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그대로 되니라!”
+ 본 문 : 마태복음 15장 21절 - 28절 (신약성경 25쪽)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멘!
서로 축복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한대로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선포한 대로 됩니다. 내게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저를 따라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 “나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 3:16)
“나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나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따라서 하겠습니다.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아멘!
“하나님이 축복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대로 되니라.” 아멘!
오늘은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그대로 되니라.” 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따라서 선포하겠습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그 믿음 그대로 되니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내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감동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내가 변하는 시간이요. 내 인생의 미래가 바뀌는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 그렇게 뜨겁게 감동했던 일이 참 많았습니다.
처음 베델성서 프로그램을 하면서 감동을 나누었고, 크로스웨이 성경 프로그램! 일대일 제자 양육!
복음의 삶 프로그램! 제자훈련 프로그램! 두 날개 양육 프로그램 등을 함께 하면서 감동이 있었습니다.
죠이 뜨레스디아스라 불리는 영성훈련의 경험은, 제가 목회하던 교회의 영성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목회하던 교회에서 처음 새 성전을 건축했던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새 성전 이전부지를 마련하고, 건축현장의 조립식 건물을 뜯어와 모두 함께 세웠던 일,
그리고 450여 평의 조립식 새 성전을 건축하고, 20세기 말 1999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입당을 하고서,
모두모두 손을 잡고 2000년 새 천년을 맞으며 감격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그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2008년, 사랑성전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고, 새로운 비전사역관을 봉헌했을 때도 모두 울었습니다.
우리 아동부 중고등부 아이들의 여러 차례 비전 트립, 우리 장년 성도님들의 두 번의 성지순례 등등,
이외에도 우리가 울고 감격했던 감동의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수도 없는 이런 감격과 감동의 순간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변했고 - 우리교회도 훌쩍 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번의 진한 은혜의 감동을 가지는 순간이, 내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감동이 있고, 그 감동의 눈물이 있을 때 내 삶이 바뀝니다.
내 영혼이 병들고, 내 마음이 병들고, 내 육체가 비록 병들어도,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내 마음을,
내 육체를 단 한 번만 어루만져 주시면, 내 영혼, 내 마음, 내 육체는 건강하게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그렇게 내 영혼, 내 마음, 내 육체가 건강하게 치유되고 회복되면, 덩달아 내 모든 삶도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영혼, 내 마음, 내 육체에, 내 신앙과 삶에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과 육체에 감동이 있을지어다. 여러분의 신앙과 삶에도 감동이 있을지어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에게 감동이 있을 때, 그 감동이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되고 기적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합시다. “감동하며 살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동시키며 살겠습니다. 그대로 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감동하며 살며,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으로 살면 “믿는 그대로 되니라!”
요즘 감동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은혜를 받는 삶을 지속하는 것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현대인들의 삶이 너무 복잡해졌습니다. 시간뿐만 아니라 머리도 복잡합니다. 그대로 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가 되어, 기도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잘 되고,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내 육체가 강건해지기를 축복하며 선포합니다.
작정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 범사가 잘 되어지기를 축복하며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전도여행 중 잠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십니다.
여기 두로와 시돈은 이방 땅입니다. 예수님께서 전도여행 3년 가운데 딱 한번 이방 땅에 간 이야기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의 땅을 넘어서, 이방 땅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이 되는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두로는 요세푸스의 글에 의하면, 유대인들에게 가장 나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살던 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돈은 유명한 우상숭배자요. 악녀였던 이세벨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거기에서 살던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 앞으로 나오더니, 소리소리 지르며 매달려 기도합니다.
그 여인은 유대인들이 더럽다고 상종도 하지 않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르짖어 간구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아멘!
이 여인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든지 병든 자가 낫는다고 하더라.
걷지 못하던 자들이 벌떡 일어나 걸어간다더라. 앞을 보지 못하던 자들이 눈을 뜨고 본다고 하더라.
죽은 자를 향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살아나고, 귀신들린 자가 귀신이 쫒겨 나고 온전해진다더라.”
그렇다면 이건 기회다. 예수님 만나면 문제는 해결되어진다. 내 딸에게서 귀신이 나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의 곁에 예수님이 머물면, 온 천지가 매달려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다 해결이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한번만 어루만져주시면, 치유되고, 회복되고 반드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리고 감동이 넘치는 은혜와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이방 여인 -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놀라운 은혜를 입고,
가슴 뜨거운 감동이 넘치는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기까지는, 많은 장벽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침묵의 장벽입니다. 이방여인이 사람들을 밀치고 예수님께 나아와 딸을 살려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전혀 못 들은 척, 한 말씀도 대답하시지 않고 그냥 가시던 길을 가시기만 합니다.
예수님의 냉정한 침묵에 여인은, 이 분이 진짜 구원자란 말인가? 이분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 맞는가?
이분이 정말로 사랑의 주님이란 말인가? 여인은 얼마든지 실망하여 돌아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그래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응답이 없을 때,
울부짖고 매달려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바로 그 순간이 내 믿음이 자라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침묵하시는 예수님은, 이방여인의 믿음이 자라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 가운데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분 계십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그 응답 없음이 응답입니다. 응답받을 내 믿음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없는 그때 불평하면 진짜 망합니다. 그러므로 더 뜨겁게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돌아서면 은혜는 끝입니다. 응답도 끝입니다. 치유와 회복도 없습니다. 축복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없어도 더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응답이 있을 때까지 더 울부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은 응답이 될 때까지 부르짖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이 호칭은,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나의 구원자라는 신앙고백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부르짖음은 예수님은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선포입니다.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자신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믿음의 자세였습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예수님께서도 이제 됐다고 말씀하시면서, 받아줄만 한데 여전히 예수님 침묵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의 귀는 언제나 부르짖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듣기 위해서,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입술은 언제나 축복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치료와 회복의 능력을 갖춘 입술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손은 병든 자, 심지어는 나병환자까지도 어루만지기 위해 준비된 치유의 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이 불쌍한 여인에게만은, 우리 예수님께서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요?
응답이 지연될 때, 여러분의 삶의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갈 때, 매달리고 울부짖어 기도해도,
넘을 수 없는 인생의 장벽이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을 때에,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공식에 의하면,
그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는 시간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때가 믿음이 자라야 되는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무거운 침묵에도, 가나안 여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25절 말씀입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아멘!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절하며 울부짖으며 구합니다. 찾습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비로소 입을 연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 여러분! 세상에 거절도 이런 거절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여인이 예수님께 간구하는 자세를 “절하며”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가복음 7장 25절에서는 “그 발아래 엎드리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여기 “엎드렸다.” 는 말은 계속 용법입니다. 한번 엎드리고 말았다는 것이 아니고, 발로 걷어차면,
다시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와 엎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을 개 취급하며 밀쳐내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가 다시 엎드려 간구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실 때까지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내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나는 매달리겠다.
나는 얻을 때까지 구하겠다. 나는 찾을 때까지 찾겠다. 나는 문이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리겠다는,
자세가 바로 “예수님께 절하며 드리는 기도! 그 발아래 엎드려 기도하는 끈질긴 기도의 자세” 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픈 사연, 누구하고도 의논할 수 없는 가슴 아린 사연을 안고 오늘 오신 분이 계십니까?
막다른 골목에서 갈 길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매달려 부르짖어도 차가운 침묵만,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계신분이 계십니까? 바로 그때가 엎드려 더욱 뜨겁게 기도해야 할 시간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응답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뒤로 물러가지 않으면,
낙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응답해 주시려고, 우리 예수님은 이미 준비를 다 해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 해도 해도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너는 개다! 개 같은 이방여인인 너의 기도를 들을 필요도 없다.” - 만약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이런 응답이 왔다면, 여러분은 그래도 계속 예수님께 절하며 예배드리는 믿음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이런 응답이 왔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주님 앞에 엎드리어 계속해서 기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만 있다면, 기도응답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개 취급을 받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발로 차도 다시 엉금엉금 예수님 앞으로 기어와서 절하며 엎드리는, 그런 믿음을,
주님 앞에 보여드릴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미 기도응답을 준비해놓고 그 믿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끈질긴 기도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헬라어로 개는 퀴온입니다. 이 퀴온에 작아지는 의미를 붙이면 퀴나리온이 됩니다.
퀴나리온은 반려동물, 애완견 강아지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여인을 향하여 주인을 잃은,
퀴나리온 - 반려동물, 애완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이미 예수님께서 응답을,
준비하신 줄 안 것입니다. 이 얼마나 건강한 성품입니까? 이 얼마나 높은 자존감을 지닌 여인입니까?
“아, 이미 예수님께서 나를 믿음의 가족으로 받아주셨구나.” - 그만큼 큰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여인이 소리 질러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소리질렀다는 말은,
배고픈 까마귀가 울고 울고 또 울어서 목이 쉬어도 포기하지 않고 까악까악 소리 질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내 기도를 들으셨다. 주님이 나를 믿음의 가족으로 받아주셨다.” 이 믿음을 가지고,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내 딸을 고쳐 주소서.”
목이 다 쉬도록 울부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 이런 기도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한참 운동을 하고 있을 때에, 수많은 공격에 부딪히게 됩니다.
어느 날 너무나 몸과 마음이 지치고 피곤한 가운데,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강아지가 루터가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를 썰면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포크로 고기를 집어,
입에 넣으면 그 시선이 입으로 따라 올라갑니다. 다른 음식을 집고 있으면 그 시선은 그리로 향합니다.
그래서 고기 한 점을 썰어 던져주었더니, 그 강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먹습니다.
루터가 그것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하나님! 지금 제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저 강아지가 받아먹었던 작은 고기 조각 같은 작은 하나님의 은혜라도,
지금 제겐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제 시선을 두겠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 이런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이 믿음으로 “주여 저를 도우소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감동을 먹습니다. 그대로 됩니다.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여주는 절정의 말씀이, 오늘 본문 27절에 나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주여 옳소이다.” -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모두 다 옳소이다. 지금 나는 비록 이해가 안 되지만,
지금 내 마음과 감정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지금 내 삶의 상황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지만,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다 옳소이다. 나를 사랑해서 하는 일임을 믿기에 옳소이다.
응답이 지연 되도 주님이 하는 일이기에 다 옳소이다. 주님이 저를 개라고 할지라도 다 옳소이다.
이렇게 항변하지 않고 다 옳소이다 고백하는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진짜 믿음입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똑똑해서, 너무 쉽게 불평합니다. 아무 일에나 항변합니다. 생각없이 비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혀 항변하지도, 불평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았던,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의 믿음,
내 경험, 내 이성, 내 감정, 내 감정에 전혀 맞지 않아도, 내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진짜로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믿음입니다. 비록 주님이 침묵하셔도, 죽이든 살리든,
책망하든 위로하든, 높여주시든 낮춰주시든, 지금 주시든 기다리게 하시든, 주님이 하시는 일이,
무조건 다 옳소이다. - 절대주권을 주님께 돌리는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진짜 믿음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고백합니다. “주여! 식탁아래 개들도 주인이 먹다가 흘린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여! 부스러기 같은 은혜만 주셔도 제 딸아이에게서 흉악한 귀신이 쫓겨나고 나을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부스러기만 있어도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세상이 달라집니다. 우리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우리 생업이 형통합니다.
아픈 내 몸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건강해집니다. 깨어진 모든 것들이 다 회복되어집니다. 잘 됩니다.
주님의 보혈 한 방울이면, 내 전도대상자들이 열린 영혼이 되어 구원받고, 교회로 달려오게 됩니다.
내 마음에 일어나는 단 한 번의 감동만 있어도, 내 인생의 미래를 바뀌고, 내 인생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나의 부스러기 믿음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놀라운 일을 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감동하시고 부스러기 같은 작은 은혜만 주셔도, 우리에게 불가능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전혀 안 되던 일들이, 도무지 어려워만 보이던 일들이, 인생의 장벽처럼 느껴지던 일들이 한 방에 해결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면, 그대로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면, 그대로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믿음의 결과가 오늘 본문 28절에 나옵니다. 함께 선포하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멘! - “여자여! - 오 여인이여!” 감동했을 때의 감탄사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놀랍도다. 여인이여! 네 믿음이 크도다. - 네 믿음이 메가톤급이로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을 감동시킨 믿음의 결과가 이처럼 놀랍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나도 감탄사를 연발하는 감동이 있는 삶이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헌신,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복음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 이방인 -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믿음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선포합니다.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아멘!
“하나님이 축복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대로 되니라.” 아멘!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그 믿음 그대로 되니라.” 여러분! 진짜로 아멘입니까? 아멘!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말씀생활로! 뜨거운 기도로! 찬송으로! 섬기고 나누는 헌신으로! 복음전도로!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오직 믿음 때문에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저와 여러분의 모든 기도가 그대로 다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