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확신
가가와 도요히코는 일본이 낳은 유명한 종교가다.
그는 시장 아버지와 첩이었던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아버지 집에서 자라기는 했으나 첩의 아들이라고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얼마나 저주스러운 인생이었을까? 도요히코는 ‘왜 나 같은 것을 낳았느냐?’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도요히코가 담 모퉁이에 우두커니 기대서서 자기 생을 비관하고 있을 때에 선교사들을 만났다. 그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도요히코는 그들 가까이로 다가서서 물었다.
“기생 아들도 사랑하시나요?”
“아무렴요,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의 글 가운데에는 ‘나는 기생의 아들이 아니고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타난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 확실한 의식, 그 감격이 가가와 도요히코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
당신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확실한 의식과 기쁨이 있는가?
7월
1일
가짜울음 진짜울음
하느님께서는 우리 입에서 건성으로 흘러나오는 기도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구별하여 들으신다.
많은 자녀들을 키운 어머니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식별하는데 전문가가 되기 마련이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가짜울음과 진짜울음이다.
가짜울음은 어린 아이들이 잠자다가 뒤척거리면서 칭얼대는 울음소리다. 이러한 울음소리는 별로 크지도 않고 간절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이러한 울음소리를 듣게 될 때 부모들은 즉시 반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시 칭얼거리다가 곧 잠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울음은 아주 다르다. 이 울음소리는 아주 크고 진지하며 간절하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가 이렇게 울기 시작하면 빨리 아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 어린 아이는 자기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큰소리로 울어대기 때문이다.
부모들도 어린 아이들의 가짜 울음소리와 진짜 울음소리를 식별할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느님께서야 우리의 기도소리를 얼마나 잘 구별하시겠는가?
어린 아이와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는 틀림없이 응답하신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의심을 품을지라도 그것이 간절하고 진실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언제나 환영하신다. 그러나 건성으로 드리는 기도와 습관적인 신앙생활은 하느님을 의심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2일
값진 희생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간호사 한 명이 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부유하고 교육적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부모는 그 딸에게 좋은 가정을 갖도록 행복한 결혼을 권유했지만 나이팅게일은 다 거부했다.
그녀는 31세 때 허무감에 젖어 일기에, “살아갈 의욕이 없다. 텅 빈 공허감,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썼다.
공허 속에 살던 그는 31세 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31세에 간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만류도 뿌리치고 이 젊은 여인은 전쟁터를 찾아갔다. 피흘리며 쓰러지는 전상자들을 붕대로 싸매어주고 닦아주고 붙들어주고 사랑으로 돌보아주며 3년 동안을 일했다. 외로운 군인들은 나이팅게일만 지나가게 되면 마치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처럼 인사하고 경배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희생을 거쳐서 그녀는 현대 간호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 후, 병원마다 간호사가 없어서는 안 되도록 제도화시켰다.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에 그의 시신을 영국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모시려 하자 나이팅게일은 그럴 자격이 없으니 가족묘에 묻어달라고 했다.
31세 때 더 나갈 수 없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였던 나이팅게일은 새로운 가능성과 삶의 의미를 찾고야 말았다.
위대한 삶을 사는 사람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3일
나도 극악무도한 자가 될 수 있다
1961년, 독일의 나치 히틀러 잔당들에 대한 전범재판이 열렸다. 잔혹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유대인 예이엘 디무르가 극악하기로 유명했던 참모 아이히만의 증인으로 나왔다. 디무르에게 재판관이 물었다.
“저 사람을 똑바로 보십시오. 저 사람이 아이히만 맞습니까?”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디무르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한참 후 깨어나자 재판관이 물었다.
“왜 기절을 하셨습니까? 과거의 악몽 같은 장면이 살아나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저 사람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가만히 저 사람을 쳐다보다가 저 사람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저렇게 평범한 사람이 수많은 우리 동료들을 가스실로 들어가게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 앞에 충격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자신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용서 없이는 새로워질 수 없는 인생이다. 주님의 은혜가 없다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 어둠 속의 인생인 것이다. 나의 죄와 내 속에 있는 어둠을 인식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불쌍한 존재임을 인식할 때 하느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임한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 소경 바르티매오는 적어도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4일
근심을 이기는 길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근심은 생명의 적이다.”라고 했다. 근심은 우리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 생명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인 일에 전념할 수 없도록 만든다.
시카고 러쉬 대학교 메디컬 센터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 1,064명을 대상으로 걱정 및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조사했다. 그 후 3년부터 6년이 경과된 시점에 이들 중에서 누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는지를 다시 조사했다. 결과는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들일수록 노년기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은 근심자체를 잊어버리라고 조언한다. 근심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을 갖는 것이다.
5일
국제항공법에는 기도하라는 법이 있다
1968년 어느 날 밤, 뉴욕으로 가던 여객기의 기장이 착륙 기어가 작동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도착지에 다 와가도록 여러 방법을 써 보았지만 도저히 착륙 바퀴를 움직일 수 없었다. 뉴욕 공항 상공을 선회하면서 기장은 지상 관제탑과 연락을 취하였다.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여 공항의 안전요원들은 활주로에 분말을 뿌리고 소방차와 긴급호송 차량을 곳곳에 배치하였다. 관제탑은 기장에게 최선을 다해 착륙하라는 말밖에 달리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곧 다가 올 위험에 대비하여 탑승객들에게 몸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하라는 기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 기장은 기내 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공중을 한번 선회한 후 착륙을 시도하겠습니다. 제네바에서 체결된 국제항공법에 따라 여러분에게 다음의 사항을 알려 드립니다. 승객 여러분 중에 하느님을 믿는 분이 계시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비행기는 동체 착륙을 감행하였고 기적적으로 한 명의 승객도 부상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상에 착륙할 수 있었다. 만일 그 기장이 그 날 그 같은 위험에 처하지 않았더라면 기도를 부탁하는 항공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6일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
어느 주일미사 후에 한 자매가 신부를 찾아와 이렇게 고백했다.
“저는 신자가 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만, 아직껏 저를 통하여 주님께로 인도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성경 구절도 많이 암송했고 반대 의견을 다루는 법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신부의 대답은 그녀를 놀라게 했다.
“당신이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는 당신의 두 눈이 말라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당신은 지식이 모자라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게 된다면,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게 될 것이고 그를 위해 당신의 삶을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시편 126장 5절에 이런 약속이 있습니다.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단 거두리이다. 뿌릴 씨를 가지고 울며 가던 그들은 곡식단 들고 올 제 춤추며 돌아오리이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했다.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믿지 않는 여동생의 모습이 마음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는 일어나 동생에게로 갔다. 눈물어린 눈으로 동생을 끌어안으며 사랑으로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의 소망은 네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거야.”
그들은 함께 그날 저녁미사에 참례했다.
당신에게는 믿지 않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마음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