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전쟁은 유고슬라비아 해체의 한 부분이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서 독립 선언을 한데 뒤이어 무슬리마니 보스니아인 44%, 세르비아 정교회 계열 세르브인 32.5%, 로마 가톨릭교회 크로아트인 17% 등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도 1992년 2월 29일 독립 국민투표를 찬성으로 통과하였다.
세르브계 보스니아인들은 국민투표를 보이콧했으며 독립이라는 투표 결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브인은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대통령이 종전에 서명하였던 쿠틸레이루 계획(보스니아를 각 민족주로 분할하는 계획)에 진행에 탈퇴한 데 이어 라도반 카라지치가 이끄는 세르브계 보스니아인들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 및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 내에 동원되어 세르비아계 영토를 확대하기 위해 움직인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의 지원을 받아 인종 청소를 자행하며 보스니아 전국으로 전쟁이 확대되었다.
본래 코소보 지역은 세르비아의 영토였으나 오스만 제국 통치 이후 알바니아계 무슬림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다.
근현대의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 간의 갈등은 1878년~1879년 세르비아 공국과 몬테네그로 공국에 의하여 무슬림 알바니아계 인구가 강제이주된 사건에서 드러나며, 여러 전쟁을 거쳐 고조되던 민족감정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성립 이후에도 존재하였다.
1968년 일어난 학생운동에 대응하여 티토는 자치권과 알바니아어의 공인 등 유화 정책을 제시하였고 1974년 코소보 자치주가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티토 사후 코소보를 포함하여 유고슬라비아 전체가 민족주의의 난발로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1989년 대세르비아주의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1990년대 초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성지인 코소보로부터 자치권을 박탈하고 코소보 메토히야 자치주를 성립시켜 분리주의를 박해하자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에게서 큰 반발이 나왔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전쟁 속에 여러 민족국가들이 분리독립하면서 코소보 역시 자치권을 넘어 분리독립의 의견이 강해지게 되었다.
영화는, 보스니아 전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
인류 전쟁의 모든 것은, 민족과 영토와 종교 때문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푸른 안개를 뚫고 ‘치키’를 비롯한 보스니아 순찰대가 걸어온다.
세르비아군의 사정거리에 들어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잠이 든다.
눈을 뜨자마자 햇살 너머로 쏟아지는 세르비아군의 총격세례. 순찰대는 순식간에 몰살당하고, ‘치키’는 가슴에 부상을 입은 채 참호로 들어간다.
한편, 세르비아군인 신참 ‘니노’는 상사와 함께 참호를 살피러 들어온다.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둘러보던 그들은 잠들어있던 치키의 동료 ‘체라’를 발견한 후 그의 등 밑에 지뢰를 설치한다.
발을 떼는 순간 2천개의 납조각이 튀어나와 모든 걸 파괴해버린다.
이를 몰래 숨어서 지켜보던 보스니아 군인 ‘치키’는 그들이 한 눈 파는 사이, 총을 겨눈다.
상사 1명은 죽고, ‘니노’는 치키의 포로가 된다.
서로를 탓하며 적의감에 불탄 것도 잠시, 체라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지뢰의 위험성은 더해가고... 결국 두 사람은 팬티만 입은 채 수건을 흔들며 양쪽 진영에 구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어느쪽도 섣불리 접근을 피한다.
결국 UN군이 구조를 위해 참호에 도착하지만, 상부는 그들에게 곧바로 철수할 것을 명령한다.
그들은 치키와 니노에게 동행할 것을 제안하지만, 체라를 남겨두고 떠날 수 없는 치키. 니노가 그들을 따라가려 하자, 치키는 그에게 총을 쏜다.
UN군이 떠난 후 다시 적대감과 증오에 휩싸인 두 사람. 곧, UN군은 특종을 잡아내려는 기자단과 함께 지뢰제거군인을 데리고 다시 참호를 찾는다.
그러나 지뢰는 제거되지 않고, UN군과 기자단이 정신없는 사이, 꼼짝않고 누워서 어쩌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보스니아군인 ‘체라’는 참호 밖에서 울리는 슬픈 총성을 듣는다.
등장인물인 치키와 니노는 각각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군인으로 내전의 한가운데서 만나게 된다.
복잡한 내전의 배경과 민족간의 갈등 등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전쟁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보스니아 출신의 다니스 타노비크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이러한 이념의 논쟁을 떠나 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 두 병사의 눈을 통해 전쟁의 참상만을 중립적으로 보여준다.
2001년 칸 영화제에서 직접 쓴 각본으로 각본상을 수상한 30대의 젊은 감독 다니스 타노비크는 〈노맨스 랜드〉로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예루살램과 사라예보는 많은 점이 닮아 있다.
종교와 민족과 국경의 딜레마로부터 언제나 해방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