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암 검진이 ‘백해무익’?
‘암과 싸우지 말자’라는 독특한 이론으로 일본 의학계 주류의 이단자로 심한 따돌림을 받아 온 곤도 마코토(近藤 誠) 박사가, 이번에는 ‘암 검진(檢診)은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는 글을 써 일본정부 보건 정책에 도전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의료원 교수팀 연구로 한 번 건강검진으로 11년 치 방사선 허용량에 피폭될 수도 있다는 놀라운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방사선치료 전문의인 곤도 박사는 CT(컴퓨터 단층 촬영)는 방사선 과다 피폭 위험이 있으니, 검사가 필요할 때는 CT 대신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택하라고 평소에도 강조해 왔습니다.
2013년에 낸 그의 책 ‘의사에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한 47가지 수칙’이 100만 부가 팔려 대중의 인기를 끌었으나, 그의 지론 중 특히 항암제 무용론은 일본 후생노동성, 의사회, 제약회사 등의 강력한 반발을 받아, 언론매체를 통한 거센 찬반 논쟁이 지금도 계속 중입니다.
항암제는 암 세포뿐 아니라 인체의 면역 세포도 죽인다는 그의 이론을 일부 인정하는 의사들도, 너무 커진 암 덩어리를 수술하기 좋게 축소시키는 방법은 항암제 사용밖에 없다고 그의 항암제 사용 반대론에 거리를 둬왔습니다.
암 검진을 반대하는 그의 새로운 글은 일본 최대 대중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5월호의 ‘최신 의료 승차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특집에 실렸습니다. 이 특집의 첫째 기사로 소개된 것은 교토(京都)대학 명예교수 혼조 다스쿠(本庶 佑) 박사와 평론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 陵) 씨의 최신 암 면역요법에 관한 대담이었습니다. 화제의 중심은 최근에 일본시장에도 나온 새로운 암 면역제 '니볼마브'이었습니다.
2014년 11월 미국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임상실험(臨床實驗)에서, 혼조 박사팀이 개발한 '니볼마브'는 418명의 피부암 환자를 반으로 나누어 한 실험에서, 깜짝 놀랄 결과를 냈다고, 그는 전했습니다.
1년 후 생존자가 ‘니볼마브’ 사용 그룹은 70%였는 데 비해, 기존 항암제 사용 그룹은 40% 이하였고, 1년 4개월 후에는 전자의 생존율은 큰 변동이 없었던 반면 또 하나의 그룹 생존율은 20% 이하로 떨어져, 더 이상 실험 계속은 비인도적이라 해서 중단되었다고, 그는 전했습니다.
미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2014년 9월에 피부암 치료용으로 이 약이 허가되고, 작년 12월에 폐암 치료로 사용이 확대되어 일반인의 주목을 받은 뒤, 현재 신장(腎臟)암과 혈액암 환자에 대한 적용도 후생성에 신청 중이라고, 혼조 박사는 밝혔습니다.
종래의 항암제는 1년 정도의 연명 효과를 가진 것도 있었지만, 생존율의 면에서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고, 혼조 박사는 말하고, “어차피 인간은 죽는 몸이니 자연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곤도 박사의 암 방치 이론을 일부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고령자의 전립선암의 경우, 치료와 방치 사이에 큰 변화가 없다는 보고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곤도, 혼조 두 박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하는 보건 담당 정부 부처나 영리에 얽혀 옳은 길을 선택하지 못하는 일부 의사와 제약사를 비난했습니다. 남의 일처럼 듣고만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펌] / 필자소개; 황경춘(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 2016년 04월 22일 (금) 00:57:20
추리닝
적당히 낡고 후줄근해 보이면서도 편안한 일상복, 집에서 뒹굴거나 슬리퍼 차림으로 구멍가게를 오갈 때 많이 입은 동네 패션, 고시생이나 백수들이 라면 끓여먹는 장면에 자주 등장하는 ‘백수룩’. 추리닝이라면 촌스러운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삼선(三線) 줄무늬도 ‘아줌마 몸뻬’와 요란한 꽃블라우스 비슷하다.
추리닝은 어감과 달리 국어 사전에 있는 표준어다. 영어 트레이닝(training)이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는 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원래는 스포츠 경기 전 연습 때 입는 옷의 통칭이었다. 가볍고 유연한 소재로 만들었고, 경기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체온을 보호하도록 했다.
‘삼선 무늬’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상징 로고다. 독일 구두수선공 아디 다슬러(Adi Dassler)가 형과 함께 신발공장을 시작한 게 1924년. 결정적인 기회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육상 스파이크를 들고 메달 후보 제시 오언스를 찾아가 신어달라고 설득했다. 오언스가 4개의 금메달을 휩쓸자 대박 행진이 이어졌다.
2차대전 후 형과 갈등을 빚은 그는 1948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아디다스(Adidas)를 별도로 세웠다. 이후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을 석권했다. 형 루디 다슬러(Rudi Dassler)도 같은 해 루다(Ruda)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푸마(Puma)가 됐다. 독일 형제가 세계를 쥐락펴락한 셈이다. 미국에서는 1964년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이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한 뒤 1972년 나이키(NIKE)로 이름을 바꾸며 승승장구했다.
추리닝의 인기는 운동 경기장을 넘어 일상으로 확산됐다. 기능이 세분화되고 형태도 다양해졌다. 타월 소재 추리닝을 입고 다닌 패리스 힐튼 등 스타들의 운동복 차림이 자주 노출되면서 대중의 인식 역시 바뀌었다. 요즘은 뉴욕 지하철이나 슈퍼마켓, 카페에서도 트레이닝복이 흔하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감도 함께 작용한 것 같다.
엊그제 아디다스 차림으로 전당대회 연설을 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어떤가. 지난해 교황과 프랑스 대통령을 만날 때도 그 차림이었다. 군복과 시가의 강렬한 이미지를 내세우던 그가 왜 이러는 걸까. 미국과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거부감, 엇나간 우월감 과시 등 해석은 갖가지다. 하지만 늙은 혁명가의 이미지 관리법이라면 영 어울리지 않는다. 타임의 ‘최악 옷차림 지도자’에 꼽히고도 저러니, 아디다스 또한 민망할 노릇이다.
[펌] / 출처; 한경닷컴 /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16-04-22 00:05:49
반려 식물
영화 '레옹'에 주인공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식물이 있다. 잎이 긴 실내 식물 아글라오네마(Aglaonema)다. 응달을 견디는 내음성(耐陰性)이 좋아 햇빛 없어도 잘 자란다. 레옹은 아글라오네마를 화분에 담아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며 정성껏 가꾼다. 잎도 일일이 닦아준다. 집을 옮길 때마다 갖고 다니는 분신이다. 레옹은 아글라오네마를 "제일 친한 친구"라고 부른다. "뿌리가 없는 것이 나와 같다"고 말한다. 레옹이 죽자 소녀 마틸다는 아글라오네마를 교정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한다.
▶송나라 시인 임포는 부패한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서호(西湖) 고산(孤山)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집 주위에 매화나무를 심어 감상했다. 시 짓고 그림 그리며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백학 한 마리를 늘 곁에 뒀다. 사람들은 임포가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산다'며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렀다. 매화를 사랑한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임포가 첫째로 꼽힌다.
▶레옹의 아글라오네마, 임포의 매화나무쯤이면 가족 같은 존재 '반려 식물'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실내에서 가꾸는 식물을 장식용 아닌 삶의 동반자로 여기는 사람이 늘면서 생긴 신조어다. 바삐 사는 싱글족이 실내 식물 중에서도 선인장처럼 돌보기 쉬운 다육식물을 키우며 외로움을 달랜다. 이름도 붙여주고 SNS에 사진도 올린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식물이 주는 위안과 기쁨을 잘 알 것이다. 꽃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집에서 몇 가지 식물을 키워 보고 있다. 식물원이나 양재동 꽃시장에서 노루귀⋅처녀치마⋅동자꽃 같은 야생화도 사 온다. 가끔 잘 자라는지 안부를 묻고 물 주는 것 말고는 각별히 보살피지도 않는다. 그래도 쑥쑥 자라고 때 되면 꽃봉오리를 올린다. 아파트 베란다여서 꽃빛이 제대로 나지 않지만 키우는 식물이 꽃 피우는 것을 보는 기쁨이 크다.
▶아름다운 꽃이나 식물을 보면 마음을 안정시키는 뇌파가 활발해져 스트레스가 풀리고 불안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그래서 채소를 가꾸고 식물 키우고 피어난 꽃을 보며 위안을 얻는 '원예 치료'라는 개념도 있다. 근거 있는 이야기인지 따지기에 앞서 녹색 식물을 보고 꽃향기를 맡으면 머리가 개운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할 것이다. '반려 식물' 키우는 사람이 느는 것은 무엇보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반려 동물은 돌볼 자신이 없고 대신 쉽게 키울 수 있는 것이 식물이기도 할 것이다. 거기엔 혼자 사는 도시인의 고독과 독백이 드리워 있다.
[펌] / 출처; 조선닷컴 / 김민철(조선일보 논설위원) / 2016.04.22 03:00
석탄시대의 종말
1883년 설립된 세계 최대의 석탄생산기업인 미국 피바디에너지가 최근 파산 신청을 했다. 앞서 미국 2위 석탄기업 아크콜을 비롯해 월터에너지 등 대형 석탄기업이 줄줄이 도산 위기에 몰렸다.
석탄 가격은 2011년 이후 75% 폭락했고 수백 개의 탄광이 문을 닫았다. 미국 석탄의 최대 소비처였던 중국의 경제 성장세가 꺾이면서 수요가 급감한 데다 석탄 대체재인 셰일가스의 과잉 생산, 오바마 정부의 강력한 환경규제 여파로 적자가 누적된 탓이다.
▦ “그들이 없으면 지상의 세계도 없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것, 빵 굽는 것에서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석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조지 오웰이 1936년 영국 탄광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묘사한 석탄 예찬론이다. 산업혁명의 동력이었던 석탄은 21세기에도 가장 큰 에너지원으로 군림하고 있다. 개도국인 중국(81%) 인도(71%)는 물론 호주(69%) 영국(39%) 미국(38%) 등 선진국도 전력생산의 상당 부분을 석탄에 의존한다.
▦ 피바디의 파산은 석탄시대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석탄이 기후온난화의 주범인 탓이다. 미국의 경우 석탄발전소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를 점한다. 한국도 발전부문이 온실가스의 40%를 배출하며, 이 중 80%가 석탄발전소에서 나온다. 주요 선진국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탈(脫)석탄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의 온실가스를 2005년 대비 32%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영국 정부는 현재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를 2025년까지 모두 폐쇄한다. 중국도 2020년까지 석탄발전 비중을 지금보다 7% 낮춘다.
▦ 세계 4위의 석탄 수입국인 한국은 거꾸로다. 지난해 전기 생산에 들어간 돈은 42조원. 이 중 40%(15조원)가 석탄발전 비용으로 10년 새 3배나 급증했다. 심지어 현재 53기의 석탄발전소를 2029년까지 70여기로 늘릴 계획이다. 생산비용이 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건강과 환경 피해를 감안하면 석탄은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석탄이 유발한 대기오염 탓에 국내서만 매년 1,600명이 조기 사망한다. 유럽에선 호흡기질환 등 건강 피해가 연간 78조원에 달한다. 더 비싼 대가를 치르기 전에 석탄이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버려야 한다.
[펌] / 출처; 한국일보 / 고재학(한국일보 논설위원) / 2016.04.21. 20:00
지구의 날
미국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1962년에 펴낸 ‘침묵의 봄’은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해악을 깨닫지 못한다”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책은 모든 생물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던 마을이 원인 모를 병에 휩쓸리는 우화로 시작된다.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카슨은 당시 사람들이 남용하던 살충제⋅살균제⋅제초제가 생태계와 인체에 미치는 해악을 밝혀내면서 과학문명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공격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위험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유독물질로 공기⋅토양⋅하천⋅바다를 오염시킨 일이었다. 이런 피해를 본 자연은 원상태 회복이 불가능한데, 그 오염으로 인한 해악은 생명체를 유지하는 외부세계뿐 아니라 생물의 세포와 조직에도 스며들어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불러온다.”
이 책은 세상을 뒤흔들었고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해에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된 게일로드 넬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넬슨은 환경 문제를 정치쟁점화하려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참가한 ‘자연보호 전국 순례’로 바람을 일으키려 했으나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은 차가웠다. 넬슨은 1969년 순회강연 도중 대학가의 베트남전 반전 시위를 보면서 전국적인 환경보호 캠페인을 겸한 시위를 구상했다.
전국의 주지사와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 기금을 모으고 대학신문, 학술잡지, 초⋅중⋅고교에 안내문과 자료를 보냈다. 반응은 뜻밖에도 폭발적이었다. 캘리포니아주 해상 기름유출 사고도 한몫했다. 하버드대 학생이던 데니스 헤이스 주도로 대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 이듬해 4월22일 첫 ‘지구의 날’ 행사를 열었다. 뉴욕 센트럴파크에만 60만여명이 모였고 미 전역에서 2000만여명이 참가했다. 미 언론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이라고 했다. 넬슨은 훗날 “그것은 저절로 조직됐다”고 술회했다.
1990년부터 매년 전 세계적으로 지구의 날 행사가 열린다. 오늘이 46회 지구의 날이다. 뉴욕 유엔본부에서는 파리기후협정 서명식이 열린다. 지구의 날 네트워크는 올해 주제를 ‘지구를 위한 나무’로 정하고 2020년까지 전 세계 인구 수만큼 나무를 심기로 했다. 미 환경학자 데이비드 오어는 ‘작은 지구를 위한 마음’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성장과 부패의 주기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몸은 매일의 빛과 어둠의 주기, 달의 인력, 계절 변화에 반응한다”며 “우리가 곧 지구”라고 했다. 오늘 곱씹어볼 만한 말이다.
[펌] / 출처; 세계일보 / 박완규(세계일보 논설위원) / 2016-04-21 18:17:50
기억의 뒷모습
며칠 전 실수로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던 사진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착각의 ‘확인’을 누르자마자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삼백여 장이 넘는 사진이 사라졌다. 어떤 거리의 풍경, 어떤 날씨의 상태, 어떤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지워졌다. 잠시 어리둥절했다. 휴대전화 속에 사진이 저장돼 있을 때는 당연히 내 머릿속에도 어떤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더니, 사진이 지워지자 그것도 깨끗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무엇을 기억한 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19세기 영국의 작가 토머스 드 퀸시는 아편에 취한 상태를 설명한 책에서, 기억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체험을 했다고 썼다. 어쩌면 사람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고스란히 잊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뇌는 그 모든 정보를 저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의식 위로 꺼낼 방법을 찾지 못해서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언어로는 되살리지 못하지만 시각적으로는 되살릴 수 있는 기억이 있는 것을 보면, 그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사람이 모든 경험을 저장하고 있다면 한 번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지나쳐 온 모든 거리들을, 지나쳐 간 모든 시간들을 아득한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을 것이다. 차곡차곡 아니라 아무렇게나 뒤죽박죽 쌓여 있어서 꺼내지 못하는 것일 뿐. 어쩌면 겹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주 마주친 얼굴 한 둘은, 마치 유리창 저편에 있는 그림자처럼, 머릿속에 흐릿하게 띄워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 거리에서 그 얼굴과 스치게 되면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뒤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에는 사라지는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볼지도.
깔끔한 검은색의 무(無)로 변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면서 사진들은 뒷모습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수 없으며, 지우고 싶은 것만 지울 수도 없다. 지운 줄 알고 있었는데 다시 떠오르는 기억도 있고. 사람의 기억과 기계의 기억은 그렇게 다르다.
[펌] / 출처; 국민일보 / 부희령(소설가) / 2016-04-21 17:31
사색의 향기
`관림(關林)`은 관우의 무덤이다. 위대한 성인의 묘라는 뜻에서 `림(林)`자가 사용됐다. 수천 년 중국 역사에서 공자의 `공림(孔林)`과 함께 단 두 곳에만 붙여진 특별한 호칭이라고 하니 관우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관우가 오나라 손권의 부하 여몽에게 패하여 죽임을 당한다. 여몽은 용맹하지만 무식하기로 소문난 장수였다.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무신(武神)의 반열에 오른 관우가 머리가 텅 비었다는 소리를 들었던 여몽의 계략에 빠져 사로잡힌 것은 얼핏 생각하면 의외의 결말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여몽은 비천한 신분 탓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손권의 충고를 받아들여 전쟁터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무릇 사흘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는 눈을 비비고 대할 정도로 달라져야 한다"는 `괄목상대(刮目相對)`의 교훈을 남겼다. 불세출의 영웅 관우를 격파하고 천하에 이름을 떨친 것은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독서는 생각을 기르고 안목을 넓히는 지혜의 원천이다. 과거와 소통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성장의 밑거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은 하나같이 독서광이었다. 알렉산더와 나폴레옹의 탁월한 지략도,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도,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상상력도 모두 독서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즘 우리나라 독서율이 낮다는 우려가 많다. 작년에 조사한 성인 독서율은 65.3%로 3명 중 1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개발이나 성공이라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데 있어 독서가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짬을 내거나 여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축제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좋은 책 한 권, 아름다운 꽃 한 송이와 함께 사색의 향기에 흠뻑 취하는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펌] / 출처; 매일경제 / 성세환(BNK금융그룹 회장) / 2016.04.21. 17:55:29
라스코 동굴벽화
“머리인가? 다리인가?” 인류를 진화하게 한 최초의 원동력을 머리에서 찾을 것인지, 다리에서 찾을 것인지를 놓고 인류학자들을 오랫동안 갑론을박 논쟁을 벌였다. 인간 고유의 뛰어난 두뇌를 생각한다면 머리가 아닐까 싶겠지만 ‘인간다운 인류’의 시작은 두 발 걷기가 먼저라는 결론이 내려졌다.(인류의 기원, 이상희 저)
인간은 두 발로 걸으면서 요통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네 발로 걸을 때 사용하던 윗몸을 일으키게 돼 숨쉬기가 편해져 목소리를 내게 됐다. 이는 언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앞의 두 다리(팔)도 자유로워져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됐다. ‘도구와 언어’는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출발점이 됐다.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활동한 구석기가 되면서 인류 문화는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이전에 없던 암각화 같은 문화예술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직립보행으로 생산적인 활동이 가능해짐에 따라 그저 먹을 것에만 열중하던 원초적인 생활을 벗어나 창작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석기시대 사람들도 현대인들처럼 예술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 증명된 것이 바로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다. 1940년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 베르제 강변의 몽티나크라는 도시에서 한 소년이 기르던 개가 사라지자 온 마을을 찾아 헤매다 우연히 벽화를 발견했다고 한다. 기원전 1만 5000~2만년에 그려진 이 동굴벽화는 ‘구석기 시대의 피렌체’라고 불릴 정도로 작품 수도 많고 수준도 뛰어나다.
여러 마리의 들소와 말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그림과 어린 말들 위로 뛰어오르는 커다란 황소 그림은 생생한 역동성과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걸작들이다. 이 벽화는 한두 사람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은 당시 수렵생활을 하던 인간에게 중요한 먹을거리였기 때문에 생활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로도 해석된다. 당시 사람들의 정신적⋅영적인 삶도 보여 준다. 일례로 새의 머리를 한 남자가 들소의 공격을 받아 죽는 그림이 있는데, 새의 머리를 한 남자 아래에 또 한 마리의 작은 새가 있다. 이는 그가 죽는 순간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냥 사고를 그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의 통행을 묘사한 것이다.(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저)
한국에서도 이 동굴벽화를 볼 기회가 생겼다. 최근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경기도 광명시에서 라스코 동굴벽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이 전시장의 건축 및 전시를 맡았고 동굴벽화 복제 작품 등이 선보인다. 한국인 입양아 출신인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홍보대사다. 구석기 시대 인류 조상의 발자취를 한번 쫓아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펌] / 출처; 서울신문 / 최광숙(서울신문 논설위원) / 2016-04-21 23:44
Vincent van Gogh(1853-1890. 네덜란드)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