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유학산(遊鶴山 839m)
산행 일자 ; 2022년 2월 27일 (일)
산행 시간 ; 10시 15분~ 16시 15분 (약 6시간; 휴식시간 포함)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주위에는 유난히 학(鶴)자가 들어간 산이 많다.
학이 노닐었다는 유학산(遊鶴山·839m),
학의 둥지인 소학산(622m),
황학산(758m)이 그곳인데 이를 ‘칠곡 3학산’이라 한다.
인근에 흰 구름이 걸린 백운산(713m)까지 있어 그야말로 전설 속의 청학동 같다.
한국전 당시 낙동강 최후방어선인 유학산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기습 남침했다.
3일 만에 서울을 내주면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밀어붙여
국군은 한 달 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대구와 부산만 남게 됐다.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에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낙동강 방어선’ 사수를 명령했다.
최후의 배수진이 된 낙동강 방어선은
경북 칠곡군 왜관에서 동쪽의 영덕까지는 국군이,
남쪽은 미군이 낙동강을 따라 경남 마산까지 방어했다.
온 나라가 전쟁터였지만 낙동강 방어선은 더욱 치열해 피로 얼룩졌는데
대표적인 곳이 19번이나 봉우리의 주인이 바뀌면서
미군의 무덤이라 불렸던 함안의 서북산(갓뎀산·738.3m)과
국군 제1사단 12연대가 험난한 암벽을 맨손으로 올라
9차례에 걸쳐 백병전을 치렀던 칠곡 다부동의 유학산이 있다.
55일간 유학산에서는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유엔군의 B-29 폭격기 98대가 칠곡 약목,
구미에 융단폭격을 퍼붓고 최초의 전차전을 벌이면서 전세를 역전시켜
북한군의 총공세를 막아내며 유학산을 탈환하면서 11㎞ 떨어진 대구를 지켜냈다.
국군 1개 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과 맞서 싸운 다부동 전투의 승리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다고 한다.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유학산 능선은 당시 전쟁의 상흔은 찾을 수 없으나
백척간두에 서 있는 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낸 호국의 성지임을 잊지 말자.
시댁으로 갈때 늘 지나가는 길인데
언제쯤 유학산 산행을 해볼까 했는데
산악회에서 가기엔 넘 가까운곳이고~~
차가 두대가 되어야 산행하기에 편한데~
그러다보니 차일피일하다가 산행하기로 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주차해놓고
경북 칠곡군 석적읍 성곡리 카페 AMBIENT전용
팥재 주차장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택시비 13,000원)
천평택시에 전화를 하니 전화가 되질 않아서
내려가다가 보니 소방서쪽 버스정류장에
가산개인택시 회사(054-971-0028) 전화번호가 적혀있어서
전화를 하니 10시에 오겠다고~~
기다리는데 택시가 오길래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콜한 택시인줄 탔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탔음)
가다가보니 가산개인택시에서 전화가 왔다.
첨엔 천평택시쪽인줄 알고 전화가 되지 않아서
가산택시로 전화했다고~~
우리가 잘못한거였다.
우리가 콜한 택시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시간이 되어서 그냥 탄거였으니~~
가산개인택시 기사님한테 죄송하다고는 했는데
차에서 내려서 남편이 가산택시 기사님한테 전화해서
계좌번호 달라고 해서 1만원을 이체해주라고~~
가산택시 기사님한테 죄송하다고 계좌이체 해줬다.
가산택시 기사님한테 10,000원 보내드렸는게 너무 잘한것 같아서
10,000 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들지 않았다.
기사님께서 얼마나 황당하고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을텐데
이렇게라도 기분을 풀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문자를 보내서 죄송했다고~~ 기사님도 감사하다면서 좋은 하루 되시라고 문자가 왔다.
우여곡절끝에 그래도 기분좋게 산행을 하게 되었다.
아침엔 바람도 차갑고 날씨도 제법 쌀쌀했는데
점심때쯤은 완연한 봄날씨 그자체였다.
팥재주차장- 임도길 -도봉사- 헬기장- 팔각정 -유학산 정상-무인산불감시초소-
837봉-V자 소나무-674봉-다부동 전적기념관
하산후 전적기념관 둘러보고 대구로~~~
20여분 오르니 도봉사가 나온다
동화사 말사인 도봉사는 비구니승이다.
뒤에 보이는 커다란 암벽을 쉰질바위라고 하는데
학이 노닐던 곳이라고 해서 학바위라고도 불림
무인산불 감시 초소에서 점심
이때는 엄청 포근하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