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 약 ≫
1. 식물이 보내는 ‘긴급구조 SOS’
인간이 아픈 것처럼 식물도 병에 걸린다. 병에 걸린 식물은 잘 자라지 못할 뿐 아니라 일부가 괴사하거나 식물 전체가 고사하는 등 정상적인 생육이 어려워진다. 최근에는 국제교역이 증가하며 외래병해충의 유입이 가속화되고, 해외여행객의 증가로 인해 병해충의 유입도 증가하고 있다. 2015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발생한 과수화상병은 해를 거듭하며 범위가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였다. 과수화상병은 사과와 배나무에 주로 발병하는데, 뚜렷한 방제법이나 예방법이 없어 마치 동물의 구제역처럼 나무를 뿌리째 매몰하는 방제법을 사용한다.
2.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식물병
식물에도 병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가 알게 된 것은 180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그 이전에는 식물이 병에 걸리는 것이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잘못을 저지른 인간에 대한 신의 응징이라고 믿었다. 이로 인해 맥각병에 걸린 호밀빵 섭취로 인한 중독증상을 마녀사냥으로 해결하며 희생자를 발생시켰는데 훗날 이 맥각에 환각제의 일종인 LSD성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일으킨 감자역병은 100만명의 아일랜드 대탈출로 이어진 바 있고, 스리랑카는 커피녹병으로 인해 나라 산업이 바뀌기도 하는 등 식물병은 역사적 사건들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바나나의 멸종을 가져올지도 모를 파나마병이 세계 바나나 농가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3. 병을 알면 백전백승, 식물병 방제법
식물병의 가장 확실한 방제는 농약을 사용하는 것으로 신속하고도 정확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잔류농약 문제와 환경오염 등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여 최근에는 이를 대체할 방제법의 연구가 한창이다. 최근 몇몇 글로벌 기업은 바이오 작물보호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등 새로운 방제법 마련에 분주하지만, 무엇보다도 식물병의 가장 좋은 방제법은 기본을 지키는 것으로 웬만한 식물병의 초기 방제가 가능하다.
4. 시사점
식물병은 인류와 함께 시작해 미래에도 인류와 함께 살아갈 운명이다. 환경 변화에 따른 식물병의 방제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농업의 4차 산업혁명 시대 등에 대비한 식물병 분야의 융복합 연구에도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
Ⅰ. 식물이 보내는 ‘긴급구조 SOS’
식물도 사람처럼 병에 걸린다
□ 마치 사람들이 아픈 것처럼 식물도 병에 걸리며 전염되기도 함
○ 병에 걸린 식물은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식물체 일부에 변화가 일어나 정상적인 생육이 어려워 결과적으로 과수 등 생산물을 수확하지 못하게 됨
- 지구상에 분포하는 식물 중 약 10~20% 정도는 병에 걸려 그 수가 감소하고 있는데, 주요 작물별로 감자 21.8%, 과수류 12.6%, 채소류 10.1%, 곡류 9.2%에 달함(1993, FAO)
□ 식물이 병에 걸리는 원인은 생물적인 원인과 비생물적인 원인으로 구분함
○ 생물적 원인 : 균류(진균), 원핵생물(세균), 기생식물, 바이러스, 바이로이드, 선충, 원생동물 등
* 바이로이드(viroid) : 감염성이 있는 외가닥의 작은 공모양의 핵산 입자로 바이러스와 달리 단백질 껍질이 없음(2018, 산림임업용어사전)
○ 비생물적 원인 : 비정상적인 온도, 습도, 빛, 토양, 대기오염, 영양분 결핍, 무기성분의 독성, 화학성분의 독성 등
□ 최근 국제교역의 증가로 외래병해충의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해외여행객의 증가도 병해충 유입의 원인이 되고 있음
○ 1900년 이후에 외래에서 유입된 병이 40종, 해충 47종이며 이중 37%(병 18종, 해충 14종)는 2000년 이후에 유입되었음
○ 외국에서 들어오는 식물류는 반드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검역을 거쳐야 수입이 가능
- 식물검역의 목적은 식물에 해를 주는 병 또는 해충이 국경을 넘어서 전파되거나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임
과수의 구제역, 과수화상병
□ 식물계의 구제역이라고도 불리는 과수화상병이 2018년 여름 전국으로 번지며 과수농가에 비상사태 발생(2018, 농림축산식품부)
○ 과수화상병은 사과, 배 등 장미과 식물의 잎·꽃·가지·줄기는 물론 열매까지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게 마르며 죽는 병
- 마치 불에 탄 것처럼 보여서 불마름병이라 불리기도 함
▷ 과수화상병에 걸린 사과가 검게 변한 모습 - 사과나 배나무의 가지와 줄기 끝부터 까맣게 마른 채 고사되며 열매는 마치 물에 흠뻑 젖은 듯이 보이지만 점점 주름지고 시들며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함(출처 : 강원도 농업기술원) |
○ 과수화상병은 주변의 과수에 빠르게 전염되지만, 현재는 치료나 예방법이 없어 100m 이내의 모든 기주식물을 폐기하는 매몰법만이 가장 효과적인 방제법으로 알려져 있음
- 폐기대상 나무는 뿌리째 뽑아 조각낸 후에 땅에 묻는데, 이러한 방제형태가 마치 구제역과 유사해 과수구제역이라고 함
* 기주식물 : 병원의 주된 매개가 되는 식물로 과수화상병에서는 사과, 배 등이 있음
○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처음 발생했으며 2017년까지 전국의 과수농가 중 115가구(피해면적 약 115ha)의 문을 닫게 함
- 2018년, 충북 제천·충주, 충남 천안, 경기 안성, 강원 평창·원주 등 전국 규모로 병이 발생함
식물병 이름은 누가 지을까? ▷ 우리나라는 식물의 병을 처음 발견하여 보고하는 사람이 이름을 결정함 - 병의 증상으로 병명을 정하거나, 외국어를 번역, 또는 특정병명을 사용 * 오이 잎에 흰가루→오이 흰가루병, 배 잎과 과실에 검정색의 병반→배나무 검은별무늬병, 토마토 잎에 겹무늬반점→토마토 겹무늬병, Soybean sleeping blight(외국)→콩 수면병, Phytophthora균에 의한 병→대부분 역병, Colletotrichum균에 의한 병→대부분 탄저병 ▷ 공식적으로 사용할 때는 한국식물병리학회에서 발간한 한국식물병명목록에 기재된 병명을 사용함 |
□ 과수화상병은 세균이 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식물병임
○ 과수화상병은 에르위니아 아밀로보라(Erwinia amylovara)라는 세균에 감염되어 병을 일으킴
- 최초로 밝혀진 식물 세균병으로 1780년 미국의 뉴욕주에서 처음 발견되어, 북미지역이 원산지인 것으로 추정됨
○ 1919년 뉴질랜드에서 발병한 이후 1957년 영국에서 발생했으며 그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음
□ 화상병에 걸린 과수는 세계적으로 수출, 수입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국가적인 방제대책의 필요성이 대두됨
○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화상병 발생국가의 배와 사과 묘목은 물론 생과일의 수입까지도 전면 금지함
○ 과수화상병이 완전히 박멸된 것으로 확인된 후에도 5년이 지나야만 화상병 안심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그 이후부터 사과와 배 수출이 가능해짐
- 과수화상병이 확진되면 병 발생지를 긴급방제하고 역학조사를 실시하며 발생이 우려되는 인접지역으로의 확산을 방지해야 함
○ 과수화상병은 식물방역법상 검역병해충에 속하며 국가의 책임 아래 관리하는 식물병임
- 과수화상병의 증세가 나타나는 과수나무를 보면 반드시 인근의 농업기술센터나 농촌진흥청에 신고해야 함
▷ 과수화상병에 걸린 나무의 매몰 - 만일 과수화상병의 증세가 나타나는 과수를 폐기하지 않는다면 식물방역법 제47조에 의거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함 - 매몰된 과수에 지원금을 지급하며, 2015년 한 해에만 천안, 제천의 68개의 과수농가에 약 90억 원의 보상금 지급 |
Ⅱ.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식물병
식물병, 신이 내린 형벌인가
□ 고대인들은 인간이 저지른 불경한 죄에 대한 징벌로 식물을 병들게 했다고 생각함
○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식물의 녹병이나 깜부기병, 흰가루병 등의 식물병이 발생했으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만 인지함
- 식물이 병드는 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 1600년대 중반 이후, 몇몇 과학자들이 병원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으나, 당시에는 자연발생설이 팽배하여 병원균의 존재는 철저하게 무시됨
* 자연발생설 : 미생물은 죽어가는 혹은 죽은 동식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학설
마녀사냥으로 이어진 식물병
□ 1692년 미국의 세일럼(Salem)지역에서 호밀빵을 먹은 이들이 발작 증세를 보인 사건이 발생
○ 환자들이 온몸이 타는 것 같다고 호소하여 당시에는 병명을 ‘지독한 불길’ 또는 ‘악마의 저주’라고 하거나 환자들을 돌본 성인의 이름을 따서 ‘성 안토니오의 화염’이라고 부름
□ 전염병의 원인을 밝히지 못하자 사람들은 마녀들이 악마의 저주를 불러왔다고 하여 마녀재판으로 이어지기도 함
○ 전염병의 원인을 마녀들에게 돌려, 당시 마녀재판으로 2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사형을 당함
○ 같은 사건이 1722년 러시아에서도 일어났는데, 2만여 명의 군인들이 호밀로 만든 빵을 먹고 죽었다고 기록
‘병원균’으로 밝혀진 악마의 저주
□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병원균이 식물에 침입해 병이 든다는 사실을 밝혀냄
○ 식물병의 생물적 원인이 미생물과 병원균으로 인한 것임이 증명되기 시작
□ 마녀사냥의 원인이 된 호밀빵 전염병도 ‘맥각병’에 걸린 호밀에서 기인한 것으로 드러남
○ 곰팡이균에 감염된 호밀은 낟알이 커지고 딱딱해지며, 갈색 또는 검은 각상돌기로 변하는데, 이 돌기를 맥각(麥角)이라 함
* Claviceps purpurea라는 곰팡이균이 호밀을 비롯한 곡류의 종자에 감염
▷ 맥각병에 감염된 호밀 - 호밀이 병에 감염되면 중간 중간에 검고 단단하게 변한 맥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음 - 맥각병에 걸리면 낟알 자체가 곰팡이로 대체되어 수확량이 크게 감소함 |
○ 밀에 비해 맥각병이 걸리기 쉬운 호밀은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는 식재료로,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맥각병이 유행하게 되었음
- 맥각은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라는 환각성분을 다량 함유
- 사람이 맥각중독증에 걸리면 복통과 근육경련, 불안, 떨림, 환각 및 정신이상, 팔다리 괴저를 일으키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함
죽음의 무도 - 로마의 댄스 대재앙 ▷ 1518년 로마에서 발생한 댄스사건 - 한 여자가 춤을 추기 시작해 마을 사람들 몇 천 명이 발광적인 춤을 추었는데 병적으로 추는 춤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밥을 먹거나 용변을 보면서도 춤을 추었으며, 춤을 추다가 뼈가 부러지거나 죽음에 이르기도 함 - 후에 맥각병이 원인이라고 추정하기도 했으나 지금까지 뚜렷한 원인은 밝히지 못함 |
미국의 역사를 바꾼 감자 역병
□ 19세기 중엽, 15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감자역병이 원인이었음
○ 1840년에 시작해 1846년까지 발생한 감자역병으로 아일랜드 국민들의 1/4에 해당하는 100만 명 이상이 고향을 떠나게 됨
▷ 미국의 역사를 바꾼 아일랜드 감자역병 - 고향을 버리고 신대륙으로 떠난 행렬에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된 케네디 대통령 일가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일랜드의 감자역병이 미국의 역사를 바꾼 계기가 된 셈 (사진 : 네이버 인물검색) |
○ 기온이 서늘하고(16~20℃) 비가 많은 봄, 가을에 발생이 심하기 때문에 공기 중의 습도와 병 발생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환경조건이 맞으면 병이 순식간에 번짐
○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6월, 강원도에 감자역병이 발생해 고랭지 감자 수확량이 감소함
- 역병에 걸린 감자는 잎의 일부가 갈색으로 변하며 심한 경우 잎의 가장자리에 흰색 실모양의 병원균이 보임
- 줄기도 갈색으로 변하면서 약해지기 때문에 바람이 불었을 때 부러지기도 함
▷ 감자역병의 병원균을 밝힌 안톤 드바리(Anton deBary) - 감자에 발생한 병원균이 역병을 일으킨다고 밝혀냄 * Phytophthora infestans라는 균이 감자역병의 원인균 - 감자역병의 병원균을 밝혀내며 세계최초로 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됨 - 영국 더블린에는 이민선을 타러가는 이들의 모습을 조형물로 설치하여 아일랜드 대기근을 추모하고 있음 |
나라 산업을 바꾼 커피녹병
□ 식물병으로 인해 한 나라의 산업구조가 뒤바뀌기도 함
○ 19세기 말, 커피 재배와 수출을 주산업으로 했던 실론(현재의 스리랑카)에 커피녹병이 창궐하는 사태가 발생함
- 커피녹병은 전염되는 속도가 매우 빨라 한번 발병하면 주변의 농장을 초토화시키는 무서운 질병
○ 커피나무의 잎에 주황색 가루가 점무늬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나뭇잎에 녹이 슨 것처럼 보여 녹병이라고 함
- 감염된 나무는 광합성을 할 수 없어, 결국 커피 열매의 수확이 감소되고 품질도 떨어져 상업적 가치가 없음
- 커피녹병은 헤밀레이아 바스티트릭스(Hemileia vastatrix)라는 병원균이 침입하여 발병함
▷ 녹슨 것처럼 보이는 커피잎 - 커피나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열대지방에 약 40종이 자라는데 코페아 아라비카와 코페아 카네포라가 커피의 2대 원종임 |
○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실론은 유럽에 커피를 공급하는 주요 생산지였지만, 커피녹병으로 더 이상 커피나무를 심을 수 없게됨
- 실론 전역에 커피나무를 없애고 차나무로 품종을 바꾼 후 실론은 세계적인 커피 생산지에서 차 생산지로 전환됨
○ 실론에서 커피 생산을 멈추자 이는 지배국인 영국의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커피 대신 홍차를 마시는 실론티 문화가 유행함
- 이런 영향을 받아 현재의 스리랑카도 세계 최대의 차 수출국임
○ 실론에서 발한 커피 녹병은 19세기에 스리랑카와 필리핀 등지로 번졌으며,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커피녹병이 전파됨
세계를 공포로 떨게 한 멸종 위기의 바나나
□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흑사병(Black Death)이나 사스(SAS), 에이즈(AIDS)와 같은 전염병이 식물계에도 존재함
○ 파나마시들음병은 전 세계의 바나나를 멸종 위기에 빠뜨리고 바나나 농가를 위협하는 바나나계의 에이즈(2013, 네이처)
* 줄여서 파나마병이라고 부르며,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균은 ‘Fusarium oxysporum’
- 1950년대에 파나마에서 파나마시들음병이 발병하여 당시 재배 중이던 그로 미셀(Gros Michel)이라는 바나나 품종을 멸종시킴
- 파나마 지역에 국한되었던 곰팡이균이 세계에 퍼지면서 바나나 재배지역이 황폐화되었고 1960년대에 그로 미셀 품종이 사라짐
▷ 파나마병에 걸린 바나나 - 어린뿌리나 뿌리의 아랫부분에 곰팡이균이 침입해 식물체를 감염시켜, 1-2년 만에 고사시킴 - 뿌리부터 잎의 아랫부분까지 관다발을 통해 빠르게 퍼지며 관다발은 갈색이나 암적색으로 변색되어 검게 변해 죽어감 |
○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새로운 품종인 캐번디시 품종임
- 1960년대 중반에 저항성이 강한 품종인 캐번디시(Cavendish)가 개발되어 전 세계로 전파됨
- 병원균이 변이를 일으켜 캐번디시 품종 역시 파나마병에 걸릴 수 있으므로 연구자들은 현재 새로운 바나나 품종을 개발 중임
캐번디시가 아니라, 조셉 팍스톤? - 1840년대에 바나나의 새로운 품종을 발견한 사람은 잉글랜드의 캐번디시 공작이 아니라 정원사였던 조셉 팍스톤(Joseph Paxton)이었음. 그가 발견한 품종은 바나나시들음병에 내성이 있고 상품성이 강한 품종으로 알려져 1970년대에 그로 미셀 품종을 대체할 구세주로 등장한 바 있음 |
기상조건에 영향을 받는 식물병들
□ 대부분의 식물병은 병원균, 식물체, 환경조건이 적당할 때 그 피해가 최대로 나타나며, 특히 기상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음
○ 여름 장마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상저온이 지속되면 벼도열병을 주의해야 함
- 주로 벼의 잎, 이삭, 이삭가지 등에 발생하고 잎에는 방추형의 병반을 육안으로도 볼 수 있으며 이삭목이나 이삭가지는 옅은 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죽음
* 벼도열병은 Pyricularia oryzae에 의한 곰팡이병
- 도열병이 심하면 포기 전체가 붉은빛을 띠며 자라지 않게 되고, 이삭도열병에 걸린 이삭은 쭉정이가 되어 수량이 크게 감소함
‘벼 도열병’ 대발생(노풍벼 사건, 1978) ▷ 다수확 품종으로 개발된 노풍벼에 도열병 발생 - 새로운 품종의 충분한 시험재배가 미흡하였고, 통일계 벼를 침입할 수 있는 병원균의 변이형(레이스)이 출현하였으며, 여름철 저온다습한 조건이 지속되었음 |
○ 보리나 밀의 이삭이 패는 시기인 4~5월에 비가 자주 내리게 되면 붉은곰팡이병에 걸리기 쉬움
- 병든 이삭의 낟알이 갈색으로 변색되다가 그 부위에 병원균 덩어리가 형성되면 전체적으로 붉게 보이는 특징이 있음
* 보리, 밀 붉은곰팡이병은 Fusarium graminearum에 의한 곰팡이병
- 병원균은 독소를 생성하기 때문에 식용이나 사료로 사용할 때 사람과 가축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
□ 한여름의 고추밭에서 마치 포탄을 맞은 듯이 고추가 말라비틀어지는 현상을 보이면 고추탄저병을 의심할 것
○ 여름 장마철에 병원균이 비바람을 타고 전파되어, 고추에 담황색의 포자덩어리를 형성하거나 고추가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함
- 간혹 고추를 말리는 과정에서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함
* 고추탄저병은 여러 종의 Colletotrichum균에 의한 곰팡이병임
○ 탄저병은 고추뿐만 아니라, 다른 채소 작물이나 과수에서도 발병할 수 있음
□ 기온이 그리 높지 않은 20℃ 내외에 습도가 높은 날이 지속 되면 딸기에 곰팡이균이 침투할 수 있는 조건이 됨
○ 딸기 잿빛곰팡이병은 발병 초기에는 육안으로도 작은 곰팡이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약간 무른 것처럼 보임
○ 병이 진행되면 과실이 점점 부패하다가 잿빛곰팡이로 전체가 뒤덮이게 됨
* 이 병은 Botrytis cinerea에 의한 곰팡이병
○ 식물체의 병든 부위에서 겨울을 보내고 난 후, 이듬해에 병원균이 다시 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
- 딸기 외에도 고추, 오이, 토마토, 인삼 등 86종의 작물에 피해를 입히며 수확 후에도 발병하는 등 피해가 큼
□ 토마토가 푸른 상태로 말라 죽으면 풋마름병인지 확인해야 함
○ 푸른 상태로 시들다가 식물체 전체가 갈변되면서 말라 죽음
- 병에 걸린 줄기를 잘라서 물에 담그면 하얀 우윳빛깔 세균액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풋마름병임을 확인할 수 있음
○ 풋마름병의 병원균은 토마토를 포함하여 가지과 작물 등 약 400여 종의 식물체를 감염시키는 다범성 병원균임
* 토마토 풋마름병은 Ralstonia solanacearum에 의한 세균병
모든 식물병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 식물병을 일으키는 곰팡이균은 식물체 전체에 해를 입히는 병원균이지만, 일부 병을 제외하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음
○ 맥각병, 붉은 곰팡이병과 같이 독소를 형성하는 병은 사람에게 유해하지만 그 외 식물병은 건강한 사람과 동물에게 영향을 주지 않음
○ 유해한 영향이 없더라도 병에 걸린 식물은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음
□ 옥수수에 곰팡이균이 침범하면 옥수수깜부기병이 발병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옥수수 질병 중 하나임
○ 옥수수의 이삭과 줄기, 잎 등에서 주로 발병하는데 감염된 식물체가 큰 혹처럼 비정상적으로 자라남
* 옥수수깜부기병은 Ustilago maydis에 의한 곰팡이병
○ 감염된 옥수수나 토양에서 겨울을 보낸 병원균이 다음해 바람을 타고 전파하여 옥수수의 약한 조직을 뚫고 침투함
깜부기병에 걸린 옥수수가 더 맛있다고? ▷ ‘위틀라코체’혹은 ‘멕시칸 송로버섯(Mexican truffle)’의 정체는? - 멕시코에서는 깜부기병에 걸린 옥수수를 식용으로 섭취함 - 병에 걸린 옥수수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라이신(lysine) 함량이 풍부해져서, 오히려 맛과 향이 좋아지므로 멕시코 사람들은 깜부기병에 걸린 옥수수를 별미로 즐기기도 함 |
Ⅲ. 병을 알면 백전백승, 식물병 방제법
우연히 발견한 식물병 살균제, 보르도액
□ 가장 많이 사용하는 보르도액 살균제는 우연히 발견한 것
○ 1840년대 영국과 프랑스 포도나무에 흰가루병이 발생하여 1854년까지 프랑스의 포도주 생산량은 80%까지 감소하게 됨
▷ 흰가루병에 감염된 포도나무 - 포도나무 뿐만 아니라 토마토, 상추, 고추 등에도 흔하게 발병하는 질병으로 식물표면에 흰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해 점차 잎 전체에 흰가루가 뒤덮이는 증상이 나타남 |
○ 프랑스에서 흰가루병에 강한 포도나무 묘목을 수입하고, 석회와 황을 섞어 방제하면서 흰가루병의 피해가 줄어들기 시작함
- 그러나 수입된 묘목에 묻어 들어온 필록세라 진딧물이 포도나무 뿌리를 감염시켜 더욱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킴
- 1878년 미국에서 필록셀라 진딧물에 강한 묘목을 수입할 때 묻어 온 포도나무 노균병이 프랑스 전역에 확산되어 피해 발생
□ 프랑스 보르도 대학교수인 피에르(Pierre A. Millardet)가 우연히 푸른색이 묻은 포도나무가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을 발견함
○ 포도를 훔쳐가는 것을 막기 위해 농민들이 황산구리와 수산화석회를 섞어 만든 파란 용액을 포도나무에 발랐는데 그것이 바로 보르도액
쓸 수도, 안 쓸 수도... 농약의 딜레마
□ 신속 정확한 효과를 보이지만 그만큼의 부작용이 공존하는 농약
○ 지금까지 식물병의 방제를 위해 농약에 의존해 왔으며 농약이 식량문제의 해결에 크게 기여함
- 농약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식품잔류, 환경오염 등 부정적인 인식이 많지만 농약의 전면 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함
PLS 제도(Positive List System, 농약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 ▷국내 사용등록 또는 잔류허용기준(MRL)이 설정된 농약 이외의 등록되지 않은 농약은 원칙적으로 사용을 금지하는 제도 - 1차(2016. 12. 31.) 견과종실류/열대과일류를 대상으로 우선적용, 2차(2018. PLS 시행 시점 12. 31.) 모든 농산물에 확대 적용 |
○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9개의 작물을 대상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의 수확량을 조사한 결과, 미국에서는 55~100%, 일본에서는 20.9~63.4%(복숭아는 100%)까지 감소함
□ 농약은 약제의 특성에 맞게 사용하고 규정을 철저히 지키며, 적당한 시기에 맞춰 사용하는 것이 중요
○ 대상 작물과 병에 맞는 약제를 선택하고 수확전 마지막 살포 시기와 살포농도 및 살포량 등 안전사용지침을 준수함
□ 최근 글로벌 농화학기업들은 바이오 작물보호제(bio-pesticide)에 대한 시장 진입 증가 추세를 보임
고추 탄저병이 탄저균? ▷ 사람이 걸리는 탄저병과 고추 탄저병은 원인균이 다르다고 - 사람이나 동물 등이 걸리는 탄저병은 탄저균에 의한 급성 패혈증을 말하며 식물탄저병은 Colletotrichum이라는 곰팡이에 의한 것으로 서로 다른 종류임 - 1863년 프랑스의 생물학자 카시미르 조제프 다벤과 1876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원인균이 특정 미생물임을 밝혀냄 |
기본만 지켜도 식물병은 관리할 수 있다!
□ 모든 식물병은 적은 양의 전염원으로부터 시작되며, 전염원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제법
○ 전염원이 많으면 우수한 살균제라고 해도 효과가 크게 떨어지므로 병든 식물체는 아주 적은 양이라 해도 반드시 제거해야 함
- 탄저병에 걸린 고추 한 개에도 병원균(전염원)은 수 천 만개 이상 존재하므로 병든 고추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살균제 효과가 50% 이하로 감소
□ 병의 발생과정을 고려하여 농사의 전 과정에서 관리하는 것이 필수 ○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감염되지 않은 종자와 모종의 사용
○ 병이 잘 걸리는 시기를 피해 작물의 재배시기를 조절해야 함
- 재배시기를 앞당기거나 늦춤으로써 병의 활동기를 피하는 방법도 좋은 방제법임
- 시설 재배시, 환기와 관수 조절 관리를 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기본 사항임
□ 같은 작물을 같은 경작지에서 연속으로 재배하는 연작은 토양 오염을 촉진시켜 토양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음
○ 연작을 하게 되면 토양에서 전염되는 병원균 밀도가 증가하여 방제가 어려워지므로 병에 잘 걸리지 않는 비기주작물을 재배하여 토양의 병원균 밀도를 줄여야 함
□ 저항성 품종을 개발하여도 병원균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이를 일으켜 공격할 수 있으므로 주기적으로 새로운 품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함
Ⅳ. 시사점
예방과 방제를 병행한 종합적 접근이 최선의 치료약
□ 인간의 질병도 약물치료, 건강한 식습관, 예방주사 등 다양한 방법을 병행하듯 식물병도 종합적 방제가 필수
○ 식물병의 종류와 특성, 원인을 파악하고 해당 병에 맞는 최적의 방제법 사용
- 병원균의 특성 및 병의 발생 정도, 작물 생육 상황, 환경조건 등을 분석하여 정확한 방제법을 적용해야 함
- 곰팡이병은 살균제, 세균병은 항생제를 사용해야 하며 최적기를 놓치면 방제효과가 떨어지니 방제시기를 맞출 것
○ 종합 방제법은 전문가, 농업인 등 각자 역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조절해야 할 것임
식물병은 앞으로도 인류와 함께할 운명
□ 인간이 농작물을 섭취하며 살아가는 이상 식물병은 계속 함께 하게 될 것이므로, 미래의 환경변화에 다양한 대비가 필요
○ 식물병은 기초·기반 분야로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병의 원인과 작물과의 상호작용 등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분야임
○ 기후변화와 농업생태계의 변화에 따른 재배작물의 다양한 방제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
○ 국내 실정에 맞는 작물별 병해에 관한 종합적 관리 전략 필요
- 내병성 품종 육종, 약제저항성 병원균의 관리 방안, 농약대체 방제법 개발 등
□ 4차 산업혁명 시대 농업을 위한 식물병 융복합 연구도 고민할 때
○ 센서링을 통한 자동 방제, 인공지능에 의한 병 진단 시스템, 로봇을 활용한 재배 및 경작지에 대한 관리 등
[부록]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병
이 자료는 농촌진흥청에서 복사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출처] 신이 내린 형벌, 식물병-균에 의한 식물병 바로 알기|작성자 멍덕골 박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