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3월7일(화)■
(유다서 1장)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묵상/유 1:3-4)
◆ 주님께서 주신 믿음
(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성경에는 두 종류의 믿음을 알려주고 있다.
하나는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고 또 하나는 내 믿음이다. 우리는 이 믿음을 잘 구별해야 생활이 잘 될 수 있다.
성도들이 구원받을 때, 하늘의 은사를 여럿 받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믿음이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는 '단번에 주신 믿음'을 말하고 있다. 개역개정성경에는 '믿음의 도'라고 번역했지만, 원어에는 단순히 '믿음(the faith-πιστις)'이라고 했다. 모든 영어 성경과 다른 한글 성경은 다 '믿음'으로만 번역했는데 비해 유독 개역개정만이 '믿음의 도'라고 번역했다. 중국어 화합본 성경은 아예 '진리의 도(眞道)'라고 번역해놓았다. 이것은 번역자의 신학이 들어간 완전한 왜곡이다.
'믿음의 도'라고 하면 믿음을 가진 자가 지켜야 하는 여러 규례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유다가 본래 말하려는 것과 빗나간다. 유다는 우리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있음을 기억하라.
이 믿음은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살도록 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우리 안에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켰다. 그러자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몰려왔다.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이것이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믿음이다. 내 믿음이 아니다. 내가 믿습니다를 반복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믿음이다.
우리가 사역할 때, 주님께서 주신 이 믿음으로 사역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갈 2:20)으로 산다고 했는데, 이것도 원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번역해야 맞다. 이런 오류가 생긴 이유는 믿음을 모조리 '내 믿음'으로만 간주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는 믿음의 종류를 구분할 줄 몰라서 내 믿음으로 무엇을 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한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이라는 옛 고어를 믿음에 적용시켰다. 내가 믿음만 잘 키우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죽자 믿음만 있으면 부활시킬 수 있다고 믿어서 잡념을 품지 않고 믿음을 유지하려고 애썼던 자매, 사차원의 세계를 말하면서 무엇을 갖고 싶으면 마음에 그것을 그리고 믿음을 키우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유명한 목사, 병자를 앞에 높고 몇 시간째 믿습니다를 반복하는 분... 모두 자기 믿음과 주님께서 주신 믿음을 혼동했다.
이들은 모두 주님께서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옳길 수 있다고 하시니, 바이러스보다 작은 내 믿음을 겨자씨만큼 키우려고 애를 쓴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겨자씨보다 작은 씨는 존재하지 않았다(막 4:31).
지금 기적이 일어나지 않음은 내 믿음이 겨자씨보다 작아서가 아니라, 믿음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없는 믿음을 키우려고 애쓰지 말고, 믿음을 주실 것을 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나, 어떤 사역을 해야 할 때는 오히려 힘을 뺀다. 아, 그동안 내 사역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혼적이며, 심리적인 것에 불과했는지...
이제는 내 믿음으로 무엇을 하려는 무모한 일을 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무엇을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할 때 교만에 빠지지 않고, 무슨 일을 해내어도 그것이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오, 모든 성도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믿음을 부여받았다.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벧후 1:1)
우리는 베드로에게 주셨던 그 믿음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베드로에게는 사도로서의 능력이 나타났다면, 내게는 내게 주신 은사를 따라 능력이 발휘될 것이다. 모두 각자의 은사에 맞게 믿음을 행사할 일이다.
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잊지 말고, 이 믿음으로 행하는 훈련을 하자.
마귀와 싸울 때도 내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싸워야 한다. 마귀와 싸우는 마당에 최근에 나 자신이 형편없는 삶을 살았다는 이유로 자포자기하면 안 된다. 주님께서 주신 믿음은 그것과 관계없이 언제나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허물과 어리석음 때문에 자책하고 있을지라도, 마귀가 덤비면 나는 주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단호하게 대적하고, 추호도 밀림 없이 싸울 것이다.
기도할 때도 내 의, 내 공로에 의지하지 말고, 내 믿음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고, 이미 주님께서 주신 내 안에 있는 믿음을 인식하고 감사하며 아뢸 수 있어야 한다.
◆ 내 믿음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 있는데 반해 '내 믿음'도 있다.
'내 믿음'이란 쓸데없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는 '내 믿음'에 대해서 책망하거나 칭찬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내 믿음이란,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이 아니다. 내 믿음이란, 의심하지 않는 일이며, 더욱 주님을 신뢰하는 일이다.
주님께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향해서 '네 믿음이 크도다'(마 15:20)라고 하셨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이 자기 딸을 고치는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한 믿음이다.
나의 믿음이란,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것을 받아들이는 믿음이며, 감사하는 믿음이며,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다.
가령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을 주실 때, 내가 그것을 받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과 같다. 손을 내미는 자가 자랑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거기에는 내 공로, 내 노력이 전혀 없다. 오로지 선물 주신 분에게 감사할 일만 있을 뿐이다.
그래도 선물을 주실 때 두 손을 공손히 내밀고 감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쓸데없다고 하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내 믿음'도 중요하다.
오늘 유다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한다(3).
주님께서 주신 믿음을 지키기 위해 힘써 싸우는 것은 '내 믿음'에 속한다.
의심과 싸우고, 헛된 철학과 싸워야 한다. 그것이 내 마음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도록 해서는 안 된다.
◆ 가만히 들어온 사람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지니라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해 들어온 자들이다. 언뜻 보면 하나님의 종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다. 본인들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도 모르나 그 열매가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타이틀에 속지 말고 영을 잘 분별하여 멀리해야 한다.
이들은 홀로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홀로 하나이신'이란 말에 주목하라. 그리스도는 여럿이 아니라 유일하심을 잊지 말라.
오늘날 많은 신학자가 예수님을,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수 많은 사람 중에 하나로 전락시켰다. 우리도 정의를 위해 살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한다.
또한 이들은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부정한다.
'홀로 하나이신 주재'라고 했는데, 주재(主宰)란 '중심이 되어 일을 처리하는 자'란 의미지만, 원어적으로는 '데스포테스(δεσποτης)'라고 하여 절대적 통치자를 의미한다. 홀로 하나이신 주재는 하나님께만 적용할 수 있는 말인데, 유다는 예수님께 적용했다. 즉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시사한 것이다. 모름지기 성도는 예수님의 이러한 절대적 통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이 왕 노릇 하며, 종교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자기 지배하에 놓는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교묘한 방법으로 성도들을 세속화시킨다.
이런 자들을 분별하고, 이런 자에게서 떠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지키기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
이런 자들과는 그냥 싸우는 정도로는 이길 수 없다.
오늘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힘써 싸워야' 한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확실하게 끊어야 하며, 의심을 물리치고 복음의 진리를 확고하게 붙잡아야 한다.
사람들은 교회를 사람보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메시지 하는 자가 엉터리 메시지를 하면 떠나야 한다. 아무리 내가 잘 분별한다고 해도 엉터리 메시지를 계속 들으면 반드시 부패한다. 그의 영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분별하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어설프게 대처했다가는 나도 모르게 휩쓸려 떠내려갈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주신 믿음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살아가는 법을 날마다 배우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