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험/ 레온 펠리페
-시집 ‘오, 이 낡고 부서진 바이올린!’에서
‘대모험’
세숫대야, 낡은 투구, 후광...
이것들이 바로 명령이다, 산초.
4세기가 지났다......어둡고도 피투성인 모험의
로시난테는 역사의 떫고 까칠한 길을 걷고 또 걸어
아주 피곤하게 터벅거리고
기사와 그의 종자는 침묵을 지키며 저 멀리서 온다
열려 있고 불 켜진 카스티야고원을 통해
천천히, 소박하나 영광스러운 기마騎馬로
그 환각적인 불빛 아래로
오, 저 불빛!
위대한 시적 은유를 위한 적절한 빛이 아닌가!
위대한 기적과 경이!
산초는 세기 중 많이 컸다.....
동여매진 듯 그 주인 곁에 찰싹 붙어 세상을 일주 했다
이제 더 이상 단순하지도, 천박하지도 않고 용감하며
귀티가 나보인다
그 역시 많이 여위었다, 피골이 상접해 있다
그 형상이 그의 주인과 흡사하다
저 쩌렁쩌렁 울리던 뱃살, 그의 고향에서
그 유명한 항아리들과 운을 맞추던 울렁울렁 똥배,
쑤욱 들어가고 없구나
(산초, 나 이제 알았어..... 전쟁, 패배, 굶주림.....
오, 생生은 행자들의 위대한 스승이란 걸!)
이제 더 이상 그대를 산초 빤사(똥배)라 부르지 않을 걸세
이제 그 누구도 그를 산초 빤사라 불러선 안 돼!
그는 산초 아 세까스(산초 갈비)야!
아니 단지 산초라 불러야 해!
산초란 태양의 아들이란 뜻, 빛에 복종하고
기꺼이 그를 위해 희생하는.....
더욱 그는 환상을 지니고 됐어, 이제 마치 돈키호테처럼 말을 해
모든 사물을 돈키호테처럼 본다 말이야
미친 시인들의 수사적 메카니즘을 사용할 줄 알아
이제 사물들을 승화시킬 줄도 알아
개인적, 가정적인 것들을 역사적, 서사적인 것으로
추잡스러운 것들을 광채가 나는 것들로
이제 그의 주인처럼 말할 수 있어:
-저기 저,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 멀리 보이는 것은
목자들의 낡고 소박하고 가난한 오두막 불빛이 아니라
저, 저것은 바로 미래의 별이야!
저기 네 사람이 오네
저 앞에......
인사해야지
안녕하시오, 고귀하신 친구들......
환영이오, 기사!
라만차의 꺼지지 않는 별,
조국의 열렬한 샛별! 빛나는 애국자들.....
누추하고 낡은 태양계에 오심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산초,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고 너, 로시난테에게도 마찬가지.....
오, 족보 없고 팍삭 늙은 말이여,
혈통서도 없는.....
하지만 네 영광은 세상의 그 어떤 순종 말보다 높구나
네 주인이 원하듯, 네 족보는 네 자신부터 시작이어라
하지만 난 네 역사를 잘 알고 있지
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거야
온 천하에 네 멋진 세례의 증서를 보여줄 거야
로시난테: 위대한 위인전에서처럼 우리 모두 말하자구!
난 네가 아주 천박한 일에 매여 있음을 보아왔어
난 널 사역하는 여윈 말로 보아왔어
난 너에게 멍에를 씌우고 물을 길어 올리게 하는 걸 보아왔어
난 네가 새벽 녘 야채를 싣고 수레를 질질 끄는 걸 보아왔어
가끔은 시청 쓰레기차를 끄는 것도
어느 저녁, 일명 ‘사나운 축제’에 사람들이 널 끌고 갔을 때,
난 시저의 기독교인이나 노예처럼 노란 동태 위에 서 있는 널 보았어
넌 마치 순교자의 말처럼 치장하고 있었지:
엉덩이에 누더기를 걸치고 주홍색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그건 네가 죽음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어
사나운 태양아래 뿔과 투우의 창 사이에 넌 있었지
신성모독과, 저주 비명사이에서......
너였어. 난 널 알아봤어
용서해줘!
우릴 용서해줘!
로시난테, 난 널 변함없이 사랑해왔어
‘사나운 축제’에서 난 너로 인해 눈물을 쏟아야만 했었어
지금도 난 울음을 멈추질 못 하겠네
네가 보상 받도록,
네가 날 용서해주도록 하기 위해선
네가 우릴 용서해주도록 하기 위해선
난 온 세상에 공포하고 싶어,
네 본적을
네 족보를
네 혈통서를......
난, 올림푸스 신들이 내린 네 세례증서를 갖고 있어
어느 날 빛나는 4두 마차를 타고 내려와
어질고 어진 친구 같은 태양의 아침에,
널 영광스런 준마들의 영원한 왕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아폴로신이 내려올 것이란 걸 난, 잘 알고 있어
넌 오로라의 말들 중 가장 정통적인 말이기 때문이야
네게도 절한다, 난
루시오, 내 친구
루시오, 금욕주의자
루시오, 고통의
루시오, 끈기의
-그리고 네게 나직이 말한다
네 큰 귀에 가까이 다가가:
참아... 참아... 아시스(Asis)의 성(聖)프란시스코의 참을성보다 좀 더
널 위해 편한 의자를 예약해놨어, 네가 상징처럼 영원히 쉴 수 있게 말이야
스페인 시詩의 별자리에......
모두를 위해 건배!
건강과 부를 위해!
부富!
좋구나, 스페인사람이 부를 필요로 하다니
잘 못 들었구나, 다들.
자, 다시 한 번 말해볼게, 더 크게......
이렇게 두 손을 확성기처럼 말고 말이야
부....!
좋구나, 스페인사람이 부를 필요로 하다니
돈키호테는 가슴에 구부러진 수염을 손으로 세우곤 눈을 감는다
기사님 주무시나요?
기사님은 안 주무세요!
돈키호테는 의자 위에서 뒤척이고, 산초는 그가 몽유병환자처럼 말하는 걸 듣는다.:
“우린 아주 많이 걸었어, 세기와 세기를 말이야, 지구 상 모든 마을을 돌아다녔지
역사의 모든 승리와 패배를, 하지만 산초, 아직 우리의 “대모험”은 시작되질 않았어
대모험이라뇨? 종자가 묻는다
주인은 대답이 없다
가슴에다 머리를 접곤 다시 눈을 감는다
꿈꾸고 계시나요, 기사님?
그래, 맞아 꿈을 꾸고 계셔!
꿈!..., 꿈!
어쩌면 대모험에 관한 꿈일지도 몰라!
(난 이미 그 대모험이란 게 뭔지 안다)
만약, 오늘 그 대모험이 있게 된다면 무대를 준비해야해
멋있는 경치 하나가 필요해
위대한 무대장치사를 불러!
그리고 기술자 하나, 자 시작하자구:
여긴 카스티야(Castilla)
이곳이 카스티야야
우린 지금 카스티야고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있지
꼭대기야
고명한 고원!
여자 소경들이 지나가
-들에는 아무도 없어
평원, 평원.....모두 평원이야
들판엔 나무 한 그루도 없어
저기 멀리, 도망치는 포플러 몇 그루......
도망치게 내버려 둬!
난 나무들이 싫어.....
새들도 싫고.....
그러니 새들도 다 날아가 버리게 내버려둬
-그럼 독수리는? -무대장치사가 끼어든다
독수리는 항상 영광스런 서사시 서두에 나오잖아
-우리... 스페인의 모든 패배에, 하긴 우리에겐 패배만 있었지만......
우리의 것에는 단지 작은 까마귀 한 마리 나타난다
그러나 스페인이 처음으로 승전고를 울릴 이 전투에,
이 결정적인 전투에 난, 산수유나무를 원치 않아
독수리도 마찬가지
-하지만, 독수린... 기술자가 말한다
독수린... 까스띠야의 상징이잖습니까
-독수린 노예근성과 치장성이 짙은 새야
하고 내가 말한다
날개 속엔 비상飛翔보단 문장文章이 들어있지
너무 바로코적이야
그로테스크한 머리, 구부러진 부리, 벌어진 날개들은
우리가 지시하고 요구하는 것들을 신비롭게 노래하진 못해
게다가 충분히 날지도 못하거든
우린 무척 높이 올라가야한단 말이야
우리가 올라갈 곳에선 독수린 호흡을 못해
단지 전쟁용 새일 뿐이야 군인들의 친구인......
황제의 빛나는 투구 위에 앉기를 좋아하지
항상 왕들의 문양장식에 있는 걸 보았어
전쟁의 알을 품는 거만한 닭으로
깊숙이 몸을 파묻곤 앉아서 항상 투구를 잡고 있지
맘브리노(Mambrino)의 투구에도 그렇게 하고 있어
독수리의 비상은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어
하긴 군인 말고도 독수리를 귀엽게 여기는 시인들이 있지
하지만 단지 그의 비상에만 고개를 끄덕이는 시인들이 많아
이 새에는 많은 비유가 있어
멕시코인들이 이 새를 숭배하지.....
아주 아끼는 동물이야, 그들이
그들의 신화에서부터 피라미드에까지.....
하지만, 안데스에 그리스도가 도착하고부턴
멕시코의 하늘에서 아즈데카 독수리의 비상이
포물선과 수직선을 잃어버리게 돼
독수리 꺼져버려라 해!
내겐 소용없어!
그럼 태양은요? -무대장치사가 말한다
어디에다 태양을 두죠?
-천정에,
고원 위로 정의감 넘치게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로.....
깨끗하게
그대로 드러나게
단지 평행광선의 빛 뭉치만 보이게......
희고 마르고 똑 바른 도로,
푸른 수평선에 꽂힐 때까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땅에는 구름의 그림자 한 점 없고 곡선 하나 없는.....
누군가 카스티야엔 곡선이 없다 했지
맞는 말이야
이 신비롭고 엄격한 풍경에 곡선이 있어선 안 되지
곡선뿐 아니라 그림자도.....
기하학.....
직선의 기하학.....
기하학과 빛.
오, 빛, 내 생의 빛과 사랑!
카스티야의 거만한 빛이여!
넌 날 태어나게 했으니, 죽을 때도 나에게 네 수의壽衣를 입혀다오!
그래 빛은 그만하면 됐어
사물들이 윤곽을 갖지 못할 정도야
맞아, 벨라스케스의 빛이 그래
대상들에겐 번쩍여서 옆얼굴이 날아갈 정도로
춤을 추게 만드는 광채가 있어
땅덩이는 끓고 태양은 화를 내지
이 모든 게 마치 큰 오븐 속 같아
사물들이 일상의 형태를 잃어버릴 때까지
우지끈거리고 탁탁 소릴 내며 떨지
지구는 고통스러워 해
모르지, 이 비참한 행성이 -오, 기괴한 일!-
지금 별을 출산하고 있는지도 몰라
곧 뭔가 이상하고 초자연적인 일이 이 세상에서 벌어질 것만 같아
- 참 몇 시야? 지금 이 시詩의 시간으로 말이야
- 한 야비한 사람이 왕으로 보이는 시간,
어느 누더기 매춘부가 전설의 공주로 보이는 시간,
알돈사 로렌소가 둘시네아로 변하는 시간,
성인들과 신비주의자들, 스페인의 위대한 미치광이들이
신의 얼굴을 보는 시간,
애벌레 한 마리가 나비로 변하는 시간,
조물주의 두려움을 모르는 은유의 시간,
식후의 낮잠 시간,
위대한 기적들의 정확하고 정각인 시간.
- 합창단은 없어요? 시에는 합창단이 없는 거예요?
- 없어! 전조前兆의 정적,
고원에선 모두 침묵을 지킨다
밖에는 모두 잠들었다
오래된 전쟁의 카스티야는 천년의 잠을 잔다
대장의 스페인도 잠을 잔다
명문의 대가에서도 잠을 잔다
명이 긴 양어머니도, 내 아들들도, 늙은이들도, 청년들도
모두 잠을 잔다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잠잔다 프랑코도 엘시드도 잠잔다
망명중인 저 스페인인들도 멀리서 잠을 잔다
모두 다 잠잔다!
단지 돈키호테만 깨어있다
스페인이여 잠자라! 왕은 깨어있으라!
오! 미치광이 불쌍한 나사렛 왕이여!
그를 보아라, 저기 있다
그가 바로 영웅이다. 여러분 곁에 있다
오래된 마술 도구처럼, 광대놀이에서의 위대한 꼭두각시처럼
그가 바로 내가 어느 날 어이! 불렀던 사람이다:
뺨을 맞는 불쌍한 광대
하지만 사실이 아니야
그가 바로 왕이야, 우리들의 왕!
영웅!
이제 난 그를 위대한 마술사라 부를 터
함정과 속임수도 없이 훌륭한 요술을 해낸다구
그건 기적이야
돈키호테가 바로 기적을 이룰 수 있다구!
어느 날 라만차의 대로를 가던 도중
나귀를 타고 가던 시골 여자를 만났지
못생겼었어. 지독히도.... 작고 치열도 엉망이고, 양파 냄새가 났지
괴물이었어
이름은 알돈사 로렌소.
돈키호테는 그녀를 보곤.....
모르겠어. 어떤 기막힌 상상의 메카니즘이 작용했는지
이렇게 말하데
소리쳐!, 저기 저 오는 여인은 둘시네아야!
토보소의 공주!
강한 믿음으로 말하곤 그의 말을 지키려는 듯
창을 꽉 쥐곤 알돈사 로렌소가 라만차의 그 더러운 모래 길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후 둘시네아는 항상 역사의 시적 하늘에
하나 별처럼 박혀있게 된 거야
-밤이었어요?
-밤이었어
달밤이었어
기억해봐, 산초.
넌 시에라 모레나에 있었어
4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었잖아
몇몇 목동들이 따뜻하게 공손히 맞아 주었지
그 마을은 스페인에서 가장 못 살고 비천한 곳이었어
그 당시 너처럼 사람들은 글도 읽지 못했지
양치기들이었어
하지만 모두 왕의 물품들을 수송하는 일을 했었지
가난했었어. 다들......
하지만 양 한 마리를 잡아 고기들을 나눌 수 있었지
커다란 자루들을 가져왔어. 안엔 빵도 있었고
그리고 술 부대를 열었어. 속엔 포도주가 들어 있었지
너희들이 누군지도 모른 채 선물을 했어.....
-기억해봐.
마침내 땅위에 도토리 한 자루가 쏟아졌잖아
그건 목동들의 후식이었고
바로 그때가 네 주인이 도를 통하는 순간이었어
그 환대에 보답하기 위해 그는
도토리 한 줌을 쥐고 달빛아래 올렸지
그리고 뭐라고 말하는 거야. 그러자 그 도토리들이 갑자기
세상을 평화, 조화, 정의, 사랑의 세상으로 바꿔버렸어
황금세기로 변해 버렸던 거지
바로 그 세상이 오늘날 지구상의 경제학자들과
온갖 성인들이 찾아 헤매는 세상이야.....
그게 바로 경이로운 요술이지
돈키호테가 끄집어낸 한 줌의 도토리들로부터, 비둘기 한 마리.....
위대한 마술사의 하얀 비둘기.
너무나 복음 같아서 마치 예수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이어 그는 예수가 그의 비유로 시작했던 것처럼 말했지;
“그 시절엔.....”
시간을 죽이며...
시간은 우리를 혼동시키고..... 에,..에....
시간은 없어
“행복했던 시간들과 시대..... 에....에.... 너의 것
그리고 나의 것들은 모르는 낱말이었을 때..... 에....”
“그 행복했던 시대..... 에...”
아휴, 그 시대가 언제였어요?
과거였어요? 미래였어요?
비유에는 시간이 없어!
그리고 그 시대는..... 올 거야
지나간 게 아니라 올 거야
올 거란 말이야!
예수 그리스도가 원했던 것처럼
믿음을 갖고 그 시대를 지극히 소망하고
그 시대를 지킬 것이기 때문이야
세르반테스는
양치기들이 그 황금세기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 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알아들었어
우린 그들이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지
지금 우리도 그날 밤 시에라 모레나 산맥 깊숙이서
돈키호테가 양치기들에게 말한 바 있던 그 황금세기에서처럼
단 하루를 살기 때문이지
-하지만 어떤 시가 어떤 서사적 중요성을 띠게 될 겁니까?
여기 뒤 굽이 높은 구두는 없습니까?
지금까지 우린 모든 수사를 찔러봤지.... 호머의 것 또한.
지금 호머는 아무 소용이 없어.....
아킬레스도 그래
뒤 굽 높은 구두를 가지고 가버려
난 그 딴 걸 원하지 않아. 그것은 제우스를 위한 것이야
우린 복음에 나오는 귀가 먼 샌들을 신고 다닐 거야
헤쿠바의 눈물보자기 역시 가져가버려라 해
거기선 햄릿이 왕자답게 몇몇 코미디언에게 지불하잖아
트로이의 여왕을 위해서 다들 눈물 짜도록.
내게 헤쿠바가 뭐 중요합니까? 내게 트로이가 뭐 중요합니까?
여기엔 수사적 눈물이 없어요
월급쟁이 어릿광대의 눈물 짜는 노래가 없어요
산사람을 위해서 울지 않아요.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울지 않아요
나의 울음은 딸꾹질도 아니요, 디너파티의 콧물도 아니에요
우린 아주 소리 높여 울 것이야!
난 봐 왔어. 세상 모든 제국과 모든 트로이가 먼지 속에서 사라지는 걸.
위대한 스페인 제국, 내 피와 내 혈통이 나온 그 곳,
그 역시 먼지 속에서 사라져 감을 보았어
아니야! 난 헤쿠바(Hecuba)를 위해서도,
트로이(Troy)를 위해서도, 스페인을 위해서도 울지 않아
난 더 높이 울고 싶어
나의 울음은 더 이상 지상에 포물선을 갖지 않아
내 울음은 수직이야.....그리고 찾고 있는 중이야
몰라. 어떤 별자리를 찾고 있는 중인지
하지만 난 한 왕국을 원해,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이 흘러도 붕괴되지 않을 영원한 왕국
내가 만지는 모든 사물들의 빛을 성스럽고 영원하게 만들 왕국
우린 6운각의 시로 인해 울지 않을 거야
6운각의 악센트 역시 나에겐 소용없어
6운각을 가져가버려!
여긴 내 악센트 외엔 다른 악센트가 필요 없어
난 나에게 쓸모 있을 유일한 악센트를 요구하고 있단 말이야
내 것! 내가 세상에서 처음 구사하는 시구.
그건 수년에 걸쳐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그걸 사용하기 위해 80년이 걸렸어
엄청나게 울었어!
그건 아주 멀리서 나에게 찾아 온 악센트야
터질 제방 같은 내용, 피가 튀기는……
지금 이 노년기에 난 억제 할 수 없어
결코 억제해서도 안 될 것이야
모든 6운각 위에선 급류처럼 뛰어라!
아님, 6운각의 악센트가 피의 고동을 꺼버릴지도 몰라
난 무엇보다 내 심장의 고동소리를 계속 듣고 싶거든
내 피의 흐름은 하나의 운을 이루는 시적 리듬이지
이건 내 잘못이 아냐, 내가 억지로 그 리듬을 찾고 있는 게 아니야
이 시의 어떤 시구도
11음절, 6운각, 9음절, 4음절의 시로 만들 수 있음이야
나름의 시구를 형성하기 위해 조합하다 보면
항상 방법은 간단해, 그냥 내 심장에 정확한 음표만 달아주면 되지
이 시작법은 그 어떤 언어로 번역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거야
한 줄의 시가 아주 멀리 날아야한다면 말이지
(지금 이 시가 바로 멀리 날아야 함)
바로 이 날개들이 가장 적합한 것들이지
난 모든 전치법을 쓰는 바로코 문자들을
피가 흐르는 문자들로 똑바로 세우지
(난 전치법을 증오해)
난 날아가는 창처럼 깨끗하고 똑 바른 시구가 좋아
만약 내 시를 번역한다면 제발 가장 간단한 형식에다
딱 맞는 율격으로 억지 없이 해 줬으면 좋겠어
번역가들이여: 갈증을 느끼는 이들 모두가 마실 수 있도록
순박한 흙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해주세요
난 여러분들을 이 밤 데리고 왔지, 또 다른 마술을 보여드리려고:
또 다른 기적.
다들, 뭘 거라 생각해요?
테너가수가 나와 연애 시 한 소절 노래할 거라 생각하우?
아니오!
난 여러분들께 스페인의 대 마술을 보여주려 하오
위대한 스페인의 마술!
스페인은 전사와 음...... 성인들의 고장이오
자 여기 카드들이 있소, 전사와 성인.
당신은 누구에게 걸겠소?
자, 놀이가 시작됩니다
난봉꾼이 몸을 못 숨기도록 여러분들이 보시는 바처럼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카스티야고원, 이 모든 게 일어날 장소, 난 아주 말끔하게 만들었어요:
나무 한 그루 없이
새 한 마리 없이
그림자 하나 없이.....
삐죽 열린 천정의 빛도
조금의 빈틈도, 함정을 숨겨놓을 어떠한 구멍도 없이.....
난 지금까지 모든 바로코의 고대유령들을 놀라게 했어요
그리고 수사법을 추방시켰지요
수사법은 작은 렌즈나 유리구슬 등을 숨기는
마술사의 트릭을 위한 보자기 같은 것이기 때문이오:
자, 등장인물들을 소개 올립니다
우리의 영웅인 주인공은 잘 아실 거고...
장관壯觀을 위한 준비가 완벽히 됐어요
자, 다들 주목..... 이리 보세요!
아무도 우우~~ 하지 않을, 아무도 우릴 속이지 않을
자, 주모오...옥! 이제 시작해요
“대모험”
저기 두 사람이 온다
기사와 그 종자......
클래식한 기마자세로
저기 온다
저 앞 큰 길......
천천히, 조용히.....
돈키호테는 멀리 수평선을 살핀다
로시난테는 갑자기 몸부림을 치면서 간질병을 앓는 듯
머릴 흔든다
낌새가 수상하다
로시난테가 스치는 바람에 무슨 냄새를 맡았나?
고조되는 흥분,
냄새가 코를 아리게 하나보다
저기 하늘은 파르르 떠는 한 장의 빨간 함석이다.....
빛과 공기, 모두 떨고 있다
멀리 뭔가가 춤을 춘다
돈키호테는 투구를 이마 끝까지 눌러 쓰고
숨을 깊이 들어 마신 후
안장에서 엉덩일 치켜들곤
창을 똑 바로 세운 뒤 머릴 곧추 세워
딱 한 곳만을 바라본 채, 어딘지도 모른 채
몽유병환자처럼 그의 미치광이 일생 중
가장 활활 불붙는 시점인 양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곤
외친다
(그의 목소리는 뜨거운 하늘의 오목 들어간 함석판까지
파르르 떨게 만든다):
-저기 있어!!!...
-저기 온다 말이야!!! 보이지, 산초?
그의 종자는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이마에다 손을 얹고 햇빛가리개를 만들어
한쪽 눈으로 윙크하듯 저쪽 먼 길을 조심스레 바라본다
그리곤 이내 흥분한 백전노장인 종자는 이렇게 말한다
-맞아요, 맞아! 맞다구요!!
그에요, 바로 그!
바로 그 기사, 돈 맘브리노....!
머리 위에 쓰고 있는 건 그냥 이발사의 세숫대야가 아니라구요
진짜 투구라구요!, 그것도 금으로 된 투구.....!
정말 전시, 실전에서 쓰는...
우리도 그와 함께 갑시다!!
-아니야! 조용히 해, 산초. 조용히 하란 말야!
-아이쿠, 가요! 함께... -종자는 계속 고집을 피운다
왜 그렇게 겁을 먹나요? 주인님이 지금처럼 겁먹는 걸 본 적이 없는 걸요
-입 닥치라고 하지 않았느냐, 산초.
돈키호테는 로시난테의 고삐를 생짜로 당기며, 정지시킨다
둘은 기다린다
돈키호테는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내리고
다시 한 번 뚫어져라 바라본다, 광기와 초자연적인 눈빛으로
이어 가늘게 떨며 입을 열기를:
-저기 오는 이는 누군가? 어디서 오는 걸까?
땅 아님 하늘? 진동이 하도 강하여 수평선이 쫙 펴지다가 도르륵 말리고 있구나
수평선이 없어, 수평선이 사라져버렸다구! 누가 오고 있는거야? 누가...?
돈키호테는 계속 외친다
-맘브리노요! 판초가 반복한다
-아니야, 산초! 맘브리노가 아니야, 머리 위에 쓰고 있는 건 투구가 아니란 말야!
-그럼 뭐에요?
-금은 결코 저토록 반짝이지 않아, 그건 금보다 훨씬 값진 것이야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후광 같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그걸 머리에 쓰고 다니는 이는 결코 유랑기사일 수가 없어
-그럼 누군가요?
-몰라.....천사 같아.....머리에 불을 이고 다니는......
돈키호테는 더 이상 보고 있는 광경을 묘사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이제 온다, 왔어... 지나간다..... 엄청 빨리 지나갔어...
산초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돌리며 말한다
(갑자기 번개가 치고 둘은 말안장에서 떨어져버린다)
시인이 막간을 이용해 중간 설명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누가 지나갔지?
지나간 이는 빛의 광채에 녹아버렸어
이제 형체가 보이질 않아
오!, 기적을 이삭처럼 자라게 하는 카스티야의 환상적인 요술 빛이여!
땅에 떨어졌던 기사와 그 종자가 일어났을 땐, 이미 그들의 말은 사라지고 없다
로시난테는 어디 있어?
로시는 어딜 간 거야?
산초가 이리저리 찾아보지만 무기들도 오간데 없다
투구도,
창도,
칼도,
방패도.....
돈키호테는 찢어지고 더러운 양말 한쪽과
한 세기를 입은 듯한 낡은 조끼 하나 외, 거의 발가벗고 있다
하지만...그의 머리에는.... 뭐지?
산초는 더 이상 그런 그를 알아보지 못 한다
그를 경이적인 눈빛으로 바라보며 전율한다
-산초 무슨 일이야? 돈키호테는 그런 그에게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주인님, 대체 당신은 어떤 존재이십니까?
광채가 일어나요, 빛을 입으셨다구요... 빛. 불의 왕관을 머리에 쓰신 듯......
(신성한 광기에 의해 타고 있던 뇌가 마침내 오로라나 번쩍이는 왕관을 꽃 피운 것 같다)
돈키호테는 겸손히 머리를 숙이며 성호를 긋는다..... 이어 아주 침착하게 기도한다
-무슨 기도입니까?, 단지 낱말들만 낭랑하게 들릴 뿐이니..... -시인이 불쑥 개입한다-
돈키호테가 답한다:-“당신의 왕국으로 오세요”
-방금 지나간 이는 천사야, 난 이미 그가 맘브리노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지
돈키호테의 회심에 찬 말에 산초가 확신을 갖고 맞장구친다
-맞아요, 돈 맘브리노가 아니었어요!
-산초, 천사였어, 평화의 천사. 그래서 우리 무기들을 가져가버린 거야, 갑옷도.....
그리고 투구도 바꿔놓았어, 아직도 내 이마에 잔재하는 이 빛으로......
우리 무기들을 모조리 가져가버리시곤 대신 님의 왕관을 남겨 두신거야
돈키호테는 불타는 하늘을 향해,
말라붙은 독수리 모양의 나사렛 헤어스타일의 머릴 치켜든다
그의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에선 태양이 무지개 빛깔로 부서지고……
마치 늙은 그리스도처럼 보인다, 광견병 걸린 개가 물어뜯어놓은 듯한
아주 못 생기고 낡은 공예품 예수.....
찾는다고, 다시 찾고 또 찾는다고
피와 신비의 사발 속에 넣고 빻아 세기와 세기의 그림자로 반죽한
이 기이한 물질 속에 무슨 신성한 다이아몬드라도 들어있다고
날카로운 끌로 후벼 파놓은 듯한, 이게 바로 지금의 돈키호테와 흡사한
내가 사랑하는 스페인의 그리스도이다......바야돌리드의 성상조각가들이 만드는
그 그리스도들이 아닌....
스페인의 성상조각가들은 유리의 눈물로 예수를 만들어서 겨우 빛이 날까말까 하지만
카스티야의 이 빛은 진정한 눈물 한 방울에 이렇게 번쩍인다구!
여기서 난 배웠지, 아주 옛날, 또 그렇게 되 뇌이길 좋아했지
왜 우리들의 눈은 보고 울기 위해 만들어졌을까?
왜 소년은 처음으로 씁쓸한 눈물 한 방울에서 어떻게 태양광선이 부셔지고 또 거기서 일곱 마리의 새와 일곱 도깨비색깔들이 밖으로 튀어나옴을 알게 되는 걸까?
난 월급쟁이 성상조각가들이 만드는 유리 눈물의 괴이한 그리스도들을 원치 않아
그것들은 기껏 대모들을 놀라게 하거나 농군들을 현혹시킬 뿐이지
이 따위 그리스도들은 필요 없어, 모두 다 꺼져라해!
난 늙고 추하지만 진정으로 우는 예수가 좋아
기사님들도 우시나요?
그럼... 기사도 울지! 울고 말고!
왜 우는지, 누굴 위해 우는진 모르지만, 진정으로 울지
진정으로 울지 않으면 시가 없어!
이 시를 쓰는 시인도 늙고 못 났어.....
그 또한 울지. 그 또한 왜 우는지 모르지......
하지만 진정으로 울지 않으면 그에게도 시가 없어!
인간은 이상한 동물이야, 어느 날 울곤 더 이상 울지 않으니......
왜 우는지도 몰라, 누구를 위해서인지도, 눈물이 뭘 의미하는지도.....
돈키호테가 머릴 땅 쪽으로 다시 돌리며 그의 종자에게 묻는다:
-산초 나의 친구여, 이게 뭘 의미하는 것 같나?
산초는 무릎 꿇고 울면서 그의 손에 입맞춤한다
그렇게 둘은 조용히 머문다. 꿈적 않고....마치 시간의 단면에 정지해 있는 듯
인간들의 피의 역사 속에......
-이제.... 주인님, 우린 어디로 가야하나요? 종자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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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첫댓글 오마이갓500?
아유!!!!!!!!!
어어어어..........
헉~ 대모험 앞에서 망연자실ㅋ
대시인의 주절거림이 "대모험"이고 필사가 장난이 아니네요, 3박4일 걸렸습니다.^^ 신과 인간의 소통 창구로서의 시, 그 시작법에 대해 상세하게, 산만하게, 그러나 버릴 것이 없는(시인의 표현)....권력과 명예의 덧없음, 눈물, 자각, 시간, 잠, 천국, 허장성세, 헛된 수사 남발에 대한 경계,독창성, 형식의 파괴, "난 날아가는 창처럼 깨끗하고 똑바른 시구가 좋아....." 교수님의 시론이 고스란히 녹아 있네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드릴도 아니고 연주도 아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