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경산(望京山)은 왕조 시대에 국상이 나면 높은 곳에 올라가 서울(京)을 바라보며(望) 망곡(望哭)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에서 천안시가 한눈에 보일만큼 전망이 좋으며, 광덕산과도 능선이 이어져 있다.
설화산(雪華山)은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정상부에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눈으로 덮혀있어 이 이름을 얻게 된 것.
조선시대에는 설화산 정상이 붓끝처럼 생겼다고 해서 문필봉이라 불렀으며 인재를 배출하는 명당으로 여겼다.
안부 갈림길에서 남서쪽으로는 '외암리민속마을', 북동쪽으로는 '아산맹씨행단'이 있다.
이 곳에는 '칠승팔장지지'의 명당이 있어 예로부터 투장이 성행하여 가뭄이 들면 투장한 곳을 찾아 파헤치고 기우제를 지내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
설화산과 망경산은 둘 다 빼어난 조망을 지니고 있지만 각자 오르기엔 산행이 너무 짧아 이 두 산을 이어 하루 코스로 걷는 것이다.
‘외암민속마을(국가민속문화재)’은 북쪽 설화산을 주봉으로 그 남쪽 경사면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민속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냇물과 좋은 일조량, 겨울 북서계절풍울 막아 주는 등 지형적 이점이 있어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500여 년 전에는 강씨(姜氏)와 목씨(睦氏)가 살았다고 하며, 조선 명종 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이정(李挺) 일가가 낙향하여 이곳에 정착하면서 예안이씨(禮安李氏)의 후손들이 번창하고 인재를 배출하여 반촌(班村)의 면모를 갖추고 반가(班家)의 가옥이 생겨났다.
그 뒤 이정의 6대손이며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이간(李柬:1677~1727)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형상을 따서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었는데,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도 외암이라 불렀으며 한자만 외암(外巖)으로 바뀌었다.
넙티고개는 망경산과 태화산 사이의 고개이다.
넙티,넙치,넋티 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한문으로는 광치(廣峙)이나 이정표에는 '넋티'로 적혀있고, '월간 산'지에서도 '넋티'로 나온다.
넋티고개 지방도 623호선은 아산시와 천안시를 연결하고 있는 도로이지만 교통량은 많지 않다.
지금은 능선을 따르는 트레킹 코스의 경유지로 잘 알려져 있다.
소위 ‘배태망설(배방산-태화산-망경산-설화산)’을 잇는 환종주 산행로인데, 넋티는 이 경로에서 대표적인 안부(鞍部)에 속한다.
또한 ‘설광봉도’도 있어 아산과 천안·공주·예산의 경계를 이루는 '설화산-광덕산-봉수산-도고산'을 잇는 39km의 종주코스다.
능선을 연결하면 ‘V’ 모양을 이루고 있어 V루트라고도 한다.
산행코스: 넙티고개-망경산-광덕산 갈림길-△415.7갈림길-안부-설화산(U턴)-안부-외암저수지-외암민속마을(12km,5시간)
궤적.
12km에 5시간 정도.
<고도표>
<월간 산>
참고 <월간 산>
<참고>
<배태망설>환종주. 약 22km.
미리 준비한 표지기.
'충남 아산시 배방읍 수철리 52-1'을 입력하여 넙티고개 '명막골(明岩)' 표석 앞에서 버스를 멈추었다.
부산 교대1호선 전철역에서 07:00출발, 덕천동 부민병원 경유하여 약 5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
망덕산 1.4km, 광덕산4.2km.
이정표엔 '넋티고개'다.
이 길은 '이순신 백의종군길'이다.
숲속 그늘길.
택지를 조성하면서 키큰 나무들을 이식하였다.
가파른 오름길엔 굵은 밧줄.
일차 경사도가 완만해지더니 아산시 망경산 소방목<03-05>.
커다란 바위를 우회...
헬기장이 있는 널따란 망경산 고스락에 올랐다.
서울을 바라보고 망곡을 하였다고 했으니, 어디 북쪽을 짚어보자.
서쪽.
망경산의 이정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정상주를 곁들인 요기를 하였다.
표지기는 붙여넣기.
망경산에서 떠난지 700여m에서 만난 이정표.
은난초.
때이른 더위에 지쳐가지만, 간간이 부는 산바람에 이마의 땀을 식힌다. 거기다 말잔등처럼 매끈한 능선이어서 걷기에 무리는 없었다.
정자가 있는 임도에 내려서서...
다시 설화산(5.3km)을 오른다.
뚜렷한 등로.
우측으로 천안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망경산에서 한 차례 힘을 쓴 뒤 큰 오르내림없이 걷는 건 나중에 설화산 가풀막이 숨겨져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
묘가 있는 강당리주차장 갈림길.
이제 솔숲길.
자연보호간판이 있는 지점의...
이정표.
그 옆엔 △415.7m 삼각점봉.
설화단맥?
이정표에 '현위치 애기봉'이 표시되어 있다. 권형님이 자꾸만 애기봉·작은봉하였어도 어느 코팅맨이 다녀갔나 하였었다.
이정표에 표시된 지명이니 그대로 따르는 게 맞다.
애기봉에서의 조망. 건너에 솟은 봉우리는 배방산.
그리고 살짝 내려선 안부의 바위. 거북 등짝을 닮았다.
소나무가 버티고 있는 바위 전망대.
전망이 펼쳐진다.
그냥 즐기는 대로 즐기면 되는 것.
권형님은 무슨무슨 짚어대며 열거하지만 금방 방향을 놓치기 일쑤.
조금 내려서다 다시 "그곳이 작은봉이야' 하신다. '아니 그 무시기 말씀이요?" 다시 되올라와서 보니 작은봉 맞넹.
내려선 안부사거리. 세 분은 '아산맹씨행단'으로 내려갈 계획이란다.
안부사거리의 이정표.
평상에 배낭을 벗어두고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숨을 고른다. 앞의 능선은 우리가 올라왔던 능선이고...
그 뒤는 배방산. 가까이 뾰족봉우리는 이정표에 있는 작은봉.
설화산에 올라 일망무제의 사위를 둘러본다.
정상의 희열을 누리는 두 분.
붓끝을 닮았다하여 문필봉(文筆峰), '칠승팔장(七丞八將)'지지의 명당에다 독수리가 비상하는 형상의 산세.
가까이 작은산과 그 뒤로 애기봉. 그리고 배태망설.
망경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이정표.
설화산 표지기.
안부사거리에서 일행들과 잠깐 갈라진다. 나는 외암리 저수지, 그들은 맹씨행단.
산방기간(봄철 2,1~5,15, 가을철 11,1~12,15)에 폐쇄된다는 안내판.
고속도로 같은 널따란 등로.
민박집을 운영했을 법한 민가는 문을 닫았고...
삼거리에선 설화산이 1.4km.
민가는 폐가가 된 채 풀밭으로 변했고...
외암저수지는 고요한 물살만 일렁인다.
외암마을에 접어들자 우측 산아래에 '사월초파일'을 앞 둔 송암사.
마을길을 내려서면...
고풍스런 마을 분위기가 풍긴다.
아이들 웃음소리 끊긴 골목은 그저 고즈넉.
돌담 안엔 나이먹은 소나무.
누구누구 집들이 빽빽이 안내된 안내판.
담넘어 '건재고택'을 기웃거리다...
운치있는 담벼랑을 따라 고택을 찾아간다.
건재고택은 문이 잠겼고...
시간을 제약하고 있었다.
아산 외암마을 건재고택은 영암군수를 지낸 건재(建齋) 이상익(李相翼)이 1869년(고종 6)에 건립한 건물이다.
이상익이 영암군수를 지냈기 때문에 ‘영암댁(靈巖宅 영암군수댁)’이라고도 불리며, ‘건재’라는 호를 따라 ‘건재고택’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상익은 낙론(洛論)을 주도했던 외암(巍巖) 이간(李柬)의 후손.
마을 안 범상치 않은 나무는 키가 21m에 둘레가 170cm, 수령이 600년으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마을 입구의 안내판을...
확대해 보았다.
그리곤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며 대강의 산행흔적을 지웠다.
매표소의 안내.
관람요금표.
'애국지사곽한일의병장송덕비'
곽한일(1869년~1936년)은 이 고장 출신으로 일본의 낭인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자(을미사변) 의병에 참여하였다.
곽한일은 화서학파의 문인으로 면암 최익현의 제자였다.
1906년 봄에는 홍주의병에 가담하여 홍주성 공격에 크여 활약하였다.
홍주성이 일본군에 함락되자, 피신하여 재거의를 도모하던 중 일진회의 밀고로 붙잡혀 1907년 7월 종신유배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감옥에 투옥된 뒤 다시 전라남도 지도에 유배되었다가 1912년에 풀려났다.
1913년 고종의 밀명으로 독립의군부 총무총장에 임명되어 전국적 규모의 의병전쟁을 계획하며 동지의 규합과 군자금 모금에 힘쓰다가 1914년에 붙잡혀 옥고를 치른 뒤 풀려났으나 가택 연금되어 일본 경찰들의 매서운 감시를 받다가 별세하였다.
그 옆 비각은 '열녀안동권씨정려'.
열녀안동권씨는 진사를 지낸 권연(權淵)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온순하고, 부모님을 효성으로 극진히 섬기다가 13세에 예안이씨 가문의 이용덕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이용덕은 예안이씨 20세손으로 외암 이간의 후손이며, 퇴호거사 참판 이정렬의 아들.
*정려(旌閭)는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나라에서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풍습.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보이지 않아...
저잣거리 위 '제2주차장'으로 올라가 보았으나 거기도 없다.
전화를 해서 확인해보니 '저잣거리 후문주차장'에 있다길래...
겨우겨우 찾아 왔다.
외암민속마을엔 주차장이 여러군데가 있어 정확한 확인이 필수.
장사하는 사람들이 자체 먹거리를 준비해온 산악회는 반기지 않아 주차를 허용하지 않는 듯.
이른 더위 때문인가?
쇠를 긁는 듯 온몸이 저려오는 마찰음이 들린다.
오늘은 물소리, 새소리, 솔바람소리만 듣고 싶다.
"캄 다운~"
.
첫댓글 우리 산 대장님 대단 하십이다 아직 살아 있네요 수고해서요
설화산 氣를 받았어요.
펄럭이는 깃발에다 우뚝한 암봉, 전국에 어디 이만한 산이 흔하던가요?
처음 망덕산이 우뚝하여 헥헥, 마지막 설화산이 다시 뻘떡 일어서 헥헥.
그 두 산을 이어주는 능선은 말잔등처럼 매끈.
그늘진 숲속으로 불어오는 산바람은 이른 더위를 충분히 식혀 주었죠.
되새겨 보는 이 아침, 남겨둔 氣도 마저 받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