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메이든 콤보를 할때 슬쩍 언급했던 월간팝송 내부에 있는 '책속의 책'은 주다스 프리스트의 역사를 공부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이 책에는 프리스트의 탄생 과정부터 디펜더즈 오브 더 페이쓰 시절까지의 역사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평소 막연히 상상했던 것 과는 달리 프리스트는 많은 고생을 했고, 그런 역경들을 모두 이겨내고 성공의 문턱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니 가슴 한 켠이 심히 울렁거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프리스트가 더욱 존경스러웠으며 때마침 전영혁씨 방송으로부터 송출되었던 프리스트 앨범 씨리즈는 나를 보다 프리스트에 가깝게 인도를 했다.
결국 1987년의 가을이 저물 무렵 나는 프리스트의 모든 역사와 음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앨범을 하나 하나 모으는 것 뿐.....
책속의 책에 쓰여있던 주다스 프리스트 이야기중 프리스트 초기 역사에 대해 발췌해보았습니다.
1970년 9월 18일,K.K 다우닝은 지미 헨드릭스가 런던의 아파트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켄(K.K 다우닝)은 자신의 방 벽에 온통 지미 헨드릭스의 사진을 붙여놓을
정도로 헨드릭스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전 그만한 인물이 앞으로 또 나올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아요"
영국 중부의 매우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켄은 험난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15살에 학교를 그만둔 그는 음악에서 도피처를 찾았고
그후로 쭉 록에 전력을 기울이는 생활을 해왔다고 하는군요
크림,지미 헨드릭스 등의 레코드를 열심히 들었던 그는 처음에는 사촌형제와
함께 재즈 취향의 그룹을 결성했죠.... 그러다가 만난 것이 학교 동창인
이언 힐이었는데요.... 모두들 아시겠지만 그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창단원
이자 지금까지도 프리스트에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멤버입니다
비록 그룹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의 베이스 리듬만은
실로 든든하고 믿을만한 것임에 틀림없죠
"이름이 난다거나 하는 일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아요
무대에 올라서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 한다 해도 내겐 상관없어요 "
이언이 10대 시절 처음 심취했던 것은 존 메이올,크림 등이며
본인에게 처음으로 진지한 영향을 미친 인물으로 잭 브루스를 꼽고 있습니다
더블 베이스 주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음악의 전반적인 기초를 닦을 수
있었던 그는 학교에서 그룹을 결성해 파티장 등에서 연주를 해주고 다니다가
70년말경 켄과 만나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고 71년엔 그룹을 결성했습니다
그들이 처음 결성한 freight란 그룹은 프로그레시브한 블루스를 연주하는 3인조 그룹이었죠
그러던중 이 그룹에 알란 앳킨스(Alan atkins)라는 보컬리스트가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가 예전에 있던 그룹 이름이 바로 Judas priest라고 하는군요
앳킨스는 켄의 그룹에 합류한 후 자신의 예전 그룹명인 주다스 프리스트를 적극 추천했고
이에 켄 측도 별로 반대하지 않아 이들은 주다스 프리스트란 이름으로 새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좀 더 깊게 알아보자면....
주다스 프리스트의 팀네임은 원조 주다스 프리스트의 베이시스트였던
Bruno Stapenhill라는 인물이 밥 딜런의 노래 The Ballad of Frankie Lee and Judas Priest라는
곡에서 영감을 받아 팀 이름을 정했다고 합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원조 주다스 프리스트에 대하여 알아볼까요??
Ernie Chataway - 기타
Bruno Stapenhill - 베이스
Al Atkins - 보컬
John Partridge - 드럼
주다스 열혈팬들은 모두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1969년 원조 주다스의 기타리스트(이름은 모르겠숨 ㅜ.ㅜ)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켄은 그 기타리스트의 후임을 뽑는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아쉽게 탈락하였죠
그때 오디션에 붙은 사람이 바로 Ernie Chataway란 인물로서
그는 블랙사바스의 전신인 Earth 출신이기도 합니다
(ㅎㅎㅎ 주다스와 사바스의 만남은 처음부터 묘하게 이루어지는군요)
이 원조 주다스 프리스트는 아트락 취향의 밴드였다고 하는데....
레코드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결국 데뷔하지는 못했습니다
처음 공연을 가진 것은 71년 3월로,
관객은 6,70명밖에 안되었지만
꽤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활동초부터 무조건 자작곡만 하는 것으로 방침을 굳혔습니다
"우리는 꽤 야심만만해서 기본적인 12소절 곡은 탈피하려고 했죠
프로그레시브 록에 열중해 있었으니까요.... 어쩌다 12소절 형식
에 가까운 곡을 만들 경우에는 특이한 변화를 주어서 극적인 곡으로
꾸며보려고 했죠"
켄의 말입니다
그후 이들은 리버풀,맨체스터,런던 등지로 진출했으나 돈은 한푼도 못벌었고
이로 인해 앨런 앳킨스와 새로 들어왔던 드러머 앨런 무어가 그룹을 탈퇴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이들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짓기 시작했죠
그것은 바로 불멸의 헤비메틀 보컬리스트인 롭 헬포드가 가입한 것입니다
롭은 켄이 사귀던 여자친구였던 수 헬포드의 남동생으로 수의 소개로 주다스 프리스트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수는 나중에 이언 힐과 결혼했습니다 ㅋㅋㅋ)
그를 보컬리스트로 가입시키자는 데에는 주다스의 다른 구성원들간에 곧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후에 켄이 밝힌 바에 의하면 롭은 자신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도리스 데이의 곡을 처음 듣고 곧 거기에 하모니를 맞추어 노래했는데 그것을 보고 그를 가입시키기로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또 롭은 마우스(Mouth)올갠을 연주할 줄 알았는데 이것은 당시 락 그룹 간에 유행하던 악기였습니다
롭 헬포드는 중부지방의 Sutton coldfield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철공장에 다니는 아버지를 두었으니 그의 말대로 매우 전형적인 노동자 계층을 배경으로 태어난 셈이죠
아... 여기서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볼까요??
"우리들의 출신지는 영국 지방 즉 Midlands이죠
이곳은 공장들만 빼곡히 들어찬 다소 황량한 지역인데
의외로 영국의 대표적인 록 뮤지션들을 다수 배출해내 이름이 높은 곳입니다
이 지역 출신 연주인들로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들은 무디 블루스,블랙 사바스
스티브 윈 우드,스펜서 데이비스,이엘오,레드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와 존 보넴 등등 겁나 많죠
적잖은 사람들이 저에게 왜 유독 이곳에서 많은 락 그룹들이 배출되었는가 묻곤 하는데....
전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음.... 아마 노동자들이 사는 도시에서는 어디서나 마찬가지일 거에요
그런 환경 속에서는 탈출하고 싶은 욕망, 상황을 초월하고 싶은 욕망이 대단히 크게 마련이죠"
롭이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여덟살 때 그가 다니던 지방 학교의 합창단에서 노래하면서 드러났습니다만 그가 음악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0대시절부터였죠
"내가 처음 가입한 밴드는 열다섯 살 때 학교에서 결성한 thark라는 그룹이었어요
당시 우리가 주로 연주했던 곡들은 야드버즈,프리,지미 헨드릭스,롤링 스톤즈 등이었죠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진짜로 음악에 진지하게 열을 내게 된 것은 10대 후반에 와서에요
덕분에 학교를 졸업햇을 때도 앞으로 무엇을 할까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죠
내가 록을 직업으로 삼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계속 롭은 말합니다
"내가 처음 직업을 얻은 것은 그랜드 극장이었는데 여기서 조명 디자이너의 견습원으로 일하면서 무대 위에 서고 싶은 욕망이 생겼지요.... 하지만 연극계에서 빛을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었고
좀 더 빠르게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찾다보니 락 그룹에 가입하는 길밖에 없더라구요 ㅋㅋㅋ"
그후 히로시마 등의 그룹을 거쳐 주다스 프리스트에 가입한 그는 밴드에 비어있던 드럼 주자 자리에 그룹 히로시마에서 같이 활동을 했던 드러머 존 힌치를 가입시켰습니다
롭 헬포드의 가입후 주다스 프리스트는 영국 이곳저곳에서 순회공연을 벌이는 한편 작곡도 부지런히 했습니다
앨범 계약의 가능성에 대비해서였죠
"우리는 모두 일렉트릭 블루스를 음악 배경으로 삼았던 사람들이었죠
켄은 여전히 지미 헨드릭스에 심취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나도 좀 더 프로의 수준에서 음악에 몰두하게 되었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는 가능한한 많은 자작곡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롭의 말이었습니다
74년초 주다스 프리스트는 독일과 홀랜드 등으로 첫 외국 순회공연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트럭 꽁무니에서 자면서 다니고 또 눈을 녹여 이빨을 닦는 등 숱한 개고생을 했지만 절약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죠 ㅜ.ㅜ
그 보람으로 이들은 영국의 한 작은 레코드사(Gull)와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레코드 계약이 어려웠어요
레코드사들이 신진 헤비록 팀들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몇 년전에 레드제플린,딥퍼플,블랙사바스 등이 계약을 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랐지요
레코드사측에서는 한 회사에 하드락 팀은 두 세 개 정도 있으면 된다고 여겼으니까요
우리를 입적시킨 그 레코드사도 우리 음악이 썩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가 마키 클럽에서 연주했을 때 청중들에게서 열렬한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누가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ㅜ.ㅜ 아마도 켄 아니면 랍이 아닐까??
이들이 첫 앨범을 녹음하러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레코드사측에서 이들
에게 기타리스트 한 명을 추가할 것을 주장, 글렌 팁튼이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레코드사측에서 이렇게 주장한 것은 이들이 4인조라는 진부한 락 밴드 형태에서 탈피하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글렌은 당시 Flying hat band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룹의 전망이 시원찮았던 참에 주다스 프리스트로 옮기게 된 셈입니다
사실 처음에 켄은 또 한명의 구성원을 추가시킨다는 생각에 착잡했습니다
왜냐하면 가뜩이나 돈벌이가 안되고 있는데 먹는 입 하나를 더 불리는 셈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주다스 프리스트에 가입한 후 글렌은 연주면에서 켄과 더할 나위 없는 짝이 되었고 또 이 그룹의 작곡능력이 보충되는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첫 앨범 Rock rolla는 3주만에 녹음됩니다
랍의 말에 의하면 요즘같이 연주인들이 스튜디오의 녹음기법에 대해 잘 아는 상황이면 훨씬 더 잘 만들었을거라 하더군요
게다가 당시 이 앨범의 프로듀서 로저베인은 '헤비메탈 프로듀서'라고 일컬어질 만큼 주장이 센 인물이었기에 주다스 프리스트 같은 신출내기들로서는 사운드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감히 의견을 내세우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Rocka rolla에 그들은 아주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운드가 그야말로 형편없었어요"
이언 힐이 말합니다
"우리가 쓴 곡들은 정말 괜찮았어요
문제는 녹음기법 때문이었죠
우리가 연주할 때는 분명히 크고 하드하게 했는데 실상 녹음된 사운드는 볼륨이 매우 작았거든요"
이번엔 롭이 말합니다
"그래도 주다스 프리스트의 충실한 팬들이라면 Never satisfied라든가 the cheater같은 곡은 마음에 들거에요"
계속 롭이 말합니다
"물론 이 앨범이 진정한 주다스 프리스트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죠
쩝..... 당시 우리는 이렇게 앨범을 만들어야 상업성이 있다고 하던
사람들에게 설득당한 셈이었죠
그들의 말은 이런 앨범이라야 데뷔 즉시 헤비메탈 그룹으로 낙인찍히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결국 이 앨범은 우리에게 해를 더 끼쳤어요"
또한 주다스 프리스트는 이 앨범의 표지(코카 콜라 병 모습)도 못마땅했다
켄의 말에 의하면 '우리 사운드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표지'라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스꽝스럽게도 이 앨범 표지를 디자인한 사람은 이것으로
디자인상을 몇 개 받았다고 하는군요)
그룹 멤버 자신들의 반응이 이랬던건만큼
비평가들의 반응도 혹평 일색이었죠.
비평가들은 이 앨범에서 특히 블랙사바스적인 체취가 적지 않다고 태클을 걸었는데 이는 로저 베인이 블랙사바스의 프로듀서였던 만큼 당연한 결과라고 하는군요 헐헐
사실 이 첫 앨범은 주다스가 자신들의 사운드에 독특함만을 애서 찾은 나머지
안정된 맛이 없고..... 감각과 의욕만은 사줄 수 있으외 신인다운 무경험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라고 주관적인 의견을 객관화시켜 써있네요~~
(아 참 제가 지금 쓰는 글들은 월간팝송 85년 몇월호인지 모르겠는데
표지가 줄리앙 레논인 호의 책속의 책 주다스 프리스트에서 90% 발췌한 겁니다)
하지만 첫 앨범에 대한 혹평과 저조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주다스 프리스트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 순회공연을 밀고 나갔습니다
사실 그동안 순회공연으로 닦아놓은 기반은 어느 정도
튼튼했기 때문에 앨범 한 장의 실패로 크게 의욕이 떨어지지는 않았겠죠
멤버의 누군가가 한 말입니다
제 생각엔 왠지 켄이 한 말 같군요
"앨범을 내니까 전혀 이익이 없지도 않더군요
사람들이 우리를 좀 더 진지하게 대해주고
또 공연때 연주가 예전보다는 쉽게 진행되더란 거죠"
https://youtu.be/957N7EAtp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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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Lay down your soul to the gods rock `n' roll`~~ ^^
추앙합니다
팁튼 어린 시절 미모 진짜 미쳤다~~~*^^
월요일엔 주다스를..
"앨범을 내니까 전혀 이익이 없지도 않더군요
사람들이 우리를 좀 더 진지하게 대해주고
또 공연때 연주가 예전보다는 쉽게 진행되더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