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활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
2024년 2월에 개봉된 두 다큐 영화 [건국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북한과 좌파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되살리고 있다.
제2의 박헌영, 공산주의자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의 “뿌리”와 “정통성”을 말살하려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1948년 이승만이 건국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망명정부인 상해 임시정부에 정통성을 부인하려 시도했다. 독립운동가를 기념할 때도 김구, 김규식, 여운형의 이름은 거명하면서, 의식적으로 이승만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나라와 역사의 정통성이 김일성의 인민공화국에 있고 UN의 감시하에 선거를 치르고 UN의 공인을 받은 대한민국은 정부를 수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된 간첩]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는 5년 동안 늘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을 위해, 김정은을 위해 정치를 했다.
남조선 혁명에 실패한 김정은의 북조선은 지금도 “미제 괴뢰 이승만 타도”를 외치고 있다. 북한은 반미, 반일을 역사의 기본틀로 하고 있다. 지난 70여년 간 북한의 시각에서 역사를 평가한 좌파사학자들은 마치 역사의 정통성이 북한(김일성)에 있고 “친일파” 이승만의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악마화했다. 586운동권은 전교조 교사들을 통해 진실과 거리간 먼 왜곡된 역사를 초,중,고생들에게 주입시켰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인들 대부분은 한국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조차 모른 채 살아왔다.
진실과 기름은 반드시 수면 위로 뜬다는 말이 있다. 최근에 개봉된 [건국전쟁]은 청년 정치범 사형수 이승만이 어떻게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 중국 대륙문화권에서 서구 해양문명권으로 나라가 지향할 방향을 Copernicus적으로 전환을 일으켰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일류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외교천재 이승만이 어떻게 국제질서를 내다봤고, 일본의 패망과 8.15해방을 예견했는지를 보여준다.
8.15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론자 김구와 김규식의 방해를 무습쓰고 어떻게 좌익 통일전선에 휘말리지 않고 자유민주,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종교의 자유(기독교입국)에 기반한 자유대한민국 건국에 매진했는지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건국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새 나라 대한민국은 양반계급만을 위했던 조선시대와는 달리 평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평등이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국정방향에 따라, 양반과 상놈,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남한 출신과 북한출신이 모두 균일한 기회와 권리를 가지고 법 앞에서 평등하게 보호받을 것임을 강조했다.
나라의 기초를 놓은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업적 중에 주목을 받는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 이 대통령은 농민들에게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른 농지개력, 즉 유상매수, 유상분배를 약속했다.
두 번째로 이승만은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1949년에 6년제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고 문명퇴치 운동을 벌였다. 1945년 78% 문맹자는 1959년 22%로 낮아졌다. 고급인력 양성도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해방직후 19개 였던 대학이 1960년에 63개교로 대학생이 10만 명으로 불어났다.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33년 기간에도 그는 남녀교육에 힘썼고, 교회를 세워 교민들은 복음화하는 일에 힘썼다. 1953년에는 하와이 교민들이 보내온 기금으로 인천에 미국 MIT 공대 같은 공과대학을 세운다는 취지로 인하공대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는 장래의 에너지가 원자력이 될 것을 내다보고 195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했고, 서울대에 원자력공학과를 개설하고 여러 명의 미래 과학자들은 유학하도록 배려하였다.
무엇보다 이승만은 기독교인이었고, 공산주의의 본질를 간파한 반공주의자였다. 이승만은 1954년 미 상하합동 회의에서 영어로 연설할 때, 세계는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운동으로 거칠어졌기 때문에 자유세계는 강해지지 않으면 그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그러한 공산주의세력과의 싸움에서 한국이 선봉에 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연설 도중 33차례나 뜨거운 박수를 받았으며, New York의 100만 시민은 Broadway 영웅의 거리 시가행진을 할 때, 세계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용감하게 맞선 대한민국 국민에게 뜨거운 박수로 열열히 환영했다.
그는 작은 나라의 대통령이었지만, 큰 나라의 대통령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았고 당당했다.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높은 학력(국제정치학 박사), 국제외교감각, 그리고 유창한 영어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종북 운동권 공산주의자들은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이승만을 왜곡하고 폄훼하였다. 그들은 역사적 진실과 반대로 이승만은 친일파, 독재자, 런승만, 남북분단의 원흉, 미제의 앞잡이라고 매도했다. 영화 [건국전쟁]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몰이해, 폄훼, 누명을 바로 잡는다.
관객들은 나이를 초월해 이승만 건국대통령 앞에 “미안하고, 죄송하고, 후회스럽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좌파 빨갱이들이 미군철수와 반일을 외치고 있는 것에 반해 영화를 보고 의식이 바뀐 이들은 안보와 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켜준 그의 외교력과 애국심에 깊은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 부부는 기독교인으로 매일 성경을 읽고 하루를 시작했으며, Max Weber가 말한 대로 정직과 근면, 절약, 절제의 삶을 살았다. 이승만 부부는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하루를 시작했으며, 그가 사랑하던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90세에 운명하였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이제 天命이 다하여 감에 하나님이 저에게 주셨던 사명은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바라옵건대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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