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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1차전을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가져간데 이어 10일(이하 한국시간)에는 마이애미 히트가 승리를 챙기면서 시리즈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NBA는 지리적인 특성을 고려해 결승 시리즈만큼은 1~2차전을 상위 시드 홈에서, 3~5차전은 하위 시드 홈에서 치른다.
이번 시리즈는 'BIG 3'와 'BIG 3'의 대결로 관심이 뜨겁다. 마이애미는 르브론 제임스/드웨인 웨이드/크리스 보쉬가, 샌안토니오는 팀 던컨/토니 파커/마누 지노빌리가 출격해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이 때문인지 1차전 시청률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샌안토니오 지역에서는 역대 파이널 1차전 시청률 최고 기록을 세웠고, 미국 전체로 봐도 2004년 이후 3번째로 높은 시청률이 나왔다고 한다. 샌안토니오가 NBA에서 네 번째로 작은 시장이기에 늘 시청률에서 고전했던 점을 감안하면 선전한 셈이다.
이 가운데 때로는 해결사가 되고, 때로는 조력자가 되어 팀을 승리로 이끌고 있는 두 스타의 선전도 눈길을 끌고 있다. 부상에서 하루도 자유로울 날이 없는데도 기어이 코트에 나서는 투지는 그들을 NBA 챔피언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2006년 파이널 MVP 드웨인 웨이드와 2007년 파이널 MVP 토니 파커다.
웨이드(1982년생, 가드, 좌), 파커(1982년생, 포인트가드, 우)
웨이드 "몸이 부서질 때까지 뛰겠다"
2013년 6월 4일,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7차전 접전 끝에 승리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몇몇 기자들이 웨이드를 도발하는 일이 있었다. NBA측에서 제공한 인터뷰 스크립트에 따른 상황은 아래와 같다.
Q. 드웨인, NBA 플레이오프에서는 두고두고 회자될 훌륭한 스토리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는 윌리스 리드와 아이재아 토마스 같이 부상을 딛고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도 있었죠. 그런데 당신은 그 정도로 아파보이진 않아요.
웨이드. 그걸(내가 아픈지, 안 아픈지) 당신이 어떻게 알죠?
Q. 그 정도로 아픈가요?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자긍심을 갖고 있나요?
웨이드. 저는 통증이 있든 없든 묵묵히 뛸 겁니다. 이게 내 직업이니까요. 우리 팀은 나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큽니다. 예전에도 이야기했듯, 저는 부상을 핑계 삼지 않는 선수에요. 부상이 있어도 경기를 잘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다음 시리즈(파이널)에서도 때때로 저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 만족할 만한 멋진 장면도 나오겠죠. 저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마이애미 히트가 또 한 번 챔피언십을 획득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런 질문이 나온 이유는 바로 웨이드의 들쭉날쭉한 플레이 때문이었다. 기자들은 계속해서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급기야 '열심히 했느냐, 안 했느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올 시즌 웨이드의 컨디션은 '열심히'라는 단어를 쓰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밀워키 벅스와의 1라운드 시리즈 4차전에서 결장을 선택했을 정도로 무릎 통증이 심했다. 3차전에서는 슛 12개를 던져 11개를 실패하는 부진도 보였다. "웨이드 맞나"싶을 정도로 난조를 보였다.
물론, 웨이드가 플레이오프에서 한 자릿수 득점에 그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바로 1년 전인 2012년 5월 17일,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시리즈 3차전에서도 그는 5점에 그쳤다. 야투 13개 중 11개가 빗나갔다. 그러나 그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30득점을 폭발시켰고, 시리즈를 결정지은 6차전에서는 41점을 기록했다. 반대로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는 좀처럼 만회포를 쏘지 못하고 있다. 플레이오프 17경기를 치르는 동안 야투 50%를 넘긴 경기가 5경기뿐이며, 20득점을 넘긴 경기도 단 두 차례뿐이다.
하지만 웨이드는 자신의 득점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떤 날은 득점이 잘 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어시스트, 또 다른 날에는 리바운드나 수비가 잘 될 수도 있다. 몸이 느끼는 대로 팀을 돕기 위한 모든 일을 할 것이다"라며 말이다.
실제로 웨이드는 4점에 그쳤던 밀워키 3차전에서 리바운드 9개, 어시스트 11개, 스틸 5개로 팀 승리를 도왔다. 인디애나와의 7차전에서는 21득점 9리바운드로 시리즈 내내 보였던 부진을 만회했다.
웨이드는 팀이 비로소 파이널 진출을 확정지은 뒤에야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더 이상 경기를 뛸 수 없을 때까지는 늘 코트에 돌아오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 능력과 한계를 잘 안다. 지금은 더 할 수 있을 때다"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웨이드는 자신의 득점보다는 동료들의 공격 가담이 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 gettyimages/멀티비츠
파커 "던컨을 위해"
2012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정규시즌 포함 20연승을 달리던 샌안토니오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 거짓말처럼 4연패를 당하면서 시즌을 끝냈다. 3차전을 20점차(82-102)로 진 뒤, 각각 6점, 5점, 8점차 패배를 당하면서 탈락했다. 탈락이 확정됐던 6차전 경기에서 파커는 29득점 1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반에 21점 10어시스트를 기록했던 기세는 후반 들어 실종됐다. '보증수표'같던 픽앤롤 플레이도 먹혀들지 않았다. 선수들조차 인정한 '완패'였다.
파커는 경기 후 '큰 형' 팀 던컨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다음 시즌에는 다시 돌아갈거야. 파이널에 다시 올라가서 우승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최선을 다할게."
파커는 약속을 지켰다. 멤피스 그리즐리스와의 4차전 시리즈를 치르는 동안 마이크 콘리를 제압했다. 컨퍼런스 파이널 4경기 평균 기록은 24.5득점 9.5어시스트 3.5리바운드 2.0스틸. 시리즈 향방을 결정지은 4차전에서는 37득점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던컨은 "TP(파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농구가 누구 한 명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종목은 아니다. 그러나 TP는 너무나도 훌륭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파커에게 던컨은 가족 이상의 존재다. 경기 중에는 늘 표정의 변화가 없는 던컨이지만, 경기 후 이동할 때면 늘 마누 지노빌리, 파커를 불러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아버지'같은 존재로서 파커를 엄하게 키웠다면, 던컨은 그에게 자신감을 북돋워주며 더 나은 포인트가드로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왔다.
던컨이 1997-1998시즌 데뷔이래 2013년 6월 10일 NBA 파이널 2차전까지 함께 뛴 동료는 모두 125명이었다. 그 중 5명이 감독(델 네그로, 에이브리 존슨, 테리 포터, 쟈크 번, 몬티 윌리엄스)이 됐고, 2명이 단장(대니 페리, 스티브 커)을 경험했다. 그 외 수많은 선수들이 실버 & 블랙(Silver & Black : 스퍼스의 팀 색깔을 빗댄 별칭)을 스쳐갔지만, 파커만큼은 옆을 지켰다. 두 선수가 함께 한 플레이오프 경기는 무려 167경기. 그 사이에 그들은 3번의 우승(2003, 2005, 2007)도 합작했다.
파커는 오랜 동료이자 선배에게 마지막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던컨이 자신을 위해 에이스 자리를 기꺼이 내줬던 '선배' 데이비드 로빈슨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1차전에서 그는 극적인 위닝샷을 터트리면서 샌안토니오에 천금 같은 승리를 안겼다.
비록 2차전에서는 주무기인 픽앤롤이 틀어 막히면서 반전의 기회를 놓쳤지만, 정규시즌 내내 단 6번 밖에 지지 않았던 홈경기에서는 반드시 흐름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Q. 다음 경기를 위해 (던컨, 지노빌리와)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은가요?
파커. 더 잘 해야 한다는 말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요? 마이애미 히트는 훌륭한 팀입니다. 작년 챔피언팀이죠.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야 합니다. 그들이 2차전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패배를 극복하고, 2차전 패배에 응수할 것입니다.
던컨의 스크린을 이용하는 파커. 그는 누구보다 재빠르고, 스크린에 대한 BQ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 gettyimages/멀티비츠
웨이드, 게임을 이해하다이렇듯,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웨이드와 파커는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누구보다 파이널 무대가 익숙한 승부사들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웨이드의 커리어는 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한 느낌이었다.
2003년에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NBA에 데뷔했던 웨이드는 마이애미 히트의 에이스였다. 큰 경기에 강한 선수였으며, 놀라운 탄력으로 믿기지 않는 서커스 샷을 아무렇지도 않게 성공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05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상대로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갔다. 독감에 무릎 통증을 안고 뛰는 상황에서도 당대 최고 수비팀을 상대로 42점을 뽑아냈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 스프링을 장착한 듯한 무서운 탄력, 여기에 외줄을 타는 듯한 긴장감을 즐길 줄 아는 승부사 기질까지. 스타의 모든 자질을 갖춘 그를 두고 당시 팀 동료 샤킬 오닐은 '친동생 같은 존재'라며 PR까지 대신 해줄 정도였다('THE FLASH'라는 별명도 오닐이 붙여줬다).
비록 갈비뼈까지 다치면서 7차전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2005년의 아쉬움은 2006년 NBA 파이널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꺾고 우승하며 털어낼 수 있었다. 당시 파이널에서 웨이드는 놀라운 원맨쇼를 펼쳤다. 1~2차전을 모두 지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3차전에서는 4쿼터에만 15점을 올리면서 역전승을 이끌었고, 6차전에서는 36득점을 퍼부으며 댈러스를 공황 상태에 빠트렸다. 그 해 파이널 평균득점은 34.7점이었다.
비록 이후 부상이 이어지면서 소속팀은 정상과 잠시 멀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2007-2008시즌에는 아예 플레이오프에도 못 나갔고, 이후 두 시즌은 간신히 5할 승률을 맞추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웨이드는 그 사이에 올림픽 금메달(2008년)과 득점왕(2009년), 올-NBA 퍼스트팀 및 디펜시브 세컨드 팀 등에 이름을 올리면서 NBA 선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룬 듯 했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에 몰락한 팀 전력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가깝게 지내온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와 의기투합하여 'BIG 3'를 결성했다. FLASH'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는 팬들은 "에이스이길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결정"이라며 아쉬워했지만, 정작 웨이드는 새로운 스타일의 경기를 보여주며 'BIG 3'에 녹아들어갔다. 이는 그에게 계속해서 닥친 부상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필자는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입장이다. 스스로 몸 상태에 맞춰 경기 내용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해석하고 싶다. 아울러 르브론 제임스와 공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택했다고 본다. 소위 말하는 '득점 기계'들간의 만남에서 그들보다 훌륭한 조화를 이룬 콤비는 그리 많지 않았다.
웨이드는 공 소유시간을 줄이고, 많이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커트인과 같은 오프 더 볼 무브(Off the ball move) 플레이가 늘어났고, 이는 코트 어느 위치에서든 자기 득점을 따낼 수 있는 웨이드에게는 더 효율성을 안겨줬다. 시너지 테크놀로지(Synergy Technology)의 분석에 따르면 웨이드는 'BIG 3' 결성 후 커트인과 포스트업 비중이 증가했다. 패스 능력이 좋은 르브론의 능력을 한껏 활용, 기습적인 커트인으로 앨리웁 덩크를 만든다던가, 스크린을 타고 베이스라인에서 자리를 잡은 뒤 포스트업/페이스업 1대1을 시도하는 플레이가 늘었다.
반면 아이솔레이션 득점이 대폭 감소했다. 픽앤롤 상황에서 치고 들어가는 역할도 줄었다.
그렇다고 웨이드 고유의 색이 사라진 것은 또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NBA 슈팅가드 중 손꼽힐 만큼 세련된 스텝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해 다각도에서 득점력을 뽐냈다. 2012-2013시즌에는 빈도가 크게 줄었지만, 르브론과 동시에 터지는 날에는 도무지 막을 자가 없었다. 2012년 3월 14일, 시카고 불스 전에서는 웨이드가 36점-르브론이 35점을 기록하면서 경기를 휘어잡았다. 마이애미 프랜차이즈 사상 두 선수가 35점 이상을 올린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웨이드가 스크린을 이용하거나, 훼이크 동작으로 수비를 따돌리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 역시 게임을 이해하는 눈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원체 BQ가 좋은 선수이긴 했지만, 초창기만 해도 볼이 없을 때는 목적 없는 움직임이 많았다. 이는 그의 첫 감독이었던 스탠 밴 건디 감독도 자주 주문했던 것으로, 수비를 따돌리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볼을 잡기 위해서만 바삐 움직였던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스크린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스포엘스트라가 감독이 되고, 'BIG 3'가 결성되면서, 그리고 스스로 경력이 쌓이면서 이러한 유기적인 면도 잘 이해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수비 1명을 붙인 상태에서도 돌파를 시도해 또 다른 수비라인까지 엮어버리는 그 움직임 역시 지난 10년간 많은 발전이 있었다(스포엘스트라 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웨이드와 함께 비디오를 돌려보면서 움직임을 교정해주는 등 많은 공을 들여왔다. 덕분에 둘 사이의 유대 관계는 포포비치-BIG 3만큼이나 강하다는 평이다).
이는 무릎 부상으로 고득점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가운데서도 여전히 공을 잡으면 수비수 여럿이 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커, 어른이 되다
웨이드만큼이나 파커도 큰 무대를 겪으면서 '선수'로서 성숙해진 케이스다.
지난 멤피스와의 시리즈 중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예전에 파커는 그냥 점수만 잘 올리는 스코어러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포인트가드라 불러도 될 것 같다"라고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언제 득점을 하고, 언제 패스를 해야 하는 지를 배우길 바랐는데, 이제는 내가 요구하는 사항을 말하지 않아도 척척해낸다"며 말이다.
2001년에 데뷔한 파커는 웨이드처럼 큰 경기에 더 강했다. 게리 페이튼, 스테판 마베리 등을 당황시키면서 팀의 젊은 기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파커는 전통적인 개념의 1번 포지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그 스타일을 '듀얼가드'로 한정짓는다 하더라도 경기 운영적인 면에 있어서 썩 좋은 점수를 얻진 못했다. 때때로 흥분해서 전혀 공간이 안 나는 지역으로 돌파할 때도 있었고, 중장거리 슛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스타일에 대한 평가가 '재기발랄'이 될 때도 있었고, '제기랄'이 될 때도 있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2003년 파이널에서 우승했을 때 파커는 겨우 21살이었다. 대다수가 대학교에서 농구를 배울 시기였지만, 그는 주전 포인트가드로 출전해 경험을 쌓고 있었다.
당시 상대는 뉴저지 네츠였는데, 그때도 파커는 상대팀 포인트가드 제이슨 키드와 끊임없이 비교됐다. 매체들은 누가 이길 지에 대한 관심은 그리 없어 보였다. 이미 승패에 대한 답은 나와있었으니까. 마침 2003년 7월 1일에 자유계약선수가 되는 키드가 샌안토니오로 갈 수도 있다는 루머가 나왔고, ABC 카메라는 계속해서 파커와 키드를 번갈아 비추기도 했다. 주전 포인트가드를 맡고 있던 파커에겐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2007년 3번째 우승을 차지했을 때, 그의 자리는 더 이상 위협받지 않았다. 2차전에서 30득점을 기록하는 등,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훌륭히 따돌리면서 유럽선수로는 최초로 파이널 MVP가 됐다. 이때 나이가 겨우 25살이었다.
때때로 그는 득점만 잘 하는 포인트가드로 여겨진다. 공교롭게도 농구 관계자들과 NBA 경기를 몇 차례 시청할 기회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스퍼스의 플레이오프 경기가 필자의 만담 파트너 조현일 위원을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 스퍼스의 경기를 보는 관계자들 모두 "파커가 너무 혼자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는 파커가 가진 기술적인 장점들을 무시하는 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누구보다 볼 없는 움직임이 좋은 선수다. 쏜살같은 움직임으로 수비를 따돌린다. 순간적으로 발산되는 스피드도 뛰어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컷 훼이크 기술도 상당하다. 또한 스크린을 잘 활용하며, 픽앤롤 수비를 잘 읽는 선수이기도 하다. 폭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플레이오프가 치러지는 동안 파커의 단점은 많이 최소화 됐다. 파커의 플레이에 의해 경기 명암이 엇갈렸던 것이다.
멤피스의 홀린스 감독 역시 "파커가 시리즈를 컨트롤 했다. 슛을 성공시키고, 플레이를 완성시켰다. 2차전에서는 어시스트 18개로 우리를 무너뜨리더니, 오늘(4차전)은 37점을 기록했다. 대단한 선수다"라고 평가했다.
파커도 이러한 발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다. NBA 파이널을 앞둔 공식 인터뷰에서 "매년 나는 점점 강해졌다. 공격과 수비를 비롯한 게임의 거의 모든 면에서 나아졌다. 노력도 많이 했다. 더 나은 패서, 더 나은 슈터가 되려고 했고, 자유투도 더 잘 던지려고 노력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발전은 이미 호되게 당한 마이크 콘리(멤피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마이애미와 샌안토니오 2차전 장면. 파커의 2대2가 막히면서 스퍼스는 더 어렵게 경기를 치러가야 했다.(사진=ABC 중계 화면)
남은 시리즈의 향방은?
3차전 승리를 위해서는 파커의 활약이 필수다.
스퍼스는 2007년 이후 지속적으로 파커에게 리더의 짐을 맡겨왔다. 포포비치 감독도 그걸 원했다. "대표팀에서 하듯 스퍼스에서도 매 경기 이렇게 해달라. 리더가 되어야 한다." 2012년런던올림픽 이후 포포비치 감독이 파커에게 주문했던 사항이다. 따라서 올 해 파이널에서 스퍼스가 우승한다면, 그 부제는 "리더로서 선배에게 주는 우승 선물"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1차전과 달리, 2차전에서 파커는 히트 수비에 막혀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2차전에서의 13점은 올 해 플레이오프 시리즈 중 가장 낮은 기록이었다. 게다가 지노빌리까지 덩달아 부진, 스퍼스의 BIG 3는 셋이 합쳐 33개의 슛 중 23개를 놓치면서 체면을 구겼다. 히트의 강한 헷지와 압박은 전매특허인 2대2 효과도 원천봉쇄했다.
이에 대해 파커는 '그럴 수도 있다'라는 반응이다. "3차전에서는 그 수비가 더 강해질 것이다. 빨리 잊고 시리즈를 준비하겠다"라며 말이다.
웨이드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사실, 웨이드는 2차전을 앞두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는데, 취재진은 이를 '득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해석했던 것 같다. 반면, 웨이드는 "공, 수 모두 적극적으로 임하며 동료들을 돕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팀이 이기고 많은 선수들이 득점에 가담해주는 이상 자신이 고득점을 올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2차전 후 기자회견에서도 "마이애미 히트 농구란 이런 것이다. 모두가 잘 해서 이기는 경기가 더 특별하다. 볼이 잘 돌고, 서로가 원하는 위치에서 슛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몇 점을 올리든, 어시스트 몇 개를 하든 중요한 것은 웨이드와 파커가 신바람을 내야 팀 전체가 더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리즈가 장기화될 수록 마이애미는 르브론 만으로는 한계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휘저어줘야 한다. 샌안토니오도 대니 그린이 놀라운 슛감을 보여줬으나, 이것이 스퍼스 고유의 색깔과 시너지를 낼 때 더 막강해질 수 있다.
대망의 타이틀까지 앞으로 남은 승수는 3. 과연 웨이드와 파커 중 누가 먼저 '3'이란 숫자에 도달하게 될 지, 누가 또 하나의 챔피언 반지를 가져가게 될 지 궁금하다. NBA 파이널 3차전은 6월 12일 AT&T 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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