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숙박 플랫폼을 통해 서울 성수동 ‘볼트하우스’에 머물며 호스트와 등산과 자전거 라이딩을 즐긴 독일 출신 자전거 여행자 레나(왼쪽)와 조지. 조서형 칼럼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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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앞뒤로 끌어안고 계단을 빠르게 올랐다. 몇해 전 가을, 새벽의 독일 베를린 중앙역. 지하철역에는 침침한 빛만 남아 원하는 출구를 찾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영어로 길을 묻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고,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취해 있었다. 길을 헤매느라 티셔츠의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찾던 집에 도착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손님이 드디어 오셨구먼. 아침 일찍 오겠다더니 늦어져서 걱정했어.” 집주인은 껄껄 웃으며 거실로 안내했다. 그곳엔 이 도시의 방식으로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깨를 뿌려 구운 부드러운 빵, 얇게 썬 치즈, 살구잼, 연어와 살라미, 요거트, 우유와 홍차까지. “우리끼리 아침을 먼저 먹고 있었어. 얼굴을 보니 이미 험난한 하루를 보낸 것 같은데 너도 어서 와서 먹어. 다 먹고 나면 동네를 소개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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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길을 잃은 바람에, 이 도시는 너무 차갑고 어두워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니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도시는 한결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날 날 초대한 사람은 카우치서핑 호스트 마르틴 펠러(53)였다.
낯선 여행자와 친구가 되는 경험
카우치서핑은 현지인이 자기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고 여행자는 며칠 쉬었다 가는 숙박 공유 플랫폼이다. 카우치서핑은 여행자가 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의미한다. 2004년 미국 보스턴의 대학생 케이지 펜턴이 시작했다.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앞둔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아이슬란드 대학의 학생 1500명에게 자기를 재워줄 수 있냐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50통의 답변을 받았다. ‘이게 되네?’라는 긍정적인 경험을 한 케이지는 플랫폼을 세계 단위로 넓혔다.
긴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 일상 회복이 본격화하면서 해외여행자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통계를 보면 2022년 12월 한국의 해외여행객 수는 약 139만명으로 전년 같은 달(13만9400명)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었다. 다시 여행 계획을 세우는 지금, 여느 숙박 예약 사이트 대신 카우치서핑 같은 다른 방안을 제안하는 숙박 플랫폼을 이용해봐도 좋겠다.
카우치서핑과 같은 무료 숙박 플랫폼이 기존의 숙박 예약 플랫폼과 다른 점은 내가 게스트가 될 수도, 손님을 맞는 호스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선 카우치서핑 게스트가 되는 법을 알아보자. 카우치서핑 사이트에 가입한 다음 여행자로서 자신의 프로필을 작성한다. 여행 목적지와 날짜를 입력하면 지도에 호스트 목록이 나타난다. 호스트의 주소와 프로필을 확인하고, 신청 메시지를 보내고, 답변을 받으면 끝이다. 호스트가 되고자 할 때는 여행자의 메시지를 승낙하면 된다.
내가 베를린에서 만난 마르틴은 우체부로 일하며 매일 새로운 여행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종종 게스트가 되기도 했다. 그의 담벼락엔 772개의 레퍼런스가 남아 있다. “2006년에 카우치서핑을 시작했어요. 첫 게스트는 캐나다 출신의 아마추어 축구 선수였어요. 같이 밥을 먹고, 동네를 소개해주며, 늦은 시간까지 떠들던 기억이 좋았어요. 그 이후로 10여년간 2000번이 넘게 카우치서핑을 했어요. 돈 없이 여행할 수 있다는 것도 좋지만 마음과 시간을 기꺼이 지불할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카우치서핑의 장점이에요.” 마르틴이 말했다.
숙박에 돈이 들지 않는다고 노력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르틴에게 좋은 게스트가 되는 팁을 물었다. “무료 호텔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요. 낯선 집에 가서 자는 게 무서운 만큼 호스트도 낯선 사람을 들이는 게 무서워요. 당신이 누군지 왜 우리 집에 오려는지 알 수 있도록 메시지를 쓰세요. 이름, 국적, 취미, 여행의 계기, 머물고 싶은 날짜와 도착 시각 정도는 알아야 당신을 판단할 수 있겠죠?”
더불어 그는 무리한 일정으로 카우치서핑을 이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도착하면 문을 열어주기 힘들어요. 숙박업소처럼 24시간 로비에서 당신을 기다릴 수는 없어요. 그동안 경험으로 봤을 때 피곤한 상태로 도착한 여행자와는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어요. 잠만 자고 가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어 호스트도 아쉽죠. 자국의 기념품을 준비해 오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해도 이해해요. 여행자는 짐을 줄이는 일이 중요하니까요. 휴대폰에서 사진을 보여주거나 여행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우치서핑을 이용했다면 귀국해서 호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작은 방, 비좁은 바닥이라도 괜찮아요. 다른 여행자를 도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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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받은 호의를 돌려주고 싶어”
내가 카우치서핑을 시작한 것은 2015년, 북유럽을 여행하면서다. 여행 초반에 현금을 봉투째 잃어버리는 바람에 숙박비를 줄이는 데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온종일 해가 지지 않는 북유럽의 여름에 호스트와 함께 디저트를 굽고, 사우나를 하고, 호수를 걷고, 함께 가족 여행에 나서 하이킹을 했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숙박을 해결하며 여행의 의미와 재미를 넓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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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해에는 유기농 농장에서 일을 거들며 숙식을 제공받는 우프(Wwoof)와 학교, 농장, 조선소 등 다양한 일터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워크어웨이(Workaway)를 활용했다. 덕분에 과테말라 안티과와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몇달간 게스트하우스 일을 하며 중미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게스트로서 감사했던 마음을 되새기며 한국에 있을 때는 카우치서핑과 웜샤워 호스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 외르 출신 조이(20)는 2020년 우프로 한국 여행을 했다. “제주도에서 호박을 따고, 수원의 비닐하우스에서 잡초를 벴어요. 쉴 때는 한국의 간식도 먹고 막걸리도 마셨어요. 관광을 와서는 들르기 어려운 소도시 작은 마을을 볼 수 있어 좋아요. ‘아줌마’들이 엄마 같은 마음으로 ‘배불러’, ‘더 먹어’ 같은 한국말도 많이 알려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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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의 게스트이기도 했던 마야는 미국 볼티모어에서 오가닉 꽃 농장을 운영한다. 2019년 여름, 남편 맥스, 6살 마리, 4살 메디와 함께 한국 자전거 여행을 왔다. 서울에서 시작한 여정은 카우치서핑과 웜샤워를 이용해 1551㎞, 11주 동안 계속되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호텔에 단 두번 머물렀어요. 그때 길에서 받은 호의를 돌려주고 싶어요. 두 딸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낯선 사람의 친절을 경험하고, 모르는 여행자를 돕는 마음을요.”
마야의 가족이 머물렀던 서울 성수동의 ‘볼트하우스’ 공동 운영자 가운데 한명인 김현욱씨에게 쿨한 호스트가 되는 법을 물었다. “여행 일정과 코스를 정해야 하는 여행자를 배려해 메시지 답변은 최대한 빨리해주세요. 그다음에는 여행자와 나눌 시간을 마련하세요. 함께 동네 산책을 하고, 밤에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여행지 추천을 해주세요. 게스트와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없다면 무료 숙소 제공자에 그칠 수 있어요.”
서울을 떠난 마야 가족은 낙동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경남 창녕에 머물렀다. 부부의 성인 최와 강을 따 ‘최강부부’라는 닉네임을 가진 호스트가 숙박을 제공했다. 부부는 3년간의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2016년부터 창녕에서 여행자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최정묵씨에게 호스트가 주의할 점을 물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무리하지 마세요. 지친 상태에서 손님을 받으면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기 어렵고 대화 없이는 친구가 될 수 없어요. 예전에 저희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걸 갚는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요.”
넓은 마음으로 호스팅하는 그에게 어려운 일은 없었을까? 혹시 집 안의 물건을 훔쳐간 게스트가 있었다거나, 이웃과 갈등이 생긴다거나. 정묵씨가 웃으며 답했다. “여행자에게 모든 물건은 짐이에요. 다들 뭘 준다고 해도 안 가져가요.” 처음엔 마을 어르신들이 여행자를 불편해했다. 부부는 그들의 여행 얘기를 마을 어른들께 들려주고 게스트를 마을 축제에 데려갔다. “이제는 동네 어른들이 우포늪을 거니는 외국인만 봐도 우리 집으로 안내해요. 당연히 우리 집 게스트일 거라 생각하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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