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의미 /석계 윤행원
링컨은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로 더욱 유명하다. 사람이 사십 년을 살다 보면 그 사람의 인생사(人生史)가 얼굴에 모두 스며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다. 소중한 인생, 아무렇게 살지 말라는 경구(警句)이기도 하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서 사람이 육십 대가 되면,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온통 얼굴에 구석구석 알알이 박혀있다는 걸 보게 된다. 살아오면서 가진 가치관과 철학, 인생관이 드러나고 특히 마음씀씀이의 좋고 나쁨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은근히 흥미를 가지게 된다. 용한 관상쟁이가 아니라도 대강은 짐작될 정도로 얼굴에 넌지시 새겨져 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재주 좋은 사람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외양(外樣)을 속이려고 해도 완벽한 연기력을 갖추지 않는 한 표시는 나게 마련이다. 직업, 교육, 경제력, 인품, 마음씀씀이, 살아온 습관과 언행의 품질 일체가 얼굴에 저장된다는 걸 알게 된다.
얼굴은 마음과 연결이 되어 있어 온갖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얼굴을 통하여 표출된다. 연기자는 주로 얼굴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만들어 밥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사람의 얼굴은 천변만화의 운동장이다. 간혹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소설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온갖 사연이 얼굴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잘 생긴 얼굴이었는데 살면서 못난 짓을 하는 못난 마음 때문에 추하고 일그러진 얼굴로 변하는 걸 볼 때도 있다. 태어날 때엔 평범하고 어쩌면 못 생긴 얼굴이었는데 차차로 잘 난 얼굴로 변하고 인간적인 매력과 존경심을 불러오는 얼굴도 있다. 마음수양의 품질이 얼굴에 고스란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도인(道人)의 얼굴이 있고 승려나 신부의 얼굴이 있고 범죄자나 사기꾼의 얼굴이 있다. 그런 마음을 사용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러한 얼굴로 생성된다.
우리는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좋고 나쁜 심보를 알 수가 있고 이웃에 대한 마음씀씀이를 어느 정도 짐작을 하게 된다.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확률을 가진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의 얼굴이란 이렇게 속일 수가 없다. 윤곽이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누가 보아도 좋은 환경과 생활조건을 갖추고 지적인 수준이 상당하지만 마음 하나 제대로 꾸리지 못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과 짜증을 만들고 그 대가를 덤터기로 쓰면서 고달프게 사는 사람을 본다. 스스로 만든 불행이다. 어리석게 세월을 보낸 사람에게 주로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려준다. 온화한 얼굴, 밝은 얼굴, 비틀어진 얼굴, 험악한 얼굴, 당돌한 얼굴, 한심한 얼굴로 변모하는 걸 보면 이건 순전히 습관적인 마음 씀씀이가 만든 얼굴이란 걸 알게 된다. 평소에 마음 씀씀이가 양호했지만, 일시적으로 어둡고 고약한 얼굴을 볼 때도 있다. 그것은 그 당시의 마음고생을 의미한다.
대체로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얼굴보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 요즘은 사람들이 얼굴 예뻐지려고 성형수술로 돈을 많이 지출하는 걸 본다. 그러나 마음 가꾸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진실로 아름다운 자태는 되지 않는다. 얼굴을 예쁘게 만드는 것도 좋다. 그러나 마음을 예쁘게 갖추려고 노력한다면 그 효과는 상승작용을 해서 엄청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가끔 그 사람 잘 생겼다, 예쁘다, 하고 감탄을 할 때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처음의 마음이 변하는 걸 본다. 하는 짓이 시원찮고 욕심 덩어리고 인색하고 미운 짓 못난 짓을 하는 걸 보면 처음과 다른 추한 몰골로 변해가는 걸 본다. 못난 마음의 화학작용 때문이다. 못난 마음은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인상을 못 나게 만든다. 마음은 그렇게도 엄청난 일을 해 치우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먼저 마음을 잘 닦고 표정관리를 잘해야 한다. 본태(本態)의 얼굴도 중요하지만 밝고 친절한 표정을 보면 매력 있는 품성을 보는 것 같아서 누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이 세월을 보내다 보면 그동안 안 보였든 숨은 것들이 서서히 보이게 되고 삶에 대하여 조금은 관대해진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마음 다스리기가 어렵다는 걸 터득하게 된다. 우리는 평생을 두고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애를 썼지만 언제나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 뼘도 안 되는 조그만 마음 다스리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사)한국수필가협회/운영위원장(역임) 재경합천문인회 회장(역임) 실버넷뉴스시민사회부/부장(역임) 합천신문/논설위원 수필가/시인/칼럼니스트 .........................................................................
한국문학인(2024년 3월15일 봄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