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옐로카드
윤정혁
뒤로 꺾여 덜렁거리는 걸 왼손으로 움켜잡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오른쪽 손목 요골이 다섯 조각으로 부서졌다고 한다. 손목 안쪽을 7센티미터쯤 절개하고 길쭉한 삼각형의 금속판을 집어넣어 부서진 뼛조각을 고정하고 다시 꿰맸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힘들었지만, 수술이 잘 됐다’고 담당의가 말했다.
마취가 풀리면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세상이 곧 끝나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아픔으로 남자가 고환을 힘껏 걷어차였을 때의 아픔을 들었다. 제아무리 힘세고 터프한 남자도 그것만은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다행히 그런 경우를 경험하지 못해 내 손목의 고통과 그것을 비교할 수는 없다. 알 수 없기는 고환이 없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잇값도 못 하고 체신 떨어지게 눈물을 찔끔거리는 내게 아내가 핀잔주며 물었다.
“지금 그게 아이 낳을 때의 산고보다 더할까?”
아이를 낳아 본 여자가 팔목이 부러졌다면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대답을 못 했다. 퇴원할 때까지 나는 아이 셋을 낳느라 숭고한 고통을 감내한 여자 앞에서 더 이상 아프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열하루를 입원했다. 의사는 열하루 내내 내게 진통제를 주사하고 먹였다.
상당 기간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자주 안 쓰던 왼손을 쓰거나 남의 도움을 받는다. 불쑥불쑥 짜증이 솟구쳐도 참아야 한다. 다친 손을 제대로 다시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숟가락을 들 수도 없다. 느닷없이 일을 떠맡게 된 나의 왼손과 아내가 곤욕을 치른다. 불편이 화를 돋우지만, 화를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성가시다. 만날 때마다 여차여차해서 손목이 부러졌다는 그 바보스러운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염려해 주는 건 고맙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일은 난처하고 번거롭다. 헤어나기 힘든 무력감이 나를 짓눌러서 암울하고 허탈한 가운데 두문불출로 시간을 죽였다.
제법 높은 창틀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손목이 부러진 내게 남들은 그만하길 다행으로 여기라는 말을 한다. 담당의는 부러진 뼛조각이 혈관이나 신경을 손상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내가 창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경우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머리가 먼저 바닥에 닿아 바로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다. 어깨가 으스러지거나 골반이 주저앉는다. 척추가 부러져 하반신 마비가 온다. 운 좋게 아무 탈 없이 멀쩡할 수도 있다. “내 팔자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아내는 이런 말로 나의 망동을 빈정거린다.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그런 델 올라가는 일은 무모한 짓이고 그럴 나이도 아니라는 것이다.
신체 부위 중에는 세 곳의 목이 있다. 손목은 손과 팔이 연결되는 곳이다. 발과 다리를 잇는 자리는 발목이다. 목은 머리와 몸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세 곳의 목에 이상이 생기면 연결되는 어느 쪽도 온전한 기능이 불가능하다. 그중 손목은 여러 관절 가운데 가장 운동성이 뛰어난 관절이다. 정맥과 동맥, 신경이 지나는 폭이 좁고 거의 노출되어 있다시피 한 우리 신체의 급소다. 영화는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손목의 동맥을 절단하여 욕조의 물을 붉게 물들이는 장면을 비극적으로 연출하기도 한다. 건널목은 이쪽과 저쪽을 교통하는 곳이다. 자리가 좋아 장사가 잘되는 곳을 일러 목이 좋은 곳이라 한다.
아내는 손목 쓰는 힘이 터무니없다 싶을 정도로 약하다. 음료수병, 약병 등 갖가지 병마개를 따거나 열 때는 어김없이 나를 호출한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그래도 딱 한군데는 쓸모가 있네.”
이젠 그 소리조차도 못 듣게 되었다.
퇴원 후 한동안은 손목을 깁스하고 지냈다. 깁스한 거울 속의 나는 사뭇 생경해서 타인처럼 느껴졌다. 열흘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고 의사로부터 경과를 듣는다. 점차 경과가 좋아지고 통증도 줄어들어 한 달 간격으로 병원 가는 기간이 늘어났다. 이물스럽던 깁스도 떼어냈다. 조금씩 손목을 써도 좋다고 의사는 말한다. 넉넉잡아 일 년 후, 또 한 번 수술해 쇳조각을 꺼낸다고 한다. 그때 약간의 고통이 따르겠지만, 끝난다. 남은 흉터가 이따금 지난 일을 상기시킨다 해도 언젠가는 거기 있는 줄도 모르고 살게 될 것이다. 더욱이 손목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 신체부위인 것을 잊고 그것이 문제가 생겼을 때의 고통과 불편까지도 잊어버릴지 모른다.
병원은 환자로 만원이었다. 나처럼 신체 부위를 다쳐서 오기도 하고 질병으로 찾는 이도 있다. 심하게 다쳐 불구가 되는 경우나 고약한 질병으로 생명을 위협 받는 사람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큰 고통과 상처를 준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내 손목이 부러진 정도는 참으로 별일 아니다.
팔목 부러진 일이 내 나이나 창틀의 높이, 평형 유지 감각 때문이 아닐 수도 있고 이 일은 필연적으로 전에 내가 저지른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의 대가로 내게 왔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내면을 미움으로 채운 한때가 있었다. 앞으로 내가 뛰어야할 경기의 종료 시각은 불명확하다. 지금은 막연하게 후반전이 끝날 무렵이거나 인저리타임 정도라고 생각한다. 얼마 남지 않은 경기 시간 중, 손목 골절 이상의 것이 올 수도 있다는 옐로카드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수필문예》 제19집, 2020.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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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에세이문학》 등단,
수필문예회, 에셍;문학작가회, 대구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남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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