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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수집품
일시 : 2016.4.26 - 6.19
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국립경주박물관은 소장품 가운데는 일제강점기(1910~1945) 일본인들이 수집한 한국・중국・일본 관련 문화재 1301건 2651점이 있습니다. 이 문화재의 일부는 광복 직후 일본으로 불법 반출시키지 못하고 박물관으로 입수되었으며, 일부는 광복 당시 숨겨두었던 비밀 창고가 1963년에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와 접수품으로 등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일본의 다양한 종류의 문화재에 대한 진위 확인과 분류 작업 등 기초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이러한 접수품의 박물관 입수 내력과 대표 문화재를 일반인에게 최초 공개하는 전시로 ‘도자기’, ‘회화’, ‘중국 청동용기’, ‘보존과학’, ‘일제시대 복제된 우리 문화재 등의 5부로 구성하였습니다. 전시품으로는 우리나라의 고려청자・근대회화, 중국의 고대 예기 등 200여 점과 광복 이후 입수현황을 알 수 있는 관련 문서, 문화재 수리 및 복원된 문화재를 함께 전시하여 20세기 초의 박물관 기능과 보존처리 기법도 함께 소개합니다.
그리고, 수집가별 수집품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접수1~693번은 가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郞) 수집품 693건 918점, 접수694~1000번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의 수집품 307건 459점, 접수1001~1184번은 이치다지로(市田次郞)의 수집품 184건 373점, 접수1185~1186번은 가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郞)의 수집품 2건 694점, 접수1187~1301번은 기타 수집품 114건 206건 입니다. 재질별 분류 현황은 도토제 662점(25%), 자기 574점(22%), 금속 516점(20%), 석제 66점(2%), 유리보석 29점(1%), 서화 695점(26%) 입니다. (출처:국립경주박물관)
19세기 초 개성 밭에서 우연히 발견된 고려청자를 계기로 일본인은 고려청자 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선총독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고려청자 수집광이었고 이왕가박물관을 설립한 고미야 사보마쯔(小宮三保松) 역시 집안 가득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도자는 이렇게 박물관 수집 대상이 되면서 열띤 수집경쟁으로 가격은 더욱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고려능묘와 분청사기 가마의 도굴이 빈번해지고 서울과 대구 등에 골동품상이 성행했다는 기록이 『매천야록梅泉野錄』 등에 남아 있습니다. 광복 이후 청자매병, 분청사기편병 등 당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던 도자기는 이미 일본으로 상당 수 반출되었습니다.
광복 후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등 일본인 3명으로부터 압수와 기증 형식으로 경주박물관에 입수된 도자는 모두 574점입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고려청자⋅조선백자⋅분청사기⋅청화백자 등이고 중국 서진시대 청자⋅북송시대 월주요 청자⋅자주요 백자 등과 일본의 20세기 초 유행한 이마리도자⋅ 라쿠양식 도자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 귀 달린 항아리(고려(918 - 1392)
13세기에 만들어진 암녹색 청자항아리이다. 어깨부분에 4개의 고리가 달려 있으며 구연이 짧고 곧은 형태이다. 흔히 볼 수 없는 낯선 기형이다.
참외모양 주전자(고려 918 - 1392)
주구 끝부분이 일부 파손되었다. 손잡이 윗부분에는 작은 구멍이 달려있어 뚜껑과 줄로 연결할 수 있다. 몸체는 참외모양으로 골이 파여 있다. 뚜껑은 없어져 후대에 보충한 것이다.
모란무늬 납작병(조선 1392-1910)
조선 전기의 분청자기 납작 병이다. 성형과정에서 둥근 기벽을 앞뒤 양면에서 눌러 납작하게 만든 병이다. 몸통에 비해아가리와 바닥이 좁아 불안한 느낌을 주눈 기형이지만 기벽 외면의 모란무뉘와 세로 줄무늬가 병을 돋보이게한다. 술이나 물을 담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고기무늬 항아리(조선 1392-1910)
15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분청자기 상감항아리이다. 구연부가 두툼하고 목이 짧으며 불록하다. 어깨의 연판무늬가 매우 규칙적이며 특히 원 안에 두 마리의 물고기는 보기 드문 문양이다.
연꽃.용무늬 뚜껑그릇(고려 918 - 1392)
13세기에 만들어진 뚜껑그릇이다. 뚜껑에는 용과 구름. 연꽃을, 합에는 구름과 연꽃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사용 흔적이 있어 비록 무늬가 흐미하게 보이지만 문양의 자연스러운 조화가 눈에 띈다. 바닥에는 유약을 흝어내고 내화토 비짐을 사용하였다.
산수(山水) 원무늬 다각형 항아리(조선 1392 - 1910)
18세기 후반 존선시대에 만들어진 다각형 항아리이다. 구연이 말려서 두툼하며 동체는 다각형으로 약간의 굽이 있다. 백자의 붉은 안료로 산수원무늬를 그렸다.
인물누늬 작은병.식물무늬 병.식물무늬 육각 병 : (조선 1392-1910)
매화.대나무무늬 병(조선 1392 - 1910)
압출양각백자는 정조가 백성들의 사치 풍조를 들어 청화백자 제작을 금지기킴에 따라 일시적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주로 제작된다. 이 병도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병이다. 조각칼로 깎거나 혹은 틀에 눌러 찍어서 문양이 돌출되게 하였다. 매화와 대나무 무늬가 새겨져 있다.
십장생무늬 팔각형 접시(한국 20세기)
19세기에 만들어진 소형 팔각접시이다. 청화로 십장생 중에 하나인 학을 그려 넣었다.
국화무늬 작은 병(한국 20세기 1910 - 1945)
백자 국화무늬병이다. 몸체의 아랫부분이 볼록하며 구연은 밖으로 살짝 말려진 형태이다. 몸체에는 국화무늬와 잎이 전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사발(조선 1392 - 1910)
버드나무무늬 납작 병(고려 918 - 1392)
청자 납작 병은 고려후기에 새롭게 나타나는 기형이다. 이 청자는 14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어깨에 연판무늬가 있고 앞쪽 가운데 버드나무와 학을 장식하였다. 뒷면은 물가의 풀과 학이 있다. 비록 구연부가 수리되었지만 납작 병에 버드나무 무늬는 보기 드문 양식이다.
호랑이모양변기(중국서진 265 - 316)
연꽃.동자무늬 사발(중국 송 960 - 1279)
12세기 전형적인 요주요 청자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발이다. 해무리굽과 그릇 안쪽에 4명의 동자가 연꽃을 잡고 있는 모습을 압출양각으로 표현하였다.
삼채 항아리(중국 당 618 - 907)
당나라 때 만들어진 삼채항아리로 각종 금속 성분이 함유된 유약을 입혀 저온에서 구워낸 채색 자기이다. 항아리는 입 둘레가 말린 현태이며, 벌어진 어깨에 둥근 복부, 편평한 바닥을 하고 있다.
모란무늬 베개(중국 북송 960 - 1127)
중국 12세기 무렵 송나라의 자주요에서 만들어졌다. 베개의 면은 양쪽 마구리에서 안으로 휘어 들어갔으며 내면에 모란무늬가 새겨져있다.
모란무늬 베개(중국 북송 960 - 1127)
12세기 전반 송나라의 자주요에서 만들어진 베개이다. 베개의 면은 양쪽 마구리에서 안으로 휘어 들어갔으며 내면에 모란무늬가 새겨져있다. 중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잘 때 좋은 곳으로 간다고 믿어 베개를 화려하게 꾸미는 풍속이 있다.
네 귀 달린 병(중국 북송 960 - 1127)
자주요에서 구운 병이다. 백색 분장토로 전체를 바른 다음 흑유에 반만 담궈 2가지 색을 표현하였다. 어깨에는 4개의 귀가 달려있다.
사발(중국 송 960 - 1279)
13세기에 만들어졌다. 낮은 굽에 몸통은 밖으로 크게 벌어졌다. 바탕 흙은 흑색이며 내면에 갈색 유약으로 규칙적으로 점을 찍었다.
사발(중국 송 960 - 1279)
12세기에 만들어진 길주요 계통의 사발이다. 굽은 낮고 좁으며 구연으로 갈수록 바깥쪽으로 벌여져 굽보다 아가리가 더 크다.
소나무.대나무.매화 장식 병(중국 20세기)
20세기에 만들어진 벼이다. 다섯 가지의 색을 입혀 전체적으로 화려하며 소나무, 대나무, 매화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구름.용무늬 표주박모양병(중국 20세기)
20세기에 만들어진 표주박 모양 병이다. 붉은색 바탕에 용과 구름문양을 노란색으로 그렸다.
화병(중국 20세기)
20세기 전반의 화병으로 서양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동체가 옆으로 납작하면서 볼록하며 구연은 위로 곱게 뻗어져있다.
두 귀 달린 병(중국 20세기)
20세기 중국 근대에 만든 병이다. 어깨에서 목으로 올라가는 부분에 2개의 작은 고리가 부착되었다. 술병이나 화병 등 장식품으로 애용되었다.
두 귀 달린 장시병(중국 20세기)
20세기 이후 제작도니 장식 병이다. 난초와 모란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색이 화려하다.
용무늬 뚜껑그릇(중국 20세기)
근대에 만들어진 용무늬 그릇이다. 뚜껑과 그릇의 전체에 오채를 사용하여 용과 나무, 꽃을 그렸다.
긴목 병(중국 20세기)
실생활에 쓰기 위해 제작된 중국 근대의 병이다. 동체는 작고 볼록하며 목이 길게 올라가다가 구연은 나팔처럼 퍼져서 마무리되었다.
법랑무늬 항아리(중국 20세기)
법랑은 중국 원대에 서아시아로부터 전래되어 명대에 유행하였다. 검은 바탕에 문양부분을 파내고 법랑유로 메웠다. 법랑을 칠한 위에 붓으로 문양을 그렸다.
누각.산수무늬 접시(일본 근대 1868 이후)
2ㅐ세기 전반 일본에서 만들어진 백자 청화접시로 유럽 수출용 도자기이다. 아리타에서 제작되었다.
서영인물 법선무늬 그릇(일본 근대 1868 이후)
20세기 전반 일본에서 만들어진 백자 그릇이다. 유럽도안이 더해진 수출용 도자기로 일본 아리타에서 만들어졌다.
모란무늬 입 많은 병(일본 근대 1868 이후)
군대에 만들어진 유물로 큰 병의 어깨 부분에 4개의 작은 병이 달려있다. 동체에 음각으로 모란문을 그렸으며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남색의 빛깔을 내고 있다.
매화.국화무늬 그릇(일본 근대 1868 이후)
19세기 이후에 제작된 그릇이다. 백색 유약을 입힌후 청색으로 매화와 국화무늬를 그렸다.
식물무늬 국화모영 종지(일본 근대 1868 이후)
20세기 후반 일본에서 만들어진 백자 종지이다. 바닥에 국화무늬와 풀초무늬가 그려져있다.
조선시대는 건국초기부터 도화원圖畵院이 설치되어 사대부와 화원들이 당시 회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화원화가의 전통은 조선후기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정선의 진경산수,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등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식민지정책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선미술을 독창성 없는 중국의 아류로 보려는 풍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화풍을 따른 이인문과 심사정의 정형산수화를 더 애호하였고, 일본의 우키요에와 유사한 화조도나 풍속화 수집에 치중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의 경우에는 에도시대 이후 인물도와 화조도를 포함하여 서양화법이 가미된 풍경화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제국주의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그려진 불화를 다수 수집하는 등 당시 일본인의 미술품 애호 성향이 수집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보존과학
보존과학 : 2016년은 박물관 6대 기능에 속하는 보존이 국립박물관에서 그 역할을 시작한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동안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천마총 출토 장니를 비롯하여 약 2만점의 문화재를 보존처리 하였고, 수장고 및 전시실의 환경관리, 조사 분석을 통한 연구 등 우리문화재의 안전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보존과학 전시는 문화재보존에 대한 이해와 문화재를 과학의 눈으로 다시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특별전 전시품들이 수집되었던 일제강점기 당시의 보존기술에 주목하여 현대의 보존기술과 비교해보고자 하였습니다.
문화재의 보존에 얽힌 이야기와 과학의 시선視線으로 관찰하면서 문화재와 보존과학을 새롭게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석가모니(고려 918 -1392)
13세기 고려시대의 부처상이다. 큰 귀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일부 금칠히 칠해져 있다. 손, 목, 코 등에 일부 수리 흔적이 있다.
연적(조선 1392 - 1910)
둥근 공모양의 몸체에 물이 나오는 구멍과 손잡이 그리고 굽이 있는 연적이다. 몸체 윗쪽에 짐승의 머리 형상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물은 집승의 입 구멍으로 나온다. 굽의 중앙바닥에는 몸체 안쪽으로 깊게 구멍이 뚫려이쓴데, X선 촬영을 해보았더니 바닥에 난 구멍이 내부로 빨대처럼 솟아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 연적은 물속에 통째로 넣으면 쉽게 물이 채워지고, 내부의 관 높이 아래에서는 물이 새지않는 재미있는 연적이다.
사발(20세기)
은입사가 되어 있는 아연그릇이다. XRF 분석 결과 몸체는 아연(Zn)과 구리(Cu)rk 9:1 비율로 합금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고대 금속품에서 아연의 양은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아연의 함량이 구리보다 월등히 높은 분석 결과로 미루어 이 그릇은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아연과 은은 모두 은백색의 금속이다. 현재 검게 보이는 몸체는 아연 부식에 의한 변색이 아니라 입사문양을 돋보이기 위해 표면처리한 결과로 보인다.
정병(20세기)
정병의 형태는 옛것을 따르고 있지만 문양이 조잡하고, 오래된 것처럼 인위적으로 부식하였다. 국보 제92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을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부식층을 벗겨내고 은입사 표출을 시작한 상황이다. 입사포출이 완료되면 정확한 도상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름.용무늬 항아리(조선 1392 -1910.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소장품)
도자기 표면에 구멍을 뚫고 금속으로 꿰어 수리한 도자기이다. 옛 고문헌에서는 깨진 도자기의 수리 방법으로 이러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지만, 실물로 남아있는 예는 거의 없다. 같이 전시된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과 더불어 옛 도자기의 수리방법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호랑이.사자무늬 큰 바라(조선 1392 - 1910)
18세기 후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백자청화 바리이다. 깊고 넓은 몸체에 청화로 호랑이와 사자 그림을 시원하게 그려넣었다. 구연 일부와 몸체에 일제강점기 당시 금으로 수리한 흔적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복제된 우리 문화재
국립경주박물관에은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전 충남출토 청동거울(銅鏡)과(접수547), 입실리 출토 청동검 등 6점의 복제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복제품과 진품 및 관련 기록물을 함께 공개합니다.
그 동안 학계에는 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복제품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그 출처와 성격은 규명되지 못하였습니다.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고고학관계자료모형도보考古學關係資料模型圖譜(1931년/昭和六年’)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제작한 우리 문화재의 복제품 기록을 담은 중요한 발간물입니다. 책의 서문에는 1925년을 전후하여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의 교수인 하마다 코사쿠(濱田耕作, 1881~1938)와 기요노 겐지(淸野謙次, 1885~1955) 등이 한국, 일본, 중국, 서양 중요 문화재들의 모형 제작에 착수하여 1930년 작업을 마무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작업의 실무는 교토에 위치한 우에노제작소(上野製作所)가 맡았다고 합니다. 교육용으로 제작된 모형들은 판매가 목적이었고, 일부는 황실박물관, 교토제국대학, 동경제국대학 등에 기증되었습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복제품은 이때 제작된 것입니다.
중국 청동용기
‘중국 청동용기’는 제작된 시기에 따라 청동예기靑銅禮器와 방고청동기倣古靑銅器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청동예기는 중국 상주시대商周時代(기원전16세기~기원전771)부터 한대漢代(기원전206~기원후220)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고대 중국의 황실과 귀족들이 제사, 연회, 전쟁 등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 용기로 사용자의 지위와 신분, 권력에 따라 엄격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용도에 따라 음식 담는 그릇(食器), 술 담는 그릇(酒器), 물 담는 그릇(水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방고청동기는 북송北宋(960~1127)부터 청대淸代(1644~1911)까지 제작된 고대 청동예기의 모방품입니다. 방고청동기는 중국 송대 이후 고대문화의 애호와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의 한 형태로 유행하였습니다. 북송시대 궁정 내부에서 상주시대 청동기를 대량으로 방제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방고청동기는 주로 향로나 꽃병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청동예기는 토제 등으로 모범母范을 만들어 도범법陶范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밀납법蜜蠟法으로 제작된 방고청동기와 비교하여 문양과 마감처리 등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곡식 담는 그릇(서주 초기 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10세기)
서주시기에는 양쪽 귀에 마치 짐승이 몸체를 양쪽에서 물고 있는 형상으로 귀볼이 짐승의 처리처럼 달려있다. 이러한 특징은 상대말기에서 서주초기까지 유행하였다. 구연부에는 새무늬와 짐승무늬가 새겨지며 능선무늬가 세로 방향으로 균열하게 있어 몸체가 풍만하게 보여진다. 이것은 교묘한 시각적 효과로 서주시대의 특징이기도하다.
물 따르는 그릇
물을 담아 따르던 그릇으로 서주시대 중기에 새롭게 나타난 기형이다. 반과 함께 사용되었고 서주말기와 춘추시대에 유행하였다. 초기에는 몸체가 깊고 4개의 동물 발굽모양의 다리가 상세하게 표현되었다. 이에 비해 경주박물관 소장품은 춘추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뒤쪽에 동물머리가 모체에 얹혀있고 4개의 다리도 간략하게 묘사되어있다.
물 담는 그릇(춘추시기 기원전 770년 - 기원전 476년)
서주西周(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770년) 중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기형으로 반盤과 함께 출토된다. 손잡이와 물을 따르는 주둥이가 있어 주전자의 기능을 힌다. 4개의 동물 발굽모양의 다리가 있고 손잡이를 동물머리로 장식하여 몸체에 얹혀이다.
밥 담는 그릇
전시를 마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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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각할수록 나쁜 사람들. 잘 보았습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