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2일 러시아 현지시각 새벽 다섯 시, 노보그라드 시-
“드르릉..드릉!”
퍽!
“...”
둔중한 소음에 몸을 움츠린 고양이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빈 건물 안을 마구 돌아다녔다. 일곱 개 침낭 안의 생명체가 불과 3분 만에 모두 숨을 멈추었다. 러시아가 미국 네이비 실의 훈련교리를 적극 받아들여 창설한 알파 스페츠나쓰 중대 2소대 3분대의 운명은, 세계 최강의 대테러 부대를 만들어 보겠다는 수뇌부의 포부를 배신하고 허무한 종말을 맞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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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클린.-
-재키 클린.-
-막스 클린.-
-실베스터 클린.-
-크리스토퍼 클린.-
“광호 클린.”
무전기를 통해 다른 멤버들의 작전 완료 멘트를 듣고 뒤이어 답한 이광호가 마지막 응답을 기다렸다. 예정 완료 시간을 1분이나 넘겼음에도 아직 무응답이었다.
-레이디?-
막스 폰 시도우가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UNA 최정예 특수부대인 토드, 레온, 스니커즈 중 사보타지에 가장 능한 토드의 일원으로, 정체 노출을 꺼려 영화배우 이름을 무작위로 빌린 29세의 라틴계 대원이 바로 막스였다. 이광호가 성질 급한 막스를 달래며 말했다.
“기다려 보자고.”
별안간 시끄러운 굉음이 대원들의 서북쪽 방향에서 터져 나왔다. 최종 목표로 잡은 무기고 인근에서 나는 소리였다.
“어딜 가나 말썽이로구만.”
사태를 짐작한 광호가 얼굴을 찡그렸다. 지원 가능한 병력이 몰살당하고, 외롭게 남은 무기고 경비조와 중무장한 한 명의 병사가 격돌했다.
“다들 엄호할 것.”
광호가 무전으로 지시했지만, 이미 그 전에 재키와 아놀드의 총탄이 무기고 지붕의 유탄 사수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재키 첵.-
-아놀드 첵.-
총성이 멎고 잠잠해지자, 광호가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쓰레기 가능한 한 많이 수거하고, 2차 장소에서 재집결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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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2일 러시아 현지시각 오전 아홉 시, 모스크바 근교-
눈 쌓인 겨울 산을 배경으로 한 까페 안에서, 막 들어온 여자를 본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불과 네 시간 전, 300킬로 남짓 떨어진 노보그라드의 핏빛 지옥을 연출한 광호와 이수영이었다.
“일을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왕 하는 거 스릴 넘치면 좋잖아요, 안 그래요?”
“못 말릴 녀석.”
더 이상의 말다툼은 시간낭비라는 걸 깨달은 광호가 까페 안쪽 주방의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CNN앵커가 다급히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러시아 노보그라드 지방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오십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현지 분위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고 현지 소식통이 알려 왔습니다. 필립 아고르 체첸 대통령이 긴급 성명을 발표해 이 사건은 체첸과 전면 무관하며, 아울러 부상자 구호와 범인 색출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현장에 피터 사스가드 기자가 나가 있습니다. 피터 기자?-
노보그라드에서 민간인들에 대한 테러가 있었으며, 상당한 규모의 귀금속이 약탈당했다는 것과 함께 체첸 반군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피해자가 민간인이 아닌 대테러부대 ‘알파 스페츠나쓰’이며, 없어진 물건이 귀금속이 아닌 중화기 50여 정과 다량의 실탄임을 아는 이는 까페 안의 두 남녀가 전부였다. 더불어 문제의 ‘귀금속’이 다음 타깃을 노리는 길목에서 섬뜩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