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암초등학교는 전교생이 52명에 불과한 휴전선 인근의 조그만 농촌 학교다. 주변 10㎞ 이내에 학원 하나 없을 정도다. 그런 적암초가 최근 일을 냈다. 다른 잘나가는 학교들을 제치고 '세계 창의력 올림피아드'에서 은상을 차지한 것이다. 적암초가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에는 2011년부터 진행된 '방과후 창의발명 수업'이 있었다. 지난 22일 그 특별한 수업현장을 찾아가봤다.
- 조욱현 선생님과 과제 수행에서 최고 평가를 받은‘뚜꾸리'조 팀원들이 밝게 웃고 있다.
◇창의발명 과제 수행하며 아이디어가 '쏙쏙'
"종이컵과 빨대를 이용해 길이 50㎝가 넘는 구조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조욱현 선생님)
오후 3시. 학교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난 시간이지만, 5학년 교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창의발명부라고 쓰여진 교실 안에선 어린이 9명이 둘러앉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바로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창의발명 수업시간이다.
이날 수업 주제는 '종이컵과 빨대를 이용한 구조물 만들기'. 어린이들은 책상 앞에 놓인 빨대, 종이컵, 1m자, 테이프를 이용해 구조물을 만드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지도교사인 조욱현 선생님은 "사전에 주제를 알리지 않고, 당일날 과제를 알려주는 이른바 즉석과제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의 순발력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고 귀띔했다.
"10분 줄게요. 시작!" 3명씩 한 팀을 이룬 어린이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2조 '뚜꾸리'팀의 김신희 양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과제 수행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하는 거예요.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며 토론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더 풍부해지는 걸 느끼게 돼요." (김신희 양)
◇평가와 반성 통해 다양한 의견 나눠
- 1완성된 구조물에 수학책을 올려놓았을 때 10초간 버틸 수 있는지를 확인 중인 조욱현 선생님과 이를 지켜보고 있는 어린이들. 2즉석과제인 '종이컵과 빨대를 이용한 구조물 만들기'를 수행 중인 어린이들.
10분의 과제 수행 시간이 끝나고, 조별로 평가가 이뤄졌다. 기준은 △구조물 높이가 50㎝를 넘었는가 △구조물 위에 얹은 수학 교과서가 10초 이상 버텼는가 △창의적으로 구조물을 디자인했는가 △팀 협동이 잘 이뤄졌는가 등이었다. 1조 '메투사', 2조 '뚜꾸리', 3조 '갸루상' 팀원들은 자신들이 만든 구조물이 쓰러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며 선생님의 평가를 숨죽여 지켜봤다. 그 결과 최고 득점은 '뚜꾸리'팀에게 돌아갔다. 구조물의 길이가 53.5㎝에다 수학책을 올렸을 때 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빨대를 변형시키지 않고 종이컵에 연결하려고 했죠? 빨대를 꼬아서 더 두껍게 한 다음에 구조물을 연결했으면 어땠을까요?" (조욱현 선생님)
평가가 끝나자 반성의 시간이 이어졌다. 선생님과 어린이들은 좀 더 창의적이고 안정적으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토론을 했다. 1조 '메투사' 팀원들은 "시간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구조물을 완성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의 한숨을 지었다. 2조와 3조 역시 구조물을 만들면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반성의 시간이 끝나자 어린이들이 다시 책상에 앉았다. 맨 처음부터 과제를 다시 하기 위해서다. 주어진 과제도 더욱 어려워졌다. 제한시간 5분 안에 수학책 3권을 올릴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어야 했다.
"반성과 평가를 통해 문제점을 찾았다면 그걸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과제를 직접 해보는 거예요." (김원재 군)
◇수업 하나하나 선생님들의 연구 통해 만들어져
이날 진행된 적암초의 창의발명 수업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많은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지도교사인 조욱현 선생님은 학교 내 창의발명 교사동아리를 만들고 공동 연구를 통해 다양한 수업을 개발해냈다. 또 창의발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학생 눈높이에 맞는 발명교재도 개발했다.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창의발명 수업 하나하나가 적암초 선생님들이 직접 실험도 해보고 연구를 해보며 만든 것들이랍니다. 그만큼 알차고 유용한 정보들이 수업에 담겨 있죠."
조욱현 선생님은 수업개발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들에게 창의발명에 대한 경험과 시각을 넓힐 수 있도록 각종 대회에 함께 참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5월 미국 테네시주립대에서 열린 세계 창의력 올림피아드 대회. 이 대회는 전 세계 15개국 2만5000여 명이 참가해 창의력을 겨루는 가장 큰 국제대회 중 하나다. 아무도 입상을 예상하지 못했던 적암초는 대회 챌린지 E부문에서 다른 국가 어린이들을 제치고 2등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조욱현 선생님은 지난 15일, 교육과학기술로부터 '방과후학교대상' 최우수 교사로 선정됐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수교사로 선정돼서 놀랐습니다. 이 모든 게 동료 선생님들과 수업에 잘 따라와 준 제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린이들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창의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수업들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지켜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