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esa Berganza
테레사 베르간사
Teresa Berganza (1935 ~ )
테레사 베르간사 (Teresa Berganza)
출생 / 1935년 03월 16일 새장 속의 로지나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카르멘으로
국적 / 스페인
대표작 /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로시니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비제 《카르멘》, 《스페인 노래집》
성부 / 메조소프라노
요약 / 로시니 오페라의 영리한 여주인공 역으로 유명한 밝은 음색의 리릭 메조소프라노. 40대 이후에는 《카르멘》과 스페인 노래에 주력했다.
▲ 테레사 베르간사(Teresa Berganza)
지난 1992년 올림픽이 어디서 열렸는지 기억하는가? 바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거의 잊었지만 두 가지 사실만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황영조가 마라톤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막식 축하 행사로 스페인이 자랑하는 세계적 성악가들이 올림픽 스타디움에 모여 갈라 콘서트를 벌였다는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에 거창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콘서트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비록 스페인 테너의 맏형 격인 알프레도 크라우스가 석연찮은 이유로 빠졌지만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자코모 아라갈(Giacomo Aragall, 1939∼), 후앙 폰스(Juan Pons, 1946∼), 몽세라 카바예와 더불어 메조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사까지 무대에 등장하는 것을 보니 놀라움과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베르간사는 1977년 《카르멘》를 노래한 후 거의 활동을 접은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베르간사는 꾸준히 연주 활동을 하고 있었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미렐라 프레니와 동갑이었으니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겨우 57세에 불과했던 셈이다.
모차르트와 로시니의 히로인으로 성장하다
테레사 베르간사는 1935년 스페인 마드리드 태생이다. 메조소프라노로서 스페인 출신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19세기 이후의 오페라 역사에서 마리아 말리브란, 폴린 비아르도를 위시한 스페인계 메조소프라노가 맹활약했던 전통이 있고, 특히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메조소프라노로 불렸던 콘치타 수페르비아가 스페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베르간사의 경우 수페르비아와 다소 개성의 차이는 있지만 레퍼토리 영역은 거의 일치했다. 스페인 음악계에서는 요절한 수페르비아에 대한 안타까움을 베르간사로부터 보상받고 싶었을 것이다.
테레사 베르간사의 처음이자 영원한 스승은 엘리자베트 슈만의 제자였던 롤라 로드리게스 데 아라곤(Lola Rodriguez de Aragon)이다. 베르간사는 마드리드 음악원에서 처음 만나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후에도 계속 가르침을 받은 이 스승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와 선생님과의 유대는 어머니와 딸의 그것보다 더욱 강하고 깊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선생님은 저에 대해 제 어머니보다도 많이 알고 계시거든요.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저의 예술적 측면, 즉 어둡고 내면적이며 불가사의한 부분까지 모두 꿰뚫고 계신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모든 배역과 노래를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고 아직도 그렇게 합니다. 목소리에 문제가 생겼다든지 할 때 선생님은 한결같이 해결책을 주시지요."
훌륭한 메조소프라노라면 콘트랄토부터 소프라노의 음역을 거의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저음역, 중음역, 고음역에서 어떤 음색을 유지하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답은 두 가지다. 음역별로 음색을 달리 가져가거나 아니면 균일한 음색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롤라 로즈리게스는 밝은 색조로 균일하게 가져갈 것을 원했다. 《피가로의 결혼》 중 케루비노의 아리아 〈사랑의 괴로움 그대는 아는가〉를 비롯하여 모차르트의 노래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레지스터에 관계없이 일정한 톤을 지니도록 연습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얻어진 베르간사의 성질(聲質)은 리릭 메조소프라노로 분류되며 세상의 어떤 메조소프라노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느 음역대에서나 환하게 빛나는 발군의 개성을 갖췄다. 스승은 다른 미덕도 가르쳤다. 오페라를 공부할 때 자신의 노래만 연습할 것이 아니라 다른 파트의 음악까지 완전히 이해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덕분에 베르간사는 성악뿐 아니라 피아노, 오르간, 작곡, 지휘까지도 욕심을 부려 공부했으며, 그 결과 언제나 오페라 스코어와 텍스트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 전체 구도를 이해하면서 연주하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베르간사와 함께 작업했거나 그녀를 인터뷰한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베르간사를 철두철미한 예술가로 평하며 그 정확한 악보 읽기와 음악적 판단력, 가사의 해석에 찬탄을 금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베르간사는 21세 되던 1956년,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로 데뷔했다. 오페라 가수로는 이듬해 프랑스의 액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데뷔했는데 예상대로 처음에는 모차르트 가수로서 케루비노나 도라벨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차르트 배역이라고 해야 위의 두 역 외에는 체를리나 정도에 불과함을 깨닫자 곧 로시니 오페라로 시선을 돌려 진정한 대성공을 거두었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 《라 체네렌톨라》의 안젤리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이자벨라야말로 테레사 베르간사를 상징하는 '로시니 3대 히로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베르간사는 로시니의 오페라 중 세리아에는 손대지 않고 오로지 부파만으로 승부하여 세계 최고의 로시니 가수라는 명성을 얻었다. 로지나 또는 이자벨라 등의 재치와 기지가 번득이는 적극적 여성상을 그려내기에 베르간사만큼 안성맞춤인 가수는 결코 없었다. 더욱이 베르간사의 목소리는 밝고 테크닉이 정확하며 로시니가 요구하는 아무리 어려운 콜로라투라라도 메조소프라노답지 않은 시원한 고음으로 부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줄리에타 시묘나토를 위시한 이전의 로시니 가수들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베르간사가 로시니 히로인으로 맹활약한 시기의 최대 라이벌로는 미국의 마릴린 혼을 꼽을 수 있다. 혼은 베르간사와 반대로 콘트랄토에 가까운 부드러운 음색을 지녔으며 비음이 많이 섞인 낙천성과 아메리칸 스타일의 친근감으로 인기를 얻었다. 나는 베르간사 못지않게 마릴린 혼을 좋아한다. 그러나 베르간사가 집중했던 3편의 오페라 부파만큼은 마릴린 혼이라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대신 혼은 인기 오페라에 집착하지 않고 더 많은 로시니 레퍼토리를 다루었다는 공적을 인정해야 하므로 두 가수 간의 우열을 가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카르멘을 부르면서 바뀐 인생
베르간사는 언제나 작품을 면밀히 검토해 자신의 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배역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유명한 사례가 묵직한 메조 역으로 유명한 《돈 카를로》의 에볼리와 원래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몫인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다. 〈저주스런 미모여〉처럼 강렬한 피날레를 지닌 에볼리의 노래라면 찬란한 음성을 자랑하는 베르간사로서도 충분히 도전할 만했지만 테시투라(음표가 집중되는 음역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피했고, 메조소프라노이면서도 워낙 고음에 강점을 지닌 베르간사가 불렀다면 틀림없이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을 비올레타도 라 스칼라의 구체적인 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들어본 칼라스의 감동적인 연기를 재현할 자신이 없다며 거절했다.
지금 가장 잘나가는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에게 《카르멘》을 부르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당시의 베르간사도 같은 유혹을 수없이 받았다. 물론 처음엔 망설였지만 40세를 넘기자 가벼운 부파를 벗어나 좀 더 극적인 배역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같은 프랑스 오페라인 마스네의 《베르테르》를 성공적으로 소화하자 욕심은 조금 더 진척되었다. 이때 에딘버러 페스티벌의 감독 피터 다이아몬드(Peter Diamond)가 보다 구체적인 조건으로 출연을 제안했다. 일단 음악적으로는 도전할 만하다 싶었다. 악보 검토를 하고 직접 세비야 지방을 여행해 집시들을 만나 보니 그들도 마찬가지의 인격체였고, 카르멘의 캐릭터 역시 타락한 여인상이 아니라 사랑의 자유를 갈구하는 분별력 있고 영리한 여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르멘의 자유로운 영혼과 분방한 남성 편력은 베르간사에게 정서적 갈등을 일으켰다. 무척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결혼 후에도 피아니스트인 남편 펠릭스 라비야(Felix Lavilla, 1928∼)를 하늘처럼 여기며 그가 정한 테두리에서만 가수로 활동했던 베르간사였다. 평생 조심스럽게 자신의 뜻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여인에게 카르멘의 캐릭터는 아무리 자기 식으로 해석해봐도 파격이었다. 그러나 일단 에딘버러에서 작업이 시작되자 베르간사는 가식 없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자유로운 영혼의 카르멘에게 점점 동화되어갔다. 1977년 8월, 《카르멘》의 마지막 드레스 리허설을 노래하면서 베르간사는 자신이 완전히 카르멘이 되었음을 느꼈다. 모든 의식과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그러자 그 순간까지도 동행하면서 일일이 간섭하던 남편에게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리고는 3년간이나 자식들과 함께 호텔에서 생활하면서 끝내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베르간사의 행동은 너무 과격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리라. 하지만 베르간사는 "오랫동안 나는 바르톨로 집에 갇혀 지낸 로지나 같은 신세였어요. 하염없이 알마비바 백작을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그런 내 인생을 카르멘이 해방시켜준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베르간사의 《카르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의 지휘로 음반화되었으며 집시 여인 카르멘을 자유롭고 영민한 여인으로 그려내어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연주를 듣고 있으면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근육질 카르멘도,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의 교태 가득한 카르멘도 아닌 베르간사만의 '자유 정신'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카르멘》으로 자신의 영역을 이동하자 베르간사는 새장에 갇힌 로지나의 신세로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나이를 먹었어도 거의 변하지 않은 리릭 메조소프라노의 소리를 유지했지만 그녀의 로시니나 모차르트는 그때부터 듣기 힘들어졌다. 녹음 기록을 보아도 로시니는 1972년이 마지막 레코딩이고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의 습작을 실험적으로 녹음한 《보아라, 바보 아가씨》를 제외하면 1974년이 마지막 음반이다. 베르간사가 쇠퇴기에 접어들어 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오해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7년 이후 베르간사는 《카르멘》을 계속 노래하면서 조국 스페인 음악에 천착했다. 오페라 레코딩을 보면 마누엘 드 파야(Manuel de Falla, 1876∼1946)의 단막 오페라 《덧없는 인생(La vida Breve)》, 스페인 민속 오페라인 사르수엘라 작곡가 마누엘 페네야(Manuel Penella, 1880∼1939)의 《살쾡이(El Gato Montes)》, 뒤늦게 주력한 프랑스 오페라 중 자크 오펜바흐의 《페리콜(La Perichole)》과 마스네의 《돈 키호테》에 주목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오페라 활동을 줄이면서 스페인 민속 노래의 비중을 늘렸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1994년에는 여성으로는 최초의 스페인 왕립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최신 음반으로 2000년경에 녹음한 《Alma de Espana》, 즉 '스페인의 무희'라는 것이 있다. 엔리케 그라나도스, 헤수스 구리디(Jesus Guridi, 1886∼1961)의 스페인 노래를 담은 음반이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목부터 관리한다는 베르간사의 부지런한 정성 덕분인지 이걸 들어보면 환갑을 한참 넘긴 베르간사가 여전히 맑은 음색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브라토 또한 나이에 비해 훨씬 덜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창 때 아무리 화려한 아질리타나 복잡한 콜로라투라 악구라도 기가 질리도록 정확하게 불러냈던 천하의 베르간사도 더 이상 세월의 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베르간사는 유능한 성악교사이기도 하며 그 제자 중 스페인의 레제로 소프라노 마리아 바요(Maria Bayo)가 가장 유명하다.
테레사 베르간사 대표 음반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DVD, DG)
리릭 메조소프라노로서 베르간사의 장점이 최고로 발휘된 역은 역시 로지나다. 세 종류의 녹음이 모두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주는 만큼 《세비야의 이발사》 중에서 추천 영상물을 고르는 것이 좋겠다. 헤르만 프라이(Hermann Prey, 1929∼1998)의 피가로, 루이지 알바(Luigi Alva, 1927∼)의 알마비바 백작 모두 최상급이며,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예민한 지휘 또한 최상으로 꼽을 만하다. 희가극에 특히 능한 거장 장-피에르 포넬 연출이다.
로시니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DECCA)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보다도 더욱 영악한 캐릭터의 로시니 히로인은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에 나오는 이자벨라다. 용기 있는 남자가 여인을 구출하는 구출극의 전형과 달리 너무나 영리한 여인의 지혜로 탈출한다는 설정이라 더욱 유쾌하다. 실비오 바르비조(Silvio Varviso, 1924~2006)가 지휘하고 루이지 알바, 페르난도 코레나(Fernando Corena, 1916∼1984)가 함께 공연한다.
비제 《카르멘》(DG)
독특한 뉘앙스의 《카르멘》 명연으로 손꼽히는 음반. 베르간사가 가장 신뢰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를 맡았고 플라시도 도밍고, 셔릴 밀른스, 일레아나 코트루바스 같은 기라성급 스타가 출연한 황금 캐스팅이다. 그러나 거칠고 육감적인 카르멘이 아니고 과연 베르간사다운 깔끔하고 영민한 카르멘이니 듣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크게 갈릴 수 있다.
《스페인 노래집》(DG)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스페인 작곡가의 주요 노래를 CD 2장에 집대성한 1970년대 녹음이다. 첫 남편이었던 펠릭스 라비야가 피아노 반주를 맡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노래를 나르시소 예페스(Narciso Yepes, 1927∼1997)의 기타 반주로 노래한다. 스페인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음반이다.
글 유형종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고 월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예술의전당, 문화공간(세종문화회관), 아트뷰(성남문화회관), 클럽 발코니와 각종 오페라, 발레 공연 팸플릿에 칼럼과 해설 기고, KBS, PBS, CBS 등에서 오페라, 발레와 관련해 출연 및 진행을 하였다.
출처 불멸의 목소리 | 저자유형종 | cp명시공아트
음악사에 길이 남을 남녀 성악가 50명의 음악세계와 그들의 인생이야기. 오페라 무대뿐만 아니라 가곡에 있어 내로라하는 은퇴 성악가들의 업적과 현역 성악가들에 이르는 계보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