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 장아함경 제10권
삼취경 (三聚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 국기 수급 고독원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미묘한 법을 연설하리니, 의미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3 취법이라 한다.
너희들은 잘 듣고 깊이 생각하여 기억하도록 하라.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그때 모든 비구들은 가르침을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법취(法聚)의 세계란,
하나의 법은 악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요,
다른 하나의 법은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의 법은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인가 하면,
인자한 마음이 없고 독해할 마음을 품는 것이니,
이것이 장차 악한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인가 하면,
악한 마음으로써 중생을 해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장차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이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인가 하면,
능히 정근하여 신념처를 닦는 것이니,
이것이 장차 열반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이다.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이 있고,
또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이 있으며,
다시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인가 하면,
하나는 계율을 허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견을 깨뜨리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인가 하면,
하나는 계를 갖추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견을 갖추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인가 하면,
하나는 그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관하는 것이다.
다시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이 있고,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이 있으며,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세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인가 하면, 세 가지 불선의 근본으로서,
즉 탐욕이라는 불선의 근본과 성냄이라는 불선의 근본과 어리석음이라는 불선의 근본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인가 하면, 세 가지 선의 근본으로서,
즉 탐욕이 없는 선의 근본과 성냄이 없는 선의 근본과 어리석음이 없는 선의 근본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인가 하면, 세 가지 삼매로서,
즉 공삼매 무상삼매 무작삼매이다.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이 있고,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이 있으며,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정다운 말과 성내는 말과 두렵게 하는 말과 어리석은 말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정답지 않은 말과 성내지 않는 말과 두렵게 하지 않는 말과 어리석지 않은 말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인가 하면,
4념처(念處)를 말한다.
4념처란 신념처 수념처 심념처 법념처이다.
다시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다섯 가지 법이 있고 선한 세계로 향하는 다섯 가지 법이 있으며 열반으로 향하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다섯 가지 법인가 하면,
다섯 가지 계율을 깨뜨리는 것으로서, 즉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술을 마시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다섯 가지 법인가 하면,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서 즉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행 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다섯 가지 법인가 하면,
다섯 가지 근본으로서 즉 다섯 가지 근본이란 믿음의 근본 정진의 근본 생각의 근본 선정의 근본 지혜의 근본이다.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인가 하면, 여섯 가지 불경을 말하나니, 즉 부처를 공경하지 않고 법을 공경하지 않으며, 승단을 공경하지 않고 계율을 공경하지 않으며, 선정을 공경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인가 하면, 여섯 가지 경법으로서 즉 부처를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며, 승단을
공경하고 계율을 공경하며, 선정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인가 하면, 여섯 가지 사념(思念)으로서 즉 부처를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며, 승단을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며, 보시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인가 하면, 살생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 음탕한 것 거짓말 이간시키는 말 욕설 꾸밈말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인가 하면,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이간질하지 않고 욕설하지 않으며, 꾸밈 말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인가 하면, 일곱 가지의 각의(覺意)로서, 즉 염각의 택법각의 수행함에 있어서 늘 잘 생각하여 정과 혜가 한결같도록 하는 것. 정진각의 의각의 정각의 희각의 사각의 이다.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여덟 가지 삿된 행위로써 삿된 소견ㆍ삿된 뜻ㆍ삿된 말ㆍ삿된 행동삿된 생활 삿된 방편 삿된 생각 삿된 선정을 말한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세상의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말ㆍ바른 행동ㆍ바른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을 말한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여덟 가지 현성의 도로서, 즉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말ㆍ바른 행동ㆍ바른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이다.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아홉 가지 괴롭힘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 나를 침노해 괴롭혔고, 현재에도 나를 침노해 괴롭히며, 앞으로도 나를 침노해 괴롭힐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과거에 침노해 괴롭혔고, 현재에도 침노해 괴롭히며, 앞으로도 침노해 괴롭힐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자를 과거에 사랑하고 공경했고, 현재에도 사랑하고 공경하며, 앞으로도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아홉 가지 괴롭힘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가 과거에 나를 침노했는데 내가 번민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여 과거에도 번민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저가 과거에도 침노했는데 내가 괴로워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여 과거에도 번민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자를 저는 과거에도 사랑하고 공경했는데 내가 괴로워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여 과거에도 번민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기쁨,
둘째는 사랑,
셋째는 기뻐함,
넷째는 즐거움,
다섯째는 선정,
여섯째는 진실된 지견,
일곱째는 버림,
여덟째는 욕심 없음,
아홉째는 해탈이다.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인가 하면, 열 가지 불선으로서,
즉 몸으로 짓는 살생ㆍ도둑질 음행과 입으로 짓는 이간질하는 말 욕설 거짓말 꾸밈 말과 뜻으로 짓는 탐욕 질투 사견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인가 하면, 열 가지 선행으로서 즉 몸으로 짓는 살생ㆍ도둑질ㆍ간음을 하지 않는 것, 입으로 짓는 이간시키는 말ㆍ욕설ㆍ거짓말ㆍ꾸밈말을 하지 않는 것, 뜻으로 짓는 탐욕ㆍ질투ㆍ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인가 하면, 열 가지의 곧은길로서 즉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말ㆍ바른 행동 바른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ㆍ바른 해탈ㆍ바른 지혜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열 가지의 법은 열반에 이르게 할 수 있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3취(聚)의 미묘하고 바른 법이라 한다.
내가 여래가 되어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모두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나, 너희들을 걱정하기 때문에
경도(經道)를 연설하는 것이다.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제 자신의 몸을 걱정하라.
마땅히 나무 밑에 한가히 있으면서 깊이 생각하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지금에 노력하지 않고 뒷날에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선생경 (善生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열기 성의 기사 굴산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 안에 들어가 밥을 빌고 계셨다.
그때 라열기 성에 선생이라는 장자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이른 아침에 성을 나와 동산으로 가서 소풍 하곤 했는데 방금 목욕을 하고 나서 온몸이 젖은 채로 동ㆍ서ㆍ남ㆍ북과 상
하의 모든 방위를 향해 두루 예배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선생 장자가 동산으로 나가 소풍 하는데 갓 목욕하여 온몸이 젖은 채로 모든 방위를 향해 절하는 것을 보았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보고 곧 그에게로 가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슨 일로 이른 아침에 성을 나와 동산 숲에서 온몸이 젖은 채로 모든 방위를 향해 절을 하는가?”
그러자 선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 아버지께서 임종하실 적에 '네가 예배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먼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ㆍ상방ㆍ하방에 예배하라'라고
제게 유언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명령을 감히 어길 수 없어 목욕한 뒤 손을 모으고 동방을 향해 예배하고 남ㆍ서ㆍ북방과 상ㆍ하 모든 방위에도
두루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장자의 아들아, 그것은 방위라는 이름이 있을 뿐이다.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 현성 법에서는 그 6방에 예배하는 것을 공경으로 여기지 않는다.”
선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저에게 현성 법에서는 어떻게 6방에 예배하는지 그 법을 말씀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들어라. 잘 생각해보고 기억하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선생이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즐겨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결업(結業)에 대해 알고 네 곳에서 악행을 짓지 않으며 또 능히 여섯 가지 손재업을 안다면
선생아, 이것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악행을 떠나 6방을 예경 한다' 고 하느니라.
그러면 이승에서도 좋고 저승에서도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이요,
이승에서도 뿌리가 되고 저승에서도 뿌리가 될 것이다.
현재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세상의 1과(果)를 얻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하늘의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선생아, 마땅히 알라. 네 가지 결행(結行)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살생이요,
두 번째는 도둑질이요,
세 번째는 음탕한 짓을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네 곳[處]인가?
첫 번째는 욕심이요,
두 번째는 성냄이요,
세 번째는 두려움이요,
네 번째는 어리석음이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 네 곳에서 악을 지으면 곧 손해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
이 네 가지 법을 가진 사람은
마치 그믐을 향하는 달처럼
그 명예가 날로 줄어들리라.
부처님께서 다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 네 가지로써 악을 짓지 않으면 곧 이익이 있을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
이런 악행을 짓지 않는 사람은
마치 보름을 향하는 달처럼
그 명예가 날로 더해가리라.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손재업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술에 빠지는 것이요,
두 번째는 노름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방탕한 짓을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기악(伎樂)에 미혹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악한 벗과 사귀는 것이요,
여섯 번째는 게으른 것이니,
이것을 여섯 가지 손재업이라고 한다.
선생아,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결행을 알고 네 곳에서 악행을 짓지 않으며 또 여섯 가지 손재업을 안다면, 선생아,
이것이 네 곳을 떠나 6방을 공양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금생도 좋고 후생도 좋으며, 이승에서 뿌리가 되고 저승에서도 뿌리가 될 것이다.
현재에서는 지혜로운 자들에게 칭찬받고 세상의 1과(果)를 얻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하늘의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선생아, 마땅히 알라.
술을 마시면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재물을 없애게 되고,
두 번째는 병이 생기며,
세 번째는 다투게 되고,
네 번째는 나쁜 이름이 퍼지게 되며,
다섯 번째는 성을 내고 사나워지게 되고,
여섯 번째는 지혜가 날로 줄어든다.
선생아, 만일 저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살림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선생아, 노름을 해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재산이 날로 없어지고,
두 번째는 이기더라도 원한을 사게 되며,
세 번째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꾸지람을 듣고,
네 번째는 사람들이 공경하지도 믿지도 않으며,
다섯 번째는 사람들이 멀리하게 되고,
여섯 번째는 도둑질할 마음이 생기게 된다.
선생아, 이것을 노름으로 생겨나는 여섯 가지 손실이라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노름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살림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방탕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두 번째는 재물을 보호하지 못하며,
세 번째는 자손을 보호하지 못하고,
네 번째는 항상 스스로 놀라고 두려워하며,
다섯 번째는 온갖 괴로움과 불행이 항상 그 몸을 휘감고,
여섯 번째는 허망한 일이 생기기 쉽다.
이것을 방탕의 여섯 가지 손실이라고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방탕한 짓거리를 멈추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선생아, 기악에 미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가수를 구해야 하고,
두 번째는 춤꾼을 구해야 하며,
세 번째는 거문고와 비파를 구해야 하고,
네 번째는 파 내조를 구해야 하며,
다섯 번째는 손에 드는 작은 방울을 구해야 하고,
여섯 번째는 큰 북을 구해야 한다.
이것을 기악의 여섯 가지 손실이라고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기악을 즐겨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악한 벗과 사귀는 것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속임수를 써 속이게 되고,
두 번째는 으슥한 곳을 좋아하게 되며,
세 번째는 남의 집 사람을 꾀이게 되고,
네 번째는 남의 물건을 얻으려고 꾀하게 되며,
다섯 번째는 재물과 이익만 좇게 되고,
여섯 번째는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를 좋아하게 된다.
이것을 악한 벗과 사귀는 여섯 가지 손실이라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악한 벗과 사귀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게으름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부유하고 즐겁다고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가난하고 궁핍하다면서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춥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덥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때가 이르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고,
여섯 번째는 때가 늦었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게으름의 여섯 가지 손실이라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게으름을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술에 미혹해 빠지는 사람
그에게는 또 술친구만 늘어나
올바르게 모은 재산
어느새 다시 흩어지고 마네.
술 마심에 절도가 없고
언제나 노래와 춤과 유희 즐기며
대낮에 남의 집에 놀러 다니니
그로 인해 스스로 함정에 떨어지네.
나쁜 벗 사귀어 고치지 않고
도 닦는 사람을 비방해 말하니
세상 사람들 삿된 소견을 비웃고
행실이 더럽다고 버림받으리.
좋다 나쁘다 겉모양에 집착하고
의논하는 것이라곤 승부를 겨루는 일
악함과 친해 돌아올 줄 모르면
과 친해 돌아올 줄 모르면
행실이 더럽다고 남의 버림받으리.
술 때문에 거칠고 미혹하게 되어
가난하고 궁핍한 것 생각하지 못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겨 사치 좋아하다가
가정을 파괴하고 재앙을 불러오네.
노름하고 술 마시는 무리를 만들고
음탕한 남의 여자 엿보며
더러운 행실을 좋아하여 익히나니
마치 그믐을 향하는 달 같구나.
악한 짓을 행하고 악한 과보 받으며
악한 벗들과 함께 일을 저지르면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언제나 얻는 것 하나도 없네.
대낮에는 마냥 잠자기만 좋아하고
밤에는 깨어 바라는 것 많으면
외롭고 어리석어 좋은 벗 없고
집안의 살림살이 다스릴 줄 모르네.
이르다 늦다 핑계 대며 일하기 싫어하고
춥다 덥다 핑계로 더욱 게으름 피우니
하던 일은 하나도 끝맺지 못하고
또다시 다 된 일도 망치고 마네.
추위와 더위 가리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일하면
어느 사업이고 안 될 것 없어
마침내 근심 걱정 없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원수가 있으니 너는 마땅히 깨달아 알라.
어떤 것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 번째는 두려운 체하면서 복종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달콤한 말이며,
세 번째는 공경하고 순종하는 체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나쁜 벗이다.
두려워서 복종하는 데에는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먼저는 주었다가 뒤에 가서 빼앗는 것이요,
두 번째는 적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며,
세 번째는 두려워서 억지로 친한 체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이익을 위하기 때문에 친한 체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려워서 복종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달콤한 말로 친한 체하는 데에도 또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선하건 악하건 무조건 따르는 것이요,
두 번째는 어려움이 있으면 저버리는 것이며,
세 번째는 겉으로 어서 오라고 하며 속으로는 막는 것이요,
네 번째는 위태로운 일이 생기면 곧 배척하는 것이다.
이것을 달콤한 말로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공경하고 순종하며 친한 체하는 것에도 또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미리 속이는 것이요,
두 번째는 나중에 속이는 것이며,
세 번째는 현재에 속이는 것이요,
네 번째는 조그마한 허물만 보아도 곧 매질하는 것이다.
이것을 공경하고 순종하며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악한 벗이 친한 체하는 것에도 또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술을 마실 때에 벗이 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도박할 때에 벗이 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음탕한 짓을 할 때에 벗이 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노래하고 춤출 때에 벗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악한 벗이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두려워 복종하면서 억지로 친한 체하고
달콤한 말로도 그렇게 하며
공경하고 순종하며 거짓으로 친한 체하고
악한 벗은 나쁜 짓으로 친한 체하네.
이런 친구 믿을 수 없나니
어서 빨리 그들을 멀리 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알아
마치 위험한 길을 피하듯 하네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친할 만한 친구에 네 가지가 있다.
그들은 이익되는 바가 많고 또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잘못을 그치게 하는 친구이고,
두 번째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친구이며,
세 번째는 남을 이롭게 하는 친구이고,
네 번째는 고락을 함께하는 친구이다.
이것이 친할 만한 네 가지 친구로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나니 마땅히 그들을 친근히 하라.
선생아, 잘못을 그치게 하는 것에 네 가지 사연이 있으니, 그들은 이롭게 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사람이 악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곧 그것을 말리는 것이요,
두 번째는 사람에게 정직한 도리를 보여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는 것이요,
네 번째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태어나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허물을 그치게 하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에도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첫 번째는 남의 이익을 보면 대신 기뻐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남의 악을 보면 대신 걱정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남의 덕을 칭찬하고 기리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이 악을 말하는 것을 보면 곧 그것을 막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에도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그가 방일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가 방일하여 재산을 잃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몰래 서로 가르쳐 훈계하는 것이다.
이것이 남을 이롭게 하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고락을 함께하는 것에도 네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그를 위해 신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를 위해 재물을 아끼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를 위해 그의 두려움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그를 위해 남몰래 깨우쳐 훈계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락을 함께하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또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허물을 억제하고 악함을 막아주는 친구
남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친구
남을 이롭게 하여 그를 도와주는 친구
제 일처럼 고락을 함께하는 친구
이런 친구 라야 친할 만한 친구이며
지혜로운 이들이 가까이할 자
친구 중에 더없이 좋은 친구
마치 그 어머니 아들을 사랑하듯이.
만일 친할 만한 친구를 친하려거든
마땅히 견고한 친구를 친하도록 하라.
친근히 하는 이가 계행을 구족 하면
불빛이 사람을 비추듯 하리라.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여섯 방위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부모는 동방이요,
사장(師長)은 남방이요,
아내는 서방이요,
친척은 북방이요,
종들은 하방이요,
사문 바라문과 행이 높은 모든 사람은 상방이다.
선생아, 남의 자식 된 자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이바지해 받들어 모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할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먼저 부모에게 아뢰는 것이며,
세 번째는 부모가 하는 일은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부모의 바른 명령을 감히 어기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부모가 하던 바른 가업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선생아, 대개 남의 자식 된 자는 다섯 가지 일로써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며, 부모도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아들을 사랑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자식을 통제하여 악을 행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가리키고 타이르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 사랑이 뼛속까지 사무치도록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자식에게 좋은 짝을 구해주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때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대주는 것이다.
선생아, 자식이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하며 공손히 받들어 섬기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제자가 스승을 공경하고 받드는 데에도 또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필요한 것을 대주는 것이요,
두 번째는 예경하고 공양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존중하고 우러러 받드는 것이요,
네 번째는 스승의 가르침이 있으면 공손히 따르고 어기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스승에게 법을 듣고는 잘 기억해 잊지 않는 것이다.
선생아, 대개 제자 된 자는 마땅히 이 다섯 가지 법으로써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고 섬겨야 한다.
스승과 어른도 또한 다섯 가지 일로써 제자를 잘 보살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법대로 잘 길들이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가 듣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묻는 바에 따라 그 뜻을 알게 해 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좋은 벗을 소개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인색함이 없이 아는 것을 다 가르쳐 주는 것이다.
선생아, 제자가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고 순종하며 공손히 받들어 모시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남편이 아내를 공경하는 데에도 또한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서로 예의로써 대접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위엄을 지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제 때에 옷과 양식을 대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때에 따라 몸치장을 하게 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집안일을 맡기는 것이다.
선생아, 남편은 이 다섯 가지 일로써 아내를 공경하고 대접해야 한다.
아내도 또한 다섯 가지 일로써 남편을 공경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먼저 일어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나중에 앉는 것이며,
세 번째는 부드러운 말을 쓰는 것이요,
네 번째는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뜻을 먼저 알아 받드는 것이다.
선생아, 남편이 아내를 이같이 공경하고 대접하는 것이다.
이같이 공경히 대접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사람 된 자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친족을 가까이하고 공경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베풀어주는 것이요,
두 번째는 착한 말을 쓰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이롭게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이익을 함께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속이지 않는 것이다.
선생아, 이것이 다섯 가지 일로써 친족을 가까이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친족도 또한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사람을 가까이하고 공경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방종하고 안일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방종하고 안일하여 재산을 잃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몰래 서로 가르쳐 훈계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항상 서로 칭찬하는 것이다.
선생아, 이렇게 친족을 보살피고 공경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주인은 다섯 가지 일로써 하인을 가르쳐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그 능력에 알맞게 부리는 것이요,
두 번째는 제때에 음식을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제때에 보수를 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병이 들면 약을 주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휴가를 허락하는 것이다.
선생아, 이것이 다섯 가지 일로써 하인을 부리는 것이다.
하인도 또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주인을 받들어 섬겨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주지 않으면 가지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일을 순서 있게 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주인의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다.
이것이 주인이 하인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시주(施主)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사문 바라문을 공양해 받들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따뜻한 행동으로 대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따뜻한 말로 대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때 맞추어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문을 막지 않는 것이다.
선생아, 이처럼 시주는 이 다섯 가지 일로써 사문 바라문을 공양해 받들어야 한다.
사문 바라문은 또 여섯 가지 일로써 가르쳐야 한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악을 짓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착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선한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듣지 못한 것을 들려주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이미 들은 것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요,
여섯 번째는 하늘에 태어나는 길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선생아, 이것이 시주가 사문 바라문을 공손히 받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으로써 말씀하셨다.
부모는 동방이고
스승은 남방이며
아내는 서방이고
친족은 북방이며
하인은 하방이고
사문은 상방이네.
모든 장자의 아들들아
모든 방위에 예경하고
공경하고 순종해 때를 놓치지 않으면
죽어서는 모두 천상에 태어나리.
은혜로운 보시와 부드러운 말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 준다네.
너와 나 이익을 공평히 하고
가진 것을 남과 함께 나눠 가져라.
이 네 가지는 큰 짐이라
무거운 짐 실은 수레와 같네.
그러나 세간에 이 네 가지가 없다면
효성스러운 봉양은 있을 수 없네.
이 법은 세간에 있어
지혜로운 사람이 선택하는 것
이것을 행하면 큰 과보 얻고
아름다운 이름 멀리 퍼지리.
평상과 자리를 장엄하게 꾸미고
훌륭한 음식을 차려 올리며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주면
아름다운 이름 멀리 퍼지리.
친구는 서로 버리지 않고
이익되는 일들을 서로 보여주며
상하가 늘 서로 화합한다면
이때 비로소 좋은 명예 얻는다.
마땅히 먼저 기예부터 익히고
그런 다음 재물 늘릴 직업을 가지며
재물을 얻어 이미 구족 하거든
마땅히 스스로 지키고 보호하라.
재물 쓰되 사치하지 말고
마땅히 줄 사람 가리어 주라.
남을 속이고 함부로 내닫거든
아무리 빌어도 주지 말아라.
재물을 쌓되 적은 데서 시작하라.
마치 여러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재물은 날마다 점점 불어나
마침내 줄거나 소모됨이 없으리라.
첫째는 음식에 만족할 줄 알고
둘째는 일을 하되 게으르지 말며
셋째는 미리 모으고 쌓아
그것으로 궁핍할 때를 준비하라.
넷째는 밭 갈고 장사도 하며
목장 만들어 짐승 먹이고
다섯째는 마땅히 탑 묘를 세우고
여섯째는 절의 방사를 지어라.
재가자는 이 6 업을 부지런히 힘써
잘 닦아 그때를 놓치지 말라.
이와 같이 그 행을 닦아 나가면
집안 살림 줄어들 일 없고
재물은 날로 점점 불어나
바다로 온갖 강물 흘러들 듯하리.
그때 선생(善生)은 세존께 아뢰었다.
“참으로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실로 제가 본래 기대했던 것보다 월등하고 제 아버지의 가르침을 넘어섰습니다.
엎어진 자로 하여금 우러름을 얻게 하고, 닫힌 자로 하여금 열림을 얻게 하며, 미혹한 자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고,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서 눈 있는 자가 보게 하셨습니다.
여래의 말씀도 그와 같아서 무수한 방편으로써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깨치게 하고 맑고 깨끗한 법을 보여주셨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께서는 여래ㆍ지진ㆍ등 정각이 시기 때문에 능히 열어 보이시어 세상의 밝은 길잡이가 되셨습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합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바른 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저는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때 선생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대연 방편大緣方便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사국의 겁마사 마을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아난은 고요한 곳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너무도 기이하고 특별하구나.
세존께서 말씀하신 열두 가지 인연법의 광명은 매우 깊어 알기 어렵구나.
그러나 내가 마음속으로 관찰해 보니 마치 눈앞에 있는 일과 같은데 무엇 때문에 깊은 이치가 있다고 하는가?'
그렇게 생각한 아난은 곧 고요한 곳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갔다.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저는 아까 조용한 방에서 잠자코 혼자 생각하기를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열두 가지 인연법의 광명은 매우 깊어 알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마음속으로 관찰해 보니 마치 눈앞에 있는 일과 같은데 무엇 때문에 깊다고 하는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아난아, 이 열두 가지 인연법의 광명은 너무도 심오하며 이해하기 어렵다.
아난아, 이 열두 가지 인연법은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다.
모든 하늘ㆍ악마ㆍ범천ㆍ사문 바라문으로서 아직 인연법에 대하여 관찰하지 못한 자가 만일 생각으로 헤아려보고 관찰하여 그
이치를 분별하려고 한다면 곧 정신이 아득하여 관찰해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내가 이제 너에게 말해 주겠다.
늙고 죽음에는 연(緣)이 있다.
만일 누가 '무엇이 늙고 죽는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생이 늙고 죽음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어떤 것이 생의 연인가' 하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유(有)가 생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유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취(聚)가 유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취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애(愛)가 취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애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수(受)가 애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수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촉(觸)이 수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촉의 연인가?'하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6입(入)이 촉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6입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명색(名色)이 6입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명색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식(識)이 명색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식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행(行)이 식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행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치(癡)가 행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아난아,
이와 같이 치(癡)를 연(緣)으로 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으로 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을 연으로 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연으로 하여 6입이 있으며,
6입을 연으로 하여 촉이 있고
촉을 연으로 하여 수가 있으며,
수를 연으로 하여 애가 있고
애를 연으로 하여 취가 있으며,
취를 연으로 하여 유가 있고
유를 연으로 하여 생이 있으며,
생을 연으로 하여 늙음과 죽음과 걱정과 슬픔과 고뇌 등 큰 근심의 덩어리가 있다.
이것이 큰 고음(苦陰)의 연이 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생을 연으로 하여 늙고 죽음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이 생이 없다면 그래도 늙음과 죽음이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난아, 이 연법을 통해서 늙음과 죽음은 생으로 인하여 생기고 생을 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유를 연하여 생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이 욕유ㆍ색유ㆍ무색유가 없다면 그래도 생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러한 연법을 통해서 생은 유로 인하여 생겨나고 유를 연하여 생이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취를 연하여 유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욕취ㆍ견취ㆍ계취ㆍ아취가 없다면 그래도 유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러한 연법을 통하여 유는 취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고 취를 연하여 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애를 연하여 취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욕애ㆍ유애ㆍ무유애가 없다면 그래도 취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러한 연법을 통해서 취는 애로부터 생겨나고 애를 연하여 취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수를 연하여 애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낙수ㆍ고수ㆍ불고불락수가 없다면 그래도 애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애는 수로부터 생겨나고 수를 연하여 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마땅히 알라.
애(愛)를 인하여 구함이 있고 구함을 인하여 이익이 있고 이익을 인하여 씀이 있고 씀을 인하여 욕심이 있고 욕심을 인하여 집착이 있고 집착을 인하여 질투가 있고 질투를 인하여 지킴이 있고 지킴을 인하여 보호가 있다.
아난아, 보호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칼과 막대기와 다툼이 있어 무수한 악을 짓는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보호함이 없게 한다면 그래도 칼과 막대기와 다툼이 있어 무수한 악을 일으키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하여 칼과 막대기와 다툼은 보호로부터 일어나고 보호를 연하여 칼과 막대기와 다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난아,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킴을 인하여 보호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지킴이 없게 한다면 그래도 보호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보호는 지킴으로부터 생겨나고 지킴을 인하여 보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질투로 말미암아 지킴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질투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지킴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지킴은 질투로부터 생겨나고 질투를 연하여 지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집착으로 인하여 질투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집착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질투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질투는 집착으로부터 생겨나고 집착을 연하여 질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욕심으로 인하여 집착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욕심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집착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집착은 욕심으로부터 생겨나고 욕심을 연하여 집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씀을 인하여 욕심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씀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욕심이 생기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런 이치를 통해서 욕심은 씀으로부터 생겨나고 씀을 연하여 욕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이익을 인하여 씀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이익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씀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런 이치를 통해서 씀은 이익으로부터 생겨나고 이익을 연하여 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구함을 인하여 이익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구함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이익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이익은 구함으로부터 생겨나고 구함을 연하여 이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애(愛)를 인하여 구함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애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구함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구함은 애(愛)로부터 생겨나고 애를 인하여 구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애를 인하여 구함이 있다.
이리하여 지키고 보호함에 이르기까지의 이치도 마찬가지이며, 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수를 인하여 구함이 있으며, 나아가 지키고 보호함에 이르기까지의 이치도 마찬가지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촉(觸)을 연하여 수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아난아, 만일 눈이 없고 빛이 없고 눈의 인식작용이 없다면 그래도 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귀ㆍ소리ㆍ귀의 인식작용과 코ㆍ냄새ㆍ코의 인식작용과 혀ㆍ맛ㆍ혀의 인식작용과 몸ㆍ닿임ㆍ몸의 인식작용과 뜻ㆍ법ㆍ뜻의 인식작용이 없다면 그래도 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만일 일체 중생들에게 촉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수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이치를 통하여 수는 촉으로부터 생겨나고 촉을 연하여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명색을 연하여 촉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중생에게 명색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마음의 감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일체 중생에게 형색과 모형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몸의 감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만일 명색이 없다면 그래도 감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촉은 명색으로부터 생겨나고 명색을 연하여 촉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식이 모태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래도 명색이 생길 수 있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식이 모태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다면 그래도 명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식이 태에서 나와 어린아이 때 없어지고 만다면 그래도 명색이 자라날 수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만일 식이 없다면 그래도 명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이 연법을 통해서 나는 명색은 식으로부터 생겨나고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명색을 연하여 식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식이 명색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곧 식이 머무를 곳이 없을 것이다.
만일 식이 머무를 곳이 없다면 그래도 생ㆍ노ㆍ병ㆍ사와 우ㆍ비ㆍ고ㆍ뇌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만일 명색이 없다면 그래도 식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식은 명색으로부터 생겨나고 명색을 연하여 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명색은 6입(入)을 연(緣)하고 6입은 촉을 연하고 촉은 수를 연하고 수는 애를 연하고 애는 취를 연하고 취는 유를 연하고 유는 생을 연하고 생은 노ㆍ사ㆍ우ㆍ비ㆍ고ㆍ뇌의 큰 고음의 쌓임을 연한다.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하게 말하고 가지런하게 대답하고 가지런하게 한계를 짓고 가지런하게 연설하고 가지런하게 지혜로 관찰하고 가지런하게 중생을 위하느니라.
아난아, 모든 비구는 이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바르게 관찰하여 번뇌가 없어진 마음의 해탈을 얻으면 아난아, 이 비구는 마땅히 지혜의 해탈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의 해탈을 증득한 비구는 여래의 마지막도 알고 여래의 마지막이 아닌 것도 알며, 여래의 마지막과 마지막 아닌 것도 알고, 여래의 마지막 아닌 것과 마지막 아님이 아닌 것도 안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하게 말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대답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한계를 짓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지혜로 관찰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알아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을 얻은 비구는 알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며 다만 이렇게 알고 볼 뿐이다.
아난아,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를 거의 아견이라고 하고 명색과 수를 다 나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수는 나가 아니고 나라는 것이 수이다'라고 말하고, 혹 어떤 사람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라는 것이 수도 아니며, 수법이 곧 나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수도 나라는 것이 아니고 나라는 것도 수가 아니며, 수법도 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애가 나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아난아, 저 나라는 견해를 가진 자들이 '수가 바로 나이다'라고 하거든 너는 마땅히 그들에게 '여래께서 고수ㆍ낙수ㆍ불고불락수, 이 세 가지 수(受)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낙수가 있을 때는 고수와 불고불낙수는 있을 수 없고, 고수가 있을 때는 낙수와 불고불낙수는 있을 수 없으며, 불고불낙수가 있을 때는 고수와 낙수는 있을 수 없다고 하셨다'라고 말하라.
왜냐 하면 아난아, 낙촉(樂觸)을 연으로 하여 낙수(樂受)가 생겨나나니, 만일 낙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하기 때문이다.
아난아, 고촉(苦觸)을 연으로 하여 고수가 생겨나나니, 만일 고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불고불락촉을 연으로 하여 불고불락수가 생겨나나니, 만일 불고불락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두 개의 나무를 서로 비비면 곧 불이 일어나지만 각각 딴 곳에 두면 불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낙촉을 연으로 하여 낙수가 생겨나는 것이므로 만일 낙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고촉을 연으로 하여 고수가 생겨나는 것이므로 만일 고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불고불락촉을 연으로 하여 불고불락수가 생겨나는 것이므로 만일 불고불락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아난아, 이 세 가지 수(受)는 작용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한 것이 아니고 연을 따라 생겨나나니, 다하는 법이요 멸하는 법이요 썩어 무너지는 법이다.
저것들은 나의 소유도 아니요 나 또한 저것의 소유가 아니다.
마땅히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그것을 관찰하라.
아난아 저들이 나라는 견해를 가지는 것은 수를 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수는 나가 아니고 나라는 것이 수이다'라고 말하거든 너는 마땅히 그에게 '여래께서 고수ㆍ낙수ㆍ불고불락수 이 세 가지 수(受)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만일 낙수가 나라면 낙수가 멸할 때에는 곧 두 개의 나라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만일 고수가 나라면 고수가 멸할 때에는 곧 두 개의 나라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도 잘못이다.
만일 불고불락수가 나라면 불고불락수가 멸할 때에는 곧 두 개의 나라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도 잘못이다'라고 말하라.
아난아,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보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라는 것이 곧 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고 나라는 것은 수도 아니며, 수법이 나이다'라고 말하거든 너는
마땅히 그에게 '모든 것에는 수가 없는데 너는 어떻게 수법이 있다고 하는가?
네가 바로 수법이냐?' 하고 말하라.
그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는 수도 아니며, 수법이 곧 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는 수도 아니며, 수법도 나가 아니다.
오직 애(愛)가 나이다'라고 말하거든, 너는 그에게 '모든 것은 수가 없는데 어떻게 애가 있겠느냐?
네 자신이 곧 애이냐?'라고 말하라.
그러면 그는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도 수가 아니며, 수법도 나가 아니다.
애가 바로 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곧 잘못이다.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하게 말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대답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한계를 짓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연설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지혜로 관찰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중생을 위하느니라.
아난아, 모든 비구는 이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바르게 관찰하여 번뇌가 없어진 마음의 해탈을 얻으면 아난아, 이 비구는 마땅히 지혜의 해탈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의 해탈을 증득한 비구는 나라는 것이 있는 것도 알고 나라는 것이 없는 것도 알며, 나라는 것이 있는 동시에 나라는
것이 없는 것도 알고, 나라는 것이 있지도 않고 나라는 것이 없지도 않은 것도 또한 안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하게 말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대답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한계를 짓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지혜로 관찰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알아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을 얻은 비구는 알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며 다만 이렇게 알고 볼 뿐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똑같이 모두 결정적으로 말한다.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혹은 소량의 색을 나라고 하고 혹은 무량의 색을 나라고 한다.
혹은 소량의 무색을 나라고 하고 혹은 무량의 무색을 나라고 한다.
아난아, 저 소량의 색을 나라고 하는 자는 '소량의 색이 나이다.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다른 이가 보는 것은 그르다'고 단정하여 말한다.
무량의 색을 나라고 하는 자도 무량의 색을 나라고 하여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남이 보는 것은 그르다고 한다.
소량의 무색을 나라고 하는 자도 소량의 무색을 나라고 하며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남이 보는 것은 그르다고 하며, 무량의 무색을
나라고하는 자도 무량의 무색을 나라고 하여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남이 보는 것은 그르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7식주(識住)와 2입처(入處)에 대해서 모든 사문 바라문은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귀의처가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에 대해서 모든 사문 바라문은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귀의처가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일곱 가지라고 하는가?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곧 하늘과 사람 세계가 그것이니, 이것이 초식주(初識住)이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귀의처가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아난아, 만일 비구로서 초식주를 알되 그 원인을 알고 그 멸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허물을 알고 그 벗어나는 방법을 알면 그는
진실 그대로를 알게 되리라.
아난아, 그 비구는 '저는 나라는 것이 아니요 나도 저라는 것이 아니다.
진실 그대로를 보아 안다'고 말하리라.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각기 다르니 범광음천이 그것이며,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기 다르니 광음천이 그것이다.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이 그것이며, 어떤 중생은 공처에 머물고 어떤 중생은 식처에 머물며, 어떤 중생은
불용처에 머무르나니 이것을 7식주처라고 한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귀의처가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아난아, 만일 비구로서 7식주를 알되 그 원인을 알고 그 멸을 알고 그 맛을 알며 그 허물을 알고 그 벗어나는 방법을 알면 그는
진실 그대로를 알고 보게 되리라.
그 비구는 '저는 나가 아니요 나도 저가 아니다.
사실 그대로를 알고 볼 뿐이다'라고 말하리니, 이것이 7식주이다.
어떤 것이 2입처인가?
무상입과 비상무상입이 그것이다.
어떤 사문 바라문이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귀의처가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아난아, 만일 비구로서 2입처를 알되 그 원인을 알고 그 멸을 알며 그 맛을 알고 그 허물을 알며 벗어나는 방법을 알면 그는 사실 그대로를 알고 사실 그대로를 보게 되리라.
그 비구는 '저는 나가 아니요 나도 저가 아니다.
사실 그대로를 알고 볼 뿐이다'라고 말하리니, 이것이 2입처이다.
아난아, 또 8해탈이 있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색(色)에 대하여 색으로 관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고, 마음속으로 색을 생각하여 바깥의 색을 관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깨끗한 것을 관하여 해탈하는 것이 세 번째 해탈이요,
색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잡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공처에 머무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공처를 초월하여 식처에 머무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고, 색처를 초월하여 불용처에 머무르는 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초월하여 유상무상처에 머무르는 것이 일곱번째 해탈이고,
멸진정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아난아, 모든 비구가 이 여덟 가지 해탈에서 역순으로 노닐면서 드나들기를 자재로이 한다면 그러한 비구는 구해탈을 얻는다.”
그 때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