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대 출신 변호사' '치과의사' '연매출 80억원대 사업가' '양평에 200평 땅 보유한 엔지니어'는 남자 쪽 직업이다. '미스 춘향 진 출신의 쇼호스트' '미스코리아 서울 선 출신의 아나운서' 그리고 '모델'은 여자 출연자의 직업이다. 파일럿 방송으로 시작해 이달 정규 편성을 앞둔 SBS '로맨스패키지'의 자기소개 시간. 일반인 출연자들이 3박4일 한 호텔에 묵으며 서로 짝을 찾는 이 프로그램에서 남자들은 학벌·직업·경제력을 과시하고, 여자들은 외모를 내세운다. 방송이 나간 뒤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에는 '지상파 방송이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기존 사회의 편견을 답습하고 있다' '성차별적인 방송'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4년 전 출연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SBS 연애 프로그램 '짝'이 폐지된 뒤 한동안 잠잠했던 연애 예능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지상파, 케이블 TV, 종편 채널이 고루 뛰어들었다. 문제는 이 연애 예능들이 남자에겐 경제력, 여자에겐 예쁜 외모만을 부각한다는 것이다. 종편 채널의 연애 예능 '하트시그널2'도 비슷하다. 출연 남성들의 직업이 한의사, 사업가, 5급 공무원, 셰프 등 전문직인 반면 여성들 직업은 쇼핑몰 모델을 겸하는 대학생, 배우 지망생, 회사원으로 비교되면서 '남녀 직업군의 격차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단순한 직업 차이를 뛰어넘어 '남성 의존적'인 여성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하트시그널2'에 출연하는 여성들은 자동차가 없어 남자들에게 "지하철 역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와 눈총을 받았다. SBS '로맨스패키지'는 아예 남성 출연자들의 차를 늘어놓고 여성 출연자들이 차종으로만 자신의 짝을 고르게 했다. 남성의 재력에 기대는 여성의 이미지를 만든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제작진은 "방송 당시 보기 불편했다는 지적이 많아 앞으로 이런 식의 설정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남녀 직업이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다양한 직업군의 출연자들을 선보이며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일 시작한 tvN '선다방' 연출자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제작 발표회를 통해 "방송 지망생과 홍보 목적의 출연자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평범한 출연진으로 꾸릴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첫 방송에서부터 연매출 200억원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남성이 출연해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전길양 교수는 "과거 우리 사회의 성(性) 고정관념과 사고의 틀을 반성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방송이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이성관을 심어줄 수 있다"며 "연애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출연자의 외모와 스펙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 말투, 태도 등 인간적 매력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