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 김애란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지금?
-응.
소파에서 주춤대다 “그래” 하고 일어났다. 아내가 뭔가 먼저 ‘하자’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베란다로 가 수납장서 벽지를 꺼냈다. 얼마 전 동네 대형마트에서 산 ‘셀프 도배용 벽지’였다. 한 롤에 이만 몇천원, 폭은 내 어깨너비만한데 길이가 10미터를 넘어 손안에 전해지는 무개가 제법 묵직했다. 도배지를 든 채 설명서를 읽다 왠지 깨름칙한 기분이 들어 곁눈질로 거실 불빛을 봤다. 그러곤 설명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정말 지금 할 거지?
지난달 어머니가 잠시 집에 다녀갔다. 두 사람 다 경황이 없을테니 당분간 살림을 맡아주겠다는 명분이었다. 짐을 푼 첫날부터 어머니는 집안 곳곳을 의욕적으로 쓸고 닦았다. 우편물을 정리하고, 먼지 낀 선풍기를 분해해 일일이 날개를 닦고, 시든 고무나무에 물을 줬다. 돼지고기와 메추리 알을 섞어 간장에 졸이고 멸치와 꽈리고추를 볶아 집안에 매운 내를 풍기고, 김을 굽고, 깻잎을 재우고 냉동실을 정리했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 무기력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이 드신 양반의 악의 없는 참견과 잔소리도 묵묵히 감내하는 듯했다. 아니 감내했다기보다 의식하지 못했다 할까, 안 했다 할까, 적당한 말을 몰라, 그냥 그게 말이니 싶어 저쪽에서 열심히 구사하는 몸짓을 아내는 수신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좀 아팠다.
어머니가 우리집에 오고 열흘쯤 지나서였다. 한밤중 부엌에서 “펑!” 소리가 뛰어가 보니 어머니가 검붉은 액체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우연히 테러범 옆에 있다. 살점과 핏물을 세례 받은 양 얼빠진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한 손에는 원뿔형 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얼마 전 집 앞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복분자액이었다. 도로 돌려보낼 생각에 손도 안 대고 방치해둔 걸, 갑자기 뚜껑을 연 바람에 내용물이 폭발하듯 솟구친 모양이었다. 검붉은 액체는 어머니의 흰 내의뿐 아니라 식탁과 장판, 밥통과 전기 주전자 위로 어지럽게 튀었다. 특히 식탁과 마주한 벽 상태가 심각했는데, 산뜻한 올리브색 벽지 가득 검붉은 얼룩이 안자한 게 마치 누군가 이웃을 모욕하기 위해 갈겨놓은 낙서 같았다.
- 아이고, 이거 다 아까워서 어쩐다니.
어머니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 아니, 나는 그냥 목이 말라서······ 니들이 통 안 먹길래 ······
나는 서둘러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 괜찮아, 엄마? 어디 안 다쳤어?
어머니는 “내가 늙어서 주책이다” “이 사람들도 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걸 팔아야지, 이러면 어쩐다니” “병에 가스가 찼나보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곤 곧장 욕실로 가지 않고 키친타월을 둘둘 풀어 바닥부터 닦았다. 평소 같으면 걸레를 빨아 쓰면 되지 뭐하러 종이를 낭비하느냐 나무랐을 터였다.
- 놔둬, 엄마, 내가 할게.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며 슬쩍 아내를 봤다. ‘그렇지, 여보? 우리가 하면 되지?’ 넌지시 동의를 구한 거였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 옆에서 꼼짝 않던 아내가 몹시 나직하고 상스러운 투로 뜻밖의 말을 했다.
- 아이 씨······
어머니가 바닥을 훔치다 말고 고개를 들어 아내를 봤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벽면에선 여전히 검붉고 끈끈한 액체가 세로로 긴 자극을 남기며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어색해진 분위기 따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 이게 뭐야.
- 미진아.
그만하라는 뜻으로 지그시 아내의 팔뚝을 잡았다. 그러자 아내는 화를 내는 건지 이해를 구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서글픈 비명을 질렀다.
- 다 엉망이 돼버렸잖아.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건 작년 봄이다. 분양면적 이십사 평, 실면적 십칠 평에 지은 지 이십 년 된 아파트였다. 요즘 같은 때 빚내서 집 사는 건 미친 짓이라 했지만 경매로 싸게 나온 물건이어서 포기하기 쉽지 않았다. 많은 경우 매매가와 전세 보증금 차가 크지 않았고, 조건 맞는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웠을뿐더러 이사라면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이 집을 사기로 했다.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서였다. 몇십 년간 매달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를 떠올리면 마음이 자주 무거워졌다. 그래도 남의 주머니가 아닌 내 공간에 붓는 돈이라 생각하면 억울함이 덜했다. 누군가 그 아파트 역시 당신 집이 아닌 커다란 남의 주머니일 따름이라 일러준다 해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앞으로 영우가 어린이집을 옮겨다니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했다. 자긴 그게 제일 좋다고, 근처에 편의 시설이 많은데다 서울보다 공기가 맑은 것도 마음에 든다 했다.
- 영우도 여기 좋아.
혼자 블록 놀이를 하거나 그림책을 보다 곧장 어른들 대화에 끼어들던 영우가 그날도 말참견을 했다.
- 왜? 영우는 여기가 좋은 데?
그즈음 한창 놀랍고 엉뚱한 말을 쏟아내던 영우에게 아내가 기대 어린 투로 물었다. 부모로서 뭔가 해줬다 싶은지 답도 듣기 전에 뿌듯한 표정이었다. 영우는 여느 때처럼 입에 맑은 침을 문 채 선홍색 혀를 놀려 천진하게 대꾸했다.
- 응, 부릉부릉 엄청 많아, 엄청 멋있어.
베란다 밖 8차선 도로에 길게 늘어선 충퇴근 차량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한동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꽤 얼떨떨했다. 명의만 내 것일 뿐 여전히 내 집이 아닌데도 그랬다. 이십여 년 간 셋방을 부유하다 이제 막 어딘가 가늘고 연한 뿌리를 내린 기분, 씨앗에서 갓 돋은 뿌리 한 올이 땅속 어둠을 뚫고 나갈 때 주위에 퍼지는 미열과 탄식이 내 몸 안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이상한 자부와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는 피곤도 겹쳐 있었다. 그래도 나쁜 생각은 되도록 안 하려했다. 세상 모든 가장이 겪는 불안 중 그나마 나은 불안을 택한 거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건 얼마간 사실이었다. 적어도 내겐 뭔가 생각할 자유라도 있었으니까. 아파트 매매 계약서에 집에와 티브이를 켰는데,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신문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발 디딜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오래 버텨야 하는 게임이었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몸에 엉긴 채 용을 쓰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몇몇은 결국 상대의 무게를 못 이겨 신문지 밖으로 넘어지며 탈락했다. 그땐 그냥 티브이 앞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낄낄 댔는데, 요즘은 내가 그 게임 참가자가 된 기분이었다. ‘반의 반’ 또 ‘반의반의반’ 크기로 접힌 종이 위에 외발로 선 채 가족을 안고 부들부들 떠는, 그렇지만 결국 살았다고 카메라를 보며 웃는, 대학 동기들은 내게 벌써 집장만을 했냐며 부러움 섞인 축하를 건넸다. 그때마다 나는 “그래봤자 하우스 푸어”라고 겸연쩍게 변명했다. 한 녀석은 “나는 그냥 푸어인데 그래도 너는 하우스 푸어니 얼마나 좋냐”고 받아쳤다. 입주 후 양가 부모님과 친구들, 직장 동료를 초대해 몇 차례 집들이를 했다. 가까운 이들과 떠들썩하게 음식을 나누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럴 땐 우리가 채무자란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파트 매매 계약서와 은행 대출 서류에 쓴 내 이름이 가명처럼 여겨졌다. 새벽에 요의를 느껴 화장실에 갈 때면 욕실 문 앞에서 불 꺼진 거실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러곤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제자리에 있는지, 지켜야 할 것은 또 그대로 있는지 확인한 뒤 자리를 떴다.
아내는 집 꾸미는데 반년 이상 공을 들였다. 이사 후 틈나는 대로 ‘좁은 집 셀프 인테리어’나 ‘가구 리폼’ ‘DIY’ 정보를 살피며 실행에 옮겼다. 전부터 ‘정착’에 대한 욕구는 나보다 아내가 더 강했다. 아내는 대학 시절 내내 기숙사에 살았고, 졸업 후 한창 학습지 교사로 일할 땐 두꺼운 요 대신 은박 돗자리를 갖고 독서실을 전전했다. 남들은 고기 굽거나 소풍 갈 때나 펴는 걸, 휴대하기 좋고 버리기 쉽단 이유로 매일 깔고 잔 거였다. 아내는 9급 공무원 시험에 세 번 응시해 세 번 떨어졌고, 공무원이 되는 대신 노량진 공무원 입시학원에서 사무를 봤다. 결혼 후 난임 치료를 받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영우를 가졌고, 다섯 번의 이사 끝에 집을 샀다. 모두 지난 십 년간 정신없이 벌어진 일들이었다. 아파트를 얻은 뒤 아내는 휴일마다 베란다에서 계속 무언가를 자르고, 칠하고, 조립했다. 우리가 십 년 가까이 쓴 침대와 의자, 식탁과 수납장을 리폼 했다. 갈색 의자에 크림색 페인트를 칠한다든가 낡은 탁자에 감귤빛 페인트를 발라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꾸는 식이었다. 아내는 영우가 톱이나 못, 망치 근처로 오지 못하게 베란다 문을 꼭 잠그고 일했다. 영우는 베란다 유리문에 코를 박고 울거나 떼를 썼다. 그럴 땐 내가 영우를 번쩍 안아 놀이터로 데려갔다. 이사 후 몇 달 동안 집에서 페인트와 접착제, 광택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북유럽 스타일’ 가구 또는 ‘스칸디나비아 패브릭’을 알아보다 가격에 낙담한 아내가 나름 택한 자구책이었다. 아내에게는 정착의 사실뿐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했다.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은 이제 물렸다는 듯, 못생긴 물건들과 사는 건 지쳤다는 듯,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했다.
아내가 인테리어에 가장 정성을 쏟은 공간은 단연 거실과 부엌이었다. 아내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이 인용 소파를 거실에 들여놨다. 패브릭 소재에 충전재로 건설 폐목재와 마블 스펀지를 쓴 저가 소파였다. 나는 아내의 선택에 토를 달지 않았다. 어쩌다 아내가 의견을 물어오면 “나쁘지 않네” “괜찮네” 덤덤하게 대꾸했다. 나 역시 허름한 아파트가 아늑하게 바뀌는 게 싫지 않았고 아내의 밝은 기운을 쐬는 게 좋아서였다. 아내는 소파 옆에 잘생긴 고무나무 한 그루도 들여놨다. 영우가 더 이상 화분 위 돌을 빨거나 잎을 뜯어먹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직접 만든 나무 선반에 ‘LOVE' 'HAPPINESS' 같은 영어 단어가 적힌,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파스텔톤 깡통을 올려놨다. 한쪽 벽면에는 철사와 앙증맞은 나무집게를 빨래 널 듯 가족사진을 전시했고, 그러고도 뭔가 허전했는지 나무 위에 새 세 마리가 앉은 ’윌 스티커‘를 붙였다.
부엌과 마주한 작은방은 영우 방으로 꾸몄다. 영우가 처음 가져보는 자기 공간이었다. 평소 구석에 숨기를 좋아하는 영우를 위해 아내는 시장에서 직접 천을 끊어다 인디언 천막을 만들었다. 영우는 아기 때부터 어디든 잘 기어들어가 손가락으로 먼지를 집어먹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아내는 영우 방 창문에 ‘로보카 폴리’가 그려진 롤스크린을 달고, 방문에 ‘ㄱㄴㄷ한글 차트’를 붙였다. ‘기역’ 란에는 ‘강아지’가 ‘니은’칸에는 ‘나비’가 나오는 식의 브로마이드였다. 그즈음 영우는 막 글자를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공부에 영 소질이 없어서 그런지,글씨를 쓰라고 손에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쥐여주면 여기저기 형체를 알 수 없는 곡선을 그리며 아내가 애써 청소해놓은 바닥을 더럽히곤 했다. 평소 언성 높이는 법이 별로 없는 아내는 자신이 힘들여 가꿔놓은 공간을 아이가 어지럽힐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어느 때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랬다. 영우는 제 엄마의 간섭 따위 아랑곳 않고 날마다 온갖 사물에 침을 묻히고, 그림책을 찢고, 음악이 나오면 상체를 좌우로 흔들고, 식탁 아래 좁은 공간에 들어가 놀았다. 그리고 가끔은 원뿔형의 인디언 천막에 들어가 종알종알 싱그러운 헛소리를 하다 잠이 들었다.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없을 것같은 얼굴로,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고한 얼굴로 잤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잠을 청하고도 눈뜨면 그사이 살이 오르고 인상이 변해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가장 인상적인 건 부엌 벽면이었다. 남루하고 어지러운 세간 사이로 유일하게 ‘아름다움’을 주장해, 그렇지만 안간힘을 쓰듯 화사하게 눈에 띄었다. 벽면에는 이미 한참 전에 유행한 꽃무늬 벽지가 붙어 있었다. 탐스럽다못해 징그러운 붉은 튤립이 송이송이 무더기로 박힌 포인트 벽지였다. 흰색 바탕 위론 누런 얼룩과 파리똥인지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점들이 튀어 있었다. 아내는 까다롭고 엄정한 얼굴로 부엌 벽면을 천천히 뜯어봤다. 그러곤 ‘내가 이 집 주인이라면 단순하고 산뜻한 벽지를 발랐을 거’라 속삭였다. 중요한 건 수납과 배치, 배색이라고, 인테리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바로 이런 거라며 사뭇 전문가 행세를 했다. 육아며 직장 일로 정작 자기는 미용실도 못가면서 그랬다.
-우리 집도 정신없잖아.
아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항변했다.
-우린 애가 있으니까 그렇지.
살림과 양육에 대해 내가 조금이라도 비난하는 기색을 보이면 아내는 무척 예민하게 굴었다.
-이 집도 애가 있었나본데?
부엌 형광등 스위치에 붙은 라바 스티커를 가리키자 아내가 볼멘소리를 했다.
-우리 집은 여기보다 작잖아. 좁은 집은 아무리 정리해도 표가 안 난다고.
입주 전, 아내는 제일 먼저 그 벽부터 손봤다. 동네 인테리어 가게에 들러, 부엌과 거실 벽은 모두 흰색으로 하되 개수대와 마주한 벽면은 올리브색 종이를 발라달라 주문했다. 흰색 공간에서 올리브색 벽면은 단연 ‘포인트’가 됐다. 아내 말대로 눈도 시원하고 집이 넓어 보였다. 아내는 그 벽 아래에 사 인용 식탁을 놨다. 무광택 미색 다리에 엷은 감빛 상판을 얹은 따뜻한 느낌의 식탁이었다. 우리는 그걸 밥상겸 찻상 그리고 책상으로 섰다. 아내는 식탁 한쪽에 전기 주전자를 비롯해 녹차와 허브차 티백, 종합비타민제, 견과류를 올려놨다. 투명 용기에 담은 원두와 보는 것만으로 왠지 으쓱한 기분이 드는 커피 그라인더를 나란히 두는 일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 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매일 밥을 먹었다. 드물게 손님이 오면 거실에 상을 폈지만 우리끼린 대개 식탁을 이용했다. 우리 부부는 등밪이가 없는 벤치형 의자에, 영우는 유아용 접이식 식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인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욕실 유리컵에 꽂힌 세 개의 칫솔과 빨래 건조대에 널린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 커버를 보며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적이고 사건임을 알았다. 아내와 나는 식탁에서 영우를 먹이고, 혼내고, 어이없는 말대꾸에 그만 허탈하게 웃어버리고, 그 와중에 권위를 잃지 않으려 재빨리 엄한 표정을 짓곤 했다. 영우는 거기서 젓가락질을 배우고, 음식을 흘리고, 떼쓰고, 의자 아래로 기어들어가고, 울고, 종알종알 분홍 혀를 놀려 어여쁜 헛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거기 사 인용 식탁에서 식탁과 맞붙은 산뜻한 올리브색 벽지 아래서, 집 앞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복분자액은 바로 거기 튄 거였다.
아내와 나는 복분자액이 터진 날의 일을 따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다음날 바로 본가로 내려갔고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려 애썼다. 그러니까 어제와 같은 하루, 아주 긴 하루, 아내 말대로라면 ‘다 엉망이 되어버린’ 하루를, 가끔은 사람들이 ‘시간’이라 부르는 뭔가가 ‘빨리 감기’ 한 필름마냥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이유도, 눈이 녹고 새순이 돋는 까닭도 모두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했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이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가끔은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 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양 손으로 사진을 매만지 그랬다.
어린이집 원장은 영업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가해 차량 역시 자동차종합보험에 들어 우리는 보험회사를 통해 민사상손해배상을 받았다. 많다거나 적다거나 하는 세상의 어떤 잣대나 단위로 잴 수 없는 대가가 지급됐고, 어린이집에서는 그걸로 일이 마무리됐다 여기는 듯했다. 운전사를 바꾸고 당시 현장에 있던 보육교사까지 잘랐는데 무얼 더 바라느냐 묻는 듯했다. 직접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를 대하는 표정이나 태도가 그랬다. 내가 보험회사 직원이란 근거로 동네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이 돈 것도 그즈음이었다. 처음에는 듣고도 믿을 수 없어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끔찍한 건 몇몇 이들이 그 말을 정말로 믿는다는 거였다. 아내는 직장을 관두고 집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나도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생활비 통장에선 매달 아파트 대출금과 높은 이자가 빠져나갔고, 아파트 관리비와 각종 공과금, 의료보험비와 휴대전화 요금도 만만치 않았다. 내 월급만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그즈음 어린이집 차량 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사람은 차분한 말투로 나를 위로하고 공적인 어휘로 보험금 지급과정을 설명했다. 그러곤 조심스레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 내 이름 적는 칸과 계좌번호를 기입하는 난이 비어 있었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양식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와 같이 사무적인 얼굴로 누군가의 슬픔을 대면할 터였다. 서류를 앞에 두고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연달아 세 대 피웠다. 잘못된 걸 바로잡고 고장난 데를 손보는 건 가장의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배우고 자랐다. 그런데 내가 거기 계좌번호를 적는 순간 이상하게 어린이집 원장을 용서하는 결과를 낳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저 떠오르는 건 어둠, 퇴근 후 딸각, 스위치를 켜면 부엌 한쪽에서 흐느끼던 아내의 얼굴과 다시 딸각, 불을 켰을 때 거실 구석에서 어깨를 들썩이던 아내의 윤곽뿐이다. 냉장실 안 하얗게 삭은 김치와 라면에 풀자마자 역한 냄새를 풍기며 흐트러지던 계란, 거실 바닥에 떨어진 갈색 고무나무 이파리 같은 것들뿐이다. 이따금 아내는 베란다 창문을 보며 동어반복을 했다.
_여보, 우리 영우가 있는 곳 말이야, 여기보다 좋을 것 같아. 왜냐하면 거기에는 영우가 있으니까.
한번은 아내가 바퀴달린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 십 분 만에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내는 사람들이 자길 본다고, 나는 안 그러냐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아내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고, 아이 잃은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나, 자식 잃은 사람도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먹나, 무슨 반찬을 사고 어떤 흥정을 하나 훔쳐본다고 말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당신이 과민한 거라 설득했다. 그뒤 아내는 주로 온라인 매장에서 장을 봤다. 집밖을 나서는 일이 점차 줄고 베란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아내까지 잃게 될까 두려웠다.
-여보 우리 이사 갈까?
딸각, 다시 스위치를 켰을 때 작은 인디언 천막 안에 웅크리고 있던 아내를 향해 물었다. 아내가 젖은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퇴근길에 동네 부동산에 들렀다. 아파트 시세는 지난해 우리가 집을 산 가격보다 이천만원 이상 떨어져 있었다. 부동산을 나와 집 앞 골목에서 담배를 연달아 두 대 피웠다. 결국 아파트 파는 걸 포기하고 아내에게 ‘집이 계속 안 나가는 모양’이라 둘러댔다. 물론 우리에겐 단 일 원도 건드리지 않은 보험금 통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한푼도 써서는 안 되는 돈이었다. 한 번도 상의한 적 없지만 아내도 나도 암묵적으로 그렇게 약속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보낸 소포가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아내와 나는 불길하고 신기한 물건 대하듯 상자를 살폈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감이 오지 않아서였다. 소포 겉면엔 ‘장수식품’이란 상호와 더불어 ‘국산 복분자 원액 백 퍼센트’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상자 위 유리 테이프를 뜯어내자 안에서 작은 카드가 나왔다. 카드 안에는 ‘보내주신 성원 감사드립니다. 풍성한 한가위 맞으세요 햇님 어린이집’이라는 관습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추석이라고 아이들이 조물조물 만든 송편을 예쁘게 포장해 들려 보낸 적은 있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게 우리집에 잘못 배달됐다는 걸 알았다. 영우 일로 나빠진 평판을 그런 식으로나마 바꾸려 한 모양이었다. 신입 교사가, 주소록을 갱신하지 않은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아내는 이 사람들 어쩌면 이렇게 무감할 수 있느냐며 화를 냈다. 게다가 여기가 어디라고 알고 보냈으면 나쁘고, 모르고 부쳤다면 더 나쁜 거라고 흥분했다. 나는 소포를 돌려보낼 때까지 복분자액 상자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두 달 전 일이었다.
부엌 벽면에 벤 물은 웬만해선 잘 빠지지 않았다. 젖은 행주로 닦고, 매직불록으로 문지르고, 화장솜에 아세톤을 묻혀 조심스레 두드려도 소용없었다. 행주질을 여러 번 한 곳은 비교적 옅어졌지만 얼룩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흔적을 지우려 하면 할수록 우둘투둘 종이만 더 해졌다. 아찌됐던 도배를 새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본가로 내려가고 얼마 뒤 아내와 대형마트에 갔다. 아내와 장을 보러 나온 건 오랜만의 이었다. 빈 카트의 손잡이를 손에 쥔 채 아내와 무빙워크에 올랐다. 형광등과 건전지, 공구 따윌 파는 구역에 내려 여러 종류의 벽지가 쌓인 진열대 앞에 섰다. 선반 위로 일반 도배지와 셀프 도배지, 시트지와 한지가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그중 ‘풀먹인 셀프 도배지’를 한 롤 글어 설명서를 읽었다. ‘물에 오 초만 담그면 끝’ ‘도배가 쉽고 즐겁다’ ‘도구가 필요 없다’ ‘기존 벽지를 뜯을 필요가 없다’는 문구가 보였다. 왠지 읽기만 해도 자신감이 드는 게 벌써 도배를 마친 기분이었다.
-이걸로 할까?
아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 무늬 없는 거면 좋겠는데.
-이만하면 깔끔하지 않나?
-다른 건 없어?
-이런 스타일은 싫잖아, 그렇지?
-어.
-그나마 이게 제일 단순한데, 무늬도 잘아 별로 티도 안 나고.
-......
-나중에 올까?
아내가 갑자기 내 시선을 피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냥, 당신 마음에 드는 걸로 해.
벽지를 든 채 아내를 빤히 바라봤다. 지금껏 인테리어에 관한 한 혼자 모든 걸 결정해온 아내가 내게 판단을 넘기는 게 이상했다. 아내는 당장 자리를 뜨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불길한 기분이 들어 돌아보니 웬 젊은 여자가 한 손에 카트 손잡이를 쥔 채 벽지를 살피고 있었다. 카트 안에는 오십 개월 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이의 촉촉하고 끈적끈적한 손엔 평소 영우가 즐겨 먹던 동물 모양 과자가 들려 있었다.
그뒤 아내는 우리가 언제 마트에 간 적 있느냐는 듯 도배 일을 싹 잊었다. 관심이 사라진 건지 의욕이 준 건지 알 수 없었다. 일찍 퇴근한 날이나 주말에 "오늘 도배 할까?" 물으면 매번 "다음에" "나중에"라 답했다. 평소 개수대에 설거지 거리를 절대 쌓아두는 법이 없는 사람의 태도치곤 이상했다. 아내는 설거지를 다 마친 뒤라도 그릇의 물기가 완전히 마른 상태를 선호했다. 어떤 일이든 그렇게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좋다고, 그래야 뭐든 할 마음이 난다고 했다. 아내는 포도 한 송이를 씻을 때도 베이킹소다에 담갔다 수돗물로 여러 차례 헹궈냈다. 행주나 수건도 과산화수소인지 모를 분말을 풀어 주기적으로 하얗게 삶아냈다. 그런 아내가 검붉은 액체로 사납게 물든 벽지를, 마른 핏자국마냥 점점 가뭇하게 변해가는 얼룩을 계속 방치해두고 있었다. '웬만한 건 나 혼자 할 수 있는데 도배는 당신이 도와줘야 한다'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그러다 어느 땐 나 역시 피곤하고 귀찮아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그러니까 토요일이라 자정 넘도록 거실에서 티브이를 본 내게, 까무룩 눈꺼풀이 내려와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까 고민하던 내게 아내가 도배를 하자 한 거였다.
-미진아, 거기 좀 잡아줄레?
-여기?
-응.
아내가 줄자 끝을 바닥에 가만 눌렀다. 줄자 끝이 기역자로 구부러져 바닥에 잘 붙지 않는 탓에 잘못하면 중간에 튕겨나갈 수 있었다. 도배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2,3미터 부근에 연필로 작게 표시를 했다. 실제 치수보다 3센티미터쯤 여유를 두고서였다.
-이런 게 몇 장 필요해?
-세 장.
-그거면 돼?
-응, 충분해.
똑같은 크기의 벽지 세 장을거실 바닥에 펼쳤다. 단정한 미색 바탕에 흰 꽃이 자잘하게 돋은 벽지였다. 아내는 내가 고른 도배지가 썩 맘에 들지 않는 눈치이지만 한편으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는 표정이었다. 먼저 올리브색 벽면 아래 놓인 사 인용 식탁을 번쩍 들어 아내와 거실로 옮겼다. 아내가 만든 보조 의자 겸 수납함 하나만 남겨두고 벤치형 의자와 유아용 의자도 한쪽으로 치웠다. 그러곤 아내와 서로 마주서서 도배지 양끝을 잡고 욕실로 향했다. 미지근한 물을 받은 욕조에 도배지를 담그고 풀이 붇길 기다렸다. 잠시후 아내와 다시 도배지 끝을 잡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부엌으로 이동했다. 물 먹은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유리 나르듯 힘 조절을 잘해야 했다. 말 그대로 협동 작업이었다. 세로로 길게 세운 벽지 양 모서리를 잡고 까치발을 하자 종이 띁이 천장 몰딩에 닿았다. 내 품 안쪽 빈 공간에서 종이 아랫단을 잡은 아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신랑 키 크네.
오랜만에 보는 미소였다. 하지만 조금 쓸쓸해 보이는 웃음이기도 했다. 도배지를 벽면에 반쯤 붙이자 아내가 재빨리 뒤로 빠지며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도배지 아랫단을 벽면에 밀착시키고, 싱크대 물기를 훔칠 때 쓰는 조그마한 유리닦이로 겉면을 쭉쭉 문질렀다. 도배용 솔이 없어 적당한 기구를 찾다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유리닦이가 왕복운동을 할 때마다 물에 불은 풀이 부엌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사방에 풀냄새가 진동했다. 바닥엔 이미 신문지를 깔아둔 상태였다. 벽지를 꼼꼼하게 펴는 동안 아내는 물걸레로 바닥에 튄 풀을 부지런히 닥아냈다. 이윽고 도배지 한 장이 말끔하게 벽면을 채웠다. 아내와 잠시 뒤로 물러서서 정면을 바라봤다. 검붉은 얼룩이 지저분하게 번진 옆면에 비해 티 없이 깨끗한 공간을 보니 왠지 모를 자긍심이 들었다. 형광등을 갈거나 하수구를 뚫었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한 거였다.
-간단하네, 금방 끝나겠는데?
개수대에서 풀 묻은 손을 대충 헹구고 아내와 두 번째 도배지를 맞들었다. 이제부턴 첫번째 과정을 그대로 번복하면 될 터였다. 미지근한 물이 담긴 욕조에 도배지를 넣고 풀이 붇길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자연스레 벌거벗은 영우의 작은 몸과 엉덩이에 난 푸르스름한 자국, 불룩 나온 배, 부드럽고 따듯한 피부와 기분좋은 냄새가 떠올랐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엌 창문 좀 열까?
-응,
아내가 개수대 앞 작은 창을 열었다. 저그맣고 네모난 틀 안으로 힘센 바람이 회오리쳐 들어왔다. 아내가 몸을 웅크렸다.
-바람이 차네.
-문 닫을까?
-아냐 잠깐 열어두지 뭐, 냄새도 좀 빼고.
-그럴까? 그럼 여기 아래 좀 잡아줘.
벽지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아내를 바라봤다. 그새 도배순서와 요령을 익힌 아내가 자연스레 내 안쪽으로 들어와 벽지 아랫단을 잡았다. 서고 앉는 것만 다를 뿐 나와 같은 자세였다.
-11월이네.
무덤덤한 아내 말이 새삼 시렸다.
-그러네.
-곧 겨울 이불 꺼내야겠다.
-어, 새벽에 좀 춥더라.
-있지.
-어.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사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일 같아.
-그렇지.
-여보.
-어.
-혼자 일하느라 힘들지?
-뭐 늘 하는 일인데.
-내가 밥도 잘 못 챙겨주고.
-자기나 잘 먹어.
-여보.
-어.
-우리 도배 끝나면 다음 주에··· ···
-··· ···
-그 돈 헐자, 빚 갚아야지.
-··· ···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겨우 참았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잠을 설치다, 혹은 그 돈을 쓰자 하면 아내가 나를 괴물로 보지 않을까 뒤척인 날들이 떠올랐다.
-응? 그렇게 하자.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유리닦이로 벽면을 꼼꼼히 문지르며 울룩불룩 벽지가 뜬 자리를 반듯하게 폈다. 그러곤 속으로 ‘오늘은 아내가 일어나는 날이구나. 이제 막 일어서려는 참이구나··· ···’ 생각했다. 그러니 오늘은 내게도 영우에게도 중요한 날이라고, 벽지 든 두 팔에 새삼 힘이 실렸다. 유리닦이로 도배지를 훑으며 벽 중간쯤 내려오자 아내가 다시 내 등 뒤로 빠지며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줬다. 도배지가 얼추 자리를 잡자 아내가 물걸레와 마른걸레를 이용해 종이 위 풀을 닦아냈다.
-여기 이사 오고 참 좋았는데. 당신도 그랬어?
-어.
-우리가 살아본 중에 제일 좋았잖아. 그렇지?
그랬다.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 어딘가 가까스로 도착한 느낌, 중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튕겨진 것도 아니라는 거대한 안도가 밀려왔었다.우리 분수에 이 정도면 멀리 온 거라고, 욕심부리지 말고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영우가 떠난 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조용해진 이 집에서 아내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같은 도배지를 들고 있자니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이 벽 아래였나 하는, 우리가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내린 곳이,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었다.
-여보, 저기 종이 운 거 같은데,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디?
-저기.
-괜찮아, 며칠 지나면 흡착될 거야.
-저기는? 삐뚤어진 거 같은데?
-어디?
벽면에서 몇 걸음 떨어져 도배지 무늬와 세로선을 살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이쪽으로 살짝 기울어졌어.
-어, 그러네.
두 번째 도배지를 살짝 떼어 균형을 맞춘 뒤 제자리에 붙였다. 다행히 풀이 금방 마르지 않아 교정이 가능했다.
이제 세 번째 벽지만 바르면 다 끝날 터였다. 아내와 하나 남은 셀프 도배지를 들고 욕실로 이동했다.
-한꺼번에 불린 뒤 개어놓을 걸 그랬다.
-풀 마를까봐 그랬지.
-잠깐만, 이것 좀 치우고. 아내가 벽에 붙은 수납함을 뒤로 빼냈다. 한쪽 면이 뻥 뚫린 사각 함이었다. 우리는 그걸 영우 식탁 옆에 두고 보조 의자 겸 수납함으로 썼다. 식탁을 거실로 옮길 때 같이 치울까 하다, 도배중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데가 있으면 사용하려 그대로 둔 거였다. 수납함을 들어올리자 바닥에 뽀얀 먼지가 네모나게 드러났다. 아내가 걸레에 물을 적시는 동안 나는 두번째 벽지 옆에 세 번째 종이를 포갰다. 물걸레질하느라 들썩이는 아내의 작은 등이 보였다. 나는 아내가 얼른 먼지를 훔쳐내고 내 안쪽으로 들어와 도배지 밑단을 잡아주길 바랬다. 그런데 바쁘게 걸레질하던 아내가 갑자기 꼼짝하지 않았다.
-여보?
-··· ···
-영우 엄마?
-··· ···
-미진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도배지 든 양송을 벽에서 떼지 못한 채 아내를 내려다봤다.
-여기··· ···
-응?
-여기 영우가 뭐 써놨어··· ···
-··· ···뭐라고?
-영우가 자기 이름··· ··· 써놨어.
아내가 떨리는 손으로 벽 아래를 가리켰다.
-근데 다 ··· ···못썼어··· ···
아내의 어깨가 희미하게 떨렸다.
-아직 성하고··· ···
-··· ···
-이응하고··· ···
-··· ···
-이응하고, 아니 이응밖에 못썼어··· ···
아내가 끅끅 이상한 소리를 내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영우가 제 이름을 쓰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따금 방바닥이나 스케치북에 그림도 글씨도 아닌 무언가를 구불구불 그려넣는 건 알았다. 그런데 제대로 앉거나 기지도 못했던 아이가 어느 순간 훌쩍 자라 ‘김’자랑 ‘이응’을 썼다니. 대견해 머리통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영우의 새까만 머리카락은 또 얼마나 차지고 부드러웠는지,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영우를 다시 안아보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부엌 창문 사이로 11월 바람이 사납게 들어왔다.
-기억나.
-뭐가.
-영우 눈.
-··· ···
-불을 보던 우리 아이 눈.
-··· ···
-내 생일에 당신이 케이크를 사왔잖아, 여기 식탁에서 같이 초에 불붙이고, 그때 영우는 태어나서 촛불 처음 보는 거였는데, 불을 무슨 엄청 신기한 사물 보듯 응시했잖아? 그날 내가 두 돌도 안 된 영우한테 장난으로 ‘영우야, 오늘 엄마 생일인데 뭐해줄 거야?“ 하고 물었어. 그랬더니 영우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그 말도 못하던 애가 잠시 고민하더니 갑자기 막 손뼉을 치더라고. 영우가 나한테 박수 쳐줬어, 태어났다고··· ···
아내는 연주를 끝낸 뒤 수천 명의 기립 박수를 받은 피아니스트 마냥 울었다. 사람들이 던진 꽃에 파묻힌 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마냥 내가 붙들고 선 벽지 아래서 흐느꼈다. 미색 바탕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흰 꽃이 촘촘하게 박힌 종이를 이고서였다. 그러자 그 꽃이 마치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진 조화처럼 보였다.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놓은 국화 같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이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 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그러곤 내가 아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내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 텅 빈 눈동자가 불 꺼진 형광등처럼 어두웠다. 아내는 영우가 직접 쓴, 아니 쓰다 만 이름을 어루만졌다. 순간 어디선가 영우가 다다다다 뛰어와 두 팔로 내 다리를 감싸안을 것 같았다. ‘토닥토닥’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재 엄마 등을 말없이 두드려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그 단순한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후벼팠다.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부엌 바닥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툭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손에서 벽지를 놓을 수 없어, 그렇다고 놓지 않을 수도 두 팔을 든 채 벌서듯 서 있었다. 물먹은 풀이 내 몸에서 나오는 고름처럼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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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題가 立冬이라......^^
김애란 작가 참 얘기꾼이네
입동 무렵으로 와서 나도 동공에 서리를 만들어 놓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