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몽양 여운형 암살과 그 배후] 테러의 위협. 그러나 통일,독립을 향한 열정은 뜨거워 (1)

[Wehrmacht]

이 주제에 대해 좀 길게 기술하겠습니다. 제가 기술하는데 참고한 서적은 서중석 교수가 저술한 '한국현대민족운동 연구'(역사비평사)(http://www.yes24.com/24/goods/182189?scode=032&OzSrank=11)와 정병준 교수가 저술한 '몽양 여운형 평전'(한울)(http://www.yes24.com/24/goods/126622?scode=032&OzSrank=20)을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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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번 최다 테러의 희생자, 여운형.

몽양 여운형. 여러가지 이름이 그 뒤를 따라다녔다. 그 중 가장 밀접한 그림자로 그를 에워쌌던 것은 빗발치던 테러의 위협이었다. 해방이후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테러를 당한 인물을 꼽으라면, 몽양 여운형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해방되고 만 2년도 안되는 사이에 무려 10여 차례의 온갖 테러를 당했고, 마침내는 그 테러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식민지시대부터 이미 몽양은 테러의 집중적 표적이 되었다. 중국시절 파벌싸움과 헤게모니 장악에 눈이 먼 허세주의자들과 행세주의자들, 가짜 독립투사들이 그에게 테러를 가했다. 일본제국주의가 바로 코앞에 있었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중국시절 두세 차례의 테러를 당해본 몽양이지만, 정작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조선 땅에선 한 차례도 테러를 당해본 경험이 없었다. 중국에서건 해방된 조국에서건 그에게 몽둥이와 밧줄, 칼과 권총을 들이댄 것은 같은 핏줄을 타고 태어난 동족이었다. 일본제국주의자들 조차 그를 감옥에 가둘 순 있었지만, 그의 몸엔 털끝 하나 손을 대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시련의 시기, 몽양의 몸은 자유로웠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해방된 조국, 해방된 국가를 건설할 꿈과 열망으로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그를 탄압하고 회유했지만, 그는 해방의 신념으로 불타올랐다. 일제가 주는 압박과 고통, 설움과 분노는 해방의 날을 예비하는 자가 들이켜야할 '수난의 잔'이었다. 그러나 몽양은 스스로 자신의 몫 이상을 들이켰다. 해방을 맞이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정도의 인내는 달콤한 것이었다. 그의 세포와 근육과 관절 하나하나엔, 적개심의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가 힘을 집중시키고 응시한 곳은 오직 하나 일본 제국주의 타도의 높은 푯대였다.

해방되고 며칠 만에 몽양은 바로 그가 살던 집 앞에서 자신의 최후를 예고하듯 해방후 최초의 테러를 당했다. 몽양은 그가 처한 정치적 위치와 역할에 정비례해 온갖 테러의 시달림을 받아야만 했다. 그 이후로 줄곳 그의 주위에는 '소영웅주의'와 공명심으로 가득찬 여러 종류의 테러리스트들이 어슬렁거렸다. 불안정한 시대는 수직적 신분상승을 노리는 나어리고 혈기방장한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정치모리배들은 이들의 치기어리고 어처구니 없는 무모함에 '애국심'의 덧칠을 해주었고, 이들을 민족반역의 벼랑으로 내몰았다. 음험한 배후세력은 노골적 부추김과 뒷배봐주기, 쓰레기 같은 금전 몇푼으로 이들을 유혹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은 이들로 하여금 '한번에 피었다 단 한번에 지고마는 '사쿠라'처럼 덴노를 위해 목숨을 던진다는 '가미카제 조선판'을 꿈꾸게 만들었다. 오도된 '애국정신'으로 무장된 이들은 '제2의 윤봉길,이봉창'을 꿈꾸었지만, 그들은 파렴치한 음모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애써 부인하려 했지만, 그들의 최후는 비열한 테러극의 하수인이 맞이하는 말로 이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해방정국이란 사상 초유의 무대에서 주연을 꿈꾸었지만, 실상은 형편없는 3류 신파극 배우에도 미치질 못했다.

문제는 여운형측에도 없지 않았다. 범상한 사람이라면 2개월에 한번 정도씩 10여 차례나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테러를 당하면서도 태연할 수 없는법이다. 여간 심지 굳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대부분 자신의 뜻을 포기하거나 움추려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운형은 너무 자신만만해 했다. "설마 너희들이 나를 죽일 수야 있겠느냐, 적당히 어르고 달래서 겁을 주자는 것이겠지." 자신이 떳떳하면 두려울게 없다는 식의 행동은 온갖 떳떳치 못함으로 가득한 '정치모리배'들에게 두려움과 위협감을 주기 충분했다.

게다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그의 당당함에 덧붙여저 태연자약함을 만들어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지팡이 한쪽을 쥐면 반대편에서 잡아당기는 청년 두 명이 꼼짝 못했다는 그의 체력은 모진 테러로부터 그의 육체를 지켜내주었다.

그러나 테러가 남겨놓은 육체적 상처는 치유될 수 있지만 정치적 시련과 정신적 배신감의 극복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위상과 비중이 점차 시들해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해방직후 수 십명의 청년들이 몽양의 주위를 에워샇지만 정작 그가 암살될 당시 그의 곁에는 운전사 한명과 신문기자 한 명, 어린 여학생 한 명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몽양은 어차피 자신이 '길바닥 위에서 생애를 마감할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가족의 그것이 걱정되었지만, 숨가쁘게 돌아가는 정국속에서 그나마 현실적 방책이 있을 수 없었다. 친일파,민족반역자로 가득찬 경찰은 더이상 몽양과 그의 가족, 그의 집을 보호하지 않았고,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몽양의 정치적 최후와 함께 더이상 서울 계동 집에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으로 향하는 길 뿐이었으리라.

여하튼 몽양은 테러에 쓰러지고 말았다. 강인하던 그의 육체도 미제 45구경 리볼버 탄환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이광수의 말처럼 '고목(故木)에 꽃이 피고 한천(旱天)에 비가 오게 하며 청년과 대중을 일으킬' 정도로 탁월했던 그가 눈을 감았고 그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그가 추구했던 정치노선도 땅에 묻혀 극단적 반공주의가 득세한 남한지역에서는 '금기'의 영역으로 여겨져 '배신자'내지는 '매국노'정도로 매장당했다.

그러나 그가 당한 테러에는 그가 지나온 해방직후의 지나한 삶이 농축되어 있다. 그가 지난 역사의 골목골목마다 그를 꺾으려던 불순한 가해의 검은손이 등장했지만, 그곳에도 여지없이 그의 역사적 흔적은 남아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에게 가해진 테러는 그가 겪어온 해방직후의 역정을 반증한다. 여운형에게 가해진 테러의 자취를 따라가면 그의 정치활동의 역정이 대부분 추적된다고 할 수 있다.

눈을 잠시 돌리면 테러가 해방정국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비열한 정치활동의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된다. 테러,암살은 우리 민족을 분단과 분열로 몰아간 원흉의 하나였음이 분명했다. 해방직후 정치지도자에 대한 테러와 암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한 정치지도자의 암살은 그가 관철하려 했떤 정치노선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암살로 정치적 이득을 본 배후집단이 있게 마련이듯이 정치지도자의 살해로 가장 큰 손해를 본 집단도 있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 집단은 대다수 이 땅의 민초들이었을 것이다. 암살된 자는 말이 없기 마련이고,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버리기 일쑤였다.

정치지도자들의 암살은 민족운명의 향배를 좌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모스크바 결정 직후 고하 송진우의 암살(1945년 12월)이 그러하고 몽양의 암살(1947년 7월)과 설산 장덕수의 암살(1947년 12월)이 그러했다. 물론 백범 김구의 암살(1949년 6월)에 이르면 더이상의 말이 필요없게 된다. 이들 네 명의 정치지도자들은 민족의 운명이 갈림길에 서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중대한 결단의 순간이던 시점에서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모스크바 3상 회의를 둘러싼 대립이 벌어지기 직전 '합리적인 우익'이었던 송진우가 살해되었고, 제2차 미소공위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몽양이 살해되었다. 미소공위 참가 지지를 주장했다 단정노선으로 선회한 장덕수 역시 암살되었고, 민족분단을 등진 김구는 민족통일의 깃발을 지키려한 댓가로 자신의 삶을 바쳐야 했다. 만약 이들이 암살의 위협을 피할 수 있었다면, 민족의 운명 역시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을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와 그에 대한 미련으로 운동사를 쓸 수는 없다. '운동노선을 결정하는 것은 그 시대의 민중들의 열망과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운동노선은 인간관계의 얽히고 설킨 유대와 연대의 그물망 끝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은 그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가 된다. 정치지도자 한사람의 살해는 그물 한코한코만의 손실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그물을 손상하기 마련이다.

척박한 식민의 토양을 생각하면 한 사람의 민족지도자가 탄생되기 위해 투자된 수 많은 시간과 피땀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이에 정비례해서 암살이 가져온 무참함과 민족적 손실이 얼마나 막대한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국토분단과 민족분열로 가는 길목을 막았던 까닭에 살해되었고, 그 여파는 모든 사람들을 고통 속에 빠뜨리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밧줄,곤봉,권총에 수류탄,사제폭탄까지 동원된 테러

우선, 여운형이 1945년 8월부터 1947년 7월 19일 암살까지 당한 테러 중 알려진 것들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945년 8월 18일 오전 1시경 : 서울 계동 자택 앞에서 괴한들에게 곤봉으로 피습당함.

2. 1945년 9월 7일 저녁 : 서울 원서동에서 계동으로 넘어오다가 괴한들에게 밧줄로 묵임. 행인이 구제.

3. 1945년 12월 상순 : 배천온천 여관에서 피습, 사전에 여관을 옮겨 무사.

4. 1946년 1월 : 창신동 친구집을 괴한 5명이 습격. 출타중으로 위기 모면.

5. 1946년 4월 18일 오전 9시 : 관수교에서 괴한들이 포위. 행인이 구출.

6. 1946년 5월 8일 : 서울운동장(現동대문 운동장)에서 수류탄 테러 사전 발각.

7. 1946년 5월 하순 10시경 : 종로에서 괴한들에 포위 격투 끝에 행인이 구출.

8. 1946년 7월 17일 : 서울 신당동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산으로 끌려감. 산에서 교살 직전 벼랑에서 낙하 도피.

9. 1946년 19월 7일 저녁 : 자택 문전에서 납치.

10. 1947년 3월 17일 밤: 서울 계동 자택 침실 폭파. 출타로 구명.

11. 1947년 5월 12일 하오 7시 30분: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권총으로 승용차 피습

12. 1947년 7월 19일 오후 1시: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저격, 피살.

대부분의 테러가 그러하듯이 몽양에 대한 테러의 진범 내지 배후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때문에 그의 테러배후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승만의 하수인, 하나는 김구의 하수인, 하나는 박헌영의 하수인, 하나는 김일성의 하수인이다. 그래서 그의 암살배후는 때로는 '이승만이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김구가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박헌영,김일성이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당시 몽양이 처한 정치적 위치와 역할, 암살 시점 배경을 고려해보고 여러가지 따져보면, 그에게 테러를 가한 범인들의 배후는 친일파 세력과 단정지지 세력들,극우파들이 합심해 일으킨것으로 밝혀지게 된다. 

몽양이 당한 초창기의 테러는 아마도 친일파들의 소행으로 보인다.

몽양이 첫번째 테러를 당한 것은 1945년 8월 18일 밤 1시경, 서울 계동 자택 앞이었다. 해방되고 3일 만에 테러를 당한 셈이다. 당시 몽양은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웃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잠복해 있던 테러범 4명에게 곤봉으로 머리를 난타당했다. 몽양은 심한 타박상을 입었고 그후부터 두통을 얻게 되었다. 이미 1925년 12월 3일상하이에서 박희곤,박영호,김필열 등 7인의 테러단에게 쇠몽둥이와 벽돌로 머리를 얻어맞아 기절한 적이 있었던 몽양은 매우 중요한 해방직후의 며칠을 상처의 안정과 치료에 투자해야만 했다. (각주-여기서 박희곤,박영호,김필열 등 7인의 테러단은 임정계통에서 활동하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몽양이 '아주민족협회'에 참석함으로써 친일행위를 했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대면서 구타를 가했다. 그러나, 이들이 진짜로 구타를 가한 진짜 이유는 레닌이 준 활동자금과 관련된 것이었다. 아주민족협회는 일본,중국,인도,필리핀,조선,대만인이 회원으로 가입해 '아세아민족의 단결'을 표방했지만 반제국주의적 색채를 띤 회원이 많은 단체였다.)

두번째 테러를 당한 것은 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다음날인 1945년 9월 7일 저녁이었다. 몽양은 원서동에서 계동으로 넘어오다가 학생모자 쓴 청년 1인이낀 5인조 테러단의 습격을 받았다. 괴한들은 몽양을 밧줄로 결박하려 했으나 몽양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이들은 몽양을 몽둥이로 난타하다가 행인에게 발견되자 준비했던 자동차를 타고 달아났다. 두번째 테러는 매우 미묘한 시점에서 발생했다. 9월 7일은 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가 조직된 날이자 인공에 반대하는 '국민대회소집준비회'(뒷날 한민당으로 발전)가 결성된 날이기도 했다. 일제말 희귀품이자 군수통제물자였떤 자동차를 동원한 것으로 미루어 이들은 일제에 밀착되었거나 아니면 상당한 재정적,조직적 뒷배경을 갖고 있음이 분명했다. 때문에 이 테러의 배후가 누구인가 하는 점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테러로 몽양은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따. 한편 몽양은 이 급박하게 전개되는 정국을 뒤로 한 채 요양차 가평에서 20여 일을 치료에 소비했는데, 이는 몽양의 정치적 위상에 적지 않은 장애를 초래했다. 몽양이 서울을 비운 사이, 인민공화국의 주도권이 박헌영측에게 넘어갔을 뿐 아니라 인적,조직적 지지기반의 상당부분이 박헌영측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세번째 테러는 1945년 12월 상순 황해도 배천온천 여관에서였다. 자동차로 추격해오 ㄴ테러단은 다른 여관을 몽양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알고 습격했기에 몽양은 무사할 수 있었다. 네번째 테러는 1946년 1월 몽양이 머물고 있던 창신동 친구집을 괴한 5명이 습격한 것이었다. 다행히 몽양은 출타중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다섯번째 테러는 1946년 4월 18일 오전 9시 관수교에서 괴한들에게 포위되었지만 행인의 도움으로 구출받은 일엉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테러는 그래도 신사적인 것이었다. 총칼을 들어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암살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신체적 위협'을 가해 몽양이 가고자 하는 정치적 진로를 방해하려는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제1차 미소공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몽양에 대한 테러는 생명을 위합하는 수준의 것으로 발전되었다. 나아가 몽양에 대한 정치적 위협이 아니라 암살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테러가 연이어 발생하였다. 이제부터 몽양에 대한 테러는 거의 반공개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왜냐하면 배후 조종자들은 자신들이 테러 하수인의 배후에 있음ㅇ르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친일파 이종형이 관련된 수류탄 테러

몽양이 당한 여섯번째 테러는 1946년 5월 8일의 수류탄 테러였다. 이날 서울운동장에서는 민주주의민족전선이 주최하는 '전승기념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전승기념대회는 2차대전에서 연합국이 독일군에 승리한 것을 경축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 행사에는 여운형을 비롯해 박헌영,김원봉,허헌 등 민전의 주요 간부를 비롯해 수 천명의 인파가 참석했다. 대회가 진행되는 와중에서 한 청년이 일제 수류탄을 내빈석을 향해 던지려다 경비원들에게 체포되었다. 그 자는 또 다른 수류탄 하나를 휴대하고 있었는데, 테러의 표적은 여운형이었다.

취조결과 이 테러리스트의 이름은 박임호, 나이는 23세로 판명되었다. 신문보도로는 함남 북청 출신이며, '대동신문' 사장 이종형의 경호원으로 알려졌다. 물론 소속정당은 없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을 수 없는 보도였다. 해방직후의 테러리스트치고 이북이 고향이 아닌 사람이 없었는데, 일단 이북을 고향이라고 주장하면 나이와 고향, 공범관계를 추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범행에 사용된 수류탄은 일제 2개며, 박임호는 1945년 12월 중순부터 이종형의 경호원으로 일했다고 자백했다. 이 자에 대한 재판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범행후 한달여 만인 1946년 6월 21일에 박임호에 대한 군정재판이 열려 징역 2년형을 연도했다. 여기서 박임호는 '이종형을 면회하기 전 까지는 밥을 안먹겠다'며 단식하겠다고 버텼다.

여기서 처음으로 이종형의 이름이 등장한다. 박임호와 이종형,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가? 박임호는 왜 여운형을 암살하려 했으며, 만약 이종형이 관련되어 있다면 이종형은 여운형과 어떤 관계이기에 암살을 배후조종한 것일까?

여운형-이종형 관계는 해방직전인 1944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종형이란 인물은 대표적인 악질 친일분자였다. 친일파 이종형이 알려지게 된 것은 뒷날 1949년 반민특위 구속 때문이었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를 졸업한 후 3.1 운동에 가담해 징역 19년을 선고받았다고 이종형 자신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는 일제에 적극협력하겠다는 호소문을 써서 9년만에 출감했다고 한다. 1930년 여름 만주로 건너가 장쭤린과 결탁해 '토공군사령부'를 조직했다. 한인 공산당원을 토벌한다는 구실로 동만주,연길 일대에서 한인 애국자 250여명을 체포하여 그 중 17명을 교살 또는 투옥시키고 때려잡았던 악질 밀정이었다. 또한 1931년에는 만보산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조선일보 기자 김이삼을 살해하였고, 다시 국내로 들어와선 경무국 보완과장, 경무구국 경무과장, 조선군 참모장, 헌병사령부 특고과장 등 고위관료들 밑에서 정보원으로 일했다.

조작과 공작행위에 재주가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진 이종형은 적극적으로 악질 밀정행위를 일삼았는데, 그런 그가 일제말기가 되면서는 또다시 두길보기를 시작했다. 일제패망이 목전에 도래하자 그는 일제와 독립운동자에게 모두 양다리를 걸치고 싶어했고, 실제로 몇몇 독립운동자들과는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연으로 이종형은 해방후에도 '자칭 독립운동자'로 행세했고, 극우테러-극우정당-극우신문의 실력자로 '극우반공'을 내세움으로써 정계에 입문했다.

해방후 극우 '대동신문'(후에 대한일보-대동신문으로 제호가 바뀜)을 창간한 이종형은 여운형의 암살 음모사건을 찬양, 미군정으로부터 정간처분 받기도 했다. 이종형은 극우 테러리스트인 백민태,박임호,신동운,김시제 등을 조종해 무기를 건네주는 등 테러를 조종했다. 1948년 정부수립 후 반민법이 통과되자 '반민법은 망국법'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하고 다녔고, 극우 단체를 모아 서울운동장에서 '반공대회'를 열어 반민특위를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서도 자신을 '빨갱이를 때려잡은 애국자'로 자처하며 추태를 부렸다. 그의 부인인 이취성 역시 일제의 끄나풀이었다. 반민특위에서 풀려난 후 이승만 정권하에서 승승장구하던 이종형은 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1954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런 경력의 이종형이 여운형과 관계를 맺은 것은 바로 1944년 일제 패망직전의 두길보기의 와중이었다. 여운형의 측근이었던 이임수의 아들 이란(李欄, 1990년 독립유공자 받음.)은 이렇게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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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인천소년형무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됐습니다.(이란은 당시 춘천고보에 다녔는데, 여운형의 영향으로 동창생과 독서회를 조직해 활동하다 발각되었다. 그로 인해 동창생 11명과 함께 1941년부터 3년간 복역한 바 있었다.) 저희 집에 중키에 대머리인 이종형을 비롯해 의열단에 관계했던 김시현,유석현 등이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정을 알고보니까 이종형이가 몽양선생을 찾아가 독립운동을 하자고 하도 떼를 썻다는 겁니다. 몽양 선생으로선 입장이 아주 난처했지요. 누가봐도 일제의 밀정노릇을 하는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자고 덤비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내쫓으면 흉악스런 놈이 경찰이나 헌병을 끼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당신이 하는 건국동맹이나 독립운동에 끼워줄 수는 없고, 그래서 우리 아버지를 시켜서 마치 별도의 독립운동 그룹을 조직한 것처럼 이들을 상대하게 했던 겁니다. 몽양 선생이 직접 상대하기는 껄끄러우니까 아버지를 중간에 내세웠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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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아버지 이임수는 경성의전을 졸업한 내과의사로 춘천에서 '관동의원'이란 병원을 개업하고 있었다. 3.1 운동에 참가한 후 북만주에 망명했었던 이임수는 그곳에서 몽양을 첫대면하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국내에 들어와 1928년 '동아일보' 춘천지국 고문을 지내는 등 애국활동을 하다 몽양을 다시만나게 되었다. 이란(李欄)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임수는 여운형을 '열렬히 사랑했다'고 한다. 이종형이 김시현,유석현(의열단원 출신)등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란의 증언은 의열단원이었던 유석현의 회고와도 일치한다. 생전에 유석현은 이런 내용의 증언을 남긴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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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은 나와 같은 의열단원이었고 해방 후 이승만의 암살을 기도했던 김시현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다. 해방을 앞두고 김시현은 일본의 북원,박시목,권태석 등과 함께 옌안의 독립동맹 등 각지의 무장독립세력을 연결해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했다. 해방이 됐을 때 자주적인 발언권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도중에 일이 발각됐고 이들은 베이징에서 모두 체포되었다. 수십 명의 관련자가 죽고 구속되었는데, 김시현도 베이징에서 체포되었으나 이종형이 그를 국내로 데려와 용산헌병대에 수감했다. 베이징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다 죽었지만 국ㄴ에서 검거된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도 그 사건에 관련되었으나 고양군의 보광사에 피신해 화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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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관관계란 이념이나 사상과는 상관없이 얽히고 설킬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 속에는 선과 악, 옳고 그름만으로는 판별하거나 내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이종형은 인간들의 이같은 약간 부분을 파고드는데 적지않은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인간관계로 묶어진 다음엔 이쩔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던 이종형은 여운형도 이같은 관계로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종형이 여운형에게 다가간 것은 두가지 목적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여운형과 안재홍을 끌어들여 '친일 관제단체'에 가입시키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일제 패망시를 대비해 여운형이 이끄는 항일세력에 가담함으로써 양다리를 걸친다는 속셈이었다. 뒤따르는 이란의 증언은 더욱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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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버지께선 이종형,김시현,유석현 등과 함께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집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도 하곤 하셨지요. 저야 뭐 술이나 받아오라면 심부름이나 해서 정확환 속사정은 모르지만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독립운동한다고 어깨가 우쭐하고 신이나서 몰려다녔지요. 대부분 어릴 때 한학을 배운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술이라도 한 순배 돌면, 돌아가서 한시를 한수씩 짓고, 글씨를 쓰곤 했습니다. 방안 가득히 이들이 쓴 글씨가 걸려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됐습니다. 건준이 뜨고 몽양선생이 정계의 핵심인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해방된 날인가 해서 이종형이가 몽양선생을 찾아왔습니다. 같이 독립운동 했으니까 한자리 달라는 것이었지요. 물론 몽양 선생은 만나주지도 않았지요. 그동안이야 불가근불가원(가깝게 지내지도 말고 멀게 지내지도 않는) 정책을 썻지만, 이제야 그럴 수 없다는 게지요. 네가 악질친일파인 것을 온 세상이 다 아는데 네 마음대로 될 줄 알았느냐 하는 얘기였습니다. 그제서야 이종형은 자기가 속은 것을 알고 온통 난리법석을 부렸지요. 몽양선생을 가만두지 않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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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으로 몽양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이종형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이종형은 자신이 만든 민중당과 대동신문을 동원해 몽양에 대한 온갖 인신공격을 가했다. 특히 1945년 '모스크바 3상 회의' 전후로 '신탁통치'문제가 붉어지자, 이종형은 '반공투사+애국투사'를 강조하고 여운형과 박헌영,안재홍을 '매국노,반역자'로 몰아붙혔다.

특히 몽양이 '친일파'로 전향해서 학병권유 연설을 하는 한편 전쟁에 협력했다는 소문을 가장 강력하게 제기하고 유포시킨 것이 바로 이종형의 대동신문이었다.(각주-오늘날, 수구세력들이 '여운형은 명백한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근거들 대부분이 바로 이 이종형의 대동신문을 근거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다면 http://www.banmin.or.kr/kimson/home/minjok/bbs.php?id=news&groupid=&where=subject|content&keyword=&ikeyword=&sort=gid&orderby=asc&newwin=&category=&how=&p=1&s=&recnum=&q=view&uid=2179 여기를 참조해주세요.)

 1946년 2월 10일자, 대동신문. 이무렵 여운형은 평양에 있을 때였는데, 이 시기 이종형의 대동신문은 여운형이 일제말 학병권장 회견을 했다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즉, 1943년 11월 '경성일보' 기자가 날조해낸 학병권유기사를 이용한 것이다. 

1946년 2월 17일자 대동신문. 이종형은 '전향서'를 자작해서 여기에 '친일 한시'를 짓고, 그것이 여운형의 것이라고 소개까지 했다. 그 시 내용에 이르길, '砲煙彈雨又經筆/ 爲國請纓捨一身 / 千億結成共榮日 / 太平洋水洗戰塵 '

게다가 이종형은 일제시대의 연줄을 통해 이러저러한 깡패조직들과도 선이 닿아 있었는데 해방후에도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면서 배후조종을 했다. 물론 해방 후 이런 깡패조직들은 청년단체라는 '합법적 위장간판'을 달고 있었다. 여기에 일본군 출신 또는 만주군 출신 및 해외에서 흘러들어온 직업 테러리스트들이 가세했다. 앞어 거명된 백민태, 박임호, 신동운, 김시제 등이 이같은 유형의 인물들이었다.

반민특위 요원 암살음모사건으로 유명한 백민태는 1947년 3월, 몽양의 계동저택 폭탄테러를 저질렀다고 자처한 인물이다. 박임호는 여섯번째 수류탄 테러를 담당햇으며, 신동운은 여운형의 암살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들은 북창동에 있는 대동신문사로 이종형을 자주 찾아가 '시국담'을 나누곤 했다.

기록에 따르면 1946년 5월 8일 서울운동장에서의 폭탄테러는 이종형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다. 몽양이 암살도니 직후인 1947년 7월 21일, 버취는 브라운 장군에게 비망록을 보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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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취가 브라운에게 보낸 비망록

미측대표/미소공동위원회/서울,한국/1947. 7. 21

브라운장군을 위한 비망록

제목:경찰과 여운형

이 비망록은 기억에 의해 작성된 것이며, 인용된 일자에서 약간의 가벼운 착오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하의 사건들은 간으한 한 현재의 문제와 관련해 기술한 것이다.

1. "더티 코트" 리(dirty coat Lee) 사건

지난 여름 여운형이 남산에서 연설하는 도중, 이종형(dirty coat Lee)이 사주인 '대동신문'의 논설위원이 그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이종형의 신문은 논설을 통해 여운형의 암살을 주장하였다. 암살 시도 뒤에도 이 신문은 암살미수자를 훌륭한 애국자라고 찬양하였다. 이종형은 체포되었다. 이박사는 그를 위해, 내가 확신하기에 300,000원 정도의 보석금을 보냈다. 이박사는 그후 언제나 이종형과 밀접한 정치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했으며, 공공연하게 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지난주에 이박사는 이종형을 신국가 건설을 위해 자신이 만든 4개 위원회 중 한 부서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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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취의 기록은 시간적 선후관계에서 약간의 착오를 범하고 있지만, 사실에 관한 부분은 대체적으로 정확하다. 버취는 박임호가 '대동신문'의 논설위원(editor)이라고 적었지만, 실상은 이종형의 사설 경호원이었고, 대동신문이 정간되고 이종형이 구속된 것은 1946년 3월의 테러 때문이 아니라 1946년 7월의 테러 때문이었다. 이종형의 '대동신문'은 여운형에 대한 테러가 애국행위라고 찬양했고, 그 결과 미군정으로부터 정간처분을 당했다.

버취의 기록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이승만이 이종형의 보석을 위해 3십만원을 제공했다는 부분이다. 과연 3십만원이 보석금으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신문사의 운영자금으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미군정내 한국통이었던 버취의 기록을 신뢰할 수 있다면, 이는 여운형에 대한 테러 중 적어도 몇몇은 전문테러리스트-이종형-이승만 커넥션의 연장선상에 놓였을 가능성이 농후함을 의미한다. 물론 이승만이 천박하게 직접 손에 피를 묻힐 위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여하튼 이승만이 여운형 테러에 직접 관련된 이종형을 찬양하고 그에게 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이종형-이승만은 여운형 테러와 관련해 또다시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버취집 앞에서 권총 든 괴한에게 납치

원예학교 뒷산에 당도하자 범인들은 돌연 몽양의 허리를 껴안고 몽양의 가죽혁대를 풀었다. 범인들은 가죽혁대로 몽양의 다리를 결박하며 노끈으로 몽양의 목을 졸라매기 시작했다. 태연자약한 태도였다. 위급해진 몽양은 이들이 말로선 설득되지 않을 부류임을 개닫고 전력을 다해 온몸을 뒤흔들며 반행했다. 그러나 양쪽 다리는 결박되었고, 게다가 눈까지 가리운 상태였다. 아무리 고함을 질러봐야 소용이 없었다. 권총까지 휴대한 세 명의 악한을 뿌리치고 살아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행히도 얼마간 실갱이 끝에 눈을 가린 천이 조금 흘러내려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본 몽양은 멀지 않은 곳에 전등불이 희미하게 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몽양에겐 힘과 용기를 주는 구원의 등불과도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저 등불 근처까지만 가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몽양의 눈앞엔 절벽에 가까운 신비탈이 나타났다. 최후의 힘을 다해 자신의 부둥켜 안고 있는 세 범인을 뿌리친 몽양은 산비탈로 몸을 날렸다. 발이 묶인 몽양으로선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몽양은 백여 척의 급경사를 '도둑놈 잡아라'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굴러떨어졌다. 정신없이 굴러떨어져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부근에 살고 있는 이균 가족과 인민당원인 김민호가 뛰어나왔다. 

살았다는 생각이 든 몽양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균과 김민호는 혼절한 몽양을 집으로 업고가 응급치료를 했다. 다행히도 몽양은 허리를 약간 삐끗하고 팔다리 목 등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 별 부상을 당하진 않았다. 청년시절부터 인왕산 '택견'을 익혀온 몽양은 그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굴러떨어지면서도 오랜 수련해온 결과 몸에 밴 택견 기본품의 하나인 활개짓으로 비탈길 경사면을 짚었고, 그만큼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천우신조였다. 산중에서 권총든 세 명의 범인을 따돌린 것도 그러했고, 백여 척 벼랑을 낙하하듯 굴러내리면서 별반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도 그랬다. 사람들이 자신의 고함소리를 듣고 구하러 뛰어나온 것도 큰 행운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몽양은 이제부터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문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몽양은 가슴이 철렁해지는 얘기를 들었다. 7월 20일 아침 6시경 계동의 자택에 협박장이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온 청년 하나가 협박장을 던지고 갔는데 그 내용인즉슨 "만약 또 출두하면 다시 용서치 못하겠다. 더욱 앞으로는 너의 가족까지도 해치겠다."는 것이었다. 몽양으로선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이미 목숨을 내어놓은 지 오래고,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할 각오를 갖고 있었지만 아무 죄없는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었다. 아무리 좌우합작을 파탄시키려고 해도 그렇지 이런 비열한 수법을 동원할 수야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민족의 운명은 풍전등화인데도 벌어지는 일들은 한숨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몽양이 살해 직전까지 몰릴 정도로 테러를 당하자 민전측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번히 한두번도 아니고, 몽양만이 집중적으로 테러를 당하는데 미군정이나 경찰은 수수방관할 뿐만 아니라 우익의 테러를 묵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전은 7월 18일 긴급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19일에는 의장단이 존 하지 중장과 아서 러치 소장을 항의방문했다. 이자리에서 민전의장단은 조병옥 경무부장, 최능진 수사과장, 장택상 경찰부장 세 명이 이 사건을 책임지고 사표를 내야한다고 요구했다. 경찰간부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들은 이승만이 이끄는 독립촉성국민회를 테러단체로 지목해 해산을 요청했다. 이미 독촉과 그 산하 청년단체로 자임하는 테러조직이 전국적으로 광범한 테러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상황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독촉은 자신들이 '좌익'으로 몰아붙인 정당,사회단체,언론사뿐만 아니라 개개인에 대해서도 무자비한 폭력테러를 행사하고 있었다. 군정당국이 묵인하고 경찰이 적극 협조하는 가운데, 온갖 흉기로 무장한 깡패, 테러집단이 남한 전역에서 활개치고 잇었던 것이다.

당황한 경무부장 조병옥과 제1관구(경기도) 경찰청장 장택상은 관할 성동경찰서에서 범인을 엄중히 탐문수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몽양은 12차례 이상의 테러를 당했지만, 한번도 경찰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없었따. 경찰은 몽양을 보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 한 차례도 테러범을 검거한 적이 없었다. 단 한 차례 자수한 자칭 테러범도 몽양의 정치적 위상을 실추시키고 그를 모욕하기 위해 경찰이 과장한 범인에 불과했다. 뒷날 여운형 암살에서 드러났듯이, 심지어 경찰은 암살범들의 '애국행위'를 격려하고 그들과 적절히 타협,거래해서 범인을 '극진히 모셔올' 정도였다. 그들에게 바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민전이 독립촉성국민회를 걸고넘어지자, 독촉측은 당연히 민전을 무고혐의로 걸고 나왔다. 독립촉성국민회 회장 이시영은 7월 25일 민전의장 장건상과 민전 사무국장 이강국 외 5명, 그리고 독립신문사 편집국장을 무고혐의로 종로 경찰서에 고소했다. 내용인즉슨 독촉을 '테러단체로 부당하게 모략했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이 고소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고소,고발사건처럼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것으로 보인다.

벼랑에서 구른 몽양, 택견으로 단련된 덕분에 살아나

원예학교 뒷산에 당도하자 범인들은 돌연 몽양의 허리를 껴안고 몽양의 가죽혁대를 풀었다. 범인들은 가죽혁대로 몽양의 다리를 결박하며 노끈으로 몽양의 목을 졸라매기 시작했다. 태연자약한 태도였다. 위급해진 몽양은 이들이 말로선 설득되지 않을 부류임을 개닫고 전력을 다해 온몸을 뒤흔들며 반행했다. 그러나 양쪽 다리는 결박되었고, 게다가 눈까지 가리운 상태였다. 아무리 고함을 질러봐야 소용이 없었다. 권총까지 휴대한 세 명의 악한을 뿌리치고 살아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행히도 얼마간 실갱이 끝에 눈을 가린 천이 조금 흘러내려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본 몽양은 멀지 않은 곳에 전등불이 희미하게 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몽양에겐 힘과 용기를 주는 구원의 등불과도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저 등불 근처까지만 가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몽양의 눈앞엔 절벽에 가까운 신비탈이 나타났다. 최후의 힘을 다해 자신의 부둥켜 안고 있는 세 범인을 뿌리친 몽양은 산비탈로 몸을 날렸다. 발이 묶인 몽양으로선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몽양은 백여 척의 급경사를 '도둑놈 잡아라'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굴러떨어졌다. 정신없이 굴러떨어져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부근에 살고 있는 이균 가족과 인민당원인 김민호가 뛰어나왔다. 

살았다는 생각이 든 몽양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균과 김민호는 혼절한 몽양을 집으로 업고가 응급치료를 했다. 다행히도 몽양은 허리를 약간 삐끗하고 팔다리 목 등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 별 부상을 당하진 않았다. 청년시절부터 인왕산 '택견'을 익혀온 몽양은 그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굴러떨어지면서도 오랜 수련해온 결과 몸에 밴 택견 기본품의 하나인 활개짓으로 비탈길 경사면을 짚었고, 그만큼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천우신조였다. 산중에서 권총든 세 명의 범인을 따돌린 것도 그러했고, 백여 척 벼랑을 낙하하듯 굴러내리면서 별반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도 그랬다. 사람들이 자신의 고함소리를 듣고 구하러 뛰어나온 것도 큰 행운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몽양은 이제부터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문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몽양은 가슴이 철렁해지는 얘기를 들었다. 7월 20일 아침 6시경 계동의 자택에 협박장이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온 청년 하나가 협박장을 던지고 갔는데 그 내용인즉슨 "만약 또 출두하면 다시 용서치 못하겠다. 더욱 앞으로는 너의 가족까지도 해치겠다."는 것이었다. 몽양으로선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이미 목숨을 내어놓은 지 오래고,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할 각오를 갖고 있었지만 아무 죄없는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었다. 아무리 좌우합작을 파탄시키려고 해도 그렇지 이런 비열한 수법을 동원할 수야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민족의 운명은 풍전등화인데도 벌어지는 일들은 한숨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몽양이 살해 직전까지 몰릴 정도로 테러를 당하자 민전측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번히 한두번도 아니고, 몽양만이 집중적으로 테러를 당하는데 미군정이나 경찰은 수수방관할 뿐만 아니라 우익의 테러를 묵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전은 7월 18일 긴급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19일에는 의장단이 존 하지 중장과 아서 러치 소장을 항의방문했다. 이자리에서 민전의장단은 조병옥 경무부장, 최능진 수사과장, 장택상 경찰부장 세 명이 이 사건을 책임지고 사표를 내야한다고 요구했다. 경찰간부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들은 이승만이 이끄는 독립촉성국민회를 테러단체로 지목해 해산을 요청했다. 이미 독촉과 그 산하 청년단체로 자임하는 테러조직이 전국적으로 광범한 테러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상황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독촉은 자신들이 '좌익'으로 몰아붙인 정당,사회단체,언론사뿐만 아니라 개개인에 대해서도 무자비한 폭력테러를 행사하고 있었다. 군정당국이 묵인하고 경찰이 적극 협조하는 가운데, 온갖 흉기로 무장한 깡패, 테러집단이 남한 전역에서 활개치고 잇었던 것이다.

당황한 경무부장 조병옥과 제1관구(경기도) 경찰청장 장택상은 관할 성동경찰서에서 범인을 엄중히 탐문수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몽양은 12차례 이상의 테러를 당했지만, 한번도 경찰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없었따. 경찰은 몽양을 보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 한 차례도 테러범을 검거한 적이 없었다. 단 한 차례 자수한 자칭 테러범도 몽양의 정치적 위상을 실추시키고 그를 모욕하기 위해 경찰이 과장한 범인에 불과했다. 뒷날 여운형 암살에서 드러났듯이, 심지어 경찰은 암살범들의 '애국행위'를 격려하고 그들과 적절히 타협,거래해서 범인을 '극진히 모셔올' 정도였다. 그들에게 바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민전이 독립촉성국민회를 걸고넘어지자, 독촉측은 당연히 민전을 무고혐의로 걸고 나왔다. 독립촉성국민회 회장 이시영은 7월 25일 민전의장 장건상과 민전 사무국장 이강국 외 5명, 그리고 독립신문사 편집국장을 무고혐의로 종로 경찰서에 고소했다. 내용인즉슨 독촉을 '테러단체로 부당하게 모략했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이 고소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고소,고발사건처럼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것으로 보인다.

[Charment]

이 님은 글을 참 'ㅅ' 문학적으로 쓰시네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