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수 목사
우리는 1월초부터 계속해서 어떻게 하면 기쁨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 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묵상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1년 내내 한결 같이 기쁨이 충만한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쁨을 빼앗는 도둑들이 있기 때문 입니다. 지난번에는 기쁨을 빼앗는 외식주의,율법주의,형식주의에 대해서 말씀 드렸지만 오늘 본문은 또 다른 큰 도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 일까요? 바로 염려라고 하는 도둑입니다. 그러나 이 도둑은 모든 사람의 기쁨을 빼앗는 보편적인 적 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경계 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 적을 이길수 있는 해답부터 말씀 드린다면 그것은 평안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확신 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과 평안이 찾아오면 염려와 걱정은 한 순간에 도망 갑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악인이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중심대로, 자기고집대로 사는 교만한 인간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싸움이 있고 전쟁은 있지만 평강은 없습니다.
사 57:20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그래서 헨드릭슨은 말하기를 <평강은 믿는 자의 영혼에 반영된 하나님의 미소이다 그것은 그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분이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확실하게 그리고 제한 없이 주실 것 이라는 사실을 확신 하는 것이다> 라고 주해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들의 이해의 영역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논리와 사람의 경험이 해석해 낼 수 없는 상상 불가능한 평안 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해도 못하고 체험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고 이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지켜 주신다는 말은 그 당시 강력한 로마의 군대가 빌립보라는 도성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성이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지켜 주시겠다는 표현입니다.
군대가 지켜주는 것과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 주시는 것과 어떤 것이 더 안전 할까요? 군대는 아무리 강력한 군대라도 무너 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실패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고 결국에는 <평강의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삶의 축복 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녀들 에게 이 평안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평강의 본질은 무엇 입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 입니다.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바로 평안의 궁극성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을까요? 그것이 본문의 관심입니다.
본문은 세가지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바르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2.바르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3.바르게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바르게 기도하라는 교훈입니다.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성경은 그냥 기도하면 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바른 기도에 대해 세가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기도> <간구> <감사함>이라는 표현입니다.
바른 기도는 이 세 가지를 포함 하는 것입니다.
기도란 무엇 입니까?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바꿔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해서 염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에 환경이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염려를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염려를 보기 때문에 그 염려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과 지혜와 용기가 생깁니다. 이것이 기도의 신비입니다.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말은 하나님을 예배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 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고 그분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을 곡조 붙은 기도 라고도 합니다.찬양이 진짜 기도 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여호사밧 이라는 왕은 군대가 적에게 완전히 포위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습니다. 그때 여호사밧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와 기도 합니다.(역대하 20장)
12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13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그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15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기도는 찬송을 가져 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찬송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뭘 하나 보세요.
21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뭘 했습니까? 찬양대를 조직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24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완전한 승리입니다><완승,KO승 입니다>
그리고 승리의 결과는 무엇 입니까?
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려워한 고로
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 하나님이 사방에서 저희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강이 본질적인 삶의 축복이고 최후의 승리 인줄 믿습니다.이것이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바른 기도의 두번째 요소는 <간구>입니다.간구와 기도는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가 중언부언 하는 기도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어떤 사람은 기도 할 때마다 간절히 기도 하옵나이다를 수십 번씩 반복합니다.그런데 기도가 끝나고 얼마 후에 물어보면 자기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도 알지 못합니다.
간구는 기도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기도를 지속하는 가운데 우리의 기도는 정직하고 진실한 기도로 바뀝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내가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한번 기도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다면 기도하면 단번에 응답해 주시면 될 것이지 왜 하나님은 응답을 질질 끄십니까? 왜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게 하실까요?
하나님이 기도 응답에 인색 하시기 때문 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의 한계가 있으시기 때문 일까요? 아닙니다.
간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만 오가는 상거래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결과는 찬양이고, 간구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입니다.
그리고 이제 바른 기도의 세 번째 단계는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됩니다.올바른 기도는 감사함이 있는 기도 입니다. 감사함 이란 기도의 태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시편기자는 기도를 이렇게 표현 합니다.
<감사 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새해가 되면 우리나라 풍속에는 세배하는 풍속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세배를 가르칩니까? 세배 돈 벌어 오라고 가르치는 것입니까? 그것을 통해서 어른을 공경하고 감사하는 인격적인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사도들도 이렇게 가르칩니다.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간구 하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안목으로 내 환경과 처지와 형편을 보게 되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감사 하게 됩니다. 이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다니엘의 모범적인 기도를 보십시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지움을 당하는 생의 절대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놓은 후에 진짜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누구 입니까? 잠 못 이루었던 사람들은 누구 입니까?
다니엘이 아니라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었던 바벨로니아의 왕 이었습니다.다니엘은 어떻게 기도 했습니까?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 부분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르게 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의 날마다의 일상적인 생활의 습관 이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기의 의지를 복종시켜 하루에 세 번씩 규칙적인 기도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시간마다 자기의 기도 속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있는지 확인 했습니다.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올바른 기도의 결과는 무엇 입니까?
진정한 예배와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기도는 틀림없이 응답을 받습니다.하나님의 평강이라는 삶의 본질적인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어디를 지켜 주십니까?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왜냐하면 걱정 근심이 침입해 들어오는 통로가 바로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이기 때문 입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기도의 응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 마음의 염려를 극복하는 두 번째 교훈은 바르게 생각하라는 교훈 입니다.
빌 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주께서는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주의 평강으로 지켜 주십니다.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우리들의 생각 !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야 되지 않을 까요? 그냥 내버려 두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됩니까? 잘못된 생각, 더러운 생각, 남 미워하는 생각, 원수 갚을 생각, 부정한 생각, 헛되고 거짓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 했습니까?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오죽 했으면 하나님께서 한탄 하셨겠습니까?
잘못된 생각이 들어오면 잘못된 감정이 생기고 결국은 그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나뉘게 해서 생겨나는 것이 근심 걱정 염려입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볼 수도 없는 것 같고, 무게도 없는 것 같고, 크기도 잴수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실제적인 힘이 있는 것이 생각과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술 담배가 좋아서 먹고 피웁니까? 거기에 감정이 사로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이겨야 합니다.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 그리스도께 복종 시켜야 한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바르게 생각하는 훈련은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생각을 하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까?
1) 무엇에든지 참되며 ...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명은 진실함에 있습니다. 진리에 속한자들은 진실해야 합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 라고 했습니다.사람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서 부패하게 됩니다.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Walter Cavert 박사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들 중에서 정당하게 걱정해야 될 대상들은 단지 8%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92%는 상상만 하는 것 이든지,발생하지 않을 것 이든지, 아니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들 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히면 망합니다.
2)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한마디로 경건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무슨 생각을 하든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기도 해야 합니다.
3) 무엇에든지 옳으며..
이것은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불행이 대부분 관계가 잘못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
4)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마음과 행동의 동기가 순수하고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예수 믿는 사람들은 생각이 단순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5) 무엇에든지 사랑 할만 하며 ..
여기서의 사랑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단 한번 쓰이고 있는 <프로스페이에>라는 단어 인데, 그 말의 뜻은 사랑스럽고,매력적이고,귀염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6) 무엇에든지 칭찬 할만 하며 ..
평판이 좋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추천서를 써줘야 할 때가 많습니다. 추천서를 써보면 정말 추천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추천하자니 그렇고 안 써 주자니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도행전의 일곱 집사 선출의 기준 가운데 아주 중요하게 적용되었던 것이 바로 <칭찬> 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창찬 받는 주님의 일군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7)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덕은 도덕적인 탁월함을 뜻하는 것이며, 기림은 칭송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최고의 덕과 최고의 칭송을 받을 만한 것을 항상 생각하라고 권면 하고 있습니다.이런 생각을 하면 결국 주의 평안이 함께 합니다.
시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그러므로 바른 생각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입니다.
*신문과 잡지 묵상, 주간지 묵상, 비디오 묵상,염려와 고민거리 묵상말고..
바르게 기도하고 바르게 생각하시므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마지막 교훈은 바르게 생활하라는 말씀 입니다.
빌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바른 생각은 바른 생활로 뒷받침을 받아야 합니다.생각의 전환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슬람이 변할려면 그들의 잘못된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인도가 변해서 가난에서 벗어 날려면 윤회설과 같은 숙명론이라는 생각의 노예에서 풀려나야 합니다.
북한이 변할려면 사상이 변해야 합니다. 빵만으로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삶이 변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의 생활이 변하기 전에 생각이 바뀐 것 입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네 가지를 권고 하고 있습니다.<배우고,받고,듣고,본바>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1)배워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말씀 잘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여기에 우리의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세상에서도 배워야 산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제자라는 말은 배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배우는 자세부터 익혀야 합니다.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2)받아야 합니다.
배웠으면 우리의 삶 속에 받아 들여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범을 보십시오. 그들은 말씀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머리에만 있으면 안됩니다. 가슴깊이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고전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고전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받은 것이 있어야 전하지 않겠습니까?
3)들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들려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기 전에 들어야 합니다.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다면 주의 말씀을 전하고 주께서 내게 행하신 일을 전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가 전하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못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올해는 듣는자가 되고 나아가서 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4)봐야 합니다.
기독교 교육은 원래 시청각 교육입니다. 할례도,세례도,성찬식도 모두 보는 것입니다. 무스코카에서 침례 줄 때 여러분도 보고 은혜 받으시지요?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육은 본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제자훈련이라는 것도 보고 배우는 것 입니다. 목자를 보고 배우는 것이 가정교회의 원리 입니다.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본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곳이 목장입니다.
약 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바르게 기도하고,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생활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는 한결같이 기쁘게 살아가는 기쁨 충만한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