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년전 생텍쥐페리가 리비아 사막에서 배운 생존법
사막여우의 숨은 지혜
나뭇등걸 달팽이 조금씩 먹고 남겨둔 채 다른 나무로 옮겨가 씨를 말리지 않는 공생 전략
사막서 물 얻는 방법도 다양 극심한 일교차 거꾸로 활용 안갯속 수증기로 수분 저장
생텍쥐페리는 사막에서 죽다 살아난 경험을 ‘인간의 대지’에 담았다. 이는 ‘어린 왕자’의 모태가 됐다.“앗! 하강기류에 휘말렸다. 조심해! 어, 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비행기가 급속도로 추락하더니 굉음과 함께 땅에 처박혔다. 1935년 파리~사이공 구간 비행시간 단축 신기록에 도전하다가 당한 사고였다. 프랑스 작가이자 조종사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다행히 정비사 프레보도 무사했다. 그러나 절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리비아 사막 한복판이었다. 통신 장비가 열악한 그 시절, 사막 조난사고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30시간이면 온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죽게 되는 열사의 사막. 살갗에 들러붙은 모래는 땀과 범벅이 돼 몸의 수분을 계속 빼앗았다. 침이 마르고 숨쉬기가 버거운 데다 목구멍까지 쓰라렸다.
"어딘가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
마실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극한 상황에서 기진맥진해 있던 어느 날, 생텍쥐페리는 자그마한 몸에 큰 귀를 가진 사막여우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저 여우는 대체 뭘 먹고 살아가지? 그는 여우가 어떻게 생명을 이어 나가고 있는지 생존전략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곳에는 약 100발자국 사이로 대접 크기의 말라 죽은 나무들이 있었다. 그 나뭇가지에는 달팽이들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사막여우가 많은 나무 중 단지 몇 군데에서만 달팽이를 잡아먹고 다음 나무로 이동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한 나무에서 매우 조금씩만 핥아먹은 뒤 다른 나무로 가서 또 조금씩 먹고 대부분은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행동을 보고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에 사막여우가 첫 번째 나무에 있는 달팽이를 모두 먹어 치웠다면 그다음, 혹은 그다음 다음에는 이미 달팽이가 바닥나 있을 것이다. 당장 허기를 다 채우려고 했다면 달팽이는 씨가 마르고 그러면 사막여우 자신도 종말을 맞게 된다.’
이 이야기는 그의 자전소설 <인간의 대지>에 나온다. 사고 이후 4년 만인 1939년에 발표한 이 작품으로 그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을 의미하는 아카데미프랑세즈에서 소설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는 당시 200㎞나 사막을 헤매다가 4일 만에 베두인 상인에게 발견돼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경험뿐만 아니라 ‘인간’과 ‘대지’의 근본 관계에 대한 성찰을 함께 녹여냈다.
일생을 비행기 조종사로 활약한 그는 새로운 시각에서 인간의 조건을 관찰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타인의 삶에 대한 책임감과 연대 의식을 들었다.
<인간의 대지>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도 인간다움의 근간이 되는 ‘관계’와 ‘책임’의 문제를 규정하기 위해 제시한 말이다. 프레보가 “만약 내가 이 세상에 혼자였다면 나는 그냥 뻗어버렸을 거야”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막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구조될 희망도 없이, 불덩이 같은 낮과 얼음 같은 밤, 정신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 신기루에 혹사당할 때, 나만의 문제라면 고통스러운 생존보다 간단하고 깨끗한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둘은 끝없이 하늘을 맴돌며 애타게 찾고 있을 동료들과 가족을 위해 자멸을 택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도, 대지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다.
사막은 우리 인생의 은유요, 외로움과 막막함의 상징이다. 프랑스 시인 오르텅스 블루의 ‘사막’이라는 시만 봐도 그렇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단 4행짜리 짧은 시의 무게감은 엄청나다. 파리 지하철공사가 공모한 콩쿠르에서 8000여 편의 응모작 중 1등을 차지한 당선작답다. 그만큼 밀도감도 특별하다.
물구나무 서서 안개로 물을 만드는 사막거저리.사막은 어딘가에 물을 감추고 있다. <어린 왕자>의 명대사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처럼 삭막하고 고독한 모래땅에도 물이 숨겨져 있다. 놀랍게도 사막에서는 안개에서 물을 만들어 먹는 곤충이 있다.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에 사는 딱정벌레인 ‘나미브사막거저리’는 물을 얻기 위해 사막의 극심한 일교차와 안개를 이용한다.
자연에서 얻는 생태모방 기술
거저리는 밤이 되면 사막의 모래언덕 꼭대기로 기어올라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린다. 안개를 실은 바람이 불어오면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그러면 안갯속에 담긴 수분이 몸에 모이고, 이 수분이 물방울로 흘러내리면 입으로 마신다.
선인장 또한 낮과 밤의 온도 차를 이용한다. 공기 중 수증기가 선인장 가시에 물방울처럼 맺히면 돌기 사이의 V자 모양 계곡을 타고 물이 흘러내려 선인장 몸통에 저장된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자연의 원리에서 답을 찾아 생태모방 기술을 개발한다.
과학저널 ‘네이처’에 따르면 수증기가 물방울이 되도록 하는 딱정벌레의 돌기 모양과 물방울 방향을 유도하는 선인장 가시 등 자연에서 힌트를 얻은 요소를 결합해 공기 중 수증기에서 물을 10배나 더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극한 상황에서 ‘공생 지혜’를 발휘하는 사막여우.생텍쥐페리는 사막에서 밤이슬을 받아먹고 오렌지 반쪽을 혀끝으로 핥으며 극한 상황을 이겨냈다. 이때의 사막 불시착과 혹독한 고생, 사막여우와의 만남은 <인간의 대지>뿐만 아니라 불세출의 역작 <어린 왕자>의 모태가 됐다. 그러니 사람과 땅, 하늘과 사막, 인간과 동물의 연대는 문학이라는 대지를 적시는 또 다른 수분이기도 하다. .
*美가 주도하는 제조업 지각 변동, (최준영교수)
한국 기업, 脫세계화 대응할 수 있나-
대한민국은 세계적 제조업 국가다. 전체 GDP(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 비율은 27.5%로 일본(20.7%), 독일(19.1%)보다도 높다. 2020년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발표한 세계 제조업 경쟁력 지수에서 우리는 3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물건을 잘 만들어 많이 파는 최상위권 나라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장은 제조업의 성장이었다. 1960년대 많은 신생 개도국이 채택하던 수입 대체 전략 대신 수출을 통한 성장 전략을 채택하면서 제조업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산업이 되었다.
없는 돈을 털어서 제조업을 지원하기 위해 도로와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을 건설했고, 필요한 인력과 기술을 공급하기 위해 교육, 연구 기관을 만들었다. 제조업은 다른 산업보다 많은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특성이 있다. 제조업이 발전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된 중산층은 안정된 사회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어느 국가나 두꺼운 중산층이 형성되는 핵심적 시기는 제조업이 발달하는 기간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쳐나던 시절로 기억되곤 한다.
제조업의 성장은 사회를 변화시켰다. 제조업이 발달한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일사불란함과 상명하복이 자리 잡고 있다. 근면 성실과 규칙성이라는 노동 윤리는 사회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사회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획일성과 다양하지 못한 사고방식 역시 제조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제조업의 핵심은 품질, 비용 및 납기인데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면서 사회가 이에 맞춰 변화했던 것이다. 제조업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인의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우리의 현대사다. 이런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제조업 사회’인 것이다.
발전을 원하는 국가 상당수는 제조업을 육성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제조업의 성장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임금의 상승은 제품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주력 분야를 전환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국가가 중진국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발과 합판에서 시작해 조선과 석유화학을 거쳐 반도체와 바이오 의약품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제조업의 변화를 통해 선진국에 진입했다. 대한민국은 제조업과 함께 성장했고, 많은 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변화하였다.
우리의 제조업 성장과 발전은 우리의 노력과 더불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변화 덕분에 가능했다. 때때로 우여곡절을 거치기는 했지만 미국은 지속적으로 관세를 인하하고 국제 교역을 확대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번영을 가져왔고, 우리에게는 수출이라는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의 제조업은 위축되어갔다. 미국 제조업은 1980년대 초반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한 대폭적인 금리 인상과 과도한 달러 강세로 몰락하면서 1900만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제조업이 제공하는 안정적 일자리의 소멸은 많은 이를 힘들게 하였고,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라진 일자리 가운데 상당수는 태평양 건너 아시아로 넘어오면서 우리에게 1980년대 중반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공정한 시장 경쟁과 제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핵심으로 하는 세계화를 새로운 시대 규칙으로 제시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중국의 WTO 가입은 우리에게 더 큰 시장을 열어주는 기회가 되었고 우리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지금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중국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켰으며 자연스럽게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세계화를 지탱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이 되었다.
미국과 중국 관계가 경쟁적 관계로 전환되면서 미국은 새삼스럽게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자국의 취약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 핵심에 있는 제조업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였다.
중국과 경쟁하면서 핵심은 반도체, 인공지능, 이차 전지 등 첨단 기술의 우위라는 사실을 절감한 미국에 첨단 제조업체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은 더 이상 돈을 주고 사 오면 되는 것이 아닌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고,
자국에 이러한 핵심 기술에 기반한 제조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은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미국이 제조업의 부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다. 금기시되던 국가의 특정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핵심 기술을 갖춘 기업의 유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되었으며, 특정 국가와 기업을 배제하기 위한 차별적 조치 역시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40년간 제조업의 쇠퇴를 겪어온 미국으로서는 첨단 제조업에 필요한 인력과 시스템 구축은 쉽지 않은 과제다. 이런 미국에 한국의 대기업들은 가장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시장 접근 제한이라는 채찍과 각종 보조금을 포함한 당근을 구사하면서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를 확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맹국의 입장은 무시되고 있다.
미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동맹국이 아니라 동맹국의 기업일지도 모른다.
미국이 만들어놓은 틀과 질서에 따라 성장해온 우리로서는 당혹스럽고 낯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기업들 역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불편한 상황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많은 선진국이 경험했던 제조업의 해외 이전에 따른 공동화와 사회 혼란을 피하면서 동시에 동맹으로서 상호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인류세(人類世)
캐나다에선 올 들어 남한 면적에 해당하는 10만㎢ 이상의 산림이 불에 탔다. 그리스에선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어서자 파르테논 신전 운영을 중단했다. 유럽을 비롯해 미국 일부 지역은 50도에 육박하는 살인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난달이 1850년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고 발표했다. 올 들어 기후 재난으로 인한 미국의 피해액은 120억달러(약 15조원)다. 이미 작년 한 해(180억달러)의 3분의 2 수준에 도달했다.
전례없는 기후 변화 탓에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미증유의 재해가 속출하자 학계에선 인류세 도입 논의가 활발해졌다.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는 인류를 뜻하는 ‘anthropo-’에 지질시대의 한 단위인 세(世)를 뜻하는 ‘-cene’을 결합해 만든 용어다. 인류세 논의가 시작된 계기는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환경 관련 국제회의다. 이 회의에서 네덜란드 출신 기후과학자이자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J 크뤼천은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류가 온실가스, 핵 등 방사성 물질로 지구를 크게 변화시킨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지질시대 명칭을 홀로세(약 1만 년 전 시작된 신생대 4기의 마지막 연대)에서 인류세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였다.
국제지질학연맹은 2010년께 산하에 ‘인류세 워킹그룹(AWG)’을 꾸리고 인류세 연구에 착수했다. 최근 AWG는 인류세를 대표할 지층인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를 선정해 발표했다. 인류세 도입 여부는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인류세 도입에 반대하는 학자도 많다. 인간에 의한 지구 파괴를 강조하는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는 게 그 이유다. 인간이 지구를 변화시켰음을 확인하기에 인류의 역사가 너무 짧다는 주장도 있다. 인류가 농경과 산업, 문명을 일군 시간은 지구가 속한 우주의 나이와 비교하면 극히 짧은 찰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지금의 기후 발작이 인류에 의해 초래됐는지, 드넓은 우주에 속한 작은 지구의 자체적인 변화인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점점 더 난폭해지는 재해에 맞서기 위해 인류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란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