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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
여호와께서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퍼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렘 10:12-13)
<교리>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 혹은 전능성을 단언하기는 하나님이 존재하심은 증명하는 것 못지않게 여전히 중요하다. 전능한 능력 없는 하나님은 예배할 가치가 없다. 그런 하나님을 섬긴다면 우리 또한 무신론자일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공의와 자비를 베푸심은 바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무한한 능력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한히 전능하신 분으로서 무제한의 능력을 이는 성경이 왜 “능력”이라는 말을 하나님을 가리키는 특유의 이름으로 쓰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막 14:62) 하나님은 무한히 능력이 있으시기에, 하나님에게 ‘힘든 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무한한 능력 덕분에,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조약돌 하나 만들어 내기만큼 쉽다.
성경은 하나님의 권능을 인간의 능력과 종종 대조하기도 하고, 가능한 일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대조시키기도 한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4)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은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
⦁하나님의 권능이란?
하나님 자신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자신의 무한한 지혜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이든, 자신의 뜻의 그 무한한 순결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자신의 뜻의 그 무한한 순결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는 능력과 힘을 말한다. 하나님의 권능은 하나님 자신과 비슷해서, 무한하고 영원하고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이 권능은 피조물이 저지하거나 억제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권능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와 일치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것에서 빛을 발하고 모든 것을 초월한다. 하나님의 본질 안에는 세상에 표현되지 않은, 무한히 더 많은 능력이 있다. 인간과 천사의 이해력은 하나님의 능력이 지닌 무한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과 천사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의 주변에 있는 작은 파면들에 불과하다.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능력을 장엄함에 맞게 논한 적도 없었고 논할 수도 없다.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능력을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만이 친히 자신의 능력을 이해하실 수 있을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친히 자신의 능력을 표현하실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의 잣대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측량하기에는 너무 짧다.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이 표현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차녹은 능력(potentia)의 속성은 하나님의 본성에 본질적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자비와 공의도 신적 본성에 본질적이지만 능력은 더 “분명히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예컨대 자비와 공의는 능력이 없으면, 행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속성들과의 조화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단순성은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고, 이것은 능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막 14:62). 능력 개념은 권세나 힘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는 능력 없는 권세와 권세 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이 속성을 이해할 때 차녹은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모든 행위 속에서 명백히 나타나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행위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고 계시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본질이 지닌 영광이듯이 믿는 자의 위로이기도 하다. 사도는 하나님의 본질이 지닌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탁월한 표현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시한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게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업 3:20, 21),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전능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해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도가 암시하는 것처럼, 복음 전파와 이방인들의 회심에서 이런 놀라운 능력의 역사를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권능은 “그의 손에서 나오는 뿔들.(합 3:4)로 표현된다. 하나님의 손으로 행하시는 모든 것이 전능자의 힘으로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능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막 14:62), 이것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다는 의미다. 하나님과 능력은 서로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온전히 일치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장소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에 광대하다. 하나님의 본질은 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하다.
⦁하나님의 본질은 행위에서 한계가 없기 때문에 전능하다.
1.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숫자 1에 비유한다. 1은 더하는 것으로 수를 만들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수를 증가시킨다. 1을 어떤 수에서 제거하면 얼마나 광대하게 이 수를 감소시키는가! 1은 다른 모든 숫자에 완전함을 주지만 어떤 것에서도 완전함을 받지 않는다. 1은 숫자에 더할 때 이렇게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1이 모든 숫자의 시작이듯이 모든 것의 시작이신 분을 말이다. 하나님은 1이 수를 증가시킬 수 있는 것만큼이나 피조물들을 만드시는 것에서 많은 것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다.
2. 사실 하나님을 가장 지혜로운 분일 뿐 아니라 가장 능력이 많은 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가 없다. 자신이 원하고 뜻한 바를 행할 수 없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다. 만일 하나님을 능력에서 제어 당할 수 있는 분으로 상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자신의 본질 안에서 제한받는 분으로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능한 것들에 대해 무한한 지식을 갖고 계시듯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한 것들을 행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들을 결정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계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님이 뜻으로 정하고 명령하는 것이 좋다고 보시는 것들을 결과로 가져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계시다. 모든 피조물의 본질은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 활동성을 간직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의 본질
1. 능력은 때로 권위를 뜻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통치 영역과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일을 감당하게 명령할 권한을 갖고 있는 가에 따라 이 사람에게 힘과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힘으로 간주되는 능력과 권위로 간주되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 분리할 수가 없다. 능력에 권위가 없을 수도 있다. 불의한 침략이 성공하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권위에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권위와 통치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수행하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이해해야 한다.
2. 이 능력은 일반적으로 절대적인 능력과 명령적인 능력으로 나누어진다. 절대적인 능력은 하나님이 하려고 뜻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이다. 명령적인 능력이란 하나님이 하기로 정하신 것을 행하시는 능력이다. 즉 하나님이 이루어질 일로 명령하신 또는 정하신 일을 행하시는 능력이다. 이것은 구별된 능력이 아니라 하나의 같은 능력이다. 하나님의 명령적인 능력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의 한 부분이다. 만일 하나님에게 뜻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하나님은 뜻하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분일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의 대상은 가능한 모든 것이다. 모순을 함축하고 있지 않은 것들, 이루어지는 것이 스스로의 본질 안에서 모순이 되지 않는 것들,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본질과 완전하심들에 모순되지 않는 것들이다. 하나님이 정하고 명령을 내리신 것이 일단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정하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실이 될 수 없다. 어떤 것들은 하나님의 본질과 완전하심들에 모순된다. 하나님의 본질이 죽고 소멸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리 면에서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고 속인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3.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가 지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의 무한한 순결함이 결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라는 것이다. 주된 개념으로 볼 때 능력은 행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이것은 실제로 어떤 것을 결과로 가져오기 전에 이것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이 능력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이미 이 능력을 갖고 계셨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뜻만큼 크다. 하나님의 뜻의 범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범주 안에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하나님이 결코 이것이나 저것을 뜻하시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이것을 뜻한다고 가정해 본다면 이것을 행하실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개념에서 하나님이 오직 행하기로 결정한 것들만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확장시켜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은 결정할 무한한 의지력을 갖고 계신 것만큼이나 행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계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외에도 이 능력은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 없이, 아무 어려움 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본질을 갖고 있다.
4.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지혜, 의지와 구별된 개념을 갖고 있다. 이것들은 실제로 구별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개념에 따라 구별될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들을 인간의 것들에 빗대어 말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본질이 지닌 불완전함들과 구별해서 가려낸 완전하심들을 하나님에게 돌리지 않고서는 이것들을 논할 수가 없다. 우리 안에는 세 가지 이치가 있다. 바로 명철, 의지, 능력이다. 그리고 각각에 따른 세 가지 행위가 있다. 계획, 결정, 수행이 이것이다. 이것들은 우리 안에서는 구별되지만 실제로 하나님 안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의 개념에서는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철에, 결정은 하나님의 의지에 속해 있다. 지시는 하나님 의 지혜에, 수행은 하나님의 능력에 속해 있다. 하나님의 지식은 어떤 것이 행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하나님의 지혜는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에 합당하다고 여긴다. 하나님의 의지는 이것을 행하기로 결정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의지가 결정한 것을 결과로 가져오기 위해 하나님의 의지를 적용한다. 지혜는 사물들의 존재, 이 존재들의 측정과 완전함을 정한다. 능력은 이 완전함들과 존재를 이것들에게 전달해 준다. 하나님의 능력은 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자신의 행위에게 지시를 내린다. 하나님의 의지는 명령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지휘하고 지시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결과로 가져온다. 하나님의 의지는 근원으로, 하나님의 능력은 행하는 자로 표현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의 결과들과 하나님의 의지의 명령들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명철과 의지에 종속 되는 완전함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권능은 그분의 의지에 따라 일한다.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그분의 사고 능력으로 간주하듯이, 그들은 하나님의 의지를 그분의 결정하는 능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성경은 사고하는 신적 능력을 사고 자체와 구분하거나 의지와 같은 다른 능력과 구분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하게 비록 성경이 종종 하나님의 의지를 언급할지라도, 성경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의지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결정하고 권능을 행사하게 하는 그분 안에 있는 어떤 형이상학적 또는 심리적인 독립체인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지는 결정 그 자체다. 우리가 단순성 교리에서 기대하듯이,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 가진 어떤 부분이나 그분 안에 있는 어떤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자신 즉 인격이다.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분이고 그분의 의지는 그분이 결정하는 그것이다.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비록 하나님의 의지가 많은 차원을 가질지라도, 단순하지만 정확한 정의는 다음과 같을 것일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지는 그분이 발생시키길 원하는 어떤 것이다. 하나님의 의지는 그분은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계획하는”과 “선택하는”이라는 어휘도 관련된다. 또한 하나님의 의지를 의미하는 “길”도 성경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리고 “의지”,와 “길”은 종종 계시에 대한 광범위한 어휘들, 가령 “법령”, “증거”, “법”, “계명”, “말씀”등과 같은 어휘와 서로 교환 가능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는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길 하나님이 바라신다면 확실히 그분은 그들이 구원받기를 바라신다. 왜냐하면 구원은 그런 회개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칼빈주의자들은 이런 결론을 부인하고 하나님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을 바랄 수 없다고 추론한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을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또한 다른 많은 예도 존재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거짓 신과 우상에서 돌아서서 경외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붙들고 안식일을 기억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등의 것을 하길 바라신다. 그러나 이런 바람들이 항상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그분의 작정적 의지가 아닌 교훈적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작정적 바람은 항상 발생하지만, 그분의 교훈적 바람은 항상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주장에서 칼빈주의 신학에 반대되는 것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비와 열매 맺는 계절은 보내시고 심지어 그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신다.(행 14:17) 하나님은 자기 피조물의 최선을 바라신다. 그리고 물론 그들에게 최선인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다.
신명기 5장 29절에서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자신의 소원을 표현하신다. 이런 구절에서 하나님은 순종뿐 아니라 순종의 결과, 즉 장수와 번영이라는 언약적 복(출 20:12)에 대한 강한 소원을 표현하신다. 궁극적으로 이런 언약적 복은 다름 아니 천국 자체, 즉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재다. 에스겔의 예언에서, 인간이 회개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은 또한 회개하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소원이다. “생명”은 종종 우리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성경적요약이다.(엡 2:1-7)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예수님은 세속적인 지배자가 되는 것이나 자신의 나라를 칼로 가져오는 것을 거절하신다. 원수들을 죽이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이 그들의 손에 죽으신다. 이 모든 것이 약함의 모든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한다.(고전 1:24) 분명히 하나님은 죽음에서 생명을 가져오고 사탄과 그의 모든 무리를 패배시키는 것과 같은 자신의 가장 놀랍고 사실상 가장 강력한 사역을 성취하시기 위해 이런 약함의 시간을 사용하셨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시대에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사역, 즉 백성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로 모으는 사역은 전쟁이나 정치, 돈이나 명예의 영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온다.(고전 1:21)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만을 가지고 자신의 백성을 이 세상을 통해 모든 열방에 보내신다.(마 28:18-20) 그러나 이 말씀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 하나님의 권능은 전도라는 겸손한 수단 속에, 사실상 자기 백성의 고난 속에 있다.(벧전 2:13-3:22) 그들은 진리, 의, 평화의 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 기도와 같이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전신 갑주를 통해 사탄을 이긴다.(엡 6:10-20) 따라서 우리는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다(10절)
<참고문헌>
하나님을 아는 지식 / 마크 존스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 스티븐 차녹
조직신학 / 존 프레임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 조엘 비키, 마크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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