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성당은 한림1리 일주도로변 한수리 끝 지점과 대림리에서 한림리 바다로 이어지는 길 끝에 위치한다. 한림지역에 천주교 복은 전례는 제주본당과 같은 해에 설립되었다.
1899년 4월 베가롤로 신부와 보좌 김원영 신부가 제주 지역에 파견되어 제주 본당이 설립된 후, 같은 해 12월 23일 한림읍 금능리 출신 윤 요셈이 세례를 받고 이 지역에 처 신자가 되었다. 이어 1900년 4월 4일 신 이시도로, 한 막달레나, 양 카타리나, 윤 아가타 등이 세례를 받았으며, 6월 12일 하논본당 설립된 후 금악출신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점차 신자수가 늘어나 교세가 확장되어 가면서 신앙공동체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한림지역 신앙공동체는 1903년 구 마르첼리노(구마슬) 신부에 의해 수원공소 설립, 금악리(상명 명솔왓) 소나무 밭을 매입하고, 수원리 892번지 기와집을 매입하여 공소와 경당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어 한경지역 신자수가 늘면서 1935년 신창공소, 1949년 용수공소, 신창공소는 1951년 4월 준본당에서 1952년 6월 29일 본당으로 승격한다.
6.25 대 인천에서 피난 온 임종국 신부를 비롯하여 수녀와 신자들이 한림지역으로 피난 오면서 복음이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이 영향으로 1951년 4월 경 조용한 신부는 한림 1419번지에 한림공소를 설립하여 교세를 든든하게 만들어 나간다.
한림본당 승격와 오늘날
한림본당은 신창본당 제2대 주임 김병준 신부가 1953년 5월 한림 대림리 1814번지부지 100평을 매입하게 되면서 1954년 4월 1일 힌림본당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임피제(P.J Mc Gilnchery)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부임한다. 임피제 신부는 1954년 5월 3일 현재의 부지 350평을 매입하여 성당 기공식을 거행하고, 8월 22일 성당 정초식을 가졌다. 10월에는 사제단도 완공하였으며 재임 기간에 고산공소, 귀덕, 청수, 금능, 금악공소를 설립하였고, 쁘레시디움 창단, 교회 묘지 상대리 천아오름 임야 매입 등을 활발하게 발전시켜 나간다.
1957년 4월 4H 가축은행을 설립, 도내 청소년들에게 축산 및 영농개선활동을 전개하여 큰 감흥을 주기도 하였고, 1959년 3월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수녀회 분원을 설립하여 전교 활동과 함께 수직사업, 의료사업, 양로사업도 펼쳤다. 이 대 한림수직의 전신인 직조강습소를 운영한다. 1962년 5월 10일 임신부께서는 제주 최초로 한림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하고, 10월 15일 농업재단법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를 설립하여 한림지역에 축산업 뿌리를 내리게 함은 물론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때 제주지역 사람들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하였으며 천주교인들이 인식도 확 바뀌게 된다. 도한 1901년 신축년 이재수 사건에 관련한 인식도 이참에 바뀌어 나갔다.
1984년 10월 19일 교구장 김창렬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30주년 기념미사 봉헌 및 경축행사를 거행하였고, 2014년 6월 29일 60주년기념 미사 및 행사를 거행하였다. 임피제 신부가 제주도로 들어와서 제주농촌 및 대한민국 농업이 업그레이드 된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이며 한림읍 금악지역을 성심으로 목장을 경영하면서 한림, 애월, 한경지역 청소년들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축산농가에 기술적 보급도 쉴 사이 없이 진행하였다. 많은 공헌이 잇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역사를 바로알자-한림성당
영국 아일랜드 출신 멕그린치 한국명 임피제 신부(2019년 졸) (Patrick James McGlinchey 神父)께서 부탁으로 한림성당이 지어졌다. 한림성당은 문수동 석공이 많은 마을이고 그 석공들에게 부탁하여 지어진 건물이다. 제주도 돌 건축물의 대표작 중 하나로 현재는 종탑만 남아있다. 동명리 작은 마을 '문수동,에 돌 자파리'라는 주제로 돌빛나학교(교장 조환진)이름으로 돌축제를 주관한 걸작이라 하겠다. 조교장 부친 조창옥 외 6인의 석공들 중지를 모은 것이다.
故 조창옥 어르신의 아드님은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로 아버지에 이어서 아름다운 대물림을 실천하고, 사라져가는 석공들의 삶과 기술을 보급하고 알리고자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