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 깡패제압으로 프랑스 경찰 교관
귀국해 잠시 숨을 고른 후 이관영은 1971년 해외파견 사범에 지원해 합격했다. 5단 이상이 지원한 시범을 쉽지 않았다. 국어·국사·영어와 태권도 실기시험에서 1등으로 선발되어 프랑스에 파견됐다. 그 후 1975년 5월 국기원에서 열린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프랑스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하는 등 프랑스에 태권도를 보급하며 국위선양에 기여한 공고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그의 다채로운 활동을 보고 영화계에서 러브콜을 보냈다. 1975년에는 홍콩영화 감독들에게 스카우트 되어 여러 작품에 출연했고, 이듬해 ‘파라문’이라는 한국 무술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후 배우생활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돌아가 저축한 돈을 모아 파리 중심지에 식당을 차렸다.
1981년 서른 중반에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파리 뒷골목에서 이발소 면도칼을 든 깡패 10여 명을 제압하는 그의 날렵한 모습에 매료된 프랑스 내무부 경찰청이 그를 경호교관으로 특채했다. 이관영은 경찰들에게 사격과 경호, 체포술 등을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프랑스와 관계가 있는 세네갈 등 북부 아프리카를 돌며 태권도를 지도하고 대통령 경호원들을 교육했다.
1991년에는 프랑스 경찰청 형사국 수사관으로 정식 임명된 후 2004년 ‘프랑스 태권도 보급 35주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제자들이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가랑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달려온 3천 여 명이 1969년 프랑스에 건너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2만 5천 여 명의 제자들을 길러낸 그의 노력과 경륜에 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그는 도장을 개관해 운영하다가 제자들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프랑스에 태권도를 심었다.
이날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가 울려 퍼지고 파리시장의 감사패도 전달되자 제자들과 관중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며 극진한 예우를 표시했다. 이관영도 감회가 남달랐다.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는 “35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 정말 기쁜 날”이라며, 재불한인회장을 역임한 경험을 살려 “외국에 나왔으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해야 한다. 한인회 역할도 친목 위주가 아니라 프랑스 사회에서 실질적인 협상력을 갖고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대표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랑스 주재대사는 “제자들이 또렷한 한국말로 ‘차렷, 경례, 시작’ 등의 구령을 외치는 모습을 보니 성공한 민간 외교의 훌륭한 사례”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처럼 프랑스에 꾸준히 태권도와 한국문화를 알려온 그에게 또 한 번 잊지 못할 영광이 찾아왔다. 2019년 프랑스 우정공사(La Poste)가 프랑스 태권도 보급 50주년을 맞아 ‘이관영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해외에서 발행한 현지 국가의 우표에 한국인 태권도 사범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우표 발행도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이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