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긴 글이니까 읽기 귀찮으신 분들은 미리 패쓰 하세요.
프로야구가 1982년 출범한 이래로 단 한 번도 꼴찌를 하지 않은 팀, 그리고 33년간 그 반 수에 해당하는 16번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한 번의 통합 우승, 그리고 7번의 코시 우승... 프로야구 최다 승리팀이자 온갖 기록을 갖고 있는 명실상부한 명문구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온즈는 20세기 내내 통합우승 외에는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고, 종이 호랑이... 아니 종이 사자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2015년 4월 현재 언론은 삼성이 1위를 고수하는 것에 대해 여러 이유를 대며 왜 삼성이 강한가를 조명 중이다. 팀 방어율이 1위이기 때문에, 팀도루가 1위이기 때문에, 팀홈런이 1위이기 때문에... 등등 여러 가지 이유를 찾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의 생각은 어떨까? 나는 삼성이 강한 이유는 “역사”를 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대단히 중요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며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삼성은 20세기 실패의 역사를 어둠 속에 묻어두지 않고 이를 과감히 분석함으로써 끊임없이 약점을 찾아내 이를 보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팀의 부족한 부분이 나타나면 프런트에서 이를 보완할 대책을 마련하고 팀 내부적으로도 장기적으로 이를 메꿔 줄 선수를 키워 올린다. 물론 그 과정에는 무시 못 할 만큼의 시행착오가 따랐다. 하지만 그 역시 “역사”였고, 삼성은 지금도 “역사” 안에서 분석하고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만약 라이온즈가 지금의 영광에 안주한다면 또 다시 암울한 역사로 회귀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지금 류감독과 프런트는 이를 시스템을 통해 암흑기로 돌아가지 않도록 매뉴얼화 시키는 중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짧은 영광 뒤 한참을 몰락의 뒤안길에서 헤맬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94~96 시즌을 삼성 역사에서는 암흑기라 부른다.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전력이 약했던 시절이라도 최소 준플까지는 진출했던 삼성이 이 시기 약체로 전락하여 3년 간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비전문가 집단인 프런트의 지나친 현장 개입과 90년대 급격하게 약화된 팜 자원의 고갈과 80년 대 스타들의 은퇴와 맞물려 있다. 프런트의 현장 개입은 프로 원년부터 지속되어 온 암 세포 증식과 같은 행위였지만 워낙 걸출한 스타플레이어가 많았던 삼성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으로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스타플레이어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현장 내부에서도 온갖 잡음이 들리면서 팀 분위기는 엉망이 되간다. 백인천(중간 조창수 대행), 서정환, 김용희(현 SK감독)이 있던 99년 까지 삼성은 어찌어찌 4강까진 들어도 결코 우승까지는 노릴 수 없었던 전력의 팀이었다. 물론 이 시기에 미국의 다니엘 최(최용희), 최창양 같은 미국파 선수를 영입하고, 경산 볼파크를 만들어 팜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었던 삼성은 우승을 위해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외부로부터 수혈을 단행한다. IMF로 인하여 모기업이 어려워진 쌍방울과 해태로부터 선수들을 사오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는 프렌차이즈 스타들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라이온즈는 엄청난 비난을 받지만 이미 프런트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화룡정점을 찍은 것이 삼성으로서는 3번의 코시에서 뼈저린 패배를 안겨준 영원히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수장 김응용 감독을 데려 온 것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2001년 코시에서 두산에게 엄청난 난타전 끝에 패함으로써 또 다시 좌절감을 안겨주게 된다. 2002시즌이 되면서 삼성은 다시 한 번 외부 수혈에 나선다. 6명의 선수(김상진/정경배/김태균/이용훈/김기태/김태한)를 내주고 SK로부터 브리또(유격수), 오상민(좌완불펜)을 수혈하고, 4년 전 임창용을 데려오기 위해 해태에 팔았던 양준혁이 선수협 문제로 오갈데가 없을 때 김용용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영입한다. 그리고 마지막 6차전 6-9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승엽의 그림 같은 3점 동점홈런과 마해영의 결승 홈런... 이는 삼성의 20년 숙원을 풀어 준 우승이었고, 본격적으로 “돈성”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시초가 된다.
하지만 이 시기 삼성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 현대 왕조의 등장이었다. 삼미-청보-태평양 계보를 잇는 현대는 90년대 말에 등장해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프로야구를 평정해가기 시작한다. 96년 해태가 우승을 달성 할 때 파트너가 현대였고 현대는 그 이듬해인 1998년 코시 우승 후 2000년, 2003년, 2004년 연속으로 프로야구를 평정한다. 반면 삼성은 2001년 우승 후 우승의 주역이었던 선수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면서 약화된다. 또 내부적으로 라이온즈는 이승엽의 56홈런과 맞물려 라이온즈의 이승엽이 아니라 이승엽의 라이온즈라고 불릴 만큼 모든 주목이 이승엽에게 쏠렸고, 팀 내부적으로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삼성에는 90년대 중반 문을 열었던 2군 팜이 슬슬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정현욱과 권혁, 안지만, 윤성환 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우승에 자존심 상했던 삼성으로서는 라이온즈의 강화와 강력한 재계라이벌팀인 현대의 약화를 동시에 추진한다. 마해영과 이승엽이 팀을 떠나자 라이온즈는 정몽헌 회장의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경영이 악화되는 현대로부터 박종호, 심정수, 박진만을 빼온다. 본격적인 “돈성”의 행보를 걷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04년 현대와의 코시는 너무나 강열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전무후무한 코시 9차전이 벌어졌던 해이고,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배영수가 불꽃같은 투혼을 발휘했던 시리즈였다. 객관적 전력의 불리함 속에서도 라이온즈 선수들은 현대 유니콘즈의 어마무시한 선수들을 상대로 싸우고 또 싸우다가 장대비가 내리는 와중에 장열하게 산화해간 시리즈였다. 2승 4패 3무승부...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 노런. 장대같은 비가 내려도 결코 중단 시킬 수 없었던 야구가 수중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시리즈. 시즌 중반 병풍으로 인해 삼성은 정현욱, 윤성환, 현재윤을 잃은 상태였고 반면 현대는 정성훈 정도만 없는 상황이었다. 팜 시스템으로 성장한 배영수와 권오준과 권혁으로 버티는 마운드. 여기에 놀랄만한 활약을 펼쳤던 김진웅. 마지막 9차전에서 강명구의 오버런만 없었다면... 그날 비가 내리지 않은 그라운드였다면 마지막 타자였던 강동우의 타구가 충분히 안타가 될 수 있었을 것을... 여하튼 그렇게 마지막 9차전에서 7:8로 패하면서, 2004년 현대는 마지막 우승을 삼성을 상대로 이뤘고, 그 이듬해 삼성의 외야에는 심정수가, 유격수와 2루에 각각 박진만과 박종호가 서 있는 생경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독석에 선동열이라는 붉은 유니폼이 더 어울리는 남자가 있었다.
삼성은 이승엽의 빈자리를 심정수와 외국인 타자 크루즈로 메꿀 계산이었으나 이 계산은 초반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심정수는 어깨부상으로 개점휴업이 되고 크루즈 역시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선동열 감독은 지키는 야구로 전환하지만 선발진이 허약한 삼성은 뒷문 잠그기로 버틴다. 여기에 오승환이라는 단국대 출신의 걸출한 마무리와 안지만이 급성장을 하면서 05, 06년 “돈성” 라이온즈는 2연패에 성공한다. 이를 김응용 감독의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느니, 돈으로 이룩한 우승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들려오자 선감독은 차 후 외부 FA를 영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 선언은 지금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2006년 한화와의 코시에서 손쉽게 승리한 직후 “푸른피의 에이스” 배영수가 수술로 이탈하고, 심정수가 은퇴하면서 삼성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선발진이 5회를 버텨주면 정현욱, 권혁, 권오준, 오승환이 매조지하는 불펜야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 시기가 된다. 이 시기에 불펜이었던 윤성환이 선발로 전환하고 안지만도 선발수업을 하기도 했는데 이 시기 삼성의 화두는 강력한 선발진 구축과 과거 화려했던 타선의 재장착이었다. 소위 전문가들은 이런 급격히 약화된 삼성이 우승은 고사하고 4강권에도 못 미치는 전력이라면서 평가절하하고, 혹자는 최하위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삼성 팜 출신인 박석민과 조동찬이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삼성에서 방출당한 최형우가 경찰청에서 성장중이었고, 해외로 진출했던 채태인이 특별지명으로 삼성에 입단한 시기였다. 다만 포스트 이승엽이라 하여 기대를 걸었던 조영훈은 여전히 기대주로만 머물렀고, 좌완강속구로 선동열 감독의 사랑을 받았던 차우찬은 여전히 불안한 제구력으로 자리를 못잡던 시기다. 이시기 삼성은 경산볼파크에 이어 STC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타팀에서 고장나 버린 선수들이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선수들을 재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는 선수수급에 활로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다. 없으면 없는 데로 만들어 쓴다는 것... 고교시절 혹사로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 신인급 선수나 타팀에서 더 이상 활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버린 선수를 STC에서 길게는 4년, 짧게는 1년 정도 재활에만 매진케하여 다시 부활시켜 뎁스를 두껍게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1차 지명도 없어지고(물론 1차지명을 없애는데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낸 팀이 지역 팜이 허약했던 삼성이었다), 비교적 준수한 성적 탓에 우수 신인 선수 수급에 한계가 있던 삼성은 프런트의 역량을 강화시켜 그물망식 스카우트팀을 운용하면서, 근시안적인 전력강화가 아닌 장기적 안목에서 팀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현장 출신 김응용사장이 철저하게 프런트의 현장개입을 차단하고 프런트는 오직 현장을 보완하는 시스템을 안정시킨 것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걸출한 신인급 선수가 없는 반면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는 삼성식 화수분 야구가 시작된 것이다. 어느정도 시스템이 안착되자 삼성은 그동안 짙게 드리워져 있던 해태색을 빼기 시작한다. 김응용사장이 나가고, 선동열감독과 해태 출신 코치들이 물러나면서 삼성은 과거 삼성의 프렌차이즈 스타들과의 화해를 시작한다. 김성래, 김용국, 장태수, 장효조, 강기웅 등이 돌아오고 김태한, 김한수, 김재걸 등이 은퇴 후 코치진으로 남으면서 라이거가 아닌 명실상부한 라이온즈로 거듭나고자 한다.
류중일 감독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류감독은 지장(智將)에 속한다고 본다. 영악하면서도 자신의 역할과 코치의 역할을 적재적소에 나눌 줄 아는 인물. 결코 모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실속을 챙기는 인물. 그리고 철저한 시스템 신봉자. 선동열감독 퇴임 후 급격히 도루숫자가 줄자 다시 김평호코치를 모셔오는 용단이나, 카도쿠라를 코치로 영입한 행위, bb아크를 통해 1:1 맞춤형 교육을 통한 신인선수의 단기성장유도, 내년 신구장 건설과 맞물려 코치진의 확대계획 등은 그가 삼성의 과거와 미래를 나름 파악하여 결코 흔들림 없는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야심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흔히 감독 개인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팀은 그 감독이 떠나면서 급격히 허물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아마 그 비근한 예가 김성근 감독이 거쳤던 LG와 SK가 될 것이다. 후임 감독은 김성근 감독보다 못하다는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김성근 감독의 지도 스타일과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을 것이고, 선수들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운영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효율성과 지속성을 놓고 봤을 때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감독이 있는 팀은 단기간에 강호로 군림하지만 그 감독이 물러나면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린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란 격언처럼 강력한 카리스마 아래에서는 불만들이 숨죽여져 있다가 그 카리스마가 사라지는 순간 분출하게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민주적 방식의 운영은 만들어가는 과정은 지루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격지만 완성되는 순간 지속성에 있어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영속성을 띄게 된다. 류중일 감독은 누가 감독을 해도 삼성만의 시스템을 통해 영원히 강호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런 팀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영원한 제국은 없다. 언제까지 삼성이 리그 최고의 팀으로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라이온즈 역시 최강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가 있을 것이며, 그래야만 리그가 보다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다만 지금까지 라이온즈의 “역사”를 살펴보면 라이온즈는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스스로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강화해왔다는 사실은 직시해야만 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해당 팀은 영원히 시행착오만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는 비단 야구만이 아니고 모든 개인과 집단, 국가까지 해당되는 말이다. “역사”의 교훈이야말로 라이온즈가 강팀이 되는 가장 강력한 자양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