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라는 태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메머드급 태풍은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 것이며, 무엇을 휩쓸어 버리고, 무엇을 새로 세울 것인가요? 어울리지 않는 시기에 들이닥친 불법 대선자금 수사라는 태풍은 정치권과 내노라 하는 재계 굴지의 기업들 거의 전부를 사정권 안에 놓고 있습니다. 어느 정당이라도 불법 선거자금의 모금으로부터 자유스럽기는 힘들며, 대기업 어디도 정치권에의 보험가입이라는 얽히고 설킨 공생구조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혹스러운 일은 대통령이 발표한 중간급 정도의 태풍인 중간평가 실시 제의가 지나간 뒤, 몇 일도 되지 않아 국민과 정치권은 대선자금 전면 수사라는 초대형 태풍을 맞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지금이어야 하고, 왜 지금이 적기입니까? 아마도 기존의 대다수 정치인들은 연루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부패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청산 되어야할 대상으로 끌려 다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더 구린 냄새가 나는 한나라당이 현 정부의 ‘신당 띄우기 기획수사’라고 반발하는 것일 것입니다.
국민의 관전 포인트
그러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의 관전의 포인트는 “A당은 어떻게 얼마를 받았는데,B당은 어떻게 얼마를 받았는가”가 아니어야 하겠습니다. 진정 따져보아야 할 문제는 대선자금 수사라는 메머드급 태풍으로 쓸어버린 뒤에, 정치권이 태풍 뒤의 청명한 날씨처럼 깨끗한 정치자금의 관행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4년 전 총선에서 몰아친 부패정치인 인적청산이라는 낙천`낙선운동의 결과로 태어난 현 정치권이 아직도 그다지 변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몰아치는 태풍은 부수기만 할 뿐이지 결코 무엇을 새롭게 건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불법 정치자금 수사를 통하여 낱낱이 밝혀내고, 관련자들을 줄줄이 소추하고 나면 우리가 희망하는 새로운 정치자금과 정치질서를 가질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불법 정치자금의 수사를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혹시 우리는 이번 수사와 소추 이후로 다시는 정치인들이 기업에 정치자금을 요구하지 않고, 기업도 다시는 정치인들에게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 정치개혁이 따라올 것처럼 집단착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과거에도 주기적으로 선거자금 수사는 있어 왔고, 정치권은 그다지 변한 것 없이 이번에도 반드시 정치자금 수수 관행을 고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까지 정치인에 대한 인적청산과, 몇 가지 선거자금 관리 관행의 제도개선에 맞추어서,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간과하고 쉽게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대선자금 수사를 지켜보면서, 불법 정치자금 모금의 재발을 방지하고,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정치권과 재계를 불법 정치자금 수수라는 수렁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하여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위하여
첫째, 근본적으로 정치권이 기업에 돈을 요구할 필요가 없는 선거풍토와 제도를 창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죄인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죄를 짓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근본적 처방이라는 것입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돈 안 드는 선거’라고 하는 제도의 도입입니다. 하지만 돈을 요구하는 유권자 앞에서, 동창회 밥값을 대신 내주기를 요구하는 유권자가 있는 한에는, 지연`학연으로 얽힌 선거운동원과 선거용 사조직을 동원해야 한 표라도 더 건질 수 있는 우리의 선거 현실에서 ‘돈 안 드는 선거’는 실현 불가능한 공염불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은 돈이나 연줄보다는 정책으로 대결하고, 불법으로 선거하면 반드시 감옥에 가며, 투명한 정치자금만 사용할 수 있는 선거로 정치인들이 합의하여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이번에 여야 4당 원내총무들이 완전선거공영제 실시를 합의하고, 내년 4월 총선 전에 지구당 폐지도 합의하였다고 합니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할 모양입니다. 하지만 실제 들여다보면 돈 안 드는 선거, 돈 적게 드는 선거 방안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사조직 가동이 중단되지 않은 한 완전선거공영제란 불법인 돈은 쓰지 않겠다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더 많은 국민세금을 쓰는 것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돈 먹는 하마라고 지구당 사무원과 조직을 없앤 뒤, 연락사무소를 확대하고 음성적인 사조직을 가동한다면 간판만 바꾸어 다는 것일 뿐입니다. 소선거구제가 문제인 듯이 문제삼고 있지만 소선거구제만 돈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중대선거구제에서는 선거구가 넓어서 약발이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쓴 후보자들이 동반으로 당선되는 수가 많습니다.
돈 적게 드는 선거를 만들기 위하여 우선은 유권자가 바뀌어야 하고, 선거운동의 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유권자 방문 중심이 아니라 후보자 정책토론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정당`합동연설회 폐지는 당연하며, 투명한 돈으로만 선거를 치르게 하는 제도개선도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앙선관위에 의한 정치자금 모금 및 중앙관리는 정치인도 및 기업도 불법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이번 대선자금 수사로 얻어야 할 최소한의 마지노 선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대선자금 수사로 “정치자금 개혁을 끝장을 보겠다”고 기자간담회에서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치자금 개혁은 일부 정치인들을 감옥에 보냈다고 얻어질 수 있는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단기 개혁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정치문화까지 바꾸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유권자의 개혁까지 수반하는 장기전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루기 힘든 개혁이므로 노무현 대통령은 홀로 정치개혁을 완성하겠다는 마음가짐보다,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합의에 기초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더 바람직한 것은 정치개혁은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산적한 국정을 챙기는 역할 분담입니다.
둘째, 정치권은 이번에야말로 기업이 정치권에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현실을 만들어야 합니다. 5공 이후 계속된 기업인들의 정치자금 헌납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 강제성’일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이 정치권에 강제로 보험을 들거나 투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패학자 로즈 액커만(Susan Rose-Ackerman)은 부패와 정부형태를 유형화하면서 부패가 정부의 상위수준에 조직화되어 있는 체제를 ‘약탈정치적 체제’(kleptocracy: 도둑정치)라고 정의하고, 공직에 있으면서 개인적 치부를 우선 목표로 삼고 이를 성취할 힘을 가진 지도자를 ‘약탈형 정치가’(kleptocrat)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유신체제 시기나 전두환 대통령 시기는 다수의 제공자가 존재하고 일인 또는 극소수의 수혜자가 뇌물(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약탈정치형으로 분류될 것입니다.
이러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 문제는 개입된 행위자의 선택의 측면에서 본다면 행위는 비윤리적이지만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경우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불법 정치자금 지급이라는 비용(cost)을 치루어도 지불하지 않았을 경우 당하게 될 치명적인 손해를 계산한다면 결국 ‘보험료’라는 것입니다. 내지 않아서 당하기보다는 보험을 드는 것이 안전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결국 기업은 적은 비용을 들여서 후일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받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많은 수고를 하여 합법적인 푼돈의 정치자금을 모으니 보다는 적은 노력으로 큰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효율적 이윤극대화의 경제논리에 맞는 교환관계인 것입니다. 이 쌍방 이익의 교환관계를 손해의 구조로 바꾸지 않는 한에서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사라지기 힘듭니다.
따라서 결론은 정치인들이 국가공권력을 남용하여 시장의 경쟁기능(market mechanism)을 없애고, 정치자금을 제공한 특정 기업에게 특혜를 줄 수 있는 시장(market)에서의 정부개입(government intervention)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싱가포르 등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국가들일수록 불법 정치자금의 수수는 존재할 기반이 없게 됩니다. 정치권의 시장경제 개입의 힘을 빼야합니다. 정치권의, 정부의 경제 개입을 최소화하여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장실패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정부의 인허가를 통한 경제통제, 검찰의 수사를 통한 기업생존에의 개입여지를 줄여야 합니다. 즉 시장경제의 도입이 궁극적인 정치개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근본적인 정치개혁이란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관료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효율적인 시장경쟁체제가 확립된다면 불법정치자금의 수수는 근본적으로 발원 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성장시대에는 새로운 정부 개발사업을 중심으로한 사업권 경쟁이 불법 정치자금의 시작이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은 이권보다는 기업생존을 담보로 하는 정치자금의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마피아식으로 기업이 탈 없이 경제행위를 하려면 세금을 바치라는 식었다고 하겠습니다. 정치학자 맨셔 올슨(Mancur Olson)은 국가를 ‘정착한 산적’(stationary bandit)으로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를 처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잣대에 의하여 기업이 죽고 사는 조건이 바꾸어지지 않는 한에서는 불법 선거자금의 기부와 수수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구조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노무현 정권 출범 후 9개월을 우리는 하루도 쉬지 않고 크고 작은 갈등과 대결의 집단이익 정치를 겪어 왔습니다. 혼돈이 지겨울 즈음하여 대통령의 중간평가라는 엉뚱한 제안으로 우리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하였고, 이제는 줄줄이 연결되는 불법 대선자금의 모금과 사용 명세에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치와 행정이 힘을 합쳐 도와주어도 세계시장에 뛰어든 우리 기업들이 성공할까 말까 의심이 가는 정도의 치열한 생존경쟁에 위치하여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경기침체 뿐만 아니라 북핵문제, 이라크 파병문제, 평준화 교육의 질 저하 문제, 부동산 투기문제, 위도 핵폐기장 설치문제, 새만금 문제, 청년실업 문제, 조기퇴직 문제 등 함께 모여 머리를 짜내어도 쉽게 풀리지 않는 산적한 어려운 숙제들을 가지고 짐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정치인은 잠을 못 자고, 정부는 한가하게 손을 놓은 것 같고, 기업은 벌벌 떨고 있습니다. 불법 정치자금 수사와 이어질 정치개혁을 기다리다가, 우리는 마치 숙제 안하고 치고 받고 싸우면서 놀기만 하다 경쟁에서 낙후되는 건달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청와대와 정부는 정쟁을 떠나 산적한 국정을 해결하고, 검찰은 최선을 다하여 신속히 하되 여야 형평에 맞게 수사해야 하겠습니다. 경제도 뒤로 미루고 질질 끌고 가다가 형평에도 맞지 않는 결론이 난다면, 미운 상대방 상처 내려다가 나라 전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입원하게 되는 결과로 귀결될까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사면이 존재하는 한 불법 정치자금의 수수는 없어질 수 없습니다. 일부는 정치자금 수사 이후 고해성사를 하고 나면 모두 죄는 사해지고, 깨끗해지며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 법의 세계와 종교의 세계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종교에서조차도 죄의 고백 또는 고해성사란 진정한 자기 반성과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의 결심이 전제된 것으로서, 고해와 사면의 부분은 일개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했다고 해서 세속의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요, 더욱이 종교적인 죄가 사해지기 위해서는 지은 죄보다 더 많은 선행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다시 저지를 죄를 고해만 하고 죄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은 진정한 해방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나면 버틸 수 있고, 대선에 승리하면 불법이 흐지부지 되는 법집행의 현실에서, 정치적 사면까지 존재한다면, 사생결단식 ‘붙고 보자’ 선거풍토가 사라질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관치경제의 청산이 진정한 정치개혁의 시작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가장 좋은 처방은 단기적으로는 바이러스를 치료하지만, 장기적으로도 체질을 개선하여 나가는 것일 것입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연관된 정치개혁 방안으로 시민단체가 내놓은 투명한 정치자금 모금과 집행을 위하여 정치후원금을 중앙선관위에 기탁하고 및 지출하게 하는 방안, 소액 정치자금의 모금에 대한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방안, 지구당을 폐지하고 중앙당을 원내정당화 하는 방안 등은 반드시 실현되고 우선 실천되어야할 단기 처방들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치료에 불과합니다. 거기에 불법 정치자금 동원에 의한 당선은 철저하게 당선을 무효화시키는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합니다. 불법자금의 수수가 총선이었든 대선이었든 가리지 않고 자리에 관계없이 물러나게 함으로써 불법을 저지르면 국민을 대표하는 직책을 가지지 못한다는 관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반드시 추진해야할 장기적인 체질 개선이자 진정한 정치개혁은 역설적이게도 정부와 정치인의 시장간섭을 줄이고, 완전한 시장경쟁을 도입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2. 정치자금의 투명화 방안
우리는 흔히 한국정치에 대하여 자조적이 되곤 하는데, 그 주요 이유가운데 하나가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구조 때문이다.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핵심은 정치를 하는데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들고 또 그 돈의 대부분이 음성자금이라는 데 있다. 지나치게 많은 돈과 투명하지못한 자금에 의존하는 정치풍토야말로 한국정치로 하여금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자금의 과도화와 불투명성은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문제를 야기하고 한국정치를 3류 내지 4류 정치로 떨어트리는 원인이 된다.
물론 현대 민주주의의 정당정치와 선거에서 정치자금은 필요하다. 그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어부에게 그물없이 고기를 잡으라는 주문처럼 비현실적이다. 정치자금 없이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비전이나 정책대안은 커녕, 자신의 이름석자조차 제대로 알리기 쉽지않고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정치생활에서 돈이 들 수밖에 없다면 정치자금은 정치에 필요조건이 되는 셈인데, 정치자금을 ‘적극적 선(positive good)’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필요악(necessary evil)’ 정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돈이 너무 많이 들거나 혹은 검은 돈이 들어와 정치자체를 부패시킨다면 ‘적극적 악(positive evil)’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정치의 근본 문제는 정치자금이 ‘적극적 선’도 아니고 ‘필요악’도 아니며 ‘적극적 악’으로 투영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고비용정치구조
정치는 경제활동과 달리 생산활동이 아닌 까닭에 정치인이 스스로 돈을 만들 수는 없고 일반 시민들의 선의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며 정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정치의 효용과 필요성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고 있는 시민들도 적지않은 상황에서, 시민들의 선의에 부응하려면 ‘깨끗한 정치’와 ‘효율적 정치’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돈과 정치의 결합은 ‘금권정치’나 ‘약탈정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금권정치나 약탈정치의 폐단은 명백하다. 정치에 돈이 많이 들 경우 경제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고 부정부패와 권력비리의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도 이점을 깊히 인식하고 그 동안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중지를 모으고 개혁을 거듭해왔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는 ‘백약(百藥)이 무효’인 것 같다. 백가쟁명식의 대안과 개혁시도에도 불구하고 정치자금의 과도함과 불투명성은 백년하청(百年河淸) 정치의 대명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비용 정치’의 핵심은 선거자금이다. 선거를 치루는데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비용 선거구조’를 타파할 수만 있다면, ‘고비용 정치’ 문제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방안으로 다른 많은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적정금액의 선거비용 상한선을 정하고 이를 지키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규정 따로”“선거 따로”가 한국의 정치현실이다. 선거가 끝난 후 모든 공직선거 후보자들은 선거비용내역을 중앙선관위에 보고하고 있으나, 허위 영수증 첨부 등, 분식보고를 할 뿐이다.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위해 투입하는 선거비용이 1인당 수십억 원을 넘고 대통령선거 비용은 그 비용의 수 백배는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턱없이 낮은 선거 상한액을 지키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가히 ‘천연기념물’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앙선관위가 이들의 신고내역을 면밀하게 추적`확인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고비용 선거구조’를 고치기 위해서는 아예 자금의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선거자금의 수요를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월 평균 1천만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구당 유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지구당을 폐지하거나 규모를 크게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정당연설회나 의정보고회처럼 조직을 동원하는 회합도 금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그밖에 통반에 이르기까지 피라미드식으로 조직되어 있는 선거조직의 철폐, 동창회, 향우회, 조기축구회 계모임까지 챙기는 사조직 동원을 금지하고 미디어중심의 선거운동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국회의원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비용 수요축소에 관한 제안은 과연 그것이 ‘민주주의 공고화(consolidation of democracy)’의 관점에서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또 설령 바람직하다고 해도 우리 정치개혁의 많은 현안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디어는 좋으나 실천은 불가능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형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구당 폐지가 정치자금 수요를 줄일 것은 확실하지만, 지구당위원장이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인 지구당 폐지에 과연 동의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지구당은 주민들의 민원제기나 의견개진 등, 정치참여의 통로로 작동하고 있는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지구당 폐지나 정당연설회 폐지 문제 등은 정치자금문제의 해결이라는 관점보다는 한국의 정치발전과 정당발전에 있어 의미있는 개혁인가하는 문제부터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일단 원론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모든 것을 비용절감과 경제적 효율의 관점에서만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차피 정치제도란 비생산적인 활동의 범주인 만큼, 일정 수준의 ‘경제적 합리성(economic rationality)’을 위배할 수밖에 없고 또 일정 범주의 비효율(inefficiency)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왜 국회가 있는데, 또 지방의회가 있으며, 하원이 있는데 또 상원이 있는가. 또 재판도 1심으로 족한데 3심제가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민주사회의 정치제도란 ‘민의(民意)에 의한 정치’를 가능케 하기 위해 일정한 비효율을 감수하는 제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구당 폐지나 정당연설회 폐지가 비용절감의 차원에서 효율적이라고 해도 국민들의 정치참여 극대화의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조직선거를 미디어선거로 바꾸어보자는 견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디어에 의한 선거도 비싼 광고료 때문에 오히려 고비용 정치를 부추킬 수 있다. 결국 선거자금 수요를 대폭 줄이는 대안들은 고비용 선거구조를 고치는데 효과적일 수 있으나, 비현실적인 주장이거나 혹은 민주정치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반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저비용과 투명성 및 정치참여의 ‘트리렘마’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고비용’ 정치구조를 ‘저비용’ 정치구조로 만드는 개혁에 힘을 쏟기보다 ‘불투명한’ 정치구조에서 ‘투명한’ 정치구조에로의 전환에 힘을 쏟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구조와 관련하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하나인 것 같지만, 실상은 둘이다. 즉 과도한 정치비용과 음성적인 정치자금이 그것이다. 이 두 개는 엄격히 말한다면 별개의 문제로서 그 해법과 관련하여 상이한 측면이 있다. 음성적인 정치자금의 철폐 등 투명화를 추구하면 과도한 정치비용의 문제를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고 저비용 정치의 목표를 야심차게 추구하려면 투명화의 목표는 일부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한꺼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방안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딜레마(dilemma)’다. 만일 거기에다 민주적인 정치참여의 특성을 살리는 문제까지 포함되면 ‘트리렘마(trilemma)’가 되고 세 마리의 토끼가 되는 셈이다. 결국 얽히고 섥혀있는 정치자금 문제에서, 또 딜레마와 트리렘마 문제에서 단칼에 ‘고르돈의 매듭’을 풀 수 있는 방안은 없고 하나씩 하나씩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어가야 한다.
우리는 투명성의 문제가 고비용의 문제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국정치에서는 투명성확보가 지고의 선(summum bonum)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몇가지 있다. 첫째로 고비용 선거자금문제를 해결하고자 설정된 선거자금 상한선은 ‘돈 덜 드는’ 선거의 규범적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선거비용의 상한액을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 높게 책정한다면 상한선 설정의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이 경우 낮게 책정된 상한액과 실제 선거자금 사이의 괴리로 말미암아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social cost)은 오히려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후보들이 법이 허용하는 한도를 넘어서는 선거비용을 사용했다는 ‘업보(業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또한 정략적 목적으로 이용되어 여야를 막론하고 정적을 음해하는데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어떤 대통령도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대선자금 논란, 또 대선자금 잔여금 논란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그렇다면 정치자금문제에서 자유로운 국회의원은 있는가.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야당국회의원을 빼내갈 때 여당수뇌부가 주로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불법정치자금과 불법선거자금을 문제삼는 수법이다. 국회의원 누구라도 법적 상한선을 넘는 돈을 쓰고 당선됐기 때문이다. 또 얼마 전 민주당의 김근태 의원의 경우처럼,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고백성사를 공개적으로 해도 실정법위반이라는 혐의를 받게 마련이다.
결국 정치인이라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막론하고, 또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법을 어기고 있다는 의미가 되고 그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다. 지킬 수도 없고 지켜지지도 않는 법 규정으로 인해 법의 권위는 실추되고 정치인에 대한 불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인은 ‘거짓말쟁이’나 위선자로 전락하고 교도소담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같이 비현실적인 선거자금 상한규정은 정치부패의 주요 원천이 될 수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정치자금문제를 감추다 보면 은밀한 정경유착은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선거자금이나 정치자금 문제의 개혁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정신으로 추구해서는 실패하기 쉽다. 이 점에서 ‘돈 안 쓰는 선거’는 ‘돈 덜 쓰는 선거’보다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또 “돈 안 쓰는 선거”는 “돈을 투명하게 쓰는 선거”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치자금 개혁은 비유하자면 고장난 배를 고치는 것과 유사하다. 배가 바다에서 항해하고 있는 가운데 고장이 나고 일부 기관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배를 정지시키고 배를 뒤집어보는 등, 항구나 조선소에서 고치는 것처럼, 혹은 완벽주의자나 결벽주의자, 또는 현실과 괴리된 이상주의자처럼,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배는 바다에 떠있기 때문에 배의 움직임에 이상이 없는 조건하에서 진단과 처방을 해야 한다. 실상 정치를 항해하는 배로 간주하는 발상은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될 만큼 고전적이다. 고장난 배에 관한 예화가 의미가 있다면, 정치자금과 관련하여 이상국가를 만드는 상황처럼 ‘원초적 상황’에서 시작하여 ‘돈 안 쓰는 선거’를 목표로 개혁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정치체(polity)란 바다의 배처럼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며 한시도 정지해 있는 존재가 아닌 이상,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무에서부터(ex nihilo)’ 시작하려는 접근방식보다는 현실이라는 제약조건을 감안하면서 신중한 개혁의 방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돈 안 쓰는 선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돈 덜 쓰는 선거”를 실현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돈을 투명하게 쓰는 선거”와 비교할 때 지고의 가치를 가지는 목표인지 의문을 가질 만하다. 우리사회는 그 동안 선거에서 돈 쓰는 행위자체를 막고자 온갖 관심과 노력을 집중해왔다. 그것이 물론 그 자체로 잘못된 목표설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현실과 유리된 지나치게 이상적인 목표설정이라는 것이 문제다.
정치자금에 실명제 도입을
그렇다면 현실적이며 가능한 목표설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자금의 유입과 지출에 관한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다. 투명성은 민주정치에서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는 필요조건이다. 부정부패는 권력획득과 권력유지라는 정치적 목적을 갖는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와 금전을 매개로 불공정한 경제적 혜택을 극대화하려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담합행위이다. 이러한 담합행위를 방지하는데는 투명성이 가장 효과적인 특효약이다. 그러나 문제는 투명성 확보가 반드시 ‘돈 안 쓰는 선거’나 ‘돈 덜 쓰는 정치’로 이어질는지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단기적으로 보면 투명성은 고비용 정치와 공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성’과 ‘저비용’ 가운데 택일할 경우, 투명성의 가치가 우선한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마치 주방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중국집에서 만드는 자장면이, 주방이 차단되어 보이지 않는 중국집에서 만드는 자장면보다 훨씬 비싸도 기꺼이 사먹으려는 소비자의 입장과 같다. 우리나라의 유권자들도 ‘투명하고도 돈이 비교적 많이 드는 정치’와 ‘불투명하고 돈이 덜드는’ 정치사이에서 선택의 문제에 봉착한다면, 투명한 정치의 대안을 받아들일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두 가지 제도의 철폐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선거비용의 법정 한도액을 폐지해야 한다.
둘째, 후원회를 통한 정치자금조성의 상한액도 폐지해야 한다.
그 대신 정치자금 투명화의 적극적 방안으로 정치자금 실명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인은 정치자금관리를 위한 별도의 단일계좌를 개설하고 중앙선관위에 신고해야한다.
둘째, 모든 정치자금의 입출금이 단일계좌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의무화한다.
셋째,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에 관한 사항을 매년 중앙선관위에 보고하고 일반에 전면 공개되어야 한다.
넷째, 후원회제도에 관한 한 무기명 정액 영수증은 폐지되고 인적사항이 명기된 후원회의 수입`지출내역이 선관위에 보고되어야 한다.
다섯째, 선관위에 보고되는 후원회의 회계보고는 일반에 전면 공개되어야 한다.
박효종(서울대, 정치학)
3. 정당국고보조금 폐지와 자율적 정치자금 모금 확대
1980년 국고보조금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어 책정된 예산은 8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액수는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2002년 올해에는 1천 1백39억원에 달하는 거금이 되었다. 22년 만에 무려 1백40배가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국민부담이 급증한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국고보조금제도가 기대와는 달리 정당발전과 정당민주화에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해왔다는 사실이다. 국고보조금제 도입으로 인하여 정당들이 재정적으로 견실해 진 것도 아니며, 국고보조금이 늘어날수록 이를 확보하기 위한 기상천외하고 파행적인 정당행태까지 나타나 유권자에 대한 정당의 ‘대응성(responsiveness)’과 ‘책임성(accountability)’이 떨어지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국고보조금제가 더 이상 유지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하여 강한 의구심을 표명하게 된다. 이 의구심에 관한 한, 몇 가지 근거가 있다.
부실한 정당구조
국고보조금제를 도입할 당시의 취지는 재정적 지원을 통하여 정당의 자율성을 촉진하는 ‘보약(補藥)’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당에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켜 정당의 부실화를 초래하는 ‘마약(痲藥)’의 구실을 한 셈이 되었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란 무엇인가. 행위자가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질 필요가 없을 때 도덕적 해이 현상이 발생한다. 도덕적 해이를 야기시키는 현저한 사례는 보험이다. 자동차보험을 든 운전자는 ‘방어운전’보다 ‘공격운전’을 할 인센티브를 갖게되고 화재보험에 든 사람은 “꺼진 불도 다시 보지 않으려는” 만심을 갖게된다. 또 생명보험에 든 사람은 다리를 건늘 때 “두드리며 조심조심 건너려는” 마음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국고보조금제가 보험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들이 함몰되는 도덕적 해이의 대표적 현상은 정당의 재정자립도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당비에 의해 운영이 되어야 하는 조직임에도 그렇지 못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2000년도를 예로 든다면 한나라당은 전체당원 2백 68만명 중에서 당비를 낸 당원은 0.45%인 1만1천명에 불과했고 민주당 역시 전체 당원 1백74만명 중 0.41%인 7천명만이 당비를 냈다. 자민련의 경우는 당원의 0.29%만이 당비를 낸 것으로 나와있다. 당연히 당비가 각 중앙당의 전체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2002년도를 기준으로 12.9-13.9%에 불과한 실정으로 서구의 민주주의국가들과는 현격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경우(99년 기준), 총수입의 30.0%가 국고보조금이며 당비는 51.4%를 차지하고 있고 기독교민주당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서구 정당들에 비해 한국 정당들의 자생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미 슘페터(J. Schumpeter)는 정당을 ‘정치적 기업(political entrepreneurs)’으로 유권자는 ‘정치적 소비자(political consumers)’로 비유한 바 있는데, 한국의 정당은 ‘정치적 부실기업’과 다름없다. 전체 자본금의 12.9-13.9%밖에 충당하지 않은 채 기업의 주인으로 자처하며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행사하는 사이비 기업가의 부도덕한 행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치시장’에서 몇 번은 퇴출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재정상태가 불량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분식회계로 주주와 소비자를 속이며 우량기업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방불케하는 ‘정치적 기업가정신(political entrepreneurship)’이 발휘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부실기업의 회생프로그램에서는 자구노력에 따라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그러한 노력도 없이 의회에 진출한 여야가 담합행위를 함으로써 국고보조금은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증액되었다. 결국 국고보조금 제도는 입법권을 가진 정당 정치인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국고를 자의대로 쓰기 위한 편법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보조금 배분방식의 문제
국고보조금의 배분방식도 정치의 독과점 구조를 조장하고 정당의 민주화와 정당정치의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행 국고보조금배분에 관한 한, 기본비율과 의석비율 및 득표비율의 세 가지 계산법이 혼용된다. 우선 기본비율에 입각한 배분방식에서는 전체 보조금의 50%에 대하여 의석수 20석 이상의 원내 교섭단체에 균등하게 배분한다. 그 후 남는 금액을 의석수가 5석 이상~20석 미만인 정당과 5석 미만이고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특정한 비율 이상의 득표를 한 정당으로 나누어 일정액수로 배분하고 있다.
의석비율을 기준으로 한 배분에서는 기본 비율을 제외한 잔여분 가운데 절반을 국회의석을 차지한 정당에 의석수 비율에 따라 배분하고 있다. 득표수 비율을 기준으로 한 배분방식에서는 기본비율과 의석비율을 제외한 최종 잔여분을 최근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득표한 정당의 득표비율에 따라 배분하도록 되어있다. 문제의 계산법은 결국 국고보조금의 배분에서 원내 교섭단체의 구성여부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염불보다 잿밥”에 정성을 쏟는 의회정치와 정당정치형태가 나타난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각기 의석수 20석 이상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데 도움을 주고 받기 위해 ‘의원 꿔주기’나 ‘의원 꿔받기’와 같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한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기본비율을 기준으로 한 국고보조금 배분에서 의석수를 고려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의석수 비율을 이용한 배분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의석수를 중복 계산해 보조금을 배분하는 방식도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fairness)’에 위배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배분방식으로 인하여 주요 정당이 국고보조금의 95%를 독점하고 소규모 정당은 거의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의 부조리한 상황을 야기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거대정당들의 담합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겠는데, 신진 정치세력의 정치시장(political market)의 진입을 막는 장벽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가하면 국고보조금으로 조성된 중앙당의 정치자금이 당 총재나 지도부의 ‘쌈짓돈’처럼 사용된다는 점도 문제다. 참여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2001년 각 정당이 지출한 국고보조금 2백 67억원의 58%가 세법상 인정되지 않는 증빙자료로 제출되었다. 또 결혼식 축의금으로 낸 돈이 정책개발비 지출항목에 포함되기도 할 정도로 국고보조금에 대한 회계감사가 부실한 실정이다.
중앙당 비대화를 부추키는 보조금
국고보조금은 주로 어디에 쓰이는가. 대체로 1년에 260억원 규모의 보조금이 정당에 대한 경상보조비로 쓰인다. 그 돈은 결국 중앙당 유지비이다. 이처럼 국가가 조직유지 관리운영비를 도맡아 주는 상황에서 비대한 관료조직과 같은 중앙당만 있는 기형적 정당이 존재하게 됨은 당연한 일이다. 국고보조금이 주로 중앙당 유지비로 충당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과연 중앙당은 정당정치에 있어 필요한 것인가. 미국의 경우, 유럽과는 달리 정당의 전국적인 조직은 없다. 물론 미국적 정치구조의 특성은 연방국가라는 데서 연유된 정당형태다. 따라서 미국의 정당은 우리가 흔히 모델로 삼고 있는 ‘국민정당’이나 ‘정책정당’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선거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가 끝나면 각 정당의 전국적 연대는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중앙당이 정당의 지배구조가 되어왔는데, 중요한 것은 유럽모델과 미국모델가운데 어떤 것이 한국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관료조직과 같은 비대한 중앙당이 국회의 역할을 왜소화시킨다는 점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유력 정당의 중앙당은 국회의 역할과 기능까지도 대신할 정도로 그 기능이 엄청나다. 그 결과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토론하고 심의해야할 국정의 주요사안과 현안들이 각 당의 중앙당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다루어짐으로써 국회의 ‘심의기능(deliberative function)’은 쇠퇴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른바 ‘식물국회’가 되어도 정당정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한국의 정치현실이다. 따라서 중앙당의 비대화는 단순히 국고보조금을 먹는 ‘하마’라는 사실 못지않게 오히려 그보다는 국회기능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정치발전의 관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결국 국회기능의 약화를 초래하는 중앙당을 축소내지 해체한다는 것은 의회민주주의 활성화를 가능하게 만들고 한편으로 엄청난 정당자금수요를 감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든다. 즉 일거양득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원론적 수준에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제도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된다. 정당은 헌법기관이 아닌 임의단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민주사회에서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런 동호회와 같은 임의단체는 아니다. 정당은 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당이 민주정치에 필수적이라고 해서 특정한 A 정당이나 특정한 B 정당이 필수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시장사회에서 기업이 필요하지만 특정한 A 기업이나 B 기업이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특정기업 A가 부실하다면 시장에서 가차없이 퇴출되어야 하며 기업 B가 양호하다면 더욱 융성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시장의 소비자들에게 있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도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특정정당의 성장과 발전에는 유권자들의 지지와 선호가 전제되어야 한다. 즉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A 정당이 융성하고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B 정당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러한 메커니즘이 순조롭게 작동되도록 ‘정치시장’에서 보장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논리는 정당이 필요로 하는 재정문제에도 마찬가지로 통용된다. 유권자가 돈을 기부하겠다는 A 정당에 돈이 들어와야 하고 돈을 기부할 마음이 없는 B 정당에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국고보조금제는 돈을 기부하겠다는 유권자의 뜻과 관계없이 선거 때 일정 수준의 득표를 했거나 일정한 의석수를 차지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보조금을 제공하는 제도다. 일단 득표를 했거나 국회의석을 차지했으면 ‘그 자체로’ 유권자의 신임을 받아 일정한 결과를 내고 권력을 장악한 것인데, 또 그러한 권력배분의 결과를 의하여 보조금배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부조리하다. 그것은 마치 권력을 차지한 사람이 돈까지 차지하겠다는 것과 같은 ‘금권정치(金權政治)’의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득표율의석수 및 정치자금배분은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결국 국고보조금제는 유권자의 뜻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자발적인 기부제도와는 상이한 비민주주의적 제도다. 국회의석수는 유권자로부터 표를 받아 결정된 것일 뿐, 그것이 보조금을 배분하는 현저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유권자들이 ‘표’가 아닌 ‘돈’을 주려면 ‘표’의 기준이 아닌, ‘돈’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원하는 정당에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겠다는 자발적 의사표시이외에 다른 기준은 있을 수 없는 셈이다.
경상비 보조철폐
이처럼 민주주의 정신에 맞지 않고 공정성도 결여한 현행 국고보조금제도에 대한 개혁안은 명백하다. 우리는 국고보조금제도를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국고보조금지금으로 인한 정당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또한 정당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국고보조금제는 전면 폐지될 필요가 있다. 국고보조금제를 폐지한 후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의 연말 세금정산시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일괄공제(check-off)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실시할 경우, 정당은 유권자의 지지와 동의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민주주의원리가 살아 꿈틀거리게 되고, 한편 납세자인 유권자에게도 정치자금의 기부를 통한 정치참여의식이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것은 20년 이상 국고보조금 제도가 운용되어온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이를 철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또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개혁을 외치면서 ‘대규모적인 사회공학적 방법(large-scale social engineering)’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사례도 없지 않다. 이탈리아는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해 정당중심의 국고보조금 제도를 폐지하고 후보자 중심의 국고보조체제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우리상황에서 국고보조금제 폐지는 장기적 대안으로 삼고 단기적으로 운영의 개선을 주문할 필요가 있다. 커피중독자나 마약중독자도 한번에 끊으려고 한다면 금단현상을 일으켜 더 커다란 부작용에 함몰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점진적인 사회공학적 방식(piecemeal social engineering)’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그 방법으로는 정당에 대한 경상보조를 우선적으로 철폐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회와는 독립된 세력으로 기능하며 의회의 심의기능을 위축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대 중앙당조직을 축소시키고 원내정당화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선거자금에 관한 국고보조만을 정당에 공여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당이 일정금액의 정치자금을 모금한 경우 모금액수에 비례해 국고보조금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은 이른바 ‘매칭펀드(matching fund)’의 개념을 국고보조금 지급에 도입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하여 정당의 당비납부실적과 연동해서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고보조금제도를 존속시키기 위한 대안이 아니라 보조금제도의 점진적 축소를 위한 대안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4. 윤곽 드러낸 현대 비자금 커넥션
현대 비자금이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은 지난 2000년 초. 현대는 당시 경영권의 분쟁과 잇따른 주가폭락 등으로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고,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을 매개로 한 대북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었습니다. 검찰은 정몽헌 회장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각 100여억원과 150억원의 비자금을 당시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총선을 목전에 둔 권씨와 남북정상회담 특사였던 박씨의 비자금 필요성과도 맞아떨어졌다는 설명입니다.
<평가>
보도내용의 핵심은 정경유착의 원인이다. 검찰은 정경유착의 원인으로 현대의 정몽헌 회장과 권노갑 민주당 전 상임고문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모두 지목하고 있다. 정경유착의 원인에 대한 매우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러나 정경유착이 기업인과 정치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설명은 옳지 않다.
기업이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가정하자.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장에서 수익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익을 내는 것이다. 기업이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은 이 방법이 이미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특권 또는 특혜를 포함하여 정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시장경제에서 이제 남은 길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하여 극적인 기사회생을 하든가 도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가를 통해 특혜 대출 등, 특권 또는 특혜를 받는 것이다. 검찰의 설명에 의하면, 현대 정몽헌 회장은 바로 이 방법을 이용하여 현대를 어려움에서 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정경유착의 대표적인 예이다.
정경유착의 원인을 기업인과 정치가 모두에게 돌리는 검찰의 설명은 검토의 여지가 있다. 만약 정부가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지 않아 기업이나 이익집단에게 특권 또는 특혜를 줄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러한 경우에 기업가가 정치가나 고위 공직자를 만나 어떤 청탁을 해보아야 소용이 없다. 정치가나 고위 공직자가 특권 또는 특혜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경유착의 궁극적 원인은 특권 또는 특혜를 쥔 정부이지 기업이 아니다. 따라서, 정경유착의 원인으로 기업가와 정치가를 모두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업, 특히 대기업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비난은 反기업 정서를 퍼뜨리고 지속시켜 왔다.
인간은 대체로 이기적이다. 이기심은 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다. 농부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농산물을 생산하지만 그러한 행위가 타인을 위하게 된다. 이기적인 행동이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다. 그러나 농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도록 로비를 하거나 집단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기적 행동이 타인의 이익을 해치는 경우이다. 이 때 로비를 통해 농산물 수입 금지 법안이 통과되는 경우도 정경유착의 일종이다. 이런 정경유착과 이 번 정경유착은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같은 점은 정부가 인`허가권을 쥐고 있다는 것, 이익집단이 특권 또는 특혜를 받고자 한다는 것, 정책과 대가가 수수된다는 것 등이다.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특권 또는 특혜를 받는 과정이 비교적 공개되어 있다. 둘째, 이익집단의 범위와 규모가 다르다. 셋째, 그럴듯한 대의명분이 있다. 즉 로비를 한다고 모두 특권 또는 특혜를 받지는 못한다. 넷째, 금품보다는 표가 수수된다. 다섯째, 현대 로비 건과 달리 이 경우에 이익집단을 비난하는 경우를 좀처럼 볼 수 없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종류의 정경유착의 궁극적 원인도 특권 또는 특혜를 가진 정부이지 이익집단은 아니다.
정경유착의 형태가 다른 경우에라도 그 본질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형태에 따라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한다면 그것은 차별이다. 어느 경우에나 정경유착의 궁극적 원인은 특권 또는 특혜를 지닌 정부이지 기업을 포함한 이익집단이 아니다. 지면상 다루지는 않지만, 재산권 관점에서도 비난이나 처벌의 대상은 인`허가권을 가진 정부이다.
<제안>
뇌물수수와 관련한 법, 정치자금법 등에 의하여 처벌하는 방법으로 정경유착을 근절할 수는 없다. 정경유착은 그 원인이 정부의 권력 때문에 발생한다. 정부가 인`허가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정경유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경유착을 없애려면 정부가 가진 특권 또는 특혜를 제거해야 한다. 그것만이 정경유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기업을 포함한 이익집단이 정경유착의 궁극적 원인이 아님을 교육함으로써 반기업 정서를 불식해야 한다.
<참고문헌>
전용덕, ‘정경유착, 진정 무엇인 문제인가’ emerge 새천년, 2000년 1월호 참고.
<보도원문보기>
앵커: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현대와 전 정권 실세 등이 비자금과 이권을 주고받은 이른바 검은 커넥션의 실체도 점차 드러나고 있습니다.보도에 손석민 기자입니다.
기자:현대 비자금이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은 지난 2000년 초.현대는 당시 경영권의 분쟁과 잇따른 주가폭락 등으로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고,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을 매개로 한 대북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었습니다. 검찰은 정몽헌 회장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각 100여억원과 150억원의 비자금을 당시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총선을 목전에 둔 권씨와 남북정상회담 특사였던 박씨의 비자금 필요성과도 맞아떨어졌다는 설명입니다.두 실세로의 비자금 전달에는 무기중개상 출신의 돈세탁 전문가인 김영완 씨가 개입했습니다.
지난 91년 국정감사장에서 국방위 소속 야당의원이던 권씨를 만난 김씨는 97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는 권씨를 통해 박씨까지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김씨는 이후 자신의 빌라를 권씨에게 세놓기도 했으며,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때는 박씨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검찰이 그동안 김영완 씨의 귀국에 집착한 것도 김씨가 이처럼 기업과 정권 실세를 연결하면서 검은 돈을 관리해왔다는 의혹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5. 털록의 지대추구론과 한국사회
일찍이 프리드만은 ·공짜 점심·(free lunch)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갈파했으나, ·공짜 정부·(free government)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공공선택론자들의 시각이다. ·공짜 정부·가 없다는 점은 특히 정부의 시장개입이 초래하는 문제들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정부의 시장개입에는 거의 아무런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 것처럼 치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정부비용의 평가절하에 대한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러한 비용을 계산할 수 있는 개념과 방안이 정착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7년 "관세와 독점 그리고 절도에 대한 후생경제학"의 논문을 통하여 털록(G. Tullock)이 지대추구(rent-seeking)의 개념을 창안해내면서 정부의 시장개입비용을 산출해 낼 수 있는 획기적인 지평이 열린 셈이다.
지대추구란 경제학도들에게는 비교적 친숙한 현상이다. 자원소유자에게 기회비용을 초과하여 이득이 돌아올 때 지대추구행위가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기회비용을 초과하는 이득의 범주는 여러 가지로서 준지대나 독점지대, 잠정지대 등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털록이 주목한 전형적인 지대추구행위라면 독점지대의 범주로서 생산이 고정되어있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생산이 원칙적으로 증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독점적 권리를 확보하고자 소요되는 비용은 가치를 창출하는데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A와 B 사이에 순수소득 이전을 위하여 실제의 자원이 사용되는 경우가 지대추구 행위의 전형적 사례로서 이러한 상황은 제로 썸(zero sum)이나 네거티브 썸(negative sum)게임상황을 노정한다. A로부터 일정금액을 빼서 B에게로 전이할 때 부가가치가 생산되는 것은 아니므로 소요되는 경비는 사회후생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낭비적 경비가 되는 것이다.
문제의 지대추구행위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독점을 만들거나 규제를 하는 상황에서 완연하다. 시장영역에서 독점지대를 창출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라면 국회에서 시장행위자들의 경쟁을 제한하거나 시장 진입을 규제하는 법을 통과시켰을 경우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자도사(自道社) 소주 구입제도가 그 사례로서 1995년국회는 1991년에 폐지되었던 자도소주구입제도를 부활시켜 희석식 소주에 대하여 자도소주 회사의 제품을 50%이상 구입하도록 규정한바 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소주 생산 대기업과 중소기업들 사이에 극심한 로비경쟁이 국회와 정당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부만이 지대추구행위에 연루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일정한 제품가격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가격담합을 했을 때, 지대추구게임에 연루되는 셈이며, 혹은 부모의 상속지분을 둘러싸고 형제들간에 벌이는 경쟁도 지대추구의 범주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사적영역에서의 지대추구는 정부의 시장규제와 밀접하게 연계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강조하자면 적어도 명백한 시장실패(market failure)의 교정과 연계되지 않는 정부의 규제나 개입에 관한 한, 일단 지대추구의 범주로 간주할 수 있는 여지가 엄존하는 셈이다. 정부의 규제나 개입과정에서 이익집단들 사이에 치열한 로비경쟁이 벌어지게 마련이며, 시장진입이나 퇴출등 규제의 폭이 클수록 정치과정은 지대추구의 장으로 전락하고 정경유착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와 관련하여 지대추구행위가 두 가지 관점에서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킨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하나는 이익집단들이 로비의 과정에서 동원되는 자금자체가 비생산적 영역으로 쓰여짐으로 직접적으로 낭비적 범주로 전락한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문제의 로비자금이 다른 생산 영역에 쓰여졌더라면 사회후생을 보다 제고시킬 수 있었는 데 그러한 기회가 무산되었다는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이중적으로 사회적 손실을 야기시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털록의 지대추구모델이 정치과정이나 입법과정에 대하여 불필요할 정도로 냉소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때때로 입법과정에서 규제법안 못지 않게 규제완화 법안도 통과 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시장실패 교정만을 정부의 배타적 기능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에서 털록의 지대추구 모델이 적실성을 지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부의 실질적인 은행지배나 정부주도의 빅딜 등은 지대추구 모델을 반증하기보다는 확증하는 셈이다. 항상 사정을 해도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선거 때면 경제인들이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정치자금을 공여하려고 안달하는가? 그 핵심은 정부의 규제에 있다. 털록의 지대추구 모델이 정치·입법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측면이 있으나, 적어도 우리 정부의 기능 개선 방향에 대하여 유의미한 시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첫댓글 샌님~캄싸합니다...비자금에 대해서 이해가 잘 안되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