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해병대 부사관 223기로 DI 40차, 가수 이광룡입니다. 이렇게 『주간 해병대전우신문』을 통하여 전우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쁘고 반갑습니다.
- 해병대를 입대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저의 고향은 충남 공주입니다. 당시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회사를 다니던 중, 현역 신체검사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저의 미래와 집안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부사관에 입대하면 돈을 벌면서 군복무를 할 수 있기에 해병대 부사관에 지원, 합격하여 1993년 4월 7일 부사관 223기로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 해병대교육훈련단 DI를 하게 된 사연은 무엇입니까? 몇 기 까지 교육시키셨습니까?
부사관 임관 후 1사단 32대대에서의 군 생활을 잘 적응하고 실무를 알아갈 무렵인 1994년 가을쯤에 훈련교관 DI, 면접관분들이 3연대에 찾아오게 되어 면접을 하게 되었죠. 사실 DI, 훈련교관은 군 생활하면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직책이었습니다.
특히나 부사관 교육생 시절에 저희 담당 소대장님들을 보면서 동경해 왔었습니다. 당시 3연대에서 저를 포함 3명이 뽑혀서 94년 12월 16일, 2훈단 DI교육대에 입소를 하여 95년 1월 21일, 약 5주간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신병 2대대에 지원하여 원하는 신병 2대대에서 훈련교관임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맡은 첫 기수는 해병 750기이며 이후 753, 756, 759, 762, 765, 768, 771, 774기 교육을 마치고 중사로 진급하여 해병 777, 780, 783, 786기이고 이후 약 6개월간 가입소 대대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2훈단에서 약 2년 2개월간 근무를 하고 실무로 다시 지원하여 호랑나비 노래로 우리에게 친숙한 가수 김흥국(해병401기) 선배가 근무했던 1사단 72대대에서 다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실무로 지원하게 된 동기는 야간 전문대에 다니기 위해서였습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만 졸업한 것이 가슴에 한이 남아 있었습니다.
- 군 생활에서 보람되게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996년에 어머님께 적금 2,000만원을 드렸는데 지금의 한 6,000만 원쯤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해병대 부사관의 꽃인 DI, 훈련교관을 하고 경험한 점, 그리고 포항전문대학에 입학하여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아닌 주군야독(晝軍夜讀)으로 독하게 생활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DI출신으로 장기복무를 할 만한데 사회구성원으로 돌아오게 된 사연이 있습니까? 당시 대대장님께서 장교로 임관하라고 추천까지 해주셨는데 사양했습니다. 저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름 청운의 꿈을 가지고 제대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2남 형제 중에 장남이었기에 부모님을 모셔야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 자녀는 어떻게 됩니까?
딸 하나로 현재는 중3이지만 그림소질이 뛰어나 내년에 대전예고 미술전공으로 입학예정입니다.
형제 모두 해병대 나와
함께 음악인의 꿈 키워,
불의의 사고로 동생 잃고 도 닦는 마음으로
음악에 발을 내딛어…
- 아직 대외적으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신인인데 가수생활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전역 후 음료수 유통업을 한10년 정도 하다가 접었습니다. 평소 음악을 너무 좋아했고 특히 제가 음료 유통업을 할 때, 제 동생이 직접 도와주며 같이 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11년 전, 2002년 8월18일 여름휴가 갔다가 익사사고로 세상을 떠나서 그 충격에 그 후 도 닦는 마음으로 음악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 동생도 해병대를 전역한 해병764기 이성용입니다. 제 동생은 강화도 53대대 9중대에서 만기 전역 후, 27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의 해병대 입대권유로 동생이 입대하게 되었죠.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형을 지켜보고 있겠지만 제가 신병 2대대 근무할 때 신병 3대대에 병764기로 입대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동생이었습니다.
현재는 7080♥라이브 주점도 운영하고 있고 직접 노래와 악기연주도 하며 음악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현재 주 활동무대와 출연방송 그리고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현재는 주로 대전 MBC와 가요방송 i~net TV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KBS 전국노래자랑 대전 유성구편에서 인기상을 수상하였으며, KBS 부산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하였고 노래교실과 각종 축제에 초청되어 공연하기도합니다.
<무지개>, <순이야>, <사랑의 아픔 딛고>, <우리엄니> 등 곡이 신나고 한편으로는 사연이 있는 애절한 가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음악은 동생도 좋아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동생이 해병대 전역 후 저 몰래 가수 오디션을 보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가수 김범룡씨가 준비하고 있던 녹색지대에 동생이 1차는 붙고 2차에서 탈락하고 왔다고 저에게 고백한 적이 있었거든요, 저도 가수가 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동생의 꿈과 저의 꿈이 합쳐져서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작사, 작곡한 <순이야>, <우리엄니>, <사랑의 아픔 딛고> 노래에는 애절함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무지개>는 워낙 제가 어렸을 때부터 어렵게 생활해봐서 저를 포함해서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이 있는 분들께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어 부르는 노래입니다.
- 대전을 근거지로 한 야구팀인 한화 이글스 응원가를 본인의 <무지개>로 개사해 만드셨는데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래 OB베어스 때부터 팬이었고 그 후 군 생활 시절 빙그레 이글스의 광팬이었습니다. 아마도 고향의 향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노래 <무지개> 곡에 개사를 하여 지금의 한화 이글스 응원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저의 삶에 용기와 사기를 북돋아준 한화 이글스를 응원합니다.
해병대 출신이라서 좋아하는 가수가 아닌,
"알고 봤더니 이광룡이 해병대 출신이더라"
라는 말 나올 수 있는 가수 되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