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제주도로 귀양을 가자 이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조선시대 중죄인과 접촉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 한 일이었기에 인심이 예전같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아쉽지 않겠지만 추사같이 다 있다가 갑자기 없어지면 아쉽고 허전할 것이다. 그것이 물건이 아니고 인심이었으니 추사는 더 무상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때 추사에게 절실한 것은 중국의 서책과 청 문인 들과의 연락이었다. 귀양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독 서가 전부였다. 책 읽고 글쓰는 일. 그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다행히 추사는 책을 많이 가져 갔지만 그것도 귀양살이 몇년 하니 더 이상 볼 것이 없었다.
추사는 중국의 서적에 목말랐고 청의 지인들과 교류를 간절히 바랬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인편인데 누가 귀양살이 하는 노인에게 심부름을 해준단 말인가.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우선 이상적이었다. 그는 역관 이고 또 그 자신 학문의 깊이도 있어 청 문인들과 교류를 해오고 있던 차였다. 이상적은 추사의 목적을 이루게 해 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계산적으로 말하면 이상적이 갑 이고 추사가 을의 관계다. 아쉬운 사람은 추사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단 이상적에게 잘 보여야 한다. 물론 이상적은 인품과 학덕을 갖춘 사람이고 무엇보다 신실했다. 추사는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세한도 발문은 제법 장문이다. 만약 세한도가 이상적이 고마워 선물로 주려고 그렸다면 그림만 그리면 되었지 굳이 긴 발문을 써 줄 필요가 없다. 안그런가?
발문의 내용을 보면 이상적에 대한 칭찬일색이다. 사마천과 공자까지 거론하며 제자 이상적을 칭찬한다.
보통의 예라면 세한도를 건네 주며 '이렇게 내가 바랬던 책을 잊지 않고 구해다 주고 찾아주니 고맙네. 내 선물로 이 그림을 자네에게 줌세' 이 정도 말로 하거나 굳이 뭔가 써주고 싶다면 간단하게 sincerely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세한도를 자세히 보라. 세한도는 세 장의 종이를 이어붙여 만들었는데 정작 초가 와 나무를 그린 세한도는 종이가 거칠고 발문을 적은 부분은 고급종이를 사용하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메인(그림)은 거친 종이에, 서브(발문)는 고급지에?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즉 추사는 그림보다 발문에 신경을 더 썼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