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타]
‘짱돌’ 장윤희 "저도 부드러운 여자에요"
90년대 코트를 풍미했던 여자배구 최고 거포 장윤희. 작은 키지만 파워 넘치는 공격과 탄탄한 수비는 일품이었다. 다부진 플레이는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가 있었기에 한국은 세계무대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장윤희는 단순히 공만 때린 게 아니다. 코트에 ‘혼’을 심었다.
문수경 기자 moon034@hanmail.net" >moon034@hanmail.net
사진: 사이타, 장윤희 제공
프로필
생년월일: 1970년 5월 22일 가족관계: 남편 이경환(39), 딸 천지(7) 출신학교: 전주 근영여고-한체대 소속팀: 호남정유(GS칼텍스 전신) 88년~2002년 국가대표: 89년 9월~2000년 2월 별명: 짱돌 주요성적: 91~99년 슈퍼리그 우승(9연패), 94년 히로시마AG 금메달, 94년 브라질세계선수권 4위, 99년 일본월드컵 4위 수상경력: 슈퍼리그 MVP 5번, 베스트6 10번, 91년 일본월드컵 리시버상 베스트6
인터뷰를 하기 위해 수원으로 향하는 길. 살짝 설레였다. 최고 선수를 만난다는 사실이. 궁금했다. 어떻게 살고 있을 지. 장윤희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현역시절 긴장감이 서린 무표정한 얼굴에 짧은 머리는 온데 간데 없었다. 다만 생머리를 곱게 빗어 내린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다. ‘슈퍼리그 여왕’ 장윤희(37)의 근황을 들어봤다.
‘배구는 나의 인’
"지난해 창단한 수원시청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있어요." 이제 프로배구 코트에서 장윤희를 볼 순 없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소속팀이 5월 도민체전에 수원대표로 참가해서 요즘 이틀에 한 번씩 훈련하느라 바쁘다. 수원시청은 지경희, 최보숙, 구민정 등 내로라 하는 은퇴선수들이 모인 스타군단. 물론 나이 탓에 실력은 예전 같지 않다. 코치도 없다. 하지만 재미있어서 하니까 힘든 줄도 모른단다. 게다가 친목도모까지. "운동보다도 만나서 수다 떠는 게 더 좋아요."(웃음) 왕년의 거포도 이젠 평범한 아줌마인가 보다. 또 1주일에 이틀은 아마추어 9인제 배구동호회 ‘영통사랑’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가 좋아하는 배구를 가르쳐 줄 수 있어서 뿌듯해요." 내년쯤엔 여자 올드스타전에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합에서 지면 고달팠어요
호남정유(GS칼텍스 전신)는 91~99슈퍼리그에서 9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88년 장윤희가 입단할 당시만 해도 만년 하위팀 이었다. 미운 오리가 화려한 백조로 거듭난 건 ‘독사’ 김철용 감독 밑에서 죽어라 연습한 덕분이었다. "김철용 감독님은 평소엔 포근하시지만 운동할 때 만큼은 선수들한테 안 지세요." 시즌 끝나도 연습은 계속됐다. 1년 내내 쉴 틈이 없었다. 1주일에 쉬는 날은 주일 하루 뿐. 새로 부임한 신만근 코치도 엄청난 훈련량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혹시 불만은 없었을까. "저희는 시합 한 번 지고 오면 고달팠어요." 경기에서 지면 훈련강도는 더 세졌다. 연습이 두려웠다. 그러니 ‘악’이 생겨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어느 순간부터 다른 팀은 호남정유만 만나면 지레 포기하고 들어왔다. 92연승(91년 1월~95년 1월)은 그렇게 달성됐다. 2000년 슈퍼리그에서 10연패가 좌절된 게 아쉽지 않냐고 했더니 "대신 딸을 얻었잖아요"라며 웃는다. ‘2000년에 어렵사리 가진 딸’이라서 이름도 ‘천지’란다. 그러면서 반문한다. "10연패 했다고 뭐가 달라졌겠어요?" 그는 또 올 시즌 꼴찌에 머문 친정팀 GS칼텍스의 부활을 소망했다.
키 작아도 문제없어!
요즘 잘 나가는 김연경(흥국생명) 선수 얘기를 꺼냈다. "연경이는 키 크고, 탄력도 있고, 기본기도 좋아요. ‘레프트에 저런 애가 있구나’ 싶어요." 또한 ‘본인과 비교를 해달라’는 질문에는 "단지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 한다. "저는 90년대 팀 컬러에 맞아서 잘 했던 거고, 연경이는 어딜 가도 제 몫을 할 선수죠." 그러면서 대뜸 하는 말. "전 키 큰 애들은 잘 안 봐요. 키 큰 애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데 작은 애들은 정말 노력 많이 하거든요."(웃음) 장윤희의 실제 키는 169cm. 170cm가 채 안 된다. 하지만 키가 작아서 콤플렉스를 느낀 적은 없단다. 물론 아주 가끔 ‘키가 좀 컸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은 한 적 있지만 신세한탄은 Oh No. 순발력과 탄력은 타고 났기에 착실히 기본기 훈련을 쌓았다. 천부적인 신체조건은 없었지만 노력으로 ‘작은 키’를 극복해냈다. 결국 ‘키는 작은데 참 잘한다’는 소리를 듣던 소녀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장윤희는 ‘남자’다?
여자대표팀은 94년 브라질 세계선수권에서 4강에 올랐다. 그 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 직후 얻은 또 하나의 수확.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태릉선수촌에 입촌, 시차적응을 위해 열흘간 낮엔 자고, 밤엔 운동을 하는 생활에 대한 값진 보상이었다. 그러나 감격적인 ‘4강 드라마’ 뒤엔 ‘장윤희의 성 검사 파문’이 있었다. "시합 전에 성 검사를 했는데 제가 남자로 나온 거예요. 첫 경기(독일전)도 못 뛰었어요. 그 경기는 졌구요." 맙소사! 한달 전 아시안게임 성 검사에서도 ‘정상’이었는데 웬 남자? 항간엔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진 일본의 음모’라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결국 재검사를 통해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았고, 2번째 경기부터 뛸 수 있었다. 선수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린 사람은 또 있다. 바로 장윤희의 남편 이경환 씨. "애 아빠랑 사귀고 있을 때 였는데, 친구들이 그랬대요. 정말 저게 맞는 거야?"
지금이 더 행복해요
역시 장윤희 하면 ‘근성’을 빼놓을 수 없다. 97년 결혼한 그는 혹시라도 ‘여자는 결혼하면 안돼’ 라는 얘기를 들을 까봐 남보다 2배, 3배 더 노력했단다. 결혼 후 특별휴가 3개월을 받았지만 살 찔까 봐 맘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비쩍 말라서 갔더니 김철용 감독이 "애를 왜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놨냐"면서 신랑을 나무랐단다. 결국 2개월 만에 훈련장으로 출근했다. 당시만해도 ‘결혼=은퇴’ 였지만 그런 공식을 깬 것도 ‘근성 덩어리’ 장윤희다. 그는 결혼하고서도 3년간 선수생활을 지속했고, 98 99슈퍼리그에선 MVP를 탔다. 그러나 지나친 승부욕 때문에 손해도 많이 봤단다. "승리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본의 아니게 후배들한테 상처도 많이 줬죠." 물론 지금은 섭섭한 감정은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제가 얼마나 극성스럽게 보였겠어요. 지금도 운동할 때 만큼은 악착스럽게 하지만요."(웃음)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장윤희 부부는 어느덧 결혼 9년차가 됐지만 늘 신혼 같다. 장윤희가 결혼하고 3년 동안 운동을 했고, 남편 이경환 씨는 경륜선수 라서 주말엔 집에 없기 때문이다. "항상 신혼 같아서 좋겠네~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웃음) 두 사람은 89년 태릉선수촌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남편 이경환 씨는 전도유망한 사이클 국가대표 였고, 장윤희는 막 입촌한 20살 ‘꽃띠’ 처녀였다. 장윤희를 보고 첫 눈에 반한 남편이 먼저 대시 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퇴짜를 놓았다. "운동하느라 연애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여기서 포기할 쏘냐. 이경환 씨는 1년 후 ‘사귀겠다’는 승낙을 받아냈고, 8년간 연애 끝에 97년 4월 결혼에 골인했다. "‘사랑보단 정 때문에’ 결혼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 이런 게 사랑이구나’ 느껴요." 이해심 많은 남편이 너무 고맙다는 장윤희는 이참에 시부모님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결혼 후에도 운동할 수 있게끔 배려해주시고, 지금도 애 봐주시고 너무 감사해요."
인터뷰가 끝나자 7살 난 딸 천지가 엄마 곁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새초롬한 미소를 담뿍 머금은 채. 이내 장윤희의 딸 자랑이 이어졌다. "엄마, 아빠랑 달리 애교가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웃음) "과거보단 미래가 중요하잖아요"라고 운을 뗀 그의 꿈은 소박하다. "앞으로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고 싶어요. 둘째 계획도 잘 됐으면 좋겠구요."
< 내 생애 최고의 경기 >
국내대회- "선경과 벌인 97년 슈퍼리그 결승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1~4차전 모두 풀세트 접전을 펼쳤어요. 저희가 1차전에서 이기고, 2,3차전은 졌어요. 4차전에서는 1세트 따고, 2,3세트 내주고, 4세트에서도 매치포인트로 몰렸어요. ‘아, 여기가 끝이구나’ 싶었죠. 근데 저희가 16-14로 역전해서 이긴 거에요. 다음날 5차전은 편하게 했어요. 3-0으로 쉽게 이겨서 마무리 했죠."
국제대회-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땄을 때죠. 중국, 일본을 다 3-2로 꺾었어요. 그땐 서브권제 였는데, 중국은 5세트에서 21-19로 이겼고, 일본은 1,2세트 지고, 3,4,5세트에서 내리 이겼어요. 일본은, 한국은 안중에도 없었어요. 자기네들이 금,은메달을 결정한다는 생각에 마지막날 중국-일본 경기 잡아놨었거든요. 경기장에서 중국이랑 일본이 2,3위를 놓고 싸우는 걸 보는데 두 팀이 너무 잘하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저런 팀을 이겼을까’ 싶더라구요."(웃음)
< 단어 연상게임 >
김철용- 독사
박수정- 순한 양
정선혜- 착하다, 막내
이도희- 여우
홍지연- 새침떼기
배구- 하얀 공
가족- 소중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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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 회사라서 좀잇다 기사정리 다시할게요 지성
최드림 이 기사 넘 좋아..장윤희선수 직접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정리해서 글자크기 키워줘..
아~ 장윤희!!!
좋은기사 감사!! 언제나 싱거웠던 호남정유와 한일합섬의 결승에 비해 97년은 정말 최고의 승부였어요^^
저는 한일합섬 열심히 응원했는데
탄성이 절로나던 근성있는 플레이 최고의 찬사가 아깝지 않습니다 키가 10센치만 더컸어도....
ctrl + 마우스휠을 밑으로 해보세요.
아...장윤희 선수...다시 보고 싶군요...근성...악바리...최고의 플레이...정말 대단한 선수!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할 슈퍼스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