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한 탈레반 지휘관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점령했다. 아프간 대통령은 돈뭉치를 여러 대의 차량에 싣고 해외로 도주했다. 현재 아프간은 언론의 보도대로 아비규환, 현실에 존재하는 생지옥 그 자체다. 탈레반은 어떤 집단인가?
탈레반은 20년 전 집권 당시 이슬람 종교법인 샤리아를 앞세워, 노래, 춤, TV 오락프로를 모두 없애고,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하는 벌도 허용했다.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얀 대불이 이교도 우상이라 하여 로켓탄을 쏴 부수는 등 3000여 점의 문화재를 마구 파괴했던 비문명적 집단이다. 2021년, 다시 아프간을 접수한 탈레반 지도부가 여성에 대한 폭압을 하지 않겠다고 기자 회견까지 한 당일, 한 여성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 대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부르카를 사려는 시민들로 인해 그 가격은 두 배가 넘게 폭등했다. 곳곳에서 대원들과 강제 결혼시킬 12~45세 여성을 찾고 있단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명단을 작성한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주 산맥 절벽 한 면을 파서 만든 6세기경 석불들. 2001년 탈레반 정권에 의해 로켓탄으로 파괴됐으나 UNESCO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아 복원 중
이슬람 전반을 악마시하고 폭력의 종교로 인식하는 서구와 비이슬람권의 시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다. 1979년 구소련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장단체 '무자헤딘'을 전신으로 한 탈레반은 이슬람교를 근간으로 하여 황폐화된 나라를 재건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를 건설하자는 슬로건을 내새웠다. 이에 미국과 사우디는 엄청난 지원을 했고 탈레반이 1996년 정권을 장악했지만, 무지막지한 인권 탄압과 여성 폭압, 비문명적 유산 파괴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그 실체가 드러났다. 그러던 중 911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으로 도망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은 그를 넘기라고 요구했지만 탈레반 정권이 이를 무시하자 빈 라덴을 제거한다는 대의명분 하에 아프간 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20년간 아프간 민간 정부를 지원했으나 결국 철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과 무책임한 철수 결정을 비난한다. 그러나 탈레반 역시 미국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거룩한 토착 민족주의 집단은 아니다. 쿠란이 유일한 기준인 이슬람 Fundamentalist들이다. 기독교 근본주의, 백인 우월주의를 신봉하는 확증편향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이슬람 교리만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기준인 집단이다. 더구나 탈레반은 일반적인 이슬람교보다는 극단적인 여성 폭압적 관습을 가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 부족 전통에 의존하고 있다.이슬람에서는 여성에게도 상속권이 있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결혼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파슈툰족은 여성이 원치 않은 경우라도 가부장의 명령에 의해 강제 결혼을 시킨다. 가족 외 남자와 말을 하거나 연애를 하면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탈레반은 이러한 완고하고 가혹한 파슈툰 부족의 전통을 이슬람 교리와 뒤섞은 것이다.
따라서 탈레반 정권을 중심으로 아프간이 평화롭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종교 근본주의와 광신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세력은 서구 제국주의만큼 질이 나쁘다.
이슬람교가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서구 제국에 의한 '악마 이슬람' 프레임 씌우기,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었기 때문에, 이참에 선입견을 없애고 이해해보려고 읽었다. 쿠란은 남녀의 본분과 역할이 다르며 남성들은 여성들의 보호자로서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하고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편을 따르며 순결을 지킬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수천 년 전 고대사회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논리다. 또한 여성이 남성의 갈비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여성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라는 구절이 있다며 결코 여성에게 불평등한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근데 만약 가부장이 이성적이고 온유한 남성이 아닐 경우엔? 필요한 것은 남성의 관대함과 아량이 아니라 남녀에게 평등한 권리를 주는 민주화된 사회 시스템이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고 잘 대해줘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본질적으로 남성 우월적이고 독선적이다. 보호? 집안 남자와 함께가 아니라면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로 보는 게 여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건 아니다. 자유를 빼앗고 속박하는 것이다.
다시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한다고 한다. 아직은 아니지만 좀 더 있으면 학교도 안 보내고 집안에 가둘 것이다. 곧 온몸을 천으로 둘러싸는 부르카까지 입힐 거다. 아내와 딸들에 대한 가부장의 폭력도 훈육의 이름으로 허용될 거다.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로 인정받고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일단은 가면을 쓰고 유화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벌써부터 도시 곳곳에선 폭력과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아프간을 떠나기 위해 카불 공항 인근에 모여있던 시민들에게 총을 쏘고 채찍과 곤봉으로 여성과 어린이도 폭행하여 사상자도 생겼다. 여성들이 거리에서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일들도 일어났다. 아프간 국영 TV의 여성 앵커와 여성 직원들은 무기한 정직당했고, 취재 중인 여기자가 온몸을 차도르로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병사는 얼굴까지 가리라며 총을 겨누었다. 아프간의 미래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암담하다. 특히, 여성과 소수자, 어린이에 대한 폭압은 심각해질 것이다.
온몸을 천으로 가린 부르카를 뒤집어쓴 무슬림 여성들
아프간 대통령궁을 점령한 탈레반 지도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