성내동의 6개리를 관할하다가 1906년에 인제군에 이전되고 1914년에 다시 두면을 병합하여 내면이라하고 율전, 광원, 창촌, 자운, 미산, 방내의 6개리로개편됐다.
1945년 38선이 생기고 인제군의 대부분이 공산치하에 들어감에따라 그 나머지 지역은 모두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1951년 인제군이 수복되었으므로 홍천군에 편입되었던 대부분 지역이 인제군에 복귀되었다.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흡수되고 내면 미산 8리와 3리가 인제군에 편입되어 6개의 법정리에 17개 행정리 72개 자연부락을 관할하고 있다.
#. 창촌리 본래 강릉군 내일면의 지역으로 조선시대에 창고가 있었으므로 창말 또는 창촌이라 하였는데 광무10년에 인제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따라 하북곡, 소한리를 병합하여 창촌이라하여 내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38선이 생기면서 홍천군에 편입되었는데 속칭 한이로도 불리어 진다. 1955년 설립한 내면중학교 1983년에 개교한 내면고등학교 1929년에 설립한 창촌초등학교 1963년에 설립한 소한분교가 있다. 3개리로 분할되어 있고 1리 중심지는 각종 상가가 있다. #. 광원리 본래 강릉군 내일면의 지역으로 조선시대 원집이 있었다하여 늘원이 또는 광원이라 하였는데 광무10년(1906)에 인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따라 가덕동, 쇠터울, 일어서기, 소월평, 실론, 월둔, 달둔, 을수동, 쇳골, 다릿골을 병합하여 광원리라 하였고 1945년 38선이 생기면서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일명 너른장거리로 불리는 이 마을은 3개 행정리로 나뉜다. 1951년 설립한 원당초등학교와 광원분교는 1935년에 개교 했었다. 2리에는 권대감당이 있고 1941년에 건립한 전주이씨 열녀각이 있다. #. 명개리 본래 양양군 서면의 지역으로 메밀앗골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옛날 이곳에 어떤 사람이 메밀 아홉 이랑을 심어 아홉섬을 수학하였다는 데서 유래하는 명칭인데 지금은 동맥동으로 불리운다. 1973년 7월1일 양양군에서 홍천군 내면으로 편입됨1949년에 설립한 명개분교가 있다. #. 율전리 본래 강릉군 내일면의 지역으로 밤나무가 많으므로 밤바치 또는 율전리라 하였는데 조선 26대 고정때인 광무 10년(1906)에 인제군에 편입되어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따라 가진포, 생둔리를 병합하여 다시 율전리라 하여 내면에 편입되었는데, 1945년 38선이 생기면서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1937년에 설립한 율전초등학교와 1948년에 개교한 생둔분교 1950년에 설립한 문암분교가 있다. #. 자운리 본래 강릉군 내일면의 지역으로 운두령 밑이라 하여 운두골 또는 자운리라 하였는데 광무10년(1906)에 인제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새목이를 병합하여 1945년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고 4개의 행정리로 나뉜다. 1948년에 설립한 운두초등학교와 1967년에 설립된 경천분교, 1952년에 설립한 원자분교가 있으며, 박정열 여인의 살신모정 위령탑과 원주원씨의 효열각, 권대감의 애마를 묻었다는 말무덤이 있다. #. 방내리 본래 강릉군 내일면의 지역으로 옛날에 현이 있던 곳이므로 방내라 하였는데, 광무 10년에 인제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기아치, 아계동, 담터를 병합하여 방내리라 하고 1945년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었다. 3개의 행정리로 되어 있고 방내출장소와 1941년에 설립한 방내초등학교와 1953년에 설립한 광문분교, 1969년에 설립한 성내분교가 있다. |
첫댓글 잠수타기 조은 명당인가보네요. 등잔밑이 어두운가보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