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도시 부산 (1) 김 동 현 우리나라 미식가들이 뽑은 ‘한국의 맛 도시’ 1위가 부산이고 2위가 제주, 3위가 속초이다. 맛 도시의 공통점은 생선비린내가 풍기는 곳이다. 부산은 각 지역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도가니(melting pot)인데다 풍부한 해산물 덕분에 다양한 지역의 음식들이 경쟁하고 보완하면서 발전되어온 것이 특징이다. 특히 6.25전쟁으로 인한 피난생활에서 생겨난 서민음식인 돼지국밥, 밀면, 고갈비가 요즘은 부산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편 미군부대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모아 끓여서 파는 것을 ‘꿀꿀이죽’ 혹은 ‘유엔탕’이라고 했다. 돼지국밥은 전쟁 중 미군부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돼지뼈를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과 밥을 넣어 만든 국밥에서 시작했다. 돼지국밥 골목이 서면에 형성된 것은 그 곳에 하야리아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나 밀양에도 돼지국밥이 있지만 부산식은 돼지 사골을 오래 우려내기에 색깔이 탁하고 국밥 위에 각종 양념을 한 부추를 푸짐하게 얹는 게 특징이다. 부추는 워낙 건강에 좋은 남새라서 집을 허물어버리고 그 자리에 심는다고 하여 파옥초(破屋草)라고 하는데, 부추를 길게 썰어 들깨가루, 새우젓, 고춧가루 양념으로 무친다. 허영만 화백은 요리순례기인 <식객>에서 “소 사골로 끓인 설렁탕이 포장도로 같은 모범생이라면, 부산의 돼지국밥은 비포장도로의 반항아 같다” 고 비교하는가 하면, 부산 출신의 최영철 시인은 “돼지국밥을 먹으면 숨어있던 야성이 살아난다”고 했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돼지국밥을 먹으려고 당일치기 부산을 다녀오는 친구도 있다. 부산 범일동 조선방직 앞과 서면 일대의 돼지국밥 골목을 다녀오면 생기가 솟는다고 한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항 행사에 참석한 후 돼지국밥으로 오찬을 하면서 “역시 부산 돼지국밥이 최고야”라고 거듭 찬사를 곁들였다. 부산 출신의 ‘가요계 황제’ 나훈아가 즐겨 찾는 범일동의 50년 전통 할매국밥집은 돼지국밥 한 그릇이 5500원이라 가성비도 훌륭하다. 국제신문사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인기 돼지국밥집을 조사한 결과 대연동의 쌍둥이 돼지국밥과 양정의 늘해랑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돼지국밥은 이제 부산사람들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현재 부산에는 700여곳의 돼지국밥집이 있으며, 한 두 곳의 돼지국밥 단골집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부산사람이 아니다. 밀면은 흥남시 내호리에서 냉면집 ‘동춘면옥’을 하던 정한금씨가 흥남철수 때 피난생활을 하던 우암동에서 ‘내호냉면’ 식당을 열었으나 메밀이 귀하자 메밀 대신 구호물자인 밀가루에다 감자나 고구마 전분을 넣어 졸깃한 맛을 낸 냉면이다. 밀면은 감칠맛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강하고 자극적인 양념을 쓰고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육수로 얼큰한 맛을 냈다. 피란시절 부산 어느 제면소에서 품팔이를 한 소설가 이호철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 <소시민>에서 북녘의 피란민들이 소울 푸드인 냉면을 먹으면서 고향을 떠올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지금도 부산사람들은 밥 대신 면을 즐겨 찾는다. 우암동은 일제시대 소 수탈을 위한 가축대기소이자 검역소였기에 소막마을이라고 했으며, 실제로 마을 뒷켠에 소 모양의 큰 바위가 있었는데 1930년대 대규모 매축공사 때 사라져버렸다. 2400마리의 소를 수용하던 40동의 축사가 흥남 철수 피란민들의 수용소로 쓰였던 것이다. 화가 이중섭도 처음에는 이곳 소막사에 수용되었다. 일제는 이곳 우암동 일대를 매립하여 적기(赤岐.아카자키)라고 불렀다. 내호냉면은 1919년 흥남에서 동춘면옥으로 개업했으니 4대째를 이어오는 100년 전통의 노포(老鋪)가 되는 셈이다. 영화감독 곽경택의 아버지도 흥남에서 함께 피난 왔기에 중학생 시절 내호냉면 배달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5만여명의 피난민이 북적거렸던 우암동 소막사가 이제는 피난수도 문화유적지로 등록되어 있다. 우암동 골목을 나오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높다란 예수님의 동항성당과 마주하게 된다. ‘한국의 리오데자네이루’로 통하는 동항성당은 6.25전란 때 천막성당으로 시작하여 피란민 구호와 복지에 앞장섰기에 지역민과 밀접하다. 근처의 우암동 도시숲은 야경의 달빛조형물이 유명하여 젊은 연인들이 ‘부산의 라라랜드’로 활용하고 있다. 구포국수도 6.25전쟁 통에 피란민들이 싼 값에 배불리 먹었던 서민음식이다. 이제는 구포의 특산품이 된 구포국수의 역사체험관에서 다양한 국수를 즐길 수 있다. 구포는 조선시대 곡물집하장이어서 영남제분, 거북제면소, 김봉옥제면소 등 굴지의 국수 공장이 일찌감치 들어섰기에 국수의 요람이 될 수 있었다. 구포(龜浦)는 주산인 범방산 자락이 물을 마시는 거북이 모습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포는 유장한 낙동강 하구의 물류기지여서 조선시대 1628년 조세창고인 감동창이 설치되면서 구포장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1919년 3월 29일 구포장날에 모인 1천2백여명 장꾼들이 독립만세를 외친 3.1만세운동은 가장 규모가 크고 격렬한 상인들의 저항이었다. 이 지역 출신의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양봉근이 독립선언서를 청년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일어난 만세군중이 구포주재소를 공격하자 군경의 발포도 있었다. 구포역에서 구포시장에 이르는 ‘구포만세길’ 옆에 있는 ‘구포장터 3.1만세운동기념비’에는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43명 의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20년 5월에는 구포만세운동을 기념하는 사제맥주 ‘구포만세329’가 나와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부산 북구가 주도하는 밀:당브로이가 낙동강 하류 화명생태공원 둔치에서 경작한 밀을 원료로 만든 생맥주 ‘구포만세329’는 관광 콘텐츠 역할도 하고 있다. 조개의 발이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는 새조개는 겨울철 샤브샤브로 인기메뉴이지만 낙동강 하류에는 바다의 새조개와 비슷한 갈미조개가 큰 인기다. 갈매기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갈미조개라고 한다. 분홍이나 오렌지 색깔의 갈미조개와 삼겹살을 함께 구워먹는 ‘갈삼구이’를 김과 깻잎에 싸먹으면 별미다. 갈미조개는 샤브샤브 뿐만 아니라 탕, 전골, 수육도 있다. 또한 ‘국민생선’인 고등어는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전국의 80%가 유통되기에 부산 시어(市魚)로 지정되어 있다. 육류가 귀하던 시절, 기름기가 많은 고등어 배를 반으로 갈라 석쇠에 구우면 돼지갈비처럼 연기가 난다고 해서 고등어갈비로 불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용두산공원 아래 옛 미화당백화점 뒷켠에 고갈비 전문 골목이 있었다. 고갈비가 고등어구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가 부산사람 구별기준이 될 법도 하다. 요즘 값싸고 맛있는 고등어구이를 찾는 부산 토박이들은 남부민동 공동어시장 구내식당으로 간다. 고등어 살을 추어탕처럼 으깨서 시래기와 버물어 끓인 고등어해장국은 부산에만 맛볼 수 있는 숙취해소제이다. 매년 10월 하순이면 송도해수욕장에서 고소한 풍미가 느껴지는 부산고등어축제가 열린다. 맨손으로 고등어잡기, 고등어 회 썰기대회, 고등어 살발라 먹기를 비롯한 고등어 요리 경연대회가 열린다. 유엔묘지, 경무대, 임시중앙청 등 피란수도유산 8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이곳을 둘러보며 향토음식을 맛보는 피난수도투어도 있다. 부산은 역시 어묵의 도시다. 전국 100여개 어묵공장의 거의 절반이 부산에 모여 있다. 삼진어묵, 부산어묵, 고래사어묵, 환공어묵 등이 전국적인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어묵에 두부, 계란, 곤약 등을 넣어 장국에 익힌 오뎅은 겨울철 포장마차의 진미다. 부산은 어묵의 고향답게 매년 다대포서 어묵축제가 열린다. 부평동 깡통시장 어묵골목에는 20여개의 식당과 매장이 줄지어 있다. 남포동에는 소 사태살의 힘줄이나 근육을 고아 졸깃졸깃한 맛의 스지어묵탕도 유명하다. 어묵탕 안의 푸짐한 유부주머니만 먹어도 요기가 가신다. 1910년 부평정시장에서 일본인이 경영하던 ‘가마보코’가 1945년 동광식품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 우리나라 최초 어묵공장이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한편 일본에 징용 가서 어묵기술을 배운 박재덕씨가 1953년 영도 봉래시장 곁에서 국내 최초로 시작한 어묵공장이 삼진어묵이다. 당시 어묵은 피란지 부산의 값싸고 영양가 높은 단백질 섭취원이었다. 미국 유학생활을 중도에 접고 대를 이어 삼진어묵 경영을 맡은 박영준대표는 “어묵은 반찬이 아니라 식량이다”면서 미래의 각종 식품으로 변신하여 7년 동안 매출을 40배로 늘렸다. 조선 숙종45년의 궁중연회행사 소개에 나오는 ‘생선숙편’이 우리나라 최초의 어묵에 대한 기록이라고 어묵 권위자인 미국 오리건주립대학의 박재원 교수는 밝히고 있다. 어묵에 사용되는 생선은 질이 낮아 그대로 먹을 수 없는 찌꺼기로 만든다는 잘못된 선입견이 있지만, 기름이나 껍질, 이물질은 제거하고 깨끗한 생선살만 골라 어묵 원료인 연육(練肉)을 만든다. 부산어묵조합은 수분을 제외한 전체 원자재의 70% 이상이 연육(수리미)이어야만 ‘부산어묵’으로 인정해준다. 치킨에 지방함량이 14%, 감자튀김이 18%인데 비해 어묵은 튀겨도 기름이 침투하지 않아 지방함량이 3%를 넘지 않는다. 차가운 어묵을 얇게 썰어 생선회처럼 겨자 간장에 찍어 먹으면 어묵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최근에는 어묵 속에 새우나 불고기, 카레 등을 넣어 튀긴 어묵고로케와 빵처럼 만든 어묵 베이커리가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은 치킨과 맥주의 치맥 대신 맥주에 어묵과 감자튀김을 곁들인 어맥이 부산 젊은이들의 인기메뉴다. 선거철이 되면 모든 후보가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재래시장이며, 친숙한 서민이미지를 돋보이기 위해 반드시 사먹는 음식이 어묵이다. 그러나 뒷골목 시장바닥서 겨우 행세하던 어묵이 이제는 건강식, 별미식 등으로 다양화 고급화하여 백화점, 면세점에 진출했으며, 해외수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돼지국밥, 밀면, 어묵 등 부산의 향토음식은 대부분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피란민들의 주린 배를 채우던 시절에 탄생했다. 일제 강점기 가죽생산 재료였던 먹장어가 꼼장어(곰장어)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오르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부산 연안에 대량 서식하고 있는 곰장어 껍질을 가죽으로 가공하여 나막신 끈이나 일본군 모자테로 만들던 박피공장이 자갈치 시장 근처에 있었다. 곰장어는 깊은 바다에 살기에 눈이 퇴화되어서 ‘눈먼 장어’라고 하여 먹장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껍질이 벗겨진 채로 10시간 이상 ‘곰지락거린다’고 해서 꼼장어로 불리게 되었다. 피란민들이 자갈치시장으로 몰려들면서 버려지던 먹장어 살을 구어서 팔기 시작했다. 구이 외에 꼼장어찜과 꼼장어묵도 등장했다. 자갈치시장의 양념꼼장어 구이는 양파와 대파, 고추장을 버무린 뒤 노릇노릇 구워진 꼼장어를 야채나 깻잎에 싸서 먹는다. 구이의 명물은 역시 기장 지역의 짚불 꼼장어. 꿈틀거리는 장어를 짚불 속에 던져 넣었다가 꼬들꼬들 오그라들기 시작하면 면장갑을 끼고 껍질을 훑어낸 후 가위로 잘라 소금장에 찍어 먹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