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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어진
왕의 초상화를 어진御眞이라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봉안할 전각 여섯 곳이 세워졌습니다. 태조의 초상화는 모두 26점 만들어졌지만, 전주시 경기전에 보관되어 있던 초상화만 유일하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초상화는 태종 10년(1410) 전주부에 봉안되었고 영조 39년(1763) 한 차례 수리를 거친 후 고종 9년(1872)에 다시 원본을 그대로 옮겨 그린 것입니다.
용비어천가(조선 왕조의 창업을 칭송한 노래)
용비어천가는 조선 왕조를 창업한 태조太祖(재위 1392-1398)의 4대조인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환조桓祖와 태조, 태종太宗(재위 1400-1418)까지 6대 임금의 행적과 조선의 건국 과정, 관련 설화 등을 담은 장편 서사시입니다. 총 125장으로 구성되었으며, 한글(훈민정음)로 지은 본문 뒤에 한문으로 주석을 달았습니다.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1년 전인 1445년(세종 27)에 완성되었으며, 1447년(세종 29)에 처음 간행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실용적이며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을 창제하기까지 세종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연구와 시험을 거듭했습니다. 용비어천가는 이 과정에서 처음 쓴 작품으로 15세기 언어와 문학, 서체 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입니다. 또한 훈민정음을 사용해 조선 왕조 창업을 노래함으로써 문자의 권위를 높이려 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입니다.
동의보감
허준 등이 선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의학서입니다. 그전까지 편찬된 중국과 우리나라 의서들을 참고하여 구체적인 질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기록한 한의학 백과전서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청나라와 일본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허준은 『동의보감』의 맨 앞에 인체의 장기와 그 특징을 그린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를 실어 의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어진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평상복인 황룡포黃龍袍를 입고 어좌御座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면서 이 그림과 같이 황룡포를 착용하였다.
서화관
북쪽 전시공간은 각 시기의 특징을 잘 대변하는 명품을 서화, 불교회화, 목칠공예의 주제에 따라 전시하여 수준 높은 우리 전통미술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태자사 낭공대사 비석
한글을 창제하기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한자를 사용해 뜻을 기록하고 전달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한자가 전래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기원전 1세기 무렵의 붓이 출토되어 일찍부터 한자를 사용한 기록문화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시실 소개
나전 칠 연꽃 넝쿨무늬 옷상자
15-16세기 경 조선 전기 나전칠기는 크게 두 가지 계열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고려시대의 전통을 계승하여 국화나 모란무늬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늬의 크기가 커지고 줄기는 금속선 대신 자개를 사용하는 차이점이 나타납니다. 다른 한 계열은 조선 나름대로의 무늬 표현을 모색하는 계열입니다. 이 계열은 활짝 핀 꽃무늬와 봉오리무늬를 번갈아 배치하고 잎은 흩날리듯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조선 특유의 나전 장식 기법인 타찰법打擦法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이 작품은 관복을 담았던 상자로 추정됩니다. 고려 나전칠기의 장식 구성을 계승하면서도 큼직한 자개를 타찰법으로 붙여 오색찬란한 빛의 반사를 극대화했습니다.
세계문화관
남쪽 전시공간은 메소포타미아,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인도•동남아시아, 고대 그리스•로마 등 세계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전시합니다.
5단 곱셈표
수학과 회계는 아주 일찍부터 메소포타미아의 필기 문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후기 우룩 시대(기원전 약 3500~3100년)에는 60진법과 10진법을 같이 쓰는 중량 측정 체계가 완성되었는데, 이 계산법은 이후 수천 년 동안 이용되었습니다. 이 점토판에는 1×5=5, 2×5=10으로 이어지는 5단 곱셈표가 적혀 있는데, 이와 같은 곱셈표는 매일 계산을 해야하는 필경사에게 유용한 도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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