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10-24 (기도의 용사 다니엘)
성경본문 : 다니엘 6: 10-24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13.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나이다
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15.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16.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20.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21.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24.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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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정근두목사(울산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 우리 교회에 처음 오신 구도자 여러분,
같은 본문으로 지난 주일 우리는 신앙인 다니엘을 살폈습니다. 이번 주일 우리는 기도의 용사 다니엘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다니엘은 귀족 출신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의 귀족다운 품성입니다. 성경에는 그를 가리켜서 역사상의 흠없는 세 사람 가운데 하나로 소개합니다.
느브갓네살에게 소개된 그의 젊은 날의 모습은 우리에게 대단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갈대아의 모든 술객과 박수들은 고민하는 왕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이 젊은 유대출신 귀공자 다니엘이 왕 앞에 서서 그 꿈의 비밀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고상한 성품과 탁월한 신앙을 생각해 볼 때 후일 그가 바벨론의 방백과 총리들 가운데서도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는 동료들의 시기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왕을 설득해서 새로운 법령을 통과시켰습니다. 한달동안 다리오 왕외에 사람에게든지 신에게든지 무엇을 구하거나 기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입니다. 다니엘은 이 법령이 공포된 것을 알고도 그의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은 영원한 나라의 법령에 따라서 두려움없이 복종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한 결과는 하나님께서 그의 목숨을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 기도의 용사 다니엘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살피려고 합니다.
첫 째로 그의 기도는 그의 능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주목합시다.
다니엘은 언제나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위대한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는 방법을 알았기에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를 연구하는 방법을 알았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에 돌아가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집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쉬는 곳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기에 여러가지 공무가 많았을 것입니다. 하여간 그는 집무실에서 기도하는 것이 관습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왠종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했을터이지만 집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그의 관습이었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중요 업무로 삼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기 집의 방 하나를 기도를 위해서 구별했습니다. 그리고 안락의자보다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편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장소를 여러분도 마련해보십시오. 특별히 구별된 방을 따로 준비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침실 한 구석이라도 기도하기 위해서 구별된 장소를 지정해보십시오. 방문을 닫고 거기 무릎을 꿇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불러보십시오.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거기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 것이 그의 관습입니다. 대개의 성도들이 기도하듯이 아침과 저녁 뿐 아니라 정오에 기도를 위해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정오기도 시간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한 번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직장인도 점심시간이 되면 기도시간을 마련해 보십시오. 직장의 하루가 달라질 것입니다. 지치기 쉬운 오후시간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공급해 주시는 새롭게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다니엘, 그는 이미 나이가 많은 사람입니다. 아마 이때는 팔십이 넘은 나이였을 것입니다. 집무실과 거처하는 집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모르지만 그는 기도하러 하루 세 차례 집에 가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은 듯 합니다. 물론 그는 한가한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매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바쁘게 산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오늘 여기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도 다니엘처럼 중대사에 관련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메데와 바사 제국의 모든 일을 관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 세 차례 기도를 위해서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해야할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오늘처럼 바쁜 일을 다 처리하려면 세 시간은 기도해야지'라고 믿은 것처럼 보입니다. 다니엘은 업무가 특별히 폭주할수록 그 업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더욱 기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기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만나 뵈었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했습니다. 밤의 장막이 내리워질 때 기도했고 동창이 밝아올 때 기도했으며 정오의 태양빛이 쏟아지는 시간에도 기도했습니다. 하루 세 차례씩 다니엘은 기도했습니다.
그는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비록 몸은 갈 수 없기에 그 방향을 바라보고 간구라도 드렸습니다. 그는 자기 조국을 사랑했습니다. 비록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그는 동족을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 하나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사랑했고 그의 기도는 예루살렘을 위해서 드려졌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두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또한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제단을 향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상징의 시대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은 더 이상 상징 속에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제단 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합니다. 지금 우리의 창문은 하늘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은 주님만을 앙모합니다. 하지만 상징의 시대에 살던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을 신앙의 눈으로 내다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감사와 어울러졌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그는 시편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하여간 그의 기도는 간구와 감사, 찬양과 도고가 어우러졌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풍성한 것으로 인해 감사하지 않고는 더 큰 은혜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간구하는 것 만큼이나 감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게 하십시오.
두 번째로 살필 것은 다니엘의 기도의 어려움 혹은 기도의 특권에 대해서입니다.
다니엘은 항상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삼십일 동안 기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그가 공포된 법령을 알고 취한 행동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했던 것처럼 기도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만약 요즈음 그런 법령이 공포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새벽 기도모임에 사람이 썰렁해지고 금요 기도모임에 사람 수가 현저히 줄어들런지 모릅니다. 아니면 모든 기도회는 한달동안 연기된다고 긴급광고가 붙을지 모릅니다.
우리의 개인기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누구든지 기도하는 사람을 신고하면 상당한 현상금을 준다고 광고가 나붙는 상황이면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기도를 중단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중단하지 않을꺼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곧 머뭇거릴 것입니다.
사자굴은 그렇게 안락한 곳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 받기를 저버리고 십자가를 피하면 더 무서운 심판이 우리를 기다릴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그 길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우리가 오늘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은 특권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특권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그와같은 잔혹한 법률 아래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양심을 속박하는 법률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그들을 기억합시다. 정말 우리의 판단과 우리의 마음의 소원에 따라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매우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지상에 오직 한 곳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장소에 도달할려고 얼마나 기를 써고 노력하겠습니까? 장사진을 치고 그 성소에 들어가려고 얼마나 발버둥치겠습니까?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 큰 특권을 밀쳐두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기에 아무런 노력도 열심도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입니까?
만일 세상에 오직 한 사람만 기도를 드릴 수가 있고 그의 기도만 상달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은 투표로 선출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요즘 총회장되기 위한 것 못지 않게 열심히 선거운동을 할지 모릅니다. 뽑힌 사람의 기도만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하면 누구나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씁니다. 사실 그런 자리를 맡아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밤낮 없이 시달릴 것입니다. 온갖 부탁과 청탁으로 시달릴 것입니다. 쉴 시간도 없이 아침 일찍부터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둘러 싸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사람 집을 둘러싸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자신을 위해서 각자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주 예수께서는 여러분이 기도의 자리에 나아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무릎을 꿇는 것을 바라 보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기도를 소홀히 여기는지요? 고액과외가 아니라 고액기도를 생각해보셨습니까? 고액의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다면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이 불평을 했을까요? 하나님도 돈 밝힌다고 말입니다. 아마 노동자들의 데모도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돈이 투자되었을까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특권을 사기 위해서 금과 은이 얼마나 동원되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기도는 공짜입니다. 돈없이 값없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한 푼도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만나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자주 기도가 하찮은 것으로 무시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돈없이 값없이 와서 은혜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여러분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함부로 기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있다면 오히려 좋을 뻔 했습니다. 그랬다면 누군가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기도하고 말테야" 그리고 그는 기도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다음 한 주간에는 기도를 들어시지 아니하신다고 하면 내일 새벽기도 시간부터 붐비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니 출근할 생각도 않고 월차를 내어서 집에 앉아서 이 한주간 가기전에 드려야할 기도를 하려고 들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여러분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주께서 기다리시며, 만나 주신다는 이유로 기도하기를 소홀히 대해서는 안됩니다. 기도의 축복을 놓치지 마십시오. 자비의 보좌 앞에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고백하십시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십시오.
세 번째로 다니엘의 어려움을 살핀 다음 다니엘의 결단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왕은 그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아니했습니다. 무엇이 우리의 기본의무인지 알면 주저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로 고심하지 마십시오. 그런 순간에 대개 첫 번째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누가보아도 분명한 일이라면 새삼 거듭 생각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유혹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각 행동에 옮기십시오. 다니엘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침에 기도했습니다. 집으로 가서 점심 때 기도했습니다. 퇴근하고 저녁에 기도했습니다.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우리는 이런 다니엘의 모습을 칭송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의 관습을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변장을 하거나 나타내려고 하지 않고 늘 해 오던대로 계속했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 동일한 자세로, 꼭같이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조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에 모호한 말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중심에 답을 주셨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알면서도 친구들을 만나서 혹시 자기 욕심에 따라서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을 붙들고 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인들을 명해서 아무도 출입시키지 못하도록 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원수들의 손을 벗어나고자 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염려의 기색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고 침착함도 잃지 아니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단순했고 꾸밈이 없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다니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는 페르샤에서 최고의 관직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거기서 벗어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신앙의 형제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어서는 아니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진 사람에게는 갖지 못한 사람에게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십니다.
배운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남다른 지위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흔들림도 보여주어서는 아니되었습니다. 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공인이 되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우리의 처신을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문을 갑자기 닫아놓고 기도하거나 하루 한 번으로 줄여서 기도하거나 하는 것은 덕이 될 수가 없습니다. 늘 해오던대로 그는 행동했습니다. 그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위협을 한다고 무엇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말할 수 있습니다. "총리가 되어가지고 왕의 명령을 순종해야 하지 않는가?" 분명히 그는 왕의 명령은 경외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든 어떤 법령도 하나님의 법과 배치되면 그 법령은 당연히 무효입니다. 그 법은 효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누구나 하늘의 법과 배치된 세상의 법을 무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그가 지금 봉사하는 왕국의 법을 따라야 하지만 하늘나라의 법을 더욱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은 목숨을 돌보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이란 귀중한 것인데, 스스로 이런 도박을 해서는 안되지. . ."그의 육신의 생명을 구하려고 영혼을 잃으면 그것은 비참한 거래입니다. 그의 옷가지를 구하려고 생명을 잃으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차라리 불에 타고있는 집을 내버려두는 것이 낫지 옷가지를 구하려고 생명을 잃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육신의 생명에 집착해서 영적인 생명을 상실하는 것도 이보다 못지 않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굴을 선택했습니다. 그 편이 더 안전한 선택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똑바로 나아갔습니다.
페르샤 제국은 잘못 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꼭 옳은것만은 아닙니다. 정부가 결정한 것이 언제나 바른 보장은 없습니다. 그것을 그가 바로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을 바로 잡을 수는 있습니다. 삼십일 동안 기도를 중단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쟎아, 무릎을 꼭 꿇어야 기도가 돼?"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때로는 경건의 모양조차도 그 고유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걸어온 길을 걸어갑시다.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도록 강요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맹세코 그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완고한 무리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여기 다니엘도 완고한 무리의 대표자입니다. 다니엘이 그의 이름입니다. 그는 기도할 것입니다. 그들은 사자굴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완고한 태도를 어리석다고 비난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올곧은 결단을 인정하십니다.
다니엘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바른 일을 해왔고 바른 일을 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러분은 다니엘에게 배울 것이 없습니까? 학교에 가서도 다니엘처럼 처신하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돼, 잘못된 일을 해서는 안돼,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가 없어, 우리는 기도하기를 중단할 수 없어, 개인 경건을 포기할 수는 없어'라고 자신에게 선언하십시오.
결심하는 것이 없이 사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확고한 결심이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없잖아 있습니다. 마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입으로는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가 신앙인인 것을 가까이 있는 친구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아니 그들이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비단 신발을 신고 융단 위를 걷고자 하지만 결코 진흙탕이나 자갈길을 걷기를 원치 아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니엘의 구원을 살펴봄으로 오늘 말씀을 결론내려 봅시다.
다니엘을 위협하던 악한 자들은 그 모습을 들어내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정직하게 거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익을 적게 남길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여러분을 기다리는 사자굴을 만날 것입니다. 다니엘은 거기 던져졌지만 그는 사자의 발톱에 할키지 아니하고 아무런 상처없이 건짐을 받았습니다. 사자들과 더불어 지낸 근사한 하루 밤을 지냈습니다.
후일에 다니엘이 보았던 사자나 짐승들의 환상은 그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 밤의 경험이 새로운 비젼의 못자리 판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여간 그는 황홀한 밤을 지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사자와 더불어, 하늘의 천사와 더불어 밤을 함께 지낸 것입니다. 다리오 왕 보다도 더 평안한 밤을 지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올 때에 그는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는,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자였습니다. 왕은 그의 무죄를 선언했고 그를 칭송했고 그를 이전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을 위해 올바른 것을 결단하는 것은 바른 일일 뿐 아니라 또한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현명한 정책인 동시에 가치있는 행동입니다. 차라리 처음 심한 핍박을 받으면 꿋꿋이 견뎌 내십시오.
오늘 주일과 같이 새가족 수료식을 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기로 작정을 하셨으면 여러분의 신앙인인 것을 나타내십시오. 어쩌면 이번 추석이야 말로 여러분이 이제 달라진 사람임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일지 모릅니다. 이번 추석에 여러분이 신앙인이기 때문에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 여러분은 이제 앞으로 동일한 싸움을 싸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번에 주저하게되면 내년 설날과 추석에 또 고민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믿은지 몇 년이 되면서 아니 교회의 직분자로서 주일날 예배 보는 것 보면 예수 믿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명절에 음식상 차리는 앞에서 함께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오늘 양보하기 시작하면 계속 양보해야 되는 입장이 됩니다. 한 발자국도 물러가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사자굴이라도 나아가십시오. 아무리 원수가 삼키려고 해도 하나님이 지키시면 여러분을 해칠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된 성도 여러분, 주를 위해서 일어나십시오. 처음에도 조롱도 받을 것입니다. 맹렬한 핍박이 여러분에게 덮칠것입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서 그것은 사라질것입니다. 만약에 겁을 먹고 움츠려들면 앞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날들이 계속 조롱을 당할 것입니다. 친구들마저도 조롱할 것입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강하게 나오면 마음 한편으로는 "아! 정말 신앙인이 되었구나."하고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마디 했다고 고개 숙이기 시작하면 속으로 '예수 믿는다고 하더니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여러분을 계속적으로 멸시할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양보하지 마십시오. 곧 바로 보상이 뒤따를 것입니다. 미래에는 더 이상 핍박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닥치던 모욕이 끝날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해서 처음에
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입장을 곧 수용할 것입니다. 굳게 발을 딛고 나가십시오. 오늘 양보하기 시작하면 내일도 양보하게 될 것입니다. 한 발자국도 물러가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사자굴이라도 나아가십시오. 아무리 원수가 삼키려고 해도 조금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이 자기 길을 요구한다면 우린들 우리 길을 못 갈 이유가 없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일확천금을 바라지 말고 적은 이윤을 남겨도 그것을 아껴쓰고 바로쓰는 사람이 되십시오. 한 번 굽은 길을 택하면 여간해서 바로 걷기가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성도답게 처신하십시오. 고용주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객이 소란을 피우고 친구들조차 실망을 시켜도 바른 길을 걸어가십시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최선의 지혜인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바른 길을 걸어가십시오. 다니엘처럼 행동합시다. 그러기 위해서 다니엘의 삶을 배우십시오. 그의 삶의 비결인 지속적인 기도의 교제를 가지십시오. 위기의 순간에 바로 처신할 하늘의 지혜가 풍성히 주어질 것입니다. 구부러지고 불의한 세상에서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지혜는 신실하게 참되신 분과 은밀히 교제하는 기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힘은 기도로부터 우리에게 공급됩니다. 이국 땅에 살아도, 그 모든 생각과 행동이 악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주님을 바라고 교제를 나누십시오.
그 무엇보다 주님의 명령 순종하는 것을 사모하십시오.
부와 명예보다도 주님 기쁘게 하는 편을 택하십시오.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을 걸고 여러분을 지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다른 그 어떤 것도 가져다 줄 수 없는 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같은 거룩한 소원을 주셔기를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게 하시기를 간구합시다. 우리 모두가 그의 찬송꺼리가 되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소원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