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0
#출애굽기 #모세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아마도 모세보다 적어도 열살이상 많았을것이고,바로의 딸 앞에 나아가서 벌벌떨면서 울먹이고 흐느끼면서 유모를 데려올것을 제안했을것이다.바로의 딸은 미리암이 모세의 누나인것과,데려온다는 유모가 모세의 엄마인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를 비롯한 왕궁의 사람들은 공주가 양자삼은 모세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모를리 없었을것이고 모세는 그들에게 있어서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을것이다.모세는 비록 공주덕분에 왕궁에서 호사를 누릴수 있었어도 왕궁의 애굽인들에게 심한 차별과 멸시를 받아왔을것이다.모세가 바로의 왕궁에서 총애를 받았다면,애굽인 하나 죽인것쯤은 바로의 권위로 덮을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바로는 모세가 애굽인을 죽인것을 그를 처단할 절호의 기회로 삼은것이다.
미디안은 이스마엘의 후손이다.제사장은 고대의 어느 족속이나 가장 높은 존귀와 공경을 받게 마련인데,르우엘은 미디안의 제사장이면서도 족속들과 함께 살지않고 산속에 거하며,심지어 딸들은 목자들에게 하대를 받는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그와 가족들은 미디안에서 추방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그들이 쫓겨난 이유는 아마도 제사장으로서 미디안이 섬기는 이방신을 숭배하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 여호와만을 섬기기로 했기 때문일것이다.르우엘이 모세를 사위로 받아들인것은 아마도 그리스도 여호와께로부터 모세에 대한 모종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일것이다.
모세는 태어나고서 애굽에서 할례를 받지는 않았을것이다.출애굽 이후에도 모세가 할례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그렇다고 백성들에게 할례를 명할때 자신도 함께 받았다고 하기는 어렵다.적어도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명령을 주실때에는 모세가 할례받은 상태라고 보아야 할것이다.아마도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장막에 거하면서 이드로에게서 할례를 받을것을 제안받았고 이드로로부터 할례를 받았을 것이다.그러나 할례의 고통이 워낙에 심했기때문에 할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그래서 자신의 아들들에게는 이드로의 권유를 무시하고 일부러 할례를 행하지 않았을것이다.때문에 그리스도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보내시면서 수십년전의 불순종을 죽음의 위협으로 갚으신 것이고,십보라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아버지 이드로의 권유를 무시했다가 징벌을 받게된 남편 모세를 책망한것같다.십보라는 아들의 포피를 남편앞에 던진것이 아니라,모세의 발에 살며시 가져다 댄것이다.
모세의 아비 아므람은 자기의 고모인 요게벳과 근친혼을 했는데,이를 통해서 애굽의 이스라엘은 근친혼을 일삼을만큼 성적으로 매우 타락하고 부패했었다는 것을 짐작할수있다.이러한 성적인 문란함이 아마도 애굽에서 이스라엘 인구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원인이었을 것이다.그들은 자기들의 음욕대로 범죄했어도 그리스도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보존하는 방편으로 선을 이루셨다.
고라는 아론과 사촌지간이고 아마도 아론과 나이가 비슷했을 것이다.이러한 관계로 인해서 그는 모세와 아론을 시기하여 다단과 아비람과 더불어 반역을 일으켰다가 갈라진 땅에 먹혀버리는 형벌을 당하게 된다.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 내리신 열가지 재앙들은 요한계시록의 세 일곱재앙들을 예표한다.처음 세 재앙까지는 아론이 모세의 명을 따라 내리다가 넷째 재앙부터 모세가 직접 재앙을 내리는것은,계시록의 처음 두 일곱 재앙인 일곱 봉인과 일곱 나팔 재앙은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땅의 하나님의 두 증인들에 의해 내려지다가,재림과 성도들의 부활과 승천후에 내려지는 일곱대접 재앙들은 주님께서 직접 부으신다는 것과 대비된다.애굽의 첫 세 재앙까지는 고센이 제외되지 않다가 넷째 재앙부터 고센지방이 구별된것은,주님 재림 전 두루마리의 일곱 봉인과 일곱 나팔 재앙은 이땅의 악인들과 더불어 교회와 성도들도 받게 되다가,주님 재림 후의 일곱 대접 재앙들은 이땅에 남겨진 악인들만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위,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은 영화 십계나 만화영화 이집트의 왕자에서처럼 모세가 손을 뻗거나 지팡이를 바다에 꽂았을때 한순간에 갈라진것이 아니라,밤새도록 동풍이 불어서 갈라지고 바닥이 마르게 된것이다.그런데 동풍은 홍해에만 영향을 미치고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러지 않았으므로,지면과 수평으로 분것이 아니라 거의 위에서 수직에 가까운 사선으로 내려꽂듯이 불었을 것이다.성경에서 동풍은 매우 뜨겁고 건조한 바람으로 나오므로,홍해가 갈라진 바닥은 진흙탕처럼 질퍽인 땅이 아니라 물기가 한방울도 없는 바짝마른 땅이었다.
#20220320
#요한계시록 #Revelation 5:10-14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祭司長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王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You have made them to be a kingdom and priests to serve our God, and they will reign on the earth."
et fecisti nos Deo nostro regnum, et sacerdotes : et regnabimus super terram.
καὶ ἐποίησας αὐτοὺς τῷ Θεῷ ἡμῶν βασιλείαν καὶ ἱερεῖς, καὶ βασιλεύσουσιν ἐπὶ τῆς γῆς.
어린 양이신 주님께서 핏값으로 사신 성도 각자를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신다는 것은 우리 한명한명을 왕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누구를 어떻게 다스리는 왕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 땅에서는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만이 부릴 수 있으신 천사들을 그 때에는 성도들이 부리게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매우 유력하다. 하나님 나라와 지옥은 교류가 불가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지옥에서 고통 당하는 자들을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각 나라의 왕들이 어떤 공통된 목적을 위해서라면 서로 동맹을 맺고 협력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의 성도들도 각자가 왕이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더 크고 웅장하게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일에는 서로 동맹을 맺고 협력할지도 모른다.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는 우리로 희생제물을 드리게 하려하시는 것이 아니라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제물로 드리게 하려하시기 위함이시다. 하나님의 희생제물은 주님께서 스스로 감당하셨으므로 우리는 아무 희생도 드릴 것이 없다. 성도들이 비록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여 희미한 가운데서 헤매는 것 같더라도 무시하거나 폄훼해서는 안되고 우리가 가늠하지 못하는 엄청난 존귀가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와 왕, 선지자와 제사장 직분은 겸할 수 있었어도 왕과 제사장 직분은 겸할 수 없었으며 오로지 그리스도이신 멜기세덱만이 유일하게 왕과 제사장 직분을 겸하였었다.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각별하게 친구처럼 지내게 하신 모세조차도 왕과 제사장을 겸임하는 것을 한시적으로나마 맛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왕과 제사장으로 세움받는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멜기세덱과 주님 당신 자신과 방불할만큼 높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땅에서 왕 노릇을 할것이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땅은 성도들의 영원한 안식처나 기업이 아니라 단지 잠시 나그네처럼 머물고 거쳐가는 곳에 불과하고 주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공중권세 잡은 자의 수중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이 땅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하늘에 속한 존재임을 인식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나실인처럼 이 땅과 구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 땅에서 왕 노릇 한다는 의미이다. 잠언에도 일렀듯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더 큰 자라 하였으므로 성을 빼앗는 자가 그 성의 왕이라면 성도는 자신의 몸과 영혼을 신앙으로 다스리기 때문에 왕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참된 성도들은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국가나 사회나 정부의 제도와 문화에 대해서는 복음 안에서 순종하고 자신들이 이를 변혁하려거나 다스리려거나 위세를 떨치려 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과 교회의 신앙을 위해서 정진할 뿐이다. 교회와 신자들이 세상의 정치와 제도들에 순응하지 않고 무력이나 세력이나 재력이나 영향력 등의 위세를 가지고 바꾸려 하는 것은 자기들의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 복음을 자의적으로 가감하고 왜곡하는 가증한 죄악 짓거리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만이 성경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체제라고 하면서 이런 이념으로 잣대를 삼아 정죄하고 판단하며 자기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부나 국가 지도자에 대해서는 정당한 권세라도 사사건건 트집과 꼬투리를 잡아 물리력을 행사하는 교회와 교인들은 거짓으로 미혹하고 미혹된 사탄의 회당과 거짓 사도들과 거짓 신자들에 불과하다. 교회와 신자들이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더욱 용이하게 전파하며 교회를 위해 더욱 크고 많은 헌신과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귀영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도 신앙을 빙자하여 세상에서 육적인 왕 노릇하려는 허울좋은 구실에 불과하다. 개인의 세속적인 입신양명을 위해서 교회의 세력이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것이나, 목사라는 직위를 가지고 교회와 교인들을 좌지우지하며 전횡을 일삼는 것도 세상에서 그릇되게 왕 노릇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장로라 하거나 원년 멤버라 하면서 다른 교인들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는 것도 그릇된 왕 노릇이다. 이 땅에서 그릇된 왕 노릇하는 자들은 아무리 스스로 교회라 신자라 주장하더라도 주님에 의해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세움받지 못한다.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寶座와 生物들과 長老들을 둘러 선 많은 天使의 音聲이 있으니 그 數가 萬萬이요 千千이라
Then I looked and heard the voice of many angels, numbering thousands upon thousands, and ten thousand times ten thousand. They encircled the throne and the living creatures and the elders.
Et vidi, et audivi vocem angelorum multorum in circuitu throni, et animalium, et seniorum : et erat numerus eorum millia millium,
καὶ εἶδον, καὶ ἤκουσα φωνὴν ἀγγέλων πολλῶν κύκλῳ τοῦ θρόνου καὶ τῶν ζῴων καὶ τῶν πρεσβυτέρων, καὶ ἦν ὁ ἀριθμὸς αὐτῶν μυριάδες μυριάδων καὶ χιλιάδες χιλιάδων,
우주의 크기에 대한 우주과학 동영상을 보면 지구에서부터 시작에서 태양계와 우리은하와 은하단 등으로 점점 확대되는 것이 있는데 요한 사도가 목격한 보좌와 그룹들과 장로들을 둘러싼 수많은 천사들에 대한 묘사도 보좌에서부터 점점 확대된다. 보좌와 그룹들과 장로들을 둘러싼 천사들이 은하계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지 성단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요한 사도가 목격한 천사들의 무리는 선지자 엘리사와 그의 사환이 자신들을 잡으러 온 아람 군대를 둘러싸고 있는 천사들과 불병거 보다도 더 많고 웅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천사들의 위용이 아니면 초라하거나 쓸쓸하거나 심심하거나 하셨을 것이므로 그들을 창조하셨을 것이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오직 홀로 계셨을 때에도 아무런 부족함이나 고독함 없이 완전충만하게 자족하셨기 때문에 굳이 그 수많은 천사들을 지으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감히 당신을 보위하고 보필하며 경배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특권과 은혜를 주시려고 천사들을 지으신 것이었다. 그런데도 천사들 중 일부가 교만해져서 주님의 보좌를 찬탈하여 북극 집회를 주관하려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반역했다가 하늘에서 쫓겨나 사람을 속이고 땅의 공중권세를 잠시 찬탈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교회와 성도들을 괴롭히고 미혹하는 마귀의 권세는 매우 크고 막강한 것 같지만 실상 그들은 숫적으로도 천사들보다 못해서 기껏 해봤자 엘리사를 잡으러 온 아람 군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의 초라하고 연약한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하늘의 천사들이 워낙에 크고 막강한데다 더이상 타락할 여지가 없으므로 고난이나 고통을 당할 염려가 없어서 부러울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타락하지 않고 계속 주님의 보좌를 둘러싸서 창화하는 천사들도 분명 복된 존재이긴 하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을 위해서는 세상을 만들지도 않으셨고 천사들을 자녀처럼 대하지도 않으셨으며 천사들을 위해서 피를 흘리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는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시고 작정하셨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만드셨으며 사람으로서 영원하신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한번 타락한 천사들을 위해서는 그 어떤 구속도 행하지 않으셨어도 범죄하여 타락한 인간을 위해서는 직접 피를 흘려 희생제물이 되어주셨고 하나님이신 성령까지 보혜사로 우리에게 거저 주셨다. 천사들에게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완벽한 순종을 원하셨어도 우리에게는 비록 더디더라도 날마다 조금씩 신앙이 장성해가는 것을 원하신다.
12 큰 音聲으로 이르되 죽임을 當하신 어린 羊은 能力과 富와 智慧와 힘과 尊貴와 榮光과 讚頌을 받으시기에 合當하도다 하더라
In a loud voice they were saying: "Worthy is the Lamb, who was slain, to receive power and wealth and wisdom and strength and honor and glory and praise!"
dicentium voce magna : Dignus est Agnus, qui occisus est, accipere virtutem, et divinitatem, et sapientiam, et fortitudinem, et honorem, et gloriam, et benedictionem.
λέγοντες φωνῇ μεγάλῃ Ἄξιός ἐστιν τὸ Ἀρνίον τὸ ἐσφαγμένον λαβεῖν τὴν δύναμιν καὶ πλοῦτον καὶ σοφίαν καὶ ἰσχὺν καὶ τιμὴν καὶ δόξαν καὶ εὐλογίαν.
수많은 천사들은 그룹들과 장로들과 다르지 않고 동일하게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찬양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나 강압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번폐스럽게 여겨 기계적으로 내지르듯이 하는 것도 아니다. 천사들은 어린 양이신 주님께서 성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떻게 해오시는지를 직접 보아왔기 때문에 그 신비함과 기이함에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자발적으로 크게 찬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런 주님의 기이한 사역을 천사들처럼 직접 보지 못하고 단지 오래전에 기록된 성경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믿음으로써 희미하게밖에 알지 못하므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도 매우 빈약하고 제한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육적인 환경이 우리의 게으르고 타성에 젖은 찬양을 합리화 할 수는 없으며 우리가 천사들처럼 기쁨에 겨워 찬양하지 못하는 것을 통탄히 여기며 언젠가는 천사들처럼 큰 음성으로 기쁘게 찬양할 수 있는 그 날이 서둘러 오기를 소망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찬양해야 할 것은 사람으로서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희생제물처럼 죽으셨다는 것과 그분이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과 권능과 존귀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이다.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被造物이 이르되 寶座에 앉으신 이와 어린 羊에게 讚頌과 尊貴와 榮光과 權能을 世世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Then I heard every creature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and on the sea, and all that is in them, saying: "To him who sits on the throne and to the Lamb be praise and honor and glory and power, for ever and ever!"
Et omnem creaturam, quæ in cælo est, et super terram, et sub terra, et quæ sunt in mari, et quæ in eo : omnes audivi dicentes : Sedenti in throno, et Agno, benedictio et honor, et gloria, et potestas in sæcula sæculorum.
καὶ πᾶν κτίσμα ὃ ἐν τῷ οὐρανῷ καὶ ἐπὶ τῆς γῆς καὶ ὑποκάτω τῆς γῆς καὶ ἐπὶ τῆς θαλάσσης ἐστίν, καὶ τὰ ἐν αὐτοῖς πάντα, ἤκουσα λέγοντας Τῷ καθημένῳ ἐπὶ τῷ θρόνῳ καὶ τῷ Ἀρνίῳ ἡ εὐλογία καὶ ἡ τιμὴ καὶ ἡ δόξα καὶ τὸ κράτος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하나님 나라의 그룹들과 장로들과 천사들의 찬양 외에도 요한 사도는 우주의 모든 생물이 귀에 들리는 명백한 음성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을 듣는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지저귀는 것도 땅 위의 짐승들이 울부짖는 것도 땅 아래에나 바다 생물들이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그 어떤 소리를 내는 것도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처럼 보좌에 앉으시고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소리인 것이다. 지금은 피조물들이 죄와 사망의 권세로 인해 심판주께서 하루빨리 오시기를 탄식하고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심판주로 오신 이후에는 피조물들도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짐승들의 혼은 땅으로 내려간다는 솔로몬의 전도서를 근거로 짐승들의 영혼은 죽으면 소멸된다고 하는 해석은 보류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을 불멸한 존재로 지으신만큼 동물들의 영혼도 그렇게 지으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동물들의 영혼의 불멸 여부는 우리 신앙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므로 지나친 논쟁은 피해야 한다.
14 네 生物이 이르되 아멘 하고 長老들은 엎드려 敬拜하더라
The four living creatures said, "Amen," and the elders fell down and worshiped.
Et quatuor animalia dicebant : Amen. Et viginti quatuor seniores ceciderunt in facies suas : et adoraverunt viventem in sæcula sæculorum.
καὶ τὰ τέσσερα ζῷα ἔλεγον Ἀμήν, καὶ οἱ πρεσβύτεροι ἔπεσαν καὶ προσεκύνησαν.
아멘이란 말은 우리가 그저 기도 후렴구처럼 별다른 인식없이 사용해도 되는 그런 말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면서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장차 모든 세계를 심판하실 분이시라는 것과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질 것을 굳은 믿음으로 확증하는 용어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멘이라 할 때는 주문처럼 의미없이 중언부언해서도 안되고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한 기도에 써서도 안되며 오로지 성경과 성령에 입각하여 주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한 기도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설교자가 설교중에 청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멘을 유도하는 것도 가급적 금해야 한다.
#20200320
#출애굽기 #Exodus 제 8 장
둘째 재앙 : 개구리가 올라오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3 개구리가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4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6 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7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8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9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10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11 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12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13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14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하나님께서는 두번째 재앙으로 애굽 전역에 개구리를 보내시는데 이 때도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사항을 아론에게 전달하고 아론이 애굽 전역의 물 위에서 개구리를 올라오게 한다. 이 개구리 재앙 또한 피의 재앙과 마찬가지로 애굽인들 뿐만 아니라 처음에 모세를 거부했던 히브리인들도 함께 당해야 했다. 애굽의 술사들도 여기까지는 모세와 아론을 흉내내어 개구리를 물에서 올라오게 하지만 그 규모로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피의 재앙에서는 눈 하나 깜빡 안하던 바로조차도 개구리 재앙 앞에서는 자기 술사들도 흉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에게 개구리를 없애줄 것을 요청하고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개구리가 밖으로 나와 죽게 한다. 개구리는 그 모양으로나 촉감으로나 뱀과 같이 호감을 주지 못하고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짐승에게서 나오는 세 더러운 영을 개구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 혐오스러운 개구리가 한 두 마리도 아니고 길거리와 집안 가득 여기저기 있는데다 심지어 사람에게 수시로 들러붙는다고 생각해보라. 비위가 약한 자들은 하루 이틀 만에 노이로제성 정신질환에 걸리고도 남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모세가 바로의 요청을 들어줘서 개구리가 사라진 다음도 문제다. 그 개구리들은 곱게 사라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기 목숨을 버려가면서 애굽에 악취를 남긴다. 애굽의 그 무더운 기후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개구리 사체들이 한꺼번에 썩으면서 내는 악취의 고통 또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개구리 재앙에서 살짝 의아한 것은, 개구리를 올라오게 한 것은 아론이 모세의 지시를 받아서 한 것이었는데 개구리를 멈주게 한 것은 아론이 아니라 모세가 직접 하나님께 간구해서였다. 즉,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는 개구리를 올라오게 하라는 명령은 받았으나 멈추게 하는 명령은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이 개구리 재앙을 멈추기 위해서는 자기도 받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여쭤야 했던 것이다. 만약에 모세가 바로의 청을 단호박 거절 했다면 애굽은 개구리 재앙으로 멸망되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모세는 개구리가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개구리들이 자기들이 나온 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냥 집 밖으로 나와서 거기에서 죽은 것이었다. 어쩌면 당시 모세는 아직 마음이 여려서 완악한 바로라 해도 개구리 재앙을 당한 것이 불쌍해 보여서 하나님께도 조금 긍휼히 여기실 것을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완악하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으므로 모세의 간구대로 개구리를 깔끔하게 치우시지 않고 길거리에서 무더기로 죽게 하셔서 끝까지 징치하신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어설픈 연민 때문에 도대체 회생 가능성이 없는 멸망 당하기에 합당한 악인들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악인들이 조금이라도 외적으로 표면적인 반성을 하는 기미를 보이면 그들이 그동안 저지른 추악한 죄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섣불리 회개와 용서를 단정해 버림으로써 그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악인들에게 어설프게 연민을 베풀고 면죄부를 주는 기독교인들은 실상은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의롭고 사랑이 넘치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악인이 회개하거나 의인이 배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일이기 때문에 일말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예외적이고 비상적인 상황을 일반화 해서는 안되고 보편적이고 통상적인 상식을 기준으로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악인들이 회개할 희박한 가능성을 두고 기도하는 것보다 그 악인들이 먼저 하나님께 자기 죄를 심판받기를 기도해야 맞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심판이 어떻개 이루어지든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의 완악함은 바로 자신의 의지 때문이라고도 하고 하나님께서 완악하게 하셨다고도 한다. 전자로만 치우치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선이나 악을 행할 수 있다고 보고 후자에만 치우치는 사람들은 인간의 의지를 부정하고 기계적인 존재로 보기도 한다. 성령을 보혜사로 받지 못한 자들이나 신자라 하더라도 아직 충분히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어린 신앙의 신자들로서는 이 두가지 견해가 상호배타적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당신의 불변하시는 작정과 섭리와 인간의 의지는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신비로운 상호연합하는 원리이므로 상충되지 않는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 전에 모든 일을 변하지 않게 작정하셨고 그대로 섭리하셔서 이루어 가신다. 그 과정에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의인이건 악인이건 인간의 의지 자체는 강제적으로 간섭하지 않으시고 적절한 한계 내에서 자유롭게 행하게 하는 방식으로 신비스럽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악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짓는 죄악의 한계와 범위를 지정하셔서 마치 성난 파도가 어느 이상 넘어서지 못하게 하시듯이 악인들의 악행을 통제하시는 것이다. 그 악행의 빗장과 경계를 바로에게는 좀 더 풀어 놓으시고 넓혀 놓으신 것으로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의 완악함과 죄악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트집을 잡는다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사시라고만 말하고 싶다.
반면에 모세를 비롯한 성경의 하나님의 사람들과 지금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순종과 선행과 견인(견고한 인내)과 성화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인가. 이는 성령께서 보혜사로서 신자들의 죽았던 영에 생명을 불어 넣으셔서 다시 살리시고 악인들처럼 완악한 심령을 부드럽게 하셔서 신자들이 자기들의 새롭게 변화된 의지로 조금씩 선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중생한 영은 마치 크고 위험한 수술을 마친 환자와 같아서 곧바로 하나님의 큰 일을 행할 수는 없다. 수술 받은 환자가 일정기간 재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중생한 신자들도 영적 재활과 양육을 통해서 조금씩 영이 성령으로 회복 되어야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의 선한 의지는 성령께서 강제적으로 간섭하시지도 않으시고 그저 선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시고 끊임없이 설득하심으로써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를 비롯한 모든 신자들의 선행은 신자 자신의 전적인 의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하심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 영적 원리는 성령을 받지 못하거나 희미하게 받은 이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셋째 재앙 : 티끌이 이가 되다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17 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티끌이 이가 되는 재앙도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지시사항을 아론에게 전달하여 아론이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내려침으로써 일으킨 것이다. 땅의 티끌의 수를 셀 수 없듯이 발생한 이의 수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수많은 이떼가 사람과 가축의 온 몸에 들러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것이다. 한 여름밤에 물웅덩이가 있는 산 속에서 모기떼에 둘러싸여 뜯기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애굽 술사들도 이것부터는 흉내내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팔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티끌이 이가 되는 재앙도 앞의 두 재앙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인들도 대상이었다.
넷째 재앙 : 파리가 가득하다
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1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22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23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24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29 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30 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니
31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그 파리 떼가 바로와 그의 신하와 그의 백성에게서 떠나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32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넷째 재앙인 파리 재앙에서는 앞의 세 재앙과 다른 점들이 있는데 하나는 이 때부터 모세가 더 이상 아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바로에게 말하고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재앙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센 땅에 구별하셔서 재앙에서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모세는 앞의 세 재앙을 보면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계셔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이 강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앞의 세 재앙을 히브리인들에게도 내리심으로써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권세를 충분히 드러내셨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그 조그마한 파리들도 더럽고 혐오스러운데, 이 지역의 파리들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데다 모기처럼 사람이나 가축을 물어 피를 빨고 수면병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그런 무시무시한 파리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파리가 한 두 마리만 눈에 띄어도 질색하며 뿌리칠텐데 개구리보다 더 많은 어마무시한 파리떼가 온 몸과 음식들과 집기들에 붙어 드글드글 댄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역겨운지 모른다. 그 와중에 바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세와 히브리인의 제사에 대해서 타협을 시도하다가 결국에는 또 약속을 파기해 버린다. 진화론 과학자들은 이 파리 재앙을 개구리 사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정하며 결국 대화산 폭발로 야기된 자연재해의 연장선으로 본다. 그러나 그들은 파리떼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고센 지역만 피했는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설명하지 뭇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