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7章 옥룡(玉龍)의 눈물(淚) 하남(河南) 깊숙한 곳. 여름의 뙤약볕인데도 이마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걷는 자의인 하나가 있었다. 중년의 사나이인데, 등에 한 자루 고검을 메고 있었다. 그는 숭산을 향해 나 있는 기나긴 관도를 따라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자옥패가 천사교의 물건이라니… 흠, 그 사연이 어떠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는 목걸이 삼아 걸고 있는 자옥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 하나만으로 야명주 한 상자 값이라면 설명이 다 될는지. "이비연이란 계집이 목에 걸고 있던 것은 내가 이진천에게 뺏긴 것과 아주 흡사하나, 사실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그는 마음 속의 고민거리를 입 밖으로 토해 내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진천이 그 계집에게 나의 옥패를 주어, 그 계집이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어 모양이 약간 달라진 것일까?' 궁리하며 걷는 자의인은 바로 냉옥룡이었다. '아니면, 천산에 있는 천사교이기에 천산곤옥(天山崑玉)으로 신패를 만든 것일까?' 냉옥룡은 이비연이 목에 걸고 있던 옥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 생각이 옳을 것이다. 귀하디귀한 것이라고는 하나, 단 하나뿐인 물건은 아니다. 그리 심각히 여길 것은 없다.' 그는 만사를 대범히 평가하리라 생각하며 마음 속의 번민을 훌훌 털어 버렸다. 그는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렸다.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 관도 모퉁이를 돌아가던 냉옥룡은 길가에서 흰 그림자가 번뜩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휙- 휙-! 갈매기가 사람 기척에 놀라 푸드득거리며 날아가는 듯, 백의의 두 사람이 관도 곁 수풀 안에 있다가 냉옥룡이 다가서는데 놀라 훌쩍 몸을 날려 도망치는 것이었다. 동해에서 비전되는 경공술, 그 수법을 익혔다면 천하맹의 무사들이 분명했다. 냉옥룡은 그 뒤를 쫓을까 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하맹도라 해도 굳이 쫓을 필요는 없다. 당금 천하의 정세는 천하 사람 모두가 맹도인 셈이다. 천하맹도 모두를 원수로 하다가는, 만나는 사람을 모두 죽이는 일이 생길 것이다. 하여간 표묘장 무리들이 많은 것을 이뤘다.' 냉옥룡은 두 사람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희들이 이진천의 부하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당금 천하에서 가장 귀한 신세인 무적신옹 이진천의 장례가 목전에 있다는 것을 알거라.' 냉옥룡은 살광을 흘리다가 다시 빠른 속도로 신형을 폭사시켰다. 그는 여러 가지 신법을 번갈아 사용했다. 어떤 때에는 비룡신법(飛龍身法)을, 어떤 때에는 칠금신법(七禽身法)을 써서 달렸다. 이유는 천수동부 안에서 익힌 절기들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는 백 권의 비급을 통째로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능수능란히 쓴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였다. 강호에 나온 이후 무적(無敵)이기는 했으나, 그는 천수옹이 남긴 절학 중 반 정도만을 완벽히 익힌 상태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비급을 남긴 천수옹도 비급을 다 익혔던 것은 아니었다. 냉옥룡은 수십 개 문파의 절예를 한 몸에 얻은 무림 사상 초유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 오랜 수련의 시간을 거쳐야 절정의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냉옥룡이 가파른 산비탈과 관도를 끼고 관도를 지나칠 때였다. 돌연. 땡-! 큰 종 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는 순간,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 왔다. 핑- 피핑-! 사방에서 수천 수만 개의 독암기가 빗발치듯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검은 그물이 쳐지는 듯, 냉옥룡의 몸뚱이가 암기로 인해 가려질 정도였다. "고약한 자들이로군!" 냉막한 목소리와 함께, 자의인영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팟팟팟-! 독암기가 호신강기에 부딪치며 먼지로 화했고, 냉옥룡은 허공을 밟으며 삼 장 높이로 떠올랐다. "흥! 어떤 놈들이냐?" 냉옥룡이 허공에 떠서 외칠 때. "자의광객! 과연 명불허전이군. 하나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용사들이 있으니, 여기서 최후를 마쳐야 한다!" 노한 목소리와 함께 풀숲에서 부수수 일어나는 백의인들이 있었다. 수는 대략 오십 정도. 하나같이 초절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 듯 태양혈이 불끈 솟아 있었다. 그들의 옷자락에는 세 글자가 붉은빛 수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천하맹(天下盟)> 차창- 창-! 백의인들은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등에서 장검을 뽑아 내며 허공에 떠 있는 냉옥룡을 중심으로 하나의 검진을 만들었다. 한순간, 검풍(劍風)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냉옥룡을 올려다보며 빙글빙글 도는 백의인의 눈빛은 하나같이 흉악했다. 냉옥룡은 살광 수십 줄기에 접하자, 뱃속에서부터 무시무시한 살성(殺性)이 들끓어 올랐다. '모두 없애 버리겠다.' 냉옥룡은 노화를 이길 수 없어 입술을 악물다가 아주 차게 말했다. "이진천이란 놈의 주구(走拘)들이군!" 그의 목소리가 여운을 맺기 전. "우리는 표묘사십칠웅(飄妙四十七雄)이다. 네놈을 잡기 위해 표묘장에서 달려나왔다." "흐흐흐… 네놈이 천면의 자의광객(紫衣狂客)임을 안다. 하나, 그 이름은 표묘사십칠옹에 의해 이 곳에서 묻힐 것이다." "천하의 색마(色魔)! 퉤!" "능지처참하리라!" 사십칠 인은 한 마디씩 욕을 하며 냉옥룡이 진중(陣中)으로 떨어져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냉옥룡은 무게가 없는 사람인 듯, 허공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 신법은 곤륜파(崑崙派)의 절기였고, 강호의 신법 중 최상승 신법이라는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공할 내공의 뒷받침 없이는 시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표묘장이라고? 후후… 이가 놈의 개들이로군!" 냉옥룡의 살기가 한결 더해졌다. 그는 아주 잔혹스러운 눈빛을 하다가 허공에서 두 다리를 비틀어 곧바로 칠 장 비스듬히 날아갔다. 순간. "으으, 놈이 검진을 벗어났다." "낭패다! 놈의 신법이 저 정도인 줄 몰랐다니……." 냉옥룡이 진중으로 떨어져 내리리라 기대하고 있던 표묘사십칠옹은 아연실색하며 냉옥룡 쪽을 바라봤다. 그 때. "하하… 그 까짓 풍운육합대진(風雲六合大陣)이 무서워 경신법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다!" 냉옥룡은 밑으로 떨어질 듯하다가는 다시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원래 있던 곳으롤 되돌아왔다. 그가 사십칠웅의 머리 위로 날아들자, 돌연 위맹한 강풍이 휘몰아쳤다. 태산이 밀려오듯, 해일이 다가오듯, 무형강기(無形 氣)가 무지막지한 기세로 검진을 휩쓸어 버렸다. 검진(劍陣)이 격랑에 휘말린 일엽편주처럼 출렁거렸다. "으으……!" "이럴 수가?" 다급한 비명성이 터지며 표묘사십칠웅 중 태반이 손아귀에서 힘을 풀며 검을 떨어뜨렸다. "하하……!" 냉옥룡은 강풍( 風)으로 검진을 흐트러뜨리며 광소를 터트렸다. 만마(萬魔)를 물리친다는 신룡창. 수천 개의 뇌전(雷電)이 동시에 떨어지는 듯 굉음이 고막 속으로 파고들자, 표묘사십칠웅은 오장육부가 뒤흔들리는 충격을 받으며 오만상을 지푸렸다. 그들이 휘청거릴 때, 냉옥룡의 우수가 흔들리면서 회오리바람을 방불케 하는 강기가 일어나 그의 사위를 감아 왔다. 꽈르르릉-! 파도가 바위를 넘어뜨리는 듯하더니. "어이쿠!" "크으… 숨이 막히는군!" "이… 이 수법은 삼원신공(三元神功)이 아닌가? 무당파에서 실전되었다는 수법인데……." "아니다. 섬뢰신공(閃雷神功)이라는 것이다." "으으……!" 표묘사십칠웅 중 이십 명이 강기에 휩쓸려 벌렁벌렁 나뒹굴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때, 냉옥룡은 사십칠웅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완맥을 바짝 거머쥐고 있었다. "너희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느냐?" 냉옥룡의 목소리는 빙굴(氷屈)에서 흘러 나오는 목소리보다도 더 차가웠다. "그… 그렇다. 너를 찾기 위해 오천 명이 강호를 뒤지고 있다. 너… 너는 공적(公敵)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진천이 한 짓이겠군?" "그렇다." "그 놈은 어디에 있느냐?" "무… 무당산에 가셨다." "왜?" "모… 모른다." 사십팔웅의 우두머리가 겁먹은 투로 말할 때였다. 돌연, 금의인영 하나가 빠른 속도로 허공 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얼굴을 금빛 복면으로 가리고 있는 금의괴인, 그의 경공은 냉옥룡이 놀랄 정도로 초절한 것이었다. 금의인은 냉옥룡에게 철천지 원한을 갖고 있는 듯, 아주 잔혹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네가 자의광객이란 자냐?" "그렇다! 너는 누구냐?" 냉옥룡이 금나수로 사로잡은 자를 풀어 주며 금의인을 바라봤다. "나는 궁륭산(穹隆山)에서 온 사람이다." "궁륭산?" "사공수운을 알겠지? 사공수운을 구륭산으로 끌고 간 자라고 믿고 있는데?" "하하… 이제 보니 천하맹의 괴수(怪獸)시군. 그렇다. 내가 바로 사공수운을 오행곡에서 잡아 궁륭산으로 데려간 사람이다." "그럼 그 얼굴은 역용한 것이겠군?" "그렇다." 냉옥룡이 시원시원히 대답할 때. "……." 금의괴인은 입술을 질끈질끈 짓씹으며 원한 맺힌 눈빛을 뿜어 냈다. '이 자는 누구일까? 보통 신분은 아닌데? 흠, 이진천의 측근이겠군.' 냉옥룡이 그를 주시하다가. "이진천과 어떤 사이냐?" "이맹주(李盟主)를 바로 곁에서 받들어 모시고 있다. 노부의 임무는 천하의 마도(魔道)를 쓸어 버리는 것이다." "하하… 그럼 제일 먼저 이진천을 죽여야 할 텐데… 하하… 어이해, 이진천이란 놈의 종이 되었느냐?" "닥쳐라! 이 천하의 요사스러운 놈아!" "흥! 나를 그렇게 욕하다니……." 냉옥룡이 벌컥 화를 내자. "너하고 백 초를 겨뤄 보겠다. 네가 무슨 절기를 지녔기에 연일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는 것인지 알아보고 싶다." 금의괴인의 목소리는 아주 거칠었다. 질그릇 깨지는 소리라고나 할까? 냉옥룡으로서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변성해 말하고 있구나.' 냉옥룡은 아주 거칠고 듣기 싫은 목소리가 본래의 목소리가 아니고 변성해 말하는 목소리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왜 변성해 말하는 것일까?' 그가 야릇해 할 때. "냉옥룡! 어서 덤벼 봐라!" 금의괴인의 입술이 쩍 벌어지며 냉옥룡의 세 자 이름이 토해졌다. "내 이름을 알다니… 사공수운을 이미 만난 게로군." 그제서야 냉옥룡은 자신의 정체가 천하맹에 쫙 퍼진 후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이진천이 내가 살아 있다는 말을 사공수운의 입을 통해 듣고 똥줄이 타겠군. 후후…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복수의 경지이다. 너를 조급히 찾지 않는 이유는, 네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주기 위함이다.' 냉옥룡은 금의괴인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놀라워하지 않고 오히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후후……!" 냉옥룡이 비웃음을 흘리자. "으으, 천하의 앙큼한 놈! 여색에 미친 놈! 네놈이 세 여인을 망치다니……." 금의괴인이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세 여인을 망쳤다고?" 냉옥룡이 얼떨떨해 할 때. 창-! 금의괴인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입술을 꼭 다물며 등에서 보검을 뽑아 냈다. 길이가 네 자에 달하는 장검인데, 검자루에 표묘신검(飄妙神劍)이라는 네 자가 파여 있었다. 금의괴인은 표묘신검을 높이 쳐들며 사납게 외쳤다. "천하맹주께서 어제 노부에게 이 신검을 하사하시며 네놈을 잡아 죽여 그 목을 이 표묘신검으로 끊어 놓고 돌아오라 말씀하셨다." "흠, 표묘신검이라! 보기에는 날카로운 것 같으나, 나의 목을 끊기에는 너무도 무뎌 보이는군." "거만한 놈! 천하가 너 때문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네놈이 불사신보다 더한 존재라 해도!" 금의괴인의 몸이 검과 한 일자로 펼쳐졌다. 검자루를 두 손으로 쥐고 신검합일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우르르릉-! 뇌성 벽력이 일며 검기(劍氣)가 이 장 길이로 늘어났다. 그뿐이 아니었다. 신검합일에 든 금의괴인의 몸뚱이가 찰나지간, 아홉 개로 나뉘어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우르르릉-! 사방에서 금의인영이 나타났다. 사람은 분명 하나인데, 아홉 군데에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이것은……?" 비웃는 표정이었던 냉옥룡이 그 수법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런 절묘한 신법을 검술과 함께 시전할 사람은 천하에 단 한 사람뿐이다.' 냉옥룡의 눈빛이 갑자기 담담해졌다. 그가 뭐라 말하려 할 때. "우……!" 아홉 개의 분신을 만든 금의괴인이 돌연 몸뚱이 하나로 합쳐지며 냉옥룡의 정수리 쪽을 향해 일직선을 그으며 날아들었다. 쌔액-! 검기가 허공을 찢는 소리가 유난히 요란했다. 냉옥룡은 그 수법의 무서움을 모르는 듯, 검기가 바로 몸 가까이 오도록 미동도 하지 않았다. 쉬잉-! 검기가 그의 두개골을 뚫기 직전. "잠영보(潛影步)-!" 냉옥룡의 목소리가 허공에 퍼지며 그의 몸뚱이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직후. 파팍-! 금의괴인이 만들어 낸 검기가 냉옥룡이 서 있던 자리에 일곱 자 깊이의 구덩이 하나를 만들었다. "네… 네가 잠영보법을 노부보다 능숙히 쓰다니……." 금의괴인이 급히 수세를 취할 때. "미영(迷影)……." 냉옥룡의 몸이 그의 머리 위쪽으로 나타났다가 갑자기 흐릿하게 변했다. 그것도 잠깐. "무음지영(無音飛影)-!" 냉옥룡의 몸이 눈 깜짝할 사이 금의인 바로 앞으로 들이닥치더니, 핑그르르 열여덟 번을 회전한 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신법이었다. '대단하군. 영웅전주가 되었다 해도 이만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금의괴인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가 손쓸 생각을 포기하고 망연자실해 있을 때. "어르신네……." 냉옥룡이 넙죽 절하며 손을 품안에 넣었다가 한 가지 물건을 꺼내 두 손바닥으로 받쳐 들고 정성껏 쳐들었다. 휘황찬란한 금광을 날리는 용안만한 명주 하나가 그의 손바닥 위에 얹혀 있었다. "이… 이 동해금룡주(東海金龍珠)를 되돌려 드리며 제가 금붕자 어르신네 덕에 기사회생(起死回生)했음을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냉옥룡이 감격해 말하자. "노부를 아직 잊지 않았군!" 금의괴인의 목소리가 전과 판이해졌다. 그는 바로 호존사로(護尊四老) 중의 으뜸인 금붕자(金鵬子)였다. 하나, 그 역시 백절마검객과 마찬가지로 무공이 이전보다 오히려 못한 상태였다. 이유는, 이진천 하나를 초인(超人)으로 만들기 위해 일신내공을 아낌없이 소모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강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끼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착잡해 하자. "어르신네, 저는 어르신네 덕분에 되실아나 기연을 얻었습니다. 이진천이란 놈에게 누명을 쓰고 죽게 된 것을 구해 주신 어르신네야말로 저의 은인이십니다." 냉옥룡이 눈에서 습막이 번졌다. '울다니… 이 아이가 피도, 눈물로 없는 악마가 되어 나타났다고 알고 있었는데…….' 금붕자는 냉옥룡의 눈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또다시 이진천의 꾀에 속은 것이 아닐까?' 그는 부르르 떨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물었다. "사공수운을 잡은 사람이 정말 너였느냐?" "예." "개봉부에서 당천홍의 두 다리를 자른 사람도?" "예." "으으……!" 금붕자의 잠깐 흥분되었던 마음이 차게 식었다. '그것도 아니었군.' 그가 왜 그리 변덕스러웠는지 모를 일이었다. 금붕자는 영웅전(英雄殿)에서 냉옥룡을 구한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천하맹이 바뀌어 감을 탄식하는 사람이었다. 궁륭산에서 어떤 일이 있었단 말인가? 냉옥룡이 기재답지 않게 그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너무도 감격스럽기 때문에 사리 판단이 조금 흐려졌을 것이리라. 금붕자는 냉옥룡을 내려다보다가 차게 말했다. "노부는 너를 구한 것을 일생일대의 실수로 알고 있다." "어… 어찌 그리 서운한 말씀을?" "노부의 무공이 네놈보다 고강했다면, 네놈은 이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어… 어르신네?" 냉옥룡은 연신 눈물을 흘렸다. '어르신네께서 완전히 표묘장 사람이 되셨단 말인가?' 냉옥룡이 괴로워 마지않을 때. "무적신웅이 무당파에서 너를 마중할 작정이다. 너를 죽이기 전 노부가 너를 죽이려 했다만, 무공이 딸려 하는 수 없구나.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금붕자는 더 말을 잇기 괴로운 듯, 쓸쓸히 말하다가 표묘신검을 거둬들이고 위로 날아올랐다. 휙-! 그가 곧바로 십 장 떠올렸을 때. 끄르르륵……! 높이 떠 있던 거대한 금붕 한 마리가 훌훌 날아들어 그의 몸을 등 위에 태우고 장천으로 날아올랐다. "저… 저 새다! 나를 안탕산에서 진령으로 데려다 준 것이……." 냉옥룡이 새를 감회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때, 금붕자의 전음이 들려 왔다. "낙성신군에게 한 말이 사실이었더냐?" "그렇습니다." 말을 끝내는 순간, 냉옥룡은 금붕자가 새와 함께 한 점이 되어 사라졌다. 냉옥룡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천 근같이 무거워고, 두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실 줄 알았는데… 아, 나의 몸뚱이는 값이 없는 것이고… 당천홍의 두 다리는 나의 생명보다 귀한 것이란 말인가?' 냉옥룡은 심한 배반감을 맛보았다. 참고 넘기기에는 너무도 힘든 절망감이 분노와 함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어차피 천하에서 인정받으려 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할 뿐이다.' 그는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금붕자가 자신을 보고도 냉정히 떠나갔다는 데 좌절하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냉옥룡은 괴로운 표정이 되어 한참 있다가 나직한 한숨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근처는 텅 빈 후였다. 그의 길을 가로막던 표묘사십칠웅은 장검을 어지러이 내던진 채 수 리 밖으로 꽁무니쳐 달아난 것이다. "이보다 어려웠던 것도 잘 이겨 냈다. 흥! 그 누구도 나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냉옥룡은 차갑게 말하며 위로 날아올랐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려는 듯, 그는 평상시에 비해 두 배 정도 빨리 달렸다. 다음 날 새벽 즈음. 냉옥룡은 중년인의 얼굴이 아니고, 노인의 얼굴이 되어 소실봉 위로 오르고 있었다. 그의 등에는 검은 봇짐 하나가 묶여 있었다. 절대금검을 검은 천으로 둘둘 말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천륜사부님이 어찌 되셨는지 긍금하군." 그는 아름다운 산세(山勢)에 접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흐뭇한 웃음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가 소실봉 위로 오르다가 암벽 두 개로 인해 이루어진 천연의 관문 근처에 이를 때였다. 돌연. 핑-! 향전 하나가 숲에서부터 허공으로 쏘아지며 휘파람 소리 같은 호각 소리가 근처를 뒤흔들었다. "엇!" 냉옥룡은 긴급한 신호를 알리는 향전이 떠오르자, 탄성을 발하며 소림사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단 말인가?' 냉옥룡은 깜짝 놀라 신법을 돋웠다. '만에 하나, 소림사를 능멸하려는 자가 있다면… 내 그 놈을 능지처참 시켜 버리리라!' 냉옥룡은 두 눈에서 형형한 정광을 폭사해 내며 나는 듯 치달려 갔다. 향전 소리를 듣고 움직이기 일식경. 냉옥룡은 천하무림계에서 태산북두와 같이 존경을 받고 있는 소림사의 웅장한 건물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이를 수 있었다. 근처는 아주 조용했다. 새벽 안개에 잠겨 있는 소림사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아무 일도 없는 모양인데, 향전이 왜 떠올랐을까?' 냉옥룡은 아무런 소란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 야릇해 하다가, 눈을 부릅뜨게 되었다. 스슥- 슥-! 아주 조심스럽게 그를 향해 다가서는 일단의 승려들이 있었다. 손에 계도(戒刀)와 선장(禪杖), 방편산을 든 불문고수들인데… 짓고 있는 표정이 아주 근엄했다. 수는 정확히 일백팔 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냉옥룡을 포위하며 다가서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나를 포위해 오다니… 으으, 설마 향전 소리가 나 때문에 일어난 소리였단 말인가?' 냉옥룡이 얼굴 근육을 일그러뜨릴 때. "아미타불… 역도는 즉시 꿇어앉으라!" 노한 호통 소리와 함께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이 완전한 진세를 굳히며 소림사의 문이 활짝 열렸다.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열리며 수백 명의 고승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방금 전 말을 한 사람은 맨 앞에 서 있는 백의노승이었다. 바로 법료선사가 아닌가? 딱- 딱-! 그는 소림장문인의 신물이라 할 수 있는 녹옥불장을 손에 쥐고 굳은 땅을 두드려 가면서 냉옥룡 쪽으로 다가섰다. "역… 역도? 나…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냉옥룡은 손바닥이 땀으로 물들었다. '으으, 이들이 나를 역도로 하다니… 보나마나 내가 자의광객의 화신이라는 것을 안 모양이군.' 냉옥룡은 또 한 번 크나큰 배반감을 맛보았다. 집으로 알고 온 소림사에서 이런 대접을 받게 될 줄이야? 냉옥룡이 벌레 씹은 표정을 하다가 소리치려 할 때였다. 무서운 표정이 되어 있는 법료선사의 입술이 가볍게 달싹여지며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내옥룡의 귀에만 들리는 전음집밀 소리가 만들어졌다. "옥룡 사숙은 무조건 오체복지하십시오. 자세한 사정은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 비분에 떨던 냉옥룡은 그 말에 깜짝 놀라 눈을 화등잔만하게 떴다. 그 때. "소림사를 위하는 일입니다, 사숙께서는 사질의 말을 믿어 주십시오." 법료선사의 말이 더욱 간절해졌다. '나를 사숙이라 부르다니… 어찌 된 일일까?' 냉옥룡이 망연자실해 할 때. 꽝-! 법료선사가 녹옥불장을 들었다가 땅바닥에 세게의 구덩이를 만들며 사자후신공(獅子吼神功)을 모아 외쳤다. "무림의 공적 냉옥룡! 네가 감히 백팔나한진과 더불어 싸워 볼 작정이란 말이냐?" 법료선사의 호통이 천지를 들썩였다. 냉옥룡은 법료선사가 전음으로 통사정하다가 돌연 사자후로 꾸짖어 말하자, 낭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사정이 있군. 흠, 법료선사는 충직한 사람이다. 그의 말대로 행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냉옥룡은 궁리하다가 결국 무릎을 땅에 댔다. 그가 오체복지에 들자, 모두 야릇해 하는 표정이 되었다. 권위를 잃을 대로 잃은 소림사가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소림사 승려들의 눈가에 떠오르는 표정은 소림사야말로 천하제일의 문파이구나 하는 표정들이었다. "……." 냉옥룡이 무조건 복종하겠다는 듯 오체복지에 들자. "오 장로는 무림일마 자의광객 냉옥룡을 결박해 계율원(戒律院)으로 압송하라!" 법료선사가 노해, 호통치며 뒤돌아서 소림사 안으로 들어갔다. 직후, 그와 함께 나타났던 군승들 중에서 다섯 명의 계피학발(鷄皮鶴髮)의 늙은 회의노승이 걸어 나와 냉옥룡 곁으로 다가섰다. 그들은 다짜고짜 소매 속에서 오라를 꺼내 냉옥룡의 팔과 몸을 함께 결박한 다음, 냉옥룡을 좌우에서 일으켜 소림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냉옥룡은 오라에 묶이기는 했으나, 아주 홀가분한 상태였다. 오라를 묶은 것은 완전한 형식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냉옥룡은 오 장로에게 둘러싸여 걷다가, 소림사 안에서도 가장 웅장한 오 장 높이 전각(殿閣) 앞에 이르게 되었다. 냉옥룡의 얼굴은 아주 미묘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그는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구나 여기며, 오 장로와 함께 웅장무비한 소림 계율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얼마 후, 냉옥룡은 오 장로에게 휩싸여 너른 석실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석실은 텅 비어 있었다. 오 장로는 냉옥룡을 석실 안에 놔 둔 후, 등을 돌려 석실을 빠져 나갔다. 벽면에 있는 탱화(幀畵)의 그림들이 살아 있는 것 같아, 혼자이면서도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실로 무수한 사람들이 이 방을 거쳐 갔었다. 죄를 지은 사람들, 누명을 쓴 사람들……. 과거 소림이 천하제일의 문파였을 때에는 이 방이 바로 무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장소였고, 무림의 마두들이 이 방 안에서 단죄(斷罪)를 받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쓸쓸한 방에 지나지 않았다. 냉옥룡이 고적한 방 안에 앉아 있기 일각. 갑자기. "아미타불……!" 웅장한 불호성과 함께 석실 문이 열렸다. 스르륵……! 유난히 긴 승포자락을 끌며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노승 한 명이 있었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세존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백오십 노승 한 명이 눈물을 흘리며 걸어 드어오는 것이었다. "……." 내옥룡은 노승을 보는 순간, 눈시울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그 때. "옥룡아, 면구(面俱)를 벗어 봐라!" 회의노승이 얼굴을 적시는 눈물을 닦아 내릴 생각도 않고 냉옥룡 앞으로 다가갔다. "사… 사부님!" 냉옥룡은 급기야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엉성하게 몸을 결박한 오라를 훌훌 벗어 버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매미 날개같이 얇은 면구가 벗겨지며 천하에서 가장 준수한 약관 청년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부님 별래무양 하셨습니까?" 냉옥룡은 진면목을 나타낸 후 노승 천륜대법사를 향해 두 번 크게 절한 다음, 이마를 찬 돌바닥에 댔다. "네… 네가 꼭 되살아날 줄 믿었다. 허허… 네… 네녀석은 부처님의 가호를 받는 상의 소유자였다. 악운을 의진견정(意志堅定)한 마음으로 다 돌파해 낼 줄 이 늙은 사부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천륜법사는 냉옥룡 앞에 정좌하고 앉으며 손을 내밀어 냉옥룡의 얼굴을 매만졌다. "사부님! 제자의 불충으로 인해 사부님께서 곤욕을 치루셨으니……." 냉옥룡이 씹어 뱉듯 말하자. "네 마음을 다 안다. 사부는 선풍무룡(旋風武龍)이 설마 그 정도로 패권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었는지 몰랐다. 어리석은 사람은 네가 아니고, 사부였다. 그 때 그 일이 함정임을 몰랐었으니,아… 사부는 선풍무룡에게 독을 당한 다음에야 너도 누명(陋名)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 다 아시는군요?" "그렇다. 표묘장 사람들이 영웅전을 장악하기 위해 너와 사부를 암산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천륜법사는 과거나 진배없이 자상했다. 그는 냉옥룡이 어느 한 군데 다친 데 없이 멀쩡하다는 데 기뻐 마지않다가 미소지으며 천천히 물었다. "너를 푸대접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너는 무림인들치고 너무 정직하다. 허허… 불가에 있는 이 늙은 사부에게서 무공에 입문(入門)했기에 그럴지 모른다. 하여간 너의 정직함 때문에 곤란한 일이 생겼다. 그래서 너를 문전박대했던 것이다." "예?" "이것을 봐라!" 천륜은 소매 속에서 배첩 한 장을 꺼냈다. 금빛 배첩인데, 온갖 장식으로 인해 예술품같이 보이는 값진 물건이었다. "이것을 보면 사정을 알 것이다." "예……." 냉옥룡은 쭈그리고 앉아 배첩을 열어 보았다. <소림사 출신 냉옥룡이란 자로 인해 강호 정세가 풍운에 잠겼다. 그 죄는 의당 소림사가 냉옥룡과 더불어 맞이해야 하리라. 냉옥룡은 소림에서 배운 무공으로 온갖 죄악을 저질렀다. 그 중 가장 큰 죄는, 천하맹의 영웅령주(英雄令主)인 사공수운을 능욕해 죽인 일이다. 소림사가 냉옥룡이 진 죄를 갚을 길은 단 하나, 소림사를 영원히 폐쇄하는 길뿐이다. 천하맹주.> 그것은 이진천이 작성한 배첩이었다. 그 안의 내용 중. <사공수운을 능욕해 죽인…….> 그 대목이 냉옥룡의 피를 역류케 했다. "내가 사공수운을 능욕해 죽였다니?" 냉옥룡이 분개할 때. "이것은 그저께 소림사로 전달되었다." 천륜법사가 답답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사부는 그 때 막 정신을 차리고 네가 살아나 사부를 구했다는 것을 볍료에게 들었지. 그러다가 이런 배첩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랐겠느냐? 하나 사부가 이야기를 면밀히 따져 본 결과, 그들의 말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어… 어째서요?" "그들은 네가 사공낭자(司空娘子)를 처참히 죽여 궁륭산 여기저기에 그 시신을 널어 두었다고 했는데……." "으으……!" "허허… 화 내지 마라. 사부는 그들의 말이 거짓임을 안다. 왜냐하면, 너는 그 때 사부를 구하고 있었으니까!" "사… 사부님만이 저를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는군요?" 냉옥룡이 감격해 외치자. "아니다. 너를 인정한 사람은 많았다. 무당의 만성자, 개방의 천리취개도 네가 제명당한 것에 의혹을 품고 있었다." 천륜은 냉옥룡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천성이 착한 아이다. 천살성의 기운을 띠었으나, 불심으로 약화될 것이다.' 천륜은 나직이 불호성을 외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표묘장 사람들은 천하제일의 자리에 오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인물이다. 영웅전을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었지. 빈승은 혀가 마비되고, 팔다리가 마비되어 삼 년을 보내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영웅전을 세운 것이 너무도 엄청난 실수였지! 기름진 음식을 만들어 굶주린 개에게 던져 주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것을!" "아……!" "모든 사람이 표묘장에 농락당했던 것이다. 빈승은 물론 수많은 기인들이……." 천륜법사의 목소리가 점점 격해졌다. 실로 그답지 않게 흥분하는 것이었다. "선풍무룡은 이진천을 영웅전주로 만들어 백도제일인을 표묘장 출신으로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부가 이진천보다 십 배 뛰어난 너를 영웅전으로 불러들인 통에 꿈이 깨지게 되자, 그런 못된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 "네게 미안하다. 너를 이리 소굴보다도 흉악한 영웅전으로 넣어 무진 고생을 시켰으니……!" "사… 사부님!" "그러나… 악운은 다 지나간 듯하다. 무림 고수가 되겠다던 나의 꿈도 이루어진 것이고, 무림 고수 한 명을 키워 내겠다던 사부의 꿈도 이루어진 것이니까!" 천륜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잃었던 미소를 회복했다. 그는 씩씩하게 자란 냉옥룡을 눈앞에 두고 있자, 가슴이 벅차 오르는 듯 얼굴을 동자의 얼굴같이 붉게 물들였다. "표묘장은 네가 되살아나 복수하자, 당황해 하다가 또 하나의 함정을 만든 것이다. 너를 공적으로 만들어 협공당해 죽게 하는 동시에, 눈의 가시 같던 소림사를 너로 빙자해 제명시키겠다는!" "으음……!" "하나, 부처님의 가호로 네가 나를 때맞춰 구해 그들의 권모술수가 시작 전에 발각당하고 만 것이다. 그들의 속셈을 잘 아는 내가 제정신을 차린 이상은, 이제 더 이상 백도 행세를 못할 것이다." "……." "너를 오라로 묶어 여기 오게 한 사람이 바로 사부다. 이유는, 사문에 복종하는 당당한 소림의 제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소… 소림사의 제자요?" "그렇다. 너는 이 순간, 소림사의 속가(俗家) 장문인(掌門人)이다. 사부는 네게 소림사에서 가장 강한 고수 천 명의 생사를 자유롭게 부릴 특권을 부여할 작정이다." "아……!" "그들을 부려 이십 년 넘게 천하를 희롱하고 있는 표묘장을 격파해라. 네가 부릴 천 명에게는 살계(殺戒)를 어겨도 좋다는 특전을 부여할 작정이다. 표묘장은 천하맹주가 되기 위해 암중에 협사 수천을 살해했다. 그들의 죄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게다가 이제 그 더러운 화살촉을 소림사로 향해 겨누고 있으니, 그들이 감히 천 년 전통의 소림사를 능멸하게 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천륜법사는 냉옥룡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사제지간의 흐르는 정은 삼 년 전이나 다름없었다. 이제껏 자신이 외롭다 여기던 냉옥룡이었으나, 사부의 체온을 느끼는 순간 자신이 천하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여기게 되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부가 있으니까. "사부는 너의 근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너의 근골은 천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근골이다." 천륜법사는 죽기 직전의 상태까지 몰렸다가 이틀 전에 되살아난 사람답지 않게 원기에 차 있었다. 냉옥룡을 자신의 화신으로 여기는 듯. '내가 기연을 얻은 이유는, 사부님이 나를 위해 축수해 준 탓이었군.' 냉옥룡이 고개를 떨굴 때. "너는… 당금 천하에 꼭 필요한 인물이다. 사부는 너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네가 지난 삼 년 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나, 너의 마음씨가 과거와 마찬가지라는 것도 안다." "……." "그래서 네게 세 가지 명을 내리려 한다." "말씀해 주십시오, 사부님!" "첫째, 이 순간부터 천하에서 가장 당당하게 행동해라." "……." "너는 이 순간으로 강호에 떠도는 모든 죄상에 대한 무죄를 인정받았고, 소림 속가 장문인이 되었다. 네 어깨에는 소림사의 흥망이 걸려 있고 천하백도의 존망(存亡)이 걸려 있다. 너의 새로운 사문이 어떠한 것이든, 소림사를 구하고 백도를 구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명심해, 말씀에 쫓아 행하겠습니다." "둘째, 표묘장을 제명(除名)시켜라!" "……." "그 곳은 만악(萬惡)의 소굴이다, 의당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없앨 사람은 단 한 명뿐인 듯하다." "송… 송구스럽습니다." "허허… 사부는 정신을 차린 직후, 강호에 오백 명을 내보내 자의광객에 대한 모든 것을 수소문하게 했다. 그 결과, 사부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네가 고강한 무공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을 뵙고 꾸지람을 들을 줄 알고 왔는데, 칭찬을 듣게 되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냉옥룡이 부끄러워하자.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대명(大命)을 하사하는 것이다." 천륜법사가 아주 엄숙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네가 마지막으로 행할 일은, 영웅전주가 되어 천사교를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영… 영웅전주요?" "놀랄 것 없다. 표묘장 사람들의 손에 농락당한 영웅전이나, 세워진 취지는 아직 그대로이다." 천륜법사는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말을 하나도 남김없이 이야기했다. 냉옥룡은 사부의 혜안이 과거 이상으로 예리하다는 데 감탄을 거듭했다. 그는 삼 년 간 시체같이 지낸 것이 아니었다. 죽은 듯 누워 살기는 했었으나, 마음만은 유리알같이 맑았던 것이다. 그가 삼 년 간 겪은 고통은 냉옥룡이 겪은 고통에 비해 더 심각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냉옥룡을 걱정하는 것 이외에 천하를 걱정해야 했으니까! 두 사람은 삼경이 되도록 이야기했다. 냉옥룡은 자신이 지난 삼 년 동안 겪었던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천수동부 안에서 기인을 만나 백 가지 무공 비급을 연성했다는 것을 말할 때, 천륜은 아주 크게 놀라워했다. "천수옹은 사부와 동배다. 살았다면, 지금 백사십 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는 비급을 훔치는 신투 정도로만 소문났었는데,허허허… 그가 사부를 수십 배 능가하는 대의인(大義人)이었을 줄이야!" "이채운(李彩雲)이라는 여인에 대해서는 아십니까?" "그것은 모르는 이름이다. 하나 그녀의 무공이 고강한 것이라면, 이름이 아닌 별호로 강호에 소문난 후인지 모른다." 천륜법사는 냉옥룡이 다른 사람의 전인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조금도 착잡해 하지 않았다. - 너는 언제까지나 소림의 제자란다.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