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Philip Larkin (1922 - )
1950년대 영시의 대표적인 흐름으로는 시류파(The Movement)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류파"라는 것이 하나의 시파로서 공동의 기치를 내건다거나 어떤 새로운 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속한 시인들의 시선집인 {신시}(New Lines, 1956)의 편자 로버트 콩퀘스트
(Robert Conquest)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러 관점에서 어떤 통일된 길, 하나의 새롭고 건전하며 일반적인 입장으로 나아가고 있었
던 몇 사람읭 시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후기 및 1950년대 초기의 일이다.
어떤 뜻으로는 그 입장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고 건전하고 보람있는 시적 태도, 즉 시란 인
간 전체, 다시 말하여 이성과 지성, 정서, 감각 및 그 밖의 모든 것으로, 그리고 그것을 위하
여 씌여진다는 원칙을 회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지극히 평범하지만 비평적인 태도를 지닌 젊은 시인들은 주로 옥스포드에 있는 환타
지 프레스(Fantasy Press)와 레딩대학 예술과에서 출판한 한정판 소책자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이 그룹의 시인들은 대부분 대학 출신으로 대학에 근무한 경우가 많다. 이 그룹에
서 가장 탁월한 시인이 라킨이다. 그는 헐대학(Hull University)의 도서관원이며 소설가이기
도 하다. 그가 직접받은 영향은 리비스(F.R. Leavis)의 엄격한 비평과 엠프슨(William
Empson)의 지적인 시와 조지 오웰(George Orwell) 의 정직이라는 원칙이었다. 따라서 그의
시풍은 일반적으로 온건하고 견실할 뿐 기교나 과장이 없고, 그는 현대의 지식인으로 정직
하게 보고 느낀 것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야심은 품지 않은 듯이 보인
다. 라키은 자신의 시적 태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내가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하나의 혼합되고 복잡한 경험을 이렇게 표시할 수가
있다면)을 나 자시니과 남들을 위해 보존하기 위해 시를 쓴다. . . .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나는 모르지만, 보존하려는 충동은 모든 예술의 밑바닥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러므로 대체로 나의 시는 나 개인의 생활에 관련되어 있으나 결코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
다. 나는 내가 본 적이 없는 말을 상상할 수도 있고, 여자가 되어 보거나 결혼해 보지 않고
도 한 신부의 정서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라킨의 시는 대체로 생활고 사실의 경험을 기록할 뿐
그것에 감상적인 해석을 붙이지 않는다. 그는 과묵한 사람이며 시를 많이 쓰지는 않은 사람
으로 10년 동안 그가 쓴 시를 모은, 약 50쪽에 달하는 두 번째 시집 {덜 속은 자들}(The
Less Deceived, 1955)로써 1950년대의 영시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대개 어떤 묘사로 시작하여 사실이나 경험의 의미를 미묘하게 헤치고 들어가
는 종류의 것으로 얼핏 보아서는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시의 성가는 그
다지 높지 않다. 그는 대체로 전통적인 형식으로 시를 쓰며 모든 작품이 어떤 진리에 대한
어떤 유력한 접근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덜 속은 자들}에 사용된 주제는 젊은 여인의
사진첩, 결혼식날 밤에 부는 바람, 여자의 결혼 전의 이름, 교회 등 우리의 생활 주변의 비
근한 것이 많다. 여기에 실려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 종교의 몰락을 생각하게 하는 "교회 방
문"(Church Going)은 그 운율과 균형에 있어 1950년대의 영시가 낳은 가장 성숙한 작품 중
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숙함은 그의 세 번째 시집 {성령 강림제의 결혼식}(The
Whitsun Weddings, 1964)에서 한결 힘차게 표현되어 있다.
라킨은 1922년 8월 9일에 와윅셔(Warwickshire)의 코벤트리(Coventry)에서 태어났고 옥
스포드 대학에 다녔다. 옥스포드 대학의 학창시절은 그의 첫 소설 {질}(Jill)에 묘사되어 있
다. 그는 1945년에 발표한 첫 시집 {북쪽 배}(The North Ship)의 서문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시인은 하디이고, 자신은 하디의 시무룩함뿐만 아니라 거칠음도 물려 받았다고 말하고는 있
지만, 그는 하디보다 점잖고 재미있다.
Lines on a Young Lady's Photograph Album
At last you yielded up the album, which,
Once open, sent me distracted. All your ages
Matt and glossy on the thick black pages!
Too much confectionary, too rich:
I choke on such nutritious images.
My swivel eye hungers from pose to pose--
In pigtails, clutching a reluctant cat;
Or furred yourself, a sweet girl-graduate;
Or lifting a heavy-headed rose
Beneath a trellis, or in a trilby that
(Faintly disturbing, that, in several ways)--
From every side you strike at my control,
Not least through these disquieting chaps who loll
At ease about your earlier days:
Not quite your class, I'd say, dear, on the whole.
But o, photography! as no art is,
Faithful and disappointing! that records
Dull days as dull, and hold-it smiles as frauds,
And will not censor blemishes
Like washing-lines, and Hall's-Distemper boards,
But shows the cat as disinclined, and shades
A chin as doubled when it is, what grace
Your candor thus confers upon her face!
How overwhelmingly persuades
That this is a real girl in a real place,
In every sense empirically true!
Or is it just the past? Those flowers, that gate,
These misty parks and motors, lacerate
Simply by being over; you
Contract my heart by looking out of date.
Yes, true; but in the end, surely, we cry
Not only at exclusion, but because
It leaves us free to cry. We know what was
Won't call on us to justify
Our grief, however hard we yowl across
The gap from eye to page. So I am left
To mourn (without a chance of consequence)
You, balanced on a bike against a fence;
To wonder if you'd spot the theft
Of this one of you bathing; to condense,
In short, a past that no one now can share,
No matter whose your future; calm and dry,
It holds you like a heaven, and you lie
Unvariably lovely there,
Smaller and clearer as the years go by.
젊은 여인의 앨범에 관한 시
마침내 당신은 앨범을 내놓았소, 그것은
일단 펼쳐지자, 내 마음을 괴롭혔소. 당신의 모든 시기가
두텁고 검은 종이 위에서 광택없고 광택있게 있다니!
너무 많은 과자들, 너무 자양분 많은.
나는 이런 영양가 높은 영상들에 질식하오.
내 자유로이 움직이는 눈은 굶주리오 포즈에서 포즈로--
싫어하는 고양이를 움켜잡고 있는 땋은 머리를 한 포즈,
또는 모피를 입은 사랑스런 여대졸업생의 포즈,
또는 격자 울타리 아래서 머리가 무거운 장미를
들어 올리고 있는 포즈, 또는 소프트 모자를 쓴 포즈
(그것이 어렴풋이 마음을 혼란케하오, 여러 면에서)--
모든 면에서 당신은 나의 억제력을 때리오,
당신의 보다 어린 시절에 편안히 빈둥거리는
불안케 하는 이 녀석들 때문은 조금도 아니오.
대체로, 님이여, 당신의 계급은 전혀 아닌 것 같소.
그러나 오, 사진은! 다른 예술과는 달리,
충실하고도 실망시키는구려! 그건 기록하오
단조로운 날들을 단조롭게, 그리고 미소들을 사기로 있는 그대로,
그리고 빨랫줄 같은 흠을 검열하지 않으려하오,
그리고 홀의 수성도료판 같은 흠도,
그러나 고양이가 마음 안내키는 대로 보여주고, 턱이
이중턱이 될 때 있는 그대로 음영짓소, 어떤 우아함을
당신의 솔직함은 그녀의 얼굴에 이처럼 부여하는지!
얼마나 압도적으로 설득하는지
이것이 실제장소에서의 실제소녀라고,
모든 의미에서 경험적으로 진실이라고!
또는 그것은 단지 과거일 뿐인가? 저 꽃들, 저 문,
이 안개낀 공원들과 자동차들은, 괴롭히오
다만 끝남으로써. 당신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임으로써 내 마음을 죄오.
그렇소, 정말이오, 그러나 결국, 확실히, 우리는 울게되오
제외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자유로이 울게 하기에. 우리는 알고 있소
과거가 우리의 슬픔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를 방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무리 큰 소리로 우리가
눈과 페이지 사이의 틈을 가로질러 울부짖어도. 그래서 나는 슬퍼하도록
남겨지오 (결과에 대한 기회도 없이)
담에 기대어 자전거에 균형잡고 있는, 당신을,
그리고 당신의 목욕하고 있는 이것의 도난을
알아챗는지 궁금해 하도록, 그리고 요약하도록,
요컨대, 이제는 아무도 공유할 수 없는 과거를,
당신의 미래가 누구의 것이든 간에, 조용하고 메마르게
그건 당신을 천국처럼 갖고 있소, 그리고 당신은
변함없이 사랑스럽게 거기에 있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더 작고 더 뚜렷하게.
<작품해설>
이 작품은 제목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화자가 젊은 여인의 앨범을 보면서 그녀의 옛
모습에서 오늘의 모습으로의 변화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을 그린 것이다. abbab의 각운 구
조로 된 5행연이 모여서 이루어진 이 시편은 운율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특이한 점이 없다.
Larkin이 본래 운율상의 실험을 꾀하지 않고 전통적인 시형식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
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화자는 여인의 앨범을 보면서 사진을 마치 과자와 같은 것으로 말하여 어린시절에 마치
과자를 탐하듯이 앨범 속의 사진을 탐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여인이 앨범을 선선히 보
여준 것이 아니라 화자가 졸랐기 때문에 보여주었다는 것이 첫 행의 "마침내"에 밝혀져 있
다. 이 앨범을 펼치자마자 거기에는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화자는 미치게(distracted)되고 질식하게 된다. 여인의 갖가지 모
습의 사진을 "영양가 높은 영상"으로 말하여 화자가 여인의 성장발달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것을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음 연에서부터는 화자가 사진을 보면서 그로 인하여 마음이 설레는 것이 묘사된다. 화
자의 눈이 실제로 사팔뜨기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팔눈"이라고 했을 것이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는 고양이를 안고있는 소녀의
모습에서부터 보다 성숙한 모습의 여대졸업생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포즈의 사진이
그 앨범에 담겨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모습을 탐욕스러이 바라보는 화자는 여러면에서 마
음이 동요한다. 여인이 혼자 있는 갖가지 모습에서 그녀의 지금까지의 생활을 엿보는 것 같
아 화자의 마음이 동요하고 있는데 사진 중에는 그녀 혼자가 아니라 옆에 젊은 사내들이 있
는 사진도 있기에 더욱 불안감을 느낀다. 그녀의 주변에 있는 젊은 사내들은 그녀의 계급에
속하지 않는 것같다는 말로써 그녀와 그들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부인하고픈 마음을 화자는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의도대로 변화
된 대상을 표현한다. 문학, 음악, 미술 등 모든 분야의 예술이 그러하다. 모든 예술의 표현에
는 작가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그렇지 않다. 물론 사진에도 배경이
라든지 아니면 여러가지 포즈 중에서 특히 어떤 포즈를 사진으로 찍는다든지 하여 예술가의
주관이 개입되기는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른 예술에 비하여 사진은 기록성이 보다 강
한 것이다. 화자는 그래서 "다른 예술과는 달리, 정확하면서도 실망을 주는" 사진이라고 말
하고 있다. 과거의 사실의 정확한 기록이기 때문에 정확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상화하여
생각하던 모습이 아니라 사실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실망스럽기도 한 것
이다. 사진에는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모습도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고, 지루했던 날들이
지루한 상태로 그대로 묘사되어 있을 수 있다. 사실의 적나라한 묘사이기 때문이 항상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모습이 "사기"인 것같고, 어떠한 검열에도 걸리지 않고 통과한다.
그러므로 사진은 발버둥치는 고양이며 군살붙은 턱 등 숨기고 싶은 사실까지 숨김없이 드
러낸다. 실제의 소녀의 모습은 경험적 진실이며 과거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실의 묘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제는 심리적 진실이 표현되기에 이른다. 사진에 나온 여러가지 사실들은
이미 과거에 속한 것으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에 화자는 사진을 보면서 괴로와한
다. 지금까지는 과거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사진이 그녀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화자는 당황하고, 실망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진 속의 세계
가 영원한 과거가 되어 시대에 뒤진 것처럼 됨으로써 화자는 가슴 아파한다.
그 다음 연에서 화자는 자신이 가슴 아파하는 이유가 과거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세월
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우리 자신이 그 과거로부터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또 소리내어 울어보아도 그 과거는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화자는 비탄에 잠긴다. 이
제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없는 상태가 되어서 화자는 더욱 슬퍼한다. 이는 직접적으로는 자
신이 그녀와 함께 사진을 찍은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함께 찍을 가능성이 없는 것을 말하지
만 상징적으로는 과거가 흘러가 버려 돌아올 수 없이 되었고 미래에도 그녀와의 사랑의 가
능성이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여러 가지 사진 가운데는 오토바이에 앉아있는 모
습도 있고 목욕하는 모습도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그녀의 불확실한 미래와는 달리 과거는 명확하게 규정된 상태로 존재하
고 있음이 말해진다. 그녀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녀의 미래는 누구의
것이 될지 모른다. 물론 그녀의 미래는 그녀 자신의 것이 되겠지만 이는 누구와 함께 미래
를 살아갈까 하는 의구심의 표현일 것이다. 이 사진에는 그녀가 천국에 있는 듯이 아무 동
요없이 편안한 과거가 표현되어 있으며 미래에 그녀의 생활이 어떻게 변한다하더라도 이 사
진 속의 모습은 변함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여인의 사진첩에 있는 과거의 영상들을 보면서
화자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Church Going
Once I am sure there's nothing going on
I step inside, letting the door thud shut.
Another church: matting, seats, and stone,
And little books; sprawlings of flowers, cut
For Sunday, brownish now; some brass and stuff 5
Up at the holy end; the small neat organ;
And a tense, musty, unignorable silence,
Brewed God knows how long. Hatless, I take off
My cycle-clips in awkward reverence,
Move forward, run my hand around the font. 10
From where I stand, the roof looks almost new--
Cleaned, or restored? Someone would know: I don't.
Mounting the lectern, I peruse a few
Hectoring large-scale verses, and pronounce
'Here endeth' much more loudly than I'd meant. 15
The echoes snigger briefly. Back at the door
I sign the book, donate an Irish sixpence,
Reflect the place was not worth stopping for.
Yet stop I did: in fact I often do,
And always end much at a loss like this, 20
Wondering what to look for; wondering, too,
When churches fall completely out of use
What we shall turn them into, if we shall keep
A few cathedrals chronically on show,
Their parchment, plate and pyx in locked cases, 25
And let the rest rent-free to rain and sheep.
Shall we avoid them as unlucky places?
Or, after dark, will dubious women come
To make their children touch a particular stone;
Pick simples for a cancer; or on some 30
Advised night see walking a dead one?
Power of some sort or other will go on
In games, in riddles, seemingly at random;
But superstition, like belief, must die,
And what remains when disbelief has gone? 35
Grass, weedy pavement, brambles, buttress, sky,
A shape less recognisable each week,
A purpose more obscure. I wonder who
Will be the last, the very last, to seek
This place for what it was; one of the crew 40
That tap and jot and know what rood-lofts were?
Some ruin-bibber, randy for antique,
Or Christmas-addict, counting on a whiff
Of gown-and-bands and organ-pipes and myrrh?
Or will he be my representative, 45
Bored, uninformed, knowing the ghostly silt
Dispersed, yet tending to this cross of ground
Through suburb scrub because it held unspilt
So long and equably what since is found
Only in separation--marriage, and birth, 50
And death, and thoughts of these--for whom was built
This special shell? For, though I've no idea
What this accoutred frowsty barn is worth,
It pleases me to stand in silence here;
A serious house on serious earth it is, 55
In whose blent air all our compulsions meet,
Are recognised, and robed as destinies.
And that much never can be obsolete,
Since someone will forever be surprising
A hunger in himself to be more serious, 60
And gravitating with it to this ground,
Which, he once heard, was proper to grow wise in,
If only that so many dead lie round.
1955
교회방문
일단 아무것도 진행중이지 않다는걸 확신하고
나는 안으로 걸어가, 문이 쾅하고 닫히게 한다.
또 하나의 교회. 매트, 좌석, 그리고 돌,
작은 책들, 주일을 위해 잘라왔으나 이제는 갈색이 된
보기 흉하게 뻗어있는 꽃들, 신성한 끝에 올려 놓은
몇가지 놋쇠 제품과 포목 제품, 작고 산뜻한 오르간,
얼마나 오래 전에 양조되었는지 신만이 아는
진하고, 곰팡내 나는, 무시할 수 없는 침묵. 모자를 안썼기에, 나는
어색한 경의를 표하느라 내 자전거 클립을 벗는다,
앞으로 나아가 성수반을 손으로 만져본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천정이 거의 새것처럼 보인다--
청소했나, 아니면 복원했나? 누군가는 알겠지. 나는 모른다.
낭독대에 올라가, 나는 호통치는 대규모의 시편을
약간 정독하고, "여기서 끝냅니다"라고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큰 소리로 발음한다.
메아리가 짤막하게 낄낄댄다. 문으로 돌아와
나는 방명록에 서명하고 아일랜드화 6펜스를 헌금한다,
그 장소는 멈출만한 가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멈추었다. 사실 나는 종종 그런다,
그리고 항상 이처럼 꽤 당황해서 끝낸다,
찾아볼게 무언가 하고 궁금해하며, 또한 교회가
완전히 쓸모없게 될 때
우리가 그걸 무엇으로 바꿀까, 우리가
두세개의 대성당을 연대적으로 전시하고
그들의 양피지, 명패, 성체용기 등을 잠근 상자에 넣어두고
나머지는 집세받지 않고 비와 양에게 세놓을지 궁금해하며.
우리는 그것들을 재수없는 장소라고 피할까?
아니면, 우두운 후에, 미심쩍은 여인들이 와서
그들의 아이가 특별한 돌을 만지게 할까?
암을 위한 약초를 캘까? 아니면 어떤
통고받은 밤에 죽은자가 거니는걸 볼까?
어떤 종류나 다른 종류의 힘은 계속되리라
게임에서, 수수께끼에서, 외관상으로는 되는대로.
그러나 미신도, 신앙과 마찬가지로 죽어야 한다,
그런데 불신이 가버리면 무엇이 남나?
풀, 잡초난 포도, 가시덤불, 버팀벽, 하늘,
매주 더 알아보기 힘들게되는 형체,
더욱 더 모호한 목적. 나는 궁금하다 누가
마지막, 정말 마지막으로 이 장소를
과거의 것을 위해 찾을 지가. 두드리고 메모하며
강당 후면의 자리가 무언지를 아는 패거리 중의 하나일까?
골동품을 찾아 날뛰는, 어떤 폐허광일까,
아니면 크리스마스 중독자가 성직자 옷과
오르간 파이프와 몰약의 냄새를 기대할까,
아니면 나와 유사한 사람이어서,
권태로와 하고, 무식한, 유령같은 먼지가 흩어진 것을
알고 있으나, 교외의 관목숲을 지나서
이 십자가의 땅을 찾는, 왜냐면 그것은 그 후 단지
분리된 채 발견되는 것들--결혼, 출생,
그리고 죽음 및 이것들의 생각들--을 그리도 오랫동안
흡족하게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해왔기에, 누구를 위하여
이 특별한 조개껍질이 세워졌는가? 왜냐면, 비록 나는 이 설비된
후덥지근한 헛간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모르지만,
말없이 여기 서있는 것은 나를 기쁘게 하기에.
그건 진지한 땅 위에 있는 진지한 집이다,
그 뒤섞인 공기 속에서 우리의 모든 충동이 만나고,
인식되고 운명으로 옷입혀진다.
그러나 그만큼은 결코 쓸모없이 되지는 않으리라,
왜냐면 누군가가 영원히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갈망이 더욱 진지하게 되도록 일깨우고,
그리도 많은 죽은 사람들이 주변에 묻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안에서 현명하게 되기에 적합하다고 그가 예전에 들은 이 땅으로,
그와 더불어 이 땅으로 이끌릴 것이기에.
<작품해설>
라아킨은 종교에 대하여 회의적이지도 않고 종교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이 작품에서 그는
교회에 대한 사색을 보여주는데 그가 교회로 대표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무시하지는 않고
있으나 그다지 큰 신앙적인 집착도 없음이 드러난다. 시인과 동일시될 수 있는 화자는 길을
가다가 길 옆에 버려진 것같디고 하고 사용되고 있는 것같기도 한 어떤 교회건물은 발견하
고, 그 안으로 들어가 나름대로의 의식을 행하고 이 교회의 운명과 종교의 의미를 생각해본
다.
첫 연에는 화자가 길을 가다가 퇴락해가는 교회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자는 우선 교회의 문간에서 귀를 기울인다. 교회 안에서 예배가 진행중이 아
니라는 것을 확인한 후 화자는 안으로 들어간다. 이 때 문이 쾅하고 닫히도록 함으로써 그
가 독실한 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독실한 신자라면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을 것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곳은 화자가 많이 보아온 다른 교회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또 하나의 교회에 불과하다.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들이 응당 그러하
듯이 돗자리가 깔려 있고 좌석도 몇 개 있고, 작은 성경책들이 몇 권 있다. 돌보는 사람이
바쁜 탓인지 일요일에 장식하기 위해 잘라왔던 꽃들은 그 자리에서 색깔이 흐려지고, 꽃잎
도 한 두 개 떨어져버린 상태에 있다. 제단 위에는 목사가 설교할 때 사용하는 놋쇠로 만든
종과 십자가 등이 있고 한 쪽엔 작은 오르간이 있다. 너무도 조용하기 때문에 화자는 이전
에 사람이 이 곳에 들어온 것이 상당히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적을 묘
사하는 형용사 중에 "곰팡이 핀"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기가 곰팡이 냄새가 나는 상
태일 뿐만 아니라 곰팡이가 필 정도로 오랫동안 인적인 없었기 때문이다. 화자가 모자를 쓰
고 있었더라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을 것이지만 모자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바짓가랑이
를 묶는 자전거 클립을 벗어 경의를 표한다.
제 2연에는 화자가 설교단 주변을 살펴보고 기부금을 내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 화자는
성수반을 쓰다듬어 보고 천정이 새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그는 독경대에 올라
가서 성경을 몇 구절 큰 소리로 일고 내려온다. 교회가 텅 비어 정적이 감돌기 때문에 화자
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울리고, 메아리가 들린다. 그는 출구로 가서 하찮은 돈을 기부한
다. 여기서 기부금을 아일랜드화 6펜스라고 말하는데 이 돈은 영국화폐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돈이다. 또한 영국화폐는 아일랜드에서 사용되는데 아일랜드 화폐는 영국에서는 사
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일 화자가 걸음을 멈춘 곳이 영국 교회였다면, 그는 쓸모없는 것
(버려도 좋은 것)을 기부하는 것이고 그 장소가 아일랜드 교회라 해도 가장 하찮은 돈을 기
부하는 것이기에 여기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화자는 이 장소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
퇴락해가는 시골의 한 교회에 불과하기 때문에 멈출만한 장소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연에서 화자는 퇴락해가는 교회의 모습에 자극받아 차라리 일부의 교회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버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화자는 자전거 여행을 하며 지금까지 이
러한 교회의 모습을 많이 보아왔음을 말한다. 화자가 교회들이 퇴락하여 완전히 쓸모없게
된다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는 태도는 현대인의 종교성의 상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라
아킨은 우리의 생활 주변의 사소한 것을 소재로 하여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는 시인이
다. 여기서 그는 여행 중에 본 교회의 퇴락한 모습에서 현대인들이 영적 구원을 위한 노력
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대성당 몇 개만 기념물로
보존하고 나머지 교회들은 퇴락하여 몰락하도록 한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이는 화자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현실이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교회가 쓸쓸한 장소가 되면 사람들은 그곳을 재수없는 장소로 간주하여 피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어떤 주문과 같은 효력이 잇다고 믿고 그곳으로 은밀히 와서 그러한 효험을 빌어보
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무서움을 타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무병장수한다고 소
문이 난 돌을 만지도록하기 위하여 어머니들이 밤에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올지도 모르
고, 암에 특효가 있다고 소문이 난 어떤 약초를 캐로 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떤 특정한 날
에 죽은 사람이 걸어다닌다는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미신도 결국은 정통 기
독교 신앙이 쇠퇴한 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쇠퇴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 때가 되면 이
건물은 무너져 여기에는 풀이 우거지고 가시덤불이 뒤덮힐 것이다.
교회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더 퇴락하고 또한 교회의 기능도 점점 타락하여 그 존
재 목적이 더울 불분명해진다. 그러므로 화자는 이 교회에 마지막으로 올 사람이 누구인가
를 궁금히 여긴다. 현대인들의 신앙이 쇠퇴하여 교회가 더 이상 신앙의 중심지로 기능하지
못하기에 이 장소를 마지막으로 방문할 사람이 누구일까를 그는 궁금히 여긴다. 옛날의 것
들을 이것저것 살펴보는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일지, 아니면 폐허를 찾아다니며 무언가
득이 될 것을 찾으려하는 광적인 사람일지, 아니면 크리스마스광일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
과 같이 깊은 신앙심은 없지만 길을 가다가 교회가 있는 것을 보고 한 번 들러서 기도다운
기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도하고 지나가는 사람일지, 누가 이 교회를 마지막으로 방문할
것인가를 화자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본다. 시인은 현대의 신앙의 쇠퇴를 교회의 기능의 타
락과 교회에 마지막으로 방문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예로 들어 표현하고 있다.
제 6연에서 제 2행의 "십자가의 땅", 7행의 "이 특별한 조개껍질", 8행의 "이 산란하고 후
덥지근한 헛간"은 모두 교회를 가리킨다. 화자는 여기에 말없이 서서 즐거움을 느끼고, 오랫
동안 존재해온 이 교회가 현대인들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궁금히 여긴다. 지금
까지는 교회가 우리의 정신생활뿐만 아니라 일생생활의 모든 것도 한결같이 제대로 유지시
켜 왔으나, 이제 교회가 쇠퇴하면서, 교회가 정신생활의 지주가 되지 못하고 또한 일상생활
의 각부분도 따로따로 분리되어 존재하게 된다.
교회는 엄숙한 지역에 세워진 엄숙한 집이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신의 섭리에 의한 숙명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화자는
"그만큼"은 결코 없어질 수 없다고 하는데 "그만큼"은 교회가 우리의 생활에서 행사하는 전
통적, 관습적인 기능, 사회적인 기능을 뜻하는 것으로 종교적인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교회에 대한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영국에서는 교회가 우리나라의 기
초적인 행정관청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즉 출생, 결혼, 사망 등의 모든 행정절차가 그곳에
서 처리된다. 그러므로 바로 앞 연에서 이후에 따로따로 발견되는 것들을 "결혼과 출생과
죽음"이라고 한 것이다. 이제 교회가 그 본연의 기능인 종교적 기능을 상실하고 오직 행정
적, 관습적인 기능만을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소퇴한 상태에 처해있다. 이처럼 현대인들이
종교를 전혀 도외시한다 할지라고 누군가가 "이 땅", 즉 교회로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어린
관측으로 이 작품은 끝난다.
작가소개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라아킨은 작품의 소재를 우리 주변의 비근한 사물에서 취
하는 시인이다. 그는 그 소재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묘사하는 가운데 어떤 의미를 찾아낸다.
이 작품에서도 소재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길옆에 세
워져 있는 교회를 보고 들어가 살펴본다. 그리고 그 퇴락해가는 모습에서 현대인의 종교의
상실에 관하여 생각해본다.
Faith Healing
Slowly the women file to where he stands
Upright in rimless glasses, silver hair,
Dark suit, white collar. Stweards tirelessly
Persuade them onwards to his voice and hands,
Within whose warm spring rain of loving care
Each dwells some twenty seconds. Now, dear child,
What's wrong, the deep American voice demands,
And, scarcely pausing, goes into a prayer
Directing God about this eye, that knee.
Their heads are clasped abruptly; then, exiled
Like losing thoughts, they go in silence; some
Sheepishly stray, not back into their lives
Just yet; but some stay stiff, twitching and loud
With deep hoarse tears, as if a kind of dumb
And idiot child within them still survives
To re-awake at kindness, thinking a voice
At last calls them alone, that hands have come
To lift and lighten; and such joy arrives
Their thick tongues blort, their eyes squeeze grief, a crowd
Of huge unheard answers jam and rejoice--
What's wrong! Moustached in flowered frocks they shake:
By now, all's wrong. In everyone there sleeps
A sense of life lived according to love.
To some it means the difference they could make
By loving others, but across most it sweeps
As all they might have done had they been loved.
That nothing cures. An immense slackening ache,
As when, thawing, the rigid landscape weeps,
Spreads slowly through them--that, and the voice above
Saying Dear child, and all time has disproved.
1964
안수기도
느리게 여인들이 그가 서있는 곳으로 줄지어 나아간다
터없는 안경을 쓰고, 은빛 머리로, 검은 옷, 흰 칼라를 입고
똑바로 서서, 집사들이 지치지도 않고
그들이 그의 목소리와 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도록 설득한다,
그의 사랑하는 관심의 따스한 봄비 속에서
각자는 약 이십 초간 머문다. 자, 사랑스런 아이야,
무엇이 잘못됐니? 묵직한 미국인의 목소리가 묻는다,
그리고 거의 쉬지도 않고, 기도를 하며
이 눈, 저 무릎 주변으로 신을 안내한다.
그들의 머리가 갑자기 죄어지고, 그 다음엔, 추방된다
잃어지는 생각처럼, 그들은 말없이 간다. 어떤이들은
수줍어하며 헤매고, 아직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여전히 뻣뻣하여, 몸을 비틀며
눈물을 흘리며 탁한 거친 목소리로 엉엉운다, 마치 일종의 벙어리,
바보 아이가 그들 내면에 여전히 살아 있어
친절함에 다시 깨어나, 어떤 목소리가
드디어 그들만 부르고, 들어 올리고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쁨이 와서
그들은 두터운 혀가 부풀고, 그들의 눈이 슬픔을 짜내고,
많은 거창한 들리지 않는 대답들이 붐비며 즐거워한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꽃무니 원피스를 입은 수염난 그들은 덜덜 떤다.
이제 모든게 잘못됐다. 모두의 가슴에
사랑에 따라 산 삶의 느낌이 잠들어 있다.
어떤이에게 그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그들이 만들 수 있는
차이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부분에게는 그 느낌이 휩쓴다
그들이 사랑받았다면 그들이 했을 지 모르는 모든 것들처럼.
아무것도 그걸 치유하지 못한다. 거대한 약해지는 아픔이,
해빙되면서 딱딱한 땅이 눈물 흘릴 때처럼,
느리게 그들 가운데 퍼진다--그것과, 사랑스런 아이야 하고 말하는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시간이 허용해주지 않은 모든 것이 퍼진다.
<작품해설>
The Whtisun Weddings
That Whitsun, I was late getting away:
Not till about
One-twenty on the sunlit Saturday
Did my three-quarters-empty train pull out,
All windows down, all cusions hot, all sense
Of being in a hurry gone. We ran
Behind the backs of houses, crossed a street
Of blinding windscreens, smelt the fish-dock; thence
The river's level drifting breadth began,
Where sky and Lincolnshire and water meet.
All afternoon, through the tall heat that slept
For miles inland,
A slow and stopping curve southwards we kept.
Wide farms went by, short-shadowed cattle, and
Canals with floatings of industrial froth;
A hothouse flashed uniquely: hedges dipped
And rose: and now and then a smell of grass
Displaced the reek of buttoned carriage-cloth
Until the next town, new and nondescript,
Approached with acres of dismantled cars.
At first, I didn't notice what a noise
The weddings made
Each station that we stopped at: sun destroys
The interest of what's happening in the shade,
And down the long cool platforms whoops and skirls
I took for portets larking with the mails,
And went on reading. Once we started, though,
We passed them, grinning and pomaded, girls
In parodies of fashion, heels and veils,
All posed irresolutely, watching us go,
As if out on the end of an event
Waving goodbye
To something that survived it. Struck, I leant
More promptly out next time, more curiously,
And saw it all again in different terms:
The fathers with broad belts under their suits
And seamy foreheads; mothers loud and fat;
An uncle shouting smut; and then the perms,
The nylon gloves and jewellery-substitutes,
The lemons, mauves, and olive-ochres that
Marked off the girls unreally from the rest.
Yes, from cafes
And banquet-halls up yards, and bunting-dressed
Coach-party annexes, the wedding-days
Were coming to an end. All down the line
Fresh couples climbed aboard: the rest stood round;
The last confetti and advice were thrown,
And, as we moved, each face seemed to define
Just what it saw departing: children frowned
At something dull; fathers had never known
Success so huge and wholly farcical;
The women shared
The secret like a happy funeral;
While girls, gripping their handbags tighter, stared
At a religious wounding. Free at last,
And loaded with the sum of all they saw,
We hurried towards London, shuffling gouts of steam.
Now fields were building-plots, and poplars cast
Long shadows over major roads, and for
Some fifty minutes, that in time would seem
Just long enough to settle hats and say
I nearly died,
A dozen marriags got under way.
They watched the landscape, sitting side by side
--An Odeon went past, a cooling tower,
And someone running up to bowl--and none
Thought of the others they would never meet
Or how their lives would all contain this hour.
I thought of London spread out in the sun,
Its postal districts packed like squares of wheat:
There we were aimed. And as we raced across
Bright knots of rail
Past standing Pullmans, walls of blackened moss
Came close, and it was nearly done, this frail
Travelling coincidence; and what it held
Stood ready to be loosed with all the power
That being changed can give. We slowed again,
And as the tightened brakes took hold, there swelled
A sense of falling, like an arrow-shower
Sent out of sight, somewhere becoming rain.
1964
성심강림축일의 결혼식
그 성심강림축일에, 나는 늦게 출발했다.
햇빛 화창한 토요일
한 시 이십분이 될 때까지
사분지 삼은 텅 빈 내 열하는 출발하지 않았다,
모든 창문들은 내려져 있었고, 모든 방석들은 뜨거웠고
서둔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집들의 등 뒤로
달렸고, 눈멀게하는 바람막이 유리들의 거리를 건넜고, 물고기 부두
냄새를 맡았다, 거기서 강의 평평하게 흐르는 넓은 폭이 시작되었다,
거기서 하늘과 링컨셔와 물이 만난다.
오후 내내, 수 마일 내륙 안쪽에서 잠잔 키큰 더위를
통해서,
우리는 느리며 단속적인 남쪽으로의 커브를 유지했다.
넓은 농장이 지나갔고, 그늘이 짧은 소떼들, 산업
폐기물이 부유하는 운하들이 지나갔다,
온실이 독특하게 번쩍였다. 생울타리들이 사라졌다
솟아올랐다. 그리고 가끔 풀내음이
단추로 잠근 객차의자의 천의 악취를 대신했다
새롭고 지명도 분명치 않은 다음 마을이
수천평의 해체된 차들로 다가올 때까지.
처음에, 우리가 멈춘 각 정거장에서
나는 알지 못했다
결혼식들이 어떤 소음을 내는지를. 햇빛이
그늘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흥미를 파괴하고,
길고 시원한 플랫홈 아래서 나는 함성과 환호를
나는 짐꾼들이 우편행낭을 갖고 장난치는 것으로 알고,
계속 독서를 했다. 그래도, 일단 우리가 출발하자,
우리는 그들을 지나쳤다, 미소짓고 포마드를 바른 사람들,
힐을 신고 베일을 쓴 서투르게 모양낸 처녀들,
모두가 주볏거리며 서서 우리가 가는 걸 본다,
마치 어떤 사건의 끝에 나와
살아남은 무언가에
작별인사의 손을 흔드는 듯이. 깜짝놀라, 나는
다음 번에는 좀더 빨리, 좀더 호기심을 갖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보았다.
옷 아래에 넓은 벨트를 매고 기분 나쁜 이마를 하고 있는
아버지들, 목청 크고 뚱뚱한 어머니들,
음담을 말하는 아저씨, 그다음엔 퍼머한 머리들,
나일론 장갑들과 모조 보석들,
노란색, 연보라색, 황토색 옷들이
처녀들을 나머지와 구별지었다.
그래, 카페와
연회장에서 빈 터로, 장식용 천을 드리운
장거리 버스 하객들이 있는 부속건물로, 결혼식 날이
끝나가고 있다. 철도 아래로 죽
새 커플들이 승차했다. 나머지는 둘러 서 있다,
마지막 색종이 조각과 충고가 뿌려지고,
우리가 움직이자, 각각의 얼굴이 규정하는 듯했다
그것이 떠나며 본 것을. 무언가 지겨운 것에
인상을 찡그린 아이들, 아버지들은 결코 알지 못했다
그리도 거창하고 그리도 우스운 성공을,
여인들은
행복한 장례식같은 비밀을 공유했다,
처녀들은 그들의 핸드백을 더 꼭 쥐고,
종교적인 상처를 응시했다. 드디어 자유로와져,
그들이 본 모든것의 총계를 싣고,
우리는 런던으로 서둘러 갔다, 증기 덩어리를 질질 끌며.
이제 들판은 건축 대지였고, 포플라가
주요 도로 위에 긴 그림자를 던졌다. 그리고
모자를 고쳐 쓰고 거의 죽을 뻔했어 라고,
말하기에 충분해 보이는
약 오십 분 동안,
십여건의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그들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앉아서
--오데온 극장이 지나갔다, 냉각탑도,
그리고 공을 향해 달려가는 누군가도--그런데 아무도
그들이 다시는 만나지 못할 다른 사람들이나
그들의 삶이 이 시간을 어떻게 포함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런던이 햇빛 가운데 퍼지는 것을 생각했다,
그 우편구역은 밀밭처럼 가득했다.
거리를 우리는 목표로 했다. 그리고 우리가 정차해 있는 풀맨을 지나
철로의 빛나는 매듭을
가로질러 달렸을 때, 검어진 이끼낀 벽이
가까이 왔다, 그리고 이 연약한 우연한 여행이
거의 끝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유지했던 것은
변했으므로 줄 수 있는 모든 힘으로 풀어질 준비를 하고
서 있었다. 우리는 다시 느리게 갔다,
그리고 꽉 조인 브레이크가 멈추었을 때,
시야에서 쏟아져 나온 화살 소나기처럼,
어딘가에서 비가되어 쏟아진다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작품해설>
이 작품은 시인이 1955년에 기차를 타고 어머니에게 가던 여행을 회상하여 1957년 여름에
일부를 쓰고, 1958년 3월에 완성하여 10월에 발표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1950년대 후반의
영국의 사회상황이 여실히 묘사되어 있다. 제목으로 쓰인 성심강림축일은 부활절 후 일곱
번째 일요일로서 영국의 6대 휴일 중의 하나이고 많은 사람들이 며칠 간의 휴가를 즐기는
때이다. 화자는 이 날 열차를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올린 후 하객들의 인사를 받으며 열차를 타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묘사하고 있다. 처음
두 연에서는 햇빛이 강조되면 화자가 타고 가는 열차의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묘사되
고, 그 다음 세 연에서 열차가 정거장에 멈추었을 때 신혼부부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마을
사람들의 광경이 그려지고 마지막 두 연에서는 그들이 함께 여행하는 의미가 탐구된다. 영
시로는 드물게 10행연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각운 형식에 있어서도 다소 특이하게
ababcdecde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첫 연에 날짜와 시각, 요일 등의 시간과, 화자가 있는 장소가 묘사되어 있다. 날씨는 화창
하여 멀리까지 보이는 날씨이고, 날은 성심강림축일, 시간은 토요일 오후 한 시 반 경이었
다. 이 때 화자는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열차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4
분의 3 정도는 빈 좌석이었다. 열차의 창문은 모두 내려진 상태이고, 방석은 햇빛을 받아서
뜨거웠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후덥지근하고 지루하여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이 때 열차가
아마도 시간에 늦게 한 시 반 정도나 되어서 출반한다. 그러므로 서둔다는 느낌은 전혀 없
다. 열차도 이날 하루 만큼은 푹 쉬며 나른한 기분에 잠기고 싶은 듯한 느낌이 생생하게 전
달된다. 이 열차는 서서히 속도를 더하며 승객들로 하여금 주변 경관을 볼 수 있도록 해준
다. 열차는 집들 뒤로 달려가며 "눈부신 방풍유리"의 거리도 스쳐간다. 여기서 "눈부신 방풍
유리"는 자동차들의 행렬을 말한다. 지금은 한낮이 조금 지난 때로 날씨가 화창하여 자동차
드르이 앞유리에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므로 자동차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
는 눈부신 방풍유리의 거리라고 하는 것이다. 바닷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생선냄새가 실
려올 정도이니 열차가 내륙지방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해안지방을 달려가고 있음이 드러나
고, 거기에서 강의 평평한 넓은 만류가 시작되고 장소는 링컨셔이니 이 강은 험버(Humber)
강임을 알 수 있다. 지금 열차는 링컨셔의 한적한 시골 마을들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멀리 눈을 들어 내다보면 하늘과 바다 그리고 링컨셔의 육지가 만난다. 이는 고즈넉한 시골
의 한가한 풍경이다.
첫 연에서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과 장소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밝혀진 후 제 2연에서는 변
화가 많은 창밖의 풍경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열차는 여기저기에 정차하면서 내륙을 향하여
구불구불 달려간다. 달려가는 열차의차창 밖으로 넓은 농장, 그 농장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
고 있는 소떼, 공장지대에서 흘러나오는 폐수와 섞여 여러 가지 지저분한 부유물들이 떠있
는 운하, 산울타리, 또 이름모를 새로운 마을 등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러한 광경
이 연속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열차가 이러한 장소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때로는 싱그러운
풀내음이 열차 안의 후덥지근한 냄새를 몰아내기도 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마을의 한쪽
끝에는 드넓은 폐차장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화자는 독서를 하면서 나름대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열차에 얼마나 많은 사
람들이 더 탔는지, 열차가 정차했을 때 그 역의 광경은 어떠했는지에 별로 주의하지 않았다.
그는 한 역에서 갑자기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화자가 정신을 차리고 내
다보니 결혼식이 진행된 후 신혼부부들이 열차로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역에 나와 있고,
하객들이 배웅을 하며 떠드는 광경이 보인다. 지금까지 멈추었던 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광
경이 있었겠지만 화자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광경을 의식한다. 오늘이 성심강림축일이고
휴일이 며칠간 계속되니 이날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화
자는 책에 몰두하여 밖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시골 사람들
이 한껏 멋을 내느라고 포마드를 바르고, 유행에 맞게 고친 옷을 입고, 또는 굽이 높은 구두
를 신고 베일을 쓴 채로 우물쭈물하며 신랑신부를 배웅하고 있다.
화자는 이제 그들이 결혼식 하객인 것을 인식하고 좀더 자세히 관찰한다. 다음 역에서 열
차가 정차하고 신혼부부들이 열차에 타기 위해 기다리는 것을 화자는 좀더 자세히 보기 위
해 창 밖으로 목을 쭉 빼고 바라본다. 앞의 역에서 본 신혼부부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광
경을 연출하는 다른 신혼부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양복을 입고 있는 거만해보이는 아버지들,
소리지르고 있는 뚱뚱한 어머니들, 음탕한 이야기를 지껄이며 낄낄대는 가까운 친척들, 여러
가지 장신구로 치장한 동네 처녀들 등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즐거움에 들떠 있는 듯하다.
모두들 한껏 치장했지만 특히 처녀들이 돋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곧 신혼부부들의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리라. 열차가 멈추어 있는 곳의 한 쪽 옆에서는 진행중인 결혼식
연회가 파장에 가까워오고 있었으며, 신혼부부들이 올라타자 열차가 출발하기에 앞서 하객
들은 빙 둘러서서 오색 테이프를 뿌리며 덕담을 한다. 여기서 화자는 "우리가 움직일 때"라
고 말하여 그 자신이 신혼부부와 한 패가 된 듯한 느낌을 표현한다. 아이들은 먹을 것을 실
컷 먹을 수 있어서 기쁘기도 하지만 아무도 자기들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기 때문에 신혼부
부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루해하고 이마를 찌푸린다. 신부의 아버지들은 결혼식이
이처럼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처음 보았고, 이처럼 익살스러운 장난을 곁들인 결혼식도 처
음이라는 듯이 만족스럽게 서 있고, 여인들은 결혼식이 지닌 은밀한 의미를 "행복한 장례식
같은 비밀"이라고 말하여 그 의미를 심오하게 한다. 신부의 결혼이 행복한 결혼인데 뚱딴지
같이 장례식이라니 어휘의 선택이 잘못된 것같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드러난
다. 결혼식은 처녀로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니 처녀시절의 장례식이며, 또한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속담이 있으니 이 말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있는 부인네들은
모두 그와 같은 결혼식을 거친 후이니 그 결혼식의 은밀한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
서 시원섭섭하다는 느낌이 전달된다. 또한 결혼을 경험하지 못한 처녀들은 "종교적 상처"를
바라본다. 마치 큰 결심을 하듯이 핸드백을 꼭 움켜잡고 있는 처녀들의 모습은 실제로 그들
이 핸드백을 잡고 있는 모습의 묘사라기 보다는 그 처녀들의 심리묘사라고 하겠다. 처녀들
이 바라보는 "종교적 상처"라는 것은 결혼식이 흔히 교회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하는 말이
다. 이제 이러한 모든 것을 받아온 총계인 신혼부부를 실은 열차는 런던을 향해 달려간다.
해는 점점 기울어 포플러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열차가 내뿜는 연기는 길게 퍼진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시간인 50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에 손님들이 모자
를 고쳐쓰고, 지루해서 죽을 뻔했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오늘 열차역 주변에서 거
행된 결혼식이 십여 건이나 되었다. 그 신혼부부들은 모두 열차에 나란히 앉아서 창 밖의
경치를 내다본다. 영국의 유명한 극장 체인점 중의 하나인 오데온 극장도 하나 보이고, 냉각
탑도 보이고, 크리켓 놀이를 하며 투수가 공을 던지러 달려가는 한가한 모습도 보인다. 신혼
부부들은 자신의 결혼식이 성공리에 끝난 것에 안도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경치를 내다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 각자의 세계로 들어가 지금 열차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이 우연히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이 시간을 소중히 할 것이지만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고립된 세계에서 존재할 뿐 어떤 공
통된 의미를 갖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런던을 향해 가고 있는 신혼부부들은 런던의 복잡한
도회의 일부가 되어 존재할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우연히 함께 여행하는 신혼부부들의 삶의 의미가 철학적으로 조명된다. 침
대까지 딸린 고급열차인 풀맨특별차 옆을 지나가는 지방열차는 이들이 지닌 삶의 의미를 생
각하게 한다. 비록 신혼부부들이 희망찬 새출발을 하고 있으나 그들의 삶은 지방열차와 마
찬가지로 휴식이 있고 매듭이 있는 평범한 삶이 될 것이다. 시커먼 먼지가 끼어 있는 벽돌
건물인 역구내가 점차 다가오고 있으며 이들의 삶이 황금빛 희망으로만 전개되지는 않으리
라는 것이 암시된다. 이제 열차가 완전히 멈추면 이 열차에 타고 있는 신혼부부들은 나름대
로의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이고 우연히 함께 타고 온 다른 승객들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
이 헤어질 것이다. 그래서 브레이크가 열차의 진행을 제어할 때 낙하의 느낌이 든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희망에 찬 미래와 풍요의 약속으로 작품이 끝난다. "화살 소나기"는 이들 신혼
부부들에게 축복이 쏟아지는 모습을 상징하며, "비"는 풍요의 약속이다. 따라서 마지막 두
행은 시인이 신혼부부들에게 보내는 희망과 풍요를 기원하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
절은 늙어가는 시인이 붙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느낌도 함께 표현한다.
비록 작품의 뒷부분에서 답답한 런던의 모습과, 그에 따라 칙칙한 색깔로 나타나는 역구
내의 모습 등으로 인하여 화자, 즉 시인 자신이 인생을 밝게만 보지는 않고 있음이 암시되
지만 전체적으로 밝고 쾌활한 분위기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신혼부부들의 삶을 밝게 조명하
며 축복해주는 결말이 어색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라아킨의 섬세함과 주도면밀함을 엿볼
수 있다. 성심강림축일에 열차여행을 하면서 십여 쌍의 신혼부부들과 그들의 하객들의 모습
을 보고 그것을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에서 우리
는 라아킨의 사실주의적인 태도를 보게 된다.
Dockery and Son
'Dockery was junior to you,
Wasn't he?' said the Dean. 'His son's here now.'
Death-suited, visitant, I nod. 'And do
You keep in touch with--' Or remember how
Black-gowned, unbreakfasted, and still half-tight
We used to stand before that desk, to give
'Our version' of 'these incidents last night'?
I try the door of where I used to live:
Locked. The lawn spreads dazzlingly wide.
A known bell chimes. I catch my train, ignored.
Canal and clouds and colleges subside
Slowly from view. But Djockery, good Lord,
Anyone up today must have been born
In '43, when I was twenty-one.
If he was younger, did he get this son
At nineteen, twenty? Was he that withdrawn
High-collared public-schoolboy, sharing rooms
With Cartwright who was killed? Well, it just shows
How much. . . How little. . . Yawning, I suppose
I fell asleep, waking at the fumes
And furnace-glares of Sheffield, where I changed,
And ate an awful pie, and walked along
The platform to its end to see the ranged
Joining and parting lines reflect a strong
Unhindered moon. To have no son, no wife,
No house or land still seemed quite natural.
Only a numbness registered the shock
Of finding out how much had gone of life,
How widely from the others. Dockery, now:
Only nineteen, he muve taken stock
Of what he wanted, and been capable
Of. . . No, that's not the difference: rather, how
Convinced he was he should be added to!
Why did he think adding meant increase?
To me it was dilution. Where do these
Innate assumptions come from? Not from what
We think truest, or most want to do:
Those warp tight-shut, like doors. They're more a style
Our lives bring with them: havit for a while,
Suddenly they harden into all we've got
And how we got it; looked back on, they rear
Like sand-clouds, thick and close, embodying
For Dockery a son, for me nothing,
Nothing with all a son's harsh patronage.
Life is first boredom, then fear.
Whether or not we use it, it goes,
And leaves what something hidden from us chose,
And age, and then the only end of age.
1964
도커리와 아들
'도커리가 너보다 후배였지,
그렇지' 학장이 말했다. '그 아들이 지금 여기 다녀.'
검은 옷을 입은 방문객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도 연락하나--' 아니
검은 가운을 입고, 아침도 못먹고, 약간 긴장한 채
그 책상 앞에 서서 '전날밤의 사건'에 대해
우리가 '변명'하곤 했던 걸 기억하나?
나는 내가 살았던 곳의 문을 열려고 한다.
잠겨있다. 잔디가 눈부시도록 넓게 펼쳐져 있다.
알고 있는 벨 소리가 울린다. 나는 내 열차를 탄다, 무시당한 채.
운하와 구름과 대학이 천천히
시계에서 가라앉는다. 그러나 이런, 도커리라니,
지금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스물 한 살 때인,
43년에 태어났음에 틀림없으리라.
혹시 그가 더 어렸다면, 그는 열아홉,
스물에 이 아들을 낳았나? 그가
자퇴한 하이카라 공립학교 학생으로, 살해된
카트라이트와 방을 함께 썼던 그 친구이던가? 그래, 그건 단지
얼마나 많이. . . 얼마나 조금. . .만을 보여준다, 아함, 내가
잠들었던 모양이다, 세필드의 연기와
용광로 불빛에 깨어난다, 거기서 나는 바꿔탔다,
그리고 지독한 파이를 먹고, 플랫폼을 따라서
그 끝까지 걸어가 열을 지은
합쳐지는 선로와 벌어지는 선로가 강한
방해받지 않은 달을 반사하는 것을 보았다. 아들도, 부인도,
집도 땅도 없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단지 마비가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사라졌나,
나머지 것들과 얼마나 먼가를 발견하는 충격을
기록했다. 이제, 도커리라.
겨우 열아홉, 그는 그가 원했던 것들을
검토하고, 할 수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 .
아니, 그것이 차이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가 보태져야 하는 것을 얼마나 확신했던가!
왜 그는 보태기가 증가를 뜻한다고 생각했는가?
나에게 그건 희석이었는데. 어디서 이 타고난
가정이 오는가?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거나
가장 하고자 원하는 것에서는 아니다.
그 편견은 문처럼 굳게 닫혀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이 가져오는 스타일이다. 한동안 습관이 되었다가,
갑자기 그것들은 굳어져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가 그것을 얻은 방법 속으로 들어온다. 회고해보건대, 그들은
모래 먼지처럼 두텁고 농밀하게 일어나, 도커리에겐
아들을, 나에겐 무를 형성해주었다,
아들의 거친 보호에도 불구하고 무를.
삶은 처음엔 권태이지만 그 후엔 두려움이다.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든 말든 간에 그건 가고,
우리에게 숨겨진 무엇이 고른 것과,
노령과, 그 다음엔 노령의 유일한 종말을 남긴다.
<작품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