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2일(목) 저녁 카페에서 성준아저씨, 유섭대의원회장님, 병수조직위원님과 대화를 하니 최고 25명정도 모일것으로 예상되어 제수는 병수조직위원님이 준비하고 자료는 내가 준비하기로 하고 제주(祭酒)는 유섭 대의원회장님이 맡기로 한다.
9월23일(금) 참배자료를 30부(A4 360장)를 인쇄를 하고 명찰을 30개를 준비하니 동료직원의 시선이 따가워짐을 느낀다. 종친회라면 의례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뿌리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저녁에 카페에서 참배모임 점검을 하는데 홀기(笏記)가 문제다. 판도판서겸한양부윤(휘 선)공만 준비하기로 결정을 했었는데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동재 대의원부회장님이 참석을 하신다고 하니 프린트를 해 가기로 했다. 병수조직위원님이 제수를 준비하시기로 했는데 밤을 까고 포를 다듬는 등 제수를 손수 준비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시다고 하신다. 항상 카페일에 열심이신 병수조직위원께 감사를 드린다. 밤12시경에 카페채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내일 선조님들 참배에 대한 기대감에 잠이 오지 않고 설쳤다.
9월24일(토) 아침에 일어나니 7시30분이다. 잠시후에 진수대부님께서 출발하신다는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마음이 바빠진다. 사당에서 출발할 사람은 모두 6명이여서 차량 2대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선목총무위원을 조직위원에게 보내서 5명이 출발하기로 했다. 병국감사님이 전화가 왔는데 동생분(병철씨)의 차로 조카 2명과 함께 가기고 하셨다고 한다...사당역에 도착하니 8시50분이다..진수대부님이 먼저 와 계셨다. 장재서울대표는 전화가 불통이다...일산홍근형님은 삼각지에 오고 계신다고 한다. 9시10분정도에 일산홍근형님이 도착하여 우리는 곧바로 출발을 했다. 선목총무위원과 유섭대의원회장님과 통화를 하니 포천과 수원은 순조롭게 출발한듯했다. 재성씨 일행은 동재부회장과 합류하여 곧바로 평택후사리로 오기로 했다. 서초IC를 접어드니 차들로 꽉 차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11시가 넘을 듯하다..우리 일행은 집결지인 청북IC로 가지 않고 국도로 해서 평택 후사리로 바로 가기로 했다. 수원IC를 빠져나와 1번국도를 타고 평택에서 후사리로 곧장 향했다. 가을정치가 펼친 시골이 좋긴 했는데 11시20여분이 넘어서야 평택 후사리를 찾아 올 수 있었다.
<평택 청북리 후사리의 가을들판 - 멀리 산아래에 판도판서겸한양부윤공의 묘소가 있다.>
판도판서겸한양부윤(휘 선)공의 묘소에 도착해보니 일가분들이 참배를 끝내고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묘소 크기가 상당히 웅장하다. 배위 연일정씨의 묘소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는 듯했다. 시간이 없어 가보지는 못했다. 아쉬웠다. 판도판서겸한양부윤공의 묘소는 시조묘소(아찬공) 다음으로 실존하는 묘소로서 의미가 크다.
<경기 평택 청북면 후사리 판도판서겸한양부윤 휘 선 묘소 전경>
일가분들께 참배자료와 명찰을 나누어 드리는데 성준아저씨가 오늘 일정이 바쁘니 빨리 진행하자고 하시어 다음 참배지인 안성시 금광면 한운리(판도판서공 휘 승계) 묘소로 이동했다. 밖에서 바라보니 산새가 얼마나 훌륭한지 감탄할 만 하다. 오늘 오신분들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차를 타고 성준아저씨를 따라 이동하는데 얼마나 빨리 가시던지 시속 100km에도 놓쳐버렸고 전화도 되지 않는다. 병수조직위원님께 전화를 하여 서안성IC에서 만나서 같이 판도판서공(휘 승계) 묘소로 이동했다.
한운리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먼저 와서 판도판서공 산소에 올라가고 계셨다.
<경기 안성시 금광면 한운리의 판도판서공(휘 승계) 묘소>
우리 일행들도 부지런히 올라갔다. 정성스럽게 제물을 올리고 준비를 완료하니 나보고 초헌관을 하라고 하신다. 얼덜걸에 영광스런 자리에 올랐다. 판도판서공(휘 승계)묘소는 배위 신평이씨와 함께 같이 상하분으로 모셔져 계셨다. 이 자리도 명당중에 명당이다. 참배를 끝내니 1시가 넘었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점심은 안성종친회(회장 유장근)에서 준비한 닭도리탕으로 준비되어 있는데 맛이 정말 일품이다. 시골 고향에서 먹어본 바로 맛이다. 거기에다 유섭 대의원회장님께서 준비하신 포천이동막걸리를 겉들이니 이태백과 강태공이 따로 없다. 풍유를 알게 해주는 술과 안주의 조화이다. 안성종친회장님(유장근)께서 평택?안성묘소에 대한 전설 등을 얘기를 하여 주셨다. 판도판서겸한양부윤(휘 선)공의 묘소에 대한 전설은 안성에 선조가 정착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상여가 현재 평택 후사리에 날라가서 안착하므로 묘소를 쓰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런 전설은 충목공(휘 홍) 묘소자리에도 전한다고 진수대부님이 말씀하셨다. 통덕랑공(휘 숙) 묘소는 통덕랑공 후손들의 묘소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결실을 보아 1995년에 승지공(휘 집)공의 묘소 아래에서 찾았다고 말씀하셨다.
유섭 대의원회장님께서 일가분들을 정겹게 잘 소개 시켜 주셨다. 모두 정겹고 반가운 얼굴들이였다.
우리는 정겨운 이야기를 다 못하고 아쉬운 자리를 일어나 장흥고봉사공(휘 대록)공의 묘소로 향했다. 공은 단성공(휘 호)의 3子이며 묘소는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에서 위치하여 계시다. 옥정리에 이르니 마을 어귀에 커다란 비석이 있는데 대록공의 세거지를 알리는 묘비이다. 조금 올라가니 대록공 이하 5대손까지 모시는 안응재(安鷹齋)라는 사당이 나왔다. 깨끗하게 잘 만들어져 있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장흥고봉사공의 묘소를 찾아 한참을 올라가는데 산지기라는 마을 사람이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 다른 일행들은 이미 다른곳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가는 도중에 길이 험해졌다. 길이 거의 없어 잘못온 것으로 알고 먼저 간 일행에게 전화를 하니 그분들도 장흥고봉사공의 묘소를 찾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준비한 참배자료에서 장흥고봉사공의 분산도를 보고 독도법으로 찾기로 했다. 지도를 확인하니 우리가 현재 있는 위치가 확실했다. 옛날 선조분들이 어떻게 이처럼 정확한 지도를 그릴수 있단말이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목총무위원에게 먼저 올라가서 확인하라고 하니 잠깐 있다가 장흥고봉사공(휘대록)의 묘소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다른 일행들에게 알리고 올라가 보았다.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아 몰랐는데 산소밑을 내려보니 과연 명당이라! 능선을 모두 잡아 5위의 선조분들 묘소가 위치하는데 안성 시내가 모두 내려다 보인다. 제일 위쪽 묘소는 단성공(휘 호)의 3자 장흥고봉사(휘 대록)공부터 대록공의 子 증사헌부집의(휘 노증)공, 孫 증승정원좌승지(휘 숙)공과 曾孫 종사랑(휘 명항)공, 5대손 휘 언백공이 차례로 모셔져 계셨다. 정성스레 제물을 올리고 약식 참배를 하는데 동재대의원부회장이 장흥고봉사공(휘 대록) 직속후손으로 참배를 드렸다. 사헌부집의공(휘 노증)의 묘소도 함께 참배를 했다.
<장흥고 봉사 휘 대록공 묘소>
우리는 다음 참배지인 안성 금광면 금광리(배어리)의 판사재감사(휘 성복)의 묘소로 향했다. 10여분을 차를 타고 금광저수지를 따라 돌아가니 아주머니와 5 살배기 손녀가 동력선을 대기하고 있었다. 저수지 건너편에 판사재감사공의 묘소가 위치해 있어 배를 타지 않으면 안되었다. 안성종친회의 협조가 아니였다면 어떻게 공의 묘소에 참배할수 있으랴? 개인적으로 파조이신 부제학공(휘 진)의 부친이신 판사재감사(휘성복)공의 참배를 하는 것도 대단히 뜻깊은 것이었다. 참배하기전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여기 안성까지 와서 참배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동력선은 10명이 정원으로 3회 이상을 운행해서야 우리 일행 28명은 모두 건너갈 수 있었다. 배를 타고 뱃놀이 하는 기분도 들고 동력선이 너무 작아서 흔들려 위험하기도 했지만 오늘 참배의 크라이막스를 장식하는 색다른 경험이였다.
판사재감사공의 묘소에 참배를 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아래에 무명의 묘가 있었다. 일산 홍근형님은 판사재감사의 아드님이신 부제학공(휘진)의 묘소가 틀림없다고 하셨다. 제 추측에도 그곳은 아드님 아닌 다른 사람이 묘를 쓰기 어려운데 선조님들이 왜 찾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났다. 안성종친회장님(유장근)께 여쭈어 보아도 알지 못하셨다. 부제학공(휘진)은 세조때부터 성종때까지 정3품이상의 벼슬을 하였음에도 임사홍의 일파에 화를 입어 묘소가 실전되어 후손들이 1986년에 전남 고흥 과역면에 아드님 사헌부 장령공(휘 수경)공의 묘소 위에 허묘를 안장해서 모시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 후손된 자로서 슬프지 않으리랴? 통덕랑공(휘 숙)의 묘소는 실전된 지 500여년만인 1995년에 찾아서 사초를 하고 받들어 모셨는데 부제학공(휘 진) 후손으로서는 너무 부러운 일이다.
우리는 다음 참배지인 경기 안성시 사곡동으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좌승지공(휘 집)과 배위 장기오씨가 뫼셔져 계시고 아래엔 아드님 통덕랑공(휘 숙)이 영면해 계신 곳이다.
도로에서 50여m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모셔져 있었다. 좌승지공께 먼저 참배를 드리고 통덕랑공 참배를 했다. 오늘 참배자중에 통덕랑공 후손인 부산 병국, 서울 병철 두 형제가 차례로 참배를 드렸다.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 부산과 서울에서 살고 있는 후손들이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여 이렇게 참배를 드리니 통덕랑공은 얼마나 기쁘실까? 몇 년전만해도 생각도 못할 일이다. 통덕랑공의 실전된 묘소를 찾았으니 앞으로 실전되는 아픔이 없이 후손들이 잘 받들어 모셔야 할 것이다.
다음 참배지는 오늘의 마지막 참배지로 경기 안성시 대덕면 건지리에 위치한 충문공(휘 언호) 묘소로 향했다. 도로에 인접한 곳에 충문공 산소가 있었는데 참배하기 가장 좋은 명당이었다. 옛날엔 산수가 많고 임산배수가 명당이였지만 요즘엔 교통이 편리해야 명당이다. 요즘엔 딱 맞는 명당이었다. 낮은 야산에 최근에 심은 주목이 심어져 있고 잔디는 보기 좋게 자라 있었다. 지방문화재로 관리하고 있어 보전이 잘되고 있어 보기에 좋았다.
우리는 정성껏 마련한 제물로 참배를 하고 성준아저씨와 영근형님이 차례로 술을 올렸다. 충문공 할아버지가 정말 기뻐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충문공 산소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참배 초반 오전에 우리 일행의 차가 막혀 일정에 차질이 있었지만 오늘 계획한 일정을 무리 없이 모두 소화해 내서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고 뿌듯하다.
이번 참배를 준비한 운영위원들과 대의원회장단에 감사를 드리고 묘소안내와 점심을 협조해 주신 안성종친회(회장 유장근)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다시 참배를 하는 것같이 생생하고 사실적입니다,,글감사합니다,,
'보근' 위원장님! 그날,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읍니다. ^.^ ^0^
수고하셨습니다. 병국, 병철형제의 감개는 무량했을겁니다. 새로 시작하는 듯한 위원장님의 참배후기 아주 잘 읽었습니다.
보근아우님 수고했읍니다 글 잘보았읍니다 감사합니다...
참배기 잘 보았우. 참여하지 못여 진한 아쉬움만 남네. 수고하셨오.
하루일과를 조리있게 설명해 주시니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잘 읽었습니다.
운영위원장님께서 자세히 안내해주셔서 가본듯 눈에 선합니다. 언제나 카페운영에 열심히 수고하시는 대부님에게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실감있는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대종회 정기 행사를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처지가 된 듯하군요. 기계 시제를 시작으로 연이어 거행되는 세일제(歲一祭) 행사가 닥아왔습니다. 여기에 본 카페도 합류하는 일을 정례화 하여야 할 듯합니다.
문중의 앞날이 희망적으로 발전하려면, 이러한 행사에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대거 참여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더이상 연로한 문중 어르신들의 일로만 인식해서는 안되는 것이겠지요. 이제 그일은 본 카페가 자임하고 나서야 타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간 '본 카페를 대종회에 귀속시키는 일'을 추진해왔습니다. 대종회에 그러한 사안을 요구하기에 앞서, 이러한 문중 정례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회장님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중의 발전을 위해서도 젊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견입니다만..하지만 직장인들이 많아서 평일날 문중행사 참여에 어려운점이 많습니다..
보근 족질 이번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노고가 많았습니다. 참배후기 또한 정리를 잘 해놓으니 좋습니다.
사진을 올려서 이번 참배를 멋지게 편집하고 싶었는데 사진첨부용량이 초과되었다고 나오는군요..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일가분들게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에 이야기해서 용량을 좀 올려달라고 떼를 쓰면,,,아마 돈을 내라고 할꺼에요,,! 사진은 메모리용량을 많이 먹어서,,,
그런뜻의 용량이 아니고 한가지글의 용량을 말하는겁니다. 그래서 나도 유적지탐방에 올린글을 1,2편으로 나누어서 올린바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수고들 하였읍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우리 가문을 이끄러갈 차세대 지도자들임니다. 여러분에게 꿈과 희망을 걸어봄니다. 수원 유인준
아저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사진을 정겨운종친방에 올렸습니다..
가보진 못했어도 참으로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동참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