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도회지로 유학을 떠나는 자녀들에게 '든든한 밑거름' 역할을 했지만 학업을 마친 자녀는 농업을 등졌다. 그러나 최근들어 도회지에서 학업을 마쳤거나 직장을 그만둔 자녀들이 농업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다. 상아탑을 벗어나자마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는 '청년 백수 100만 시대'를 맞아 '농민 CEO'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전남도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지난해 처음으로 농촌 청년사업가를 양성하기로 하고 11명을 사업 대상자로 선정, 지원하고 있다. 부푼 기대가 현실화되려면 역경이 뒤따른다. 지난해 농촌청년 사업가로 선정된 11명 또한 척박한 농업 환경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들 11명이 맞닥뜨리고 있는 영농현실에서 농민 CEO의 성공조건을 살펴본다.
직거래 영업망 구축
1㎏ 소규모 쌀 포장과 기능성 쌀 판매로 지난해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강선아씨와 보성에서 방울토마토와 참다래 직거래로 기반을 닦은 정경모씨 모두 농업에 투신하자 마자 연착륙한 케이스다.
이들의 초기 성공은 탄탄한 영업망을 구축한 부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 씨는 친환경쌀 선구자인 고(故) 강대인씨의 딸이며, 정 씨 부모 또한 보성에서 방울토마토 직거래를 활발히 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성공이 전적으로 부모 덕분만은 아니다. 강씨와 정씨 모두 소비자 맞춤형 제품 개발을 위해 땀을 흘렸고 소비자 신뢰 구축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강씨는 기능성 쌀 수출길도 찾고 있다.
지역 농민들과 유대해야
박현정씨와 김난경씨는 자신의 고향 농민들의 농산물 유통을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다. 박 씨는 담양지역 45농가의 옥수수 등의 유통을 담당하면서 지역 농민들과 탄탄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무엇보다 박 씨와 거래하면 마진이 높다는 신뢰감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옥수수 5㎏을 1만원에 사들이면서 농산물 도매시장에 납품할 때 드는 기름값, 인건비, 수수료 1500원을 부담한다. 농민들이 직접 도매시장에 내다 팔 때 부담하는 1500원을 박 씨가 부담하는 것이다.
김 씨는 청국장, 된장, 단감, 곶감 등 장성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의 전자 상거래를 돕고 있다.
그는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하기 힘든 시골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 직거래를 도우면서 자신이 농민 CEO로서 연착륙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차별화된 상품 개발 노력
농업에서 성공하려면 도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친환경ㆍ웰빙 농산물 생산 및 가공식품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김진호(37ㆍ나주)씨는 '꼭지달린배'에 감기, 천식에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수세미를 첨가한 '어린이용 기능성 배즙'을 개발했다. 김씨는 이 상품 개발로 배가 전통 제수 과일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매출을 늘리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김종범(39ㆍ곡성)씨는 지난해 인삼, 울금, 사과, 누에 가공식품 회사를 설립했고 이명임(40ㆍ여ㆍ진도)씨는 호박된장, 호박고추장, 검정보리된장, 검정보리고추장 등 웰빙 식품을 개발해 판매중이다.
박준환(23ㆍ해남)씨는 치매와 항암 효과가 있는 노루궁뎅이버섯 재배와 판매에 뛰어들었고 장형준(41ㆍ화순)씨는 쌀눈에 탄수화물을 비롯해 아미노산, 필수 지방산 등 양질의 영양소가 함유돼 있다는 점에 착안해 도정과정에서 쌀눈을 살린 기능성 쌀 '황금눈쌀'을 개발했다.
소비자 직거래 위해 사이버 소통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소비자와 신뢰 구축과 직거래를 통해 마진을 높여야 한다. 이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농산물 'e 비즈니스'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이 경쟁을 뚫으려면 소비자와 꾸준한 대화가 필요하다. 단시일내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고객을 중심으로 '사이버 대화'를 하다보면 신뢰가 구축되는 것이다.
이와관련 대학에서 정보통신학을 전공한 정경모씨는 인터넷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활용해 매일 고객들에게 재배 사진과 영농일지를 공개하고 있다. 정씨는 방울토마토와 참다래 농원에 웹카메라를 설치해 소비자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 재배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방울토마토 케찹이나 소스 등 사은품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운 박현정(34ㆍ담양)씨와 버섯연구소에서 근무했던 박준환씨도 트위터를 활용, 고객들에게 농산물의 생산ㆍ출하ㆍ배송 과정을 소개하고 생산 농민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김종범씨는 고객을 중심으로 '소비자 감시단'을 구성해 운영할 방침이며, 이명임씨는 미니 밤호박 농사와 식품 개발 노하우를 고객들에 전수하고 있다.
쉼없는 연구 절실
농산물도 상품이기 때문에 시대 흐름에 뒤처지면 낭패를 볼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쉼없는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호박된장이나 검정보리된장 등을 판매하고 있는 이명임씨가 최근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배우고 있으며, 시들지 않는 나무 판매로 유명한 김남우씨는 매일 밤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미국, 호주, 네덜란드 등 전세계 화훼 시장 동향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다.
공동 가공공장 등 백지장도 맞들어야
지난해 곡성에서 웰빙 농산물 가공회사를 창업한 김종범씨는 농산물이나 가공식품 설립과 유통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명이 공장 인허가, 홈페이지 관리, 가공식품 다각화, 자금 등을 모두 담당하기는 버겁기 때문이다. 김 씨의 경우 농업관련 사이버 연구회에서 만난 5명의 회원과 공동으로 홍삼액, 사과즙, 울금즙, 울금환, 동충하초, 누에환 등을 제조하는 가공공장을 설립했고 이후 유통을 각자 담당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