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래(朴龍來)
1925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
1943년 강경상업학교 졸업
1956년 ꡔ현대문학ꡕ에 <가을의 노래>, <황토(黃土)길>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1년 제5회 충남문화상 수상
1969년 시집 ꡔ저녁눈ꡕ으로 ꡔ현대시학ꡕ 제정 제1회 작품상 수상
1980년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1980년 사망
1984년 시전집 ꡔ먼 바다ꡕ 간행
시집 : ꡔ싸락눈ꡕ(1969), ꡔ강아지풀ꡕ(1975), ꡔ백발의 꽃대궁ꡕ(1979)
341. 연시(軟柿)
여름 한낮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이웃 마을
돌담 위
연시(軟柿)로 익다
한쪽 볼
서리에 묻고
깊은 잠 자다
눈 오는 어느 날
깨어나
제상(祭床) 아래
심지 머금은
종발로 빛나다.
(시집 ꡔ강아지풀ꡕ, 1975)
박용래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향토적 정서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다. 아무리 작은 자연 현상조차도 예사로이 넘기지 않는 관찰력과 언어의 군더더기를 일체 생략하고 시적 압축으로써 보여 주는 섬세하고 간결한 함축미는 그를 70년대 중요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하고 있다.
이 시는 감이 한여름의 땡볕에 붉어지고 가을 서리에 익어서 눈 오는 겨울 어느 날 밤 제상(祭床)에 오른 것을 노래하고 있다. 단 2개의 문장을 14연으로 배열하여 전체적으로 언어의 절제와 표현의 간결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시각적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여 한 폭의 생동하는 소묘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구성은 상당히 치밀하고 적잖은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율격을 보면 1~2음보로 한 연을 형성하고 있지만,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11연의 경우 의미상 10연에 연속되는데 음절 수가 10연에 비해 반으로 줄어 휴지(休止)가 길게 붙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의미 단락상 1․2․3 / 4․5․6 // 7․8․9 / 10․11 / 12․13․14연으로 구분됨으로써 10연과 11연의 위치가 전체 시상 전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오게 된다. 또한, 감이 여름에 익고 가을 서리를 맞고 있다가 겨울에 제사상에 오르는 시간적 추이 과정에 입각한 시상 전개에 맞춰 공간적 배경의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전반부에서는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돌담 위 연시’로 익었다고 하여, ‘꽂힌’의 하강과 ‘위’라는 상승의 대조를 드러내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도 ‘깊은 잠’의 하강과 ‘깨어나’․‘빛나다’의 상승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전반부의 주어는 ‘땡볕’이고, 후반부의 생략된 주어는 ‘감’, 서술어는 ‘빛나다’로 되어 있어 전반부의 주어인 ‘땡볕’에 연결됨으로써 내용이나 형식이 고도의 치밀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42. 저녁눈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말집 : 추녀가 사방으로 뺑 돌아가게 만든 집.
(시집 ꡔ싸락눈ꡕ, 1969)
박용래는 ‘소묘법(素描法)’이라는 표현 방법과 반복, 병렬에 의한 민요적 구조를 통해 그의 독창적 시 세계를 개척한 전형적 향토 시인이다. 그의 시가 대부분 정지적(靜止的) 언어로써 정상적인 구문보다는 명사나 명사형 어미로 시행을 마감시킨다거나 행간(行間)의 여백을 중시하는 것도 모두 소묘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그러한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시인의 정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
‘말집 호롱불’, ‘조랑말 발굽’, ‘여물 써는 소리’, ‘변두리 빈터’ 등 네 장면의 제시 이외에는 동일한 구문의 4회 반복에 불과한 이 시는, ‘저녁눈’을 통해 가려져 있는 것, 소외되어 있는 것, 그리고 잊고 있던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먼저 시인은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을 반복 강조함으로써 리듬의 효과와 함께 유전(流轉)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저녁눈’은 물질적 현상으로 언젠가는 없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이다. 그와 함께 위에서 제시한 네 가지 사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 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제 그것들 위로 ‘붐비듯이’ 늦은 저녁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애상적 분위기를 배가시키는 사물들과 결합되어 더욱 을씨년스러운 겨울 저녁 풍경을 한 장의 사진처럼 묘사하고 있을 뿐,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4행시 형식의 커다란 행간 속에 그 감정이 깊숙이 감추어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문명의 거센 물결에 밀려 머지않아 사라져 버릴 토속적 세계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이 ‘눈발’로 환치되어 ‘붐비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시인은 의도적으로 눈 내리는 모습을 ‘붐비다’로 표현함으로써 적막한 분위기와 ‘소멸’의 이미지를 역동성의 눈발로 상쇄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은 그로 하여금 화려한 문명의 도시보다는 밀려나 있는 변두리, 즉 향토의 사물 위에 머물게 한다. 시간적 배경으로 제시된 ‘늦은 저녁’이라는 하강적 이미지와 ‘눈발’이라는 소멸의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 낸 <저녁눈>은 공간적 배경이 되는, 같은 이미지의 네 가지 사물들과 결합됨으로써 이 작품을 ‘텅 빈 아름다움’의 시로 만들어 주고 있다.
343.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시집 ꡔ강아지풀ꡕ, 1975)
이 시는 겨울밤에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을 간결한 소묘법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이 그려 놓은 이 소묘 속에서 고향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은 여백의 공간 속으로 침윤되어 있을 뿐, 그 감정의 크기나 깊이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쓸쓸함과 애틋함 또는 삶의 무상감이 뒷그림처럼 작품에 깔려 있으나, 그것이 감상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것을 4행의 절제된 시 형식과 압축된 표현으로 적절히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눈’․‘달빛’․‘물’․‘바람’ 등의 전원 상징의 시어와 ‘잠’․‘고향’․‘마늘밭’․‘추녀’․‘발목’ 등의 인간적 체취의 소재를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를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근원적 향수는 ‘눈’․‘달빛’의 시각적 이미지와 ‘물’․‘바람’의 청각적 이미지의 대응을 통해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를 유발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의 본질적 고독과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외로움이 전원 상징의 시어 속에서 향수와 그리움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다.
이처럼 박용래의 시는 전원 상징의 시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친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것들의 본질이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와 그리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
344. 월훈(月暈)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너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무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溫氣)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허방다리 : 함정(陷穽).
* 시나브로 :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 월훈 : 달무리.
(ꡔ문학사상ꡕ, 1976.3)
향토적인 생활 정서에 뿌리박고 있는 박용래의 시는 문명의 때[垢]가 묻지 않은 토속 세계를 통하여 삶의 무상함을 정지적(靜止的) 언어로 표현한다. 형식면에서는 주로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비유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상을 형상화시키는 데 그가 즐겨 사용한 방법은 ‘소묘법’이다. 비록 단조로운 단색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간결하고 날카로운 소묘는 회상물의 대상을 객관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의 많은 시가 정상적인 구문(構文)보다 명사나 명사형 어미로 시행을 끝맺고 있는 것도 그의 소묘적 방법의 한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행간의 여백을 중시하는 것도 바로 그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겨울 산촌의 외딴집에서 홀로 사는 노인의 고독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자어를 배제한 토속어와 경어체 구문의 사용, 그리고 명사 종결 어구를 삽입하는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통해 산촌의 적막함과 노인의 고독감의 깊이를 더해 주는 한편, 향토적 정서에 바탕을 둔 비유와 다양한 감각의 이미지, 쉼표와 의태어의 적절한 사용은 이 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끝 부분에서 나타나는 귀뚜라미로의 감정 이입은 노인의 고독을 심화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시는 연 구분이 없는 산문시 형태로, 화자는 원경에서 근경으로 시선을 이동하며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이 시는 먼저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다는 다소 환상적인 세계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단순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화속 같은 세계가 아니라,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원시적 토속 세계이다. 노인이 살고 있는 그 곳은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조그맣고 갱 속같이 파묻힌 마을로, 노루꼬리만큼 짧은 겨울해가 저물면 각 집들은 봉당에 불을 매단다. 그런 마을의 한구석에 위치한 노인의 ‘외딴집’ 창문에 이슥토록 켜진 불빛은 마치 잘 익은 ‘모과빛’ 같이 싱그럽기만 하다.
깊어가는 겨울밤, 노인은 문득 잠에서 깨어나 시장기를 느끼고는 무나 고구마를 깎으며 행여 누군가 찾아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다림으로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노인은 짚단과 짚오라기의 서걱거림에서부터 처마깃의 이름 모를 새의 작은 날개짓에 이르기까지 청각을 집중해 보지만, 자기를 찾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 외로움에 절망해 버린다. 노인의 이러한 행위는 그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깊이를 증폭시켜 주는 동시에, 시인이 가지고 있는 섬세한 감각을 드러내는 징표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한동안 계속되던 노인의 밭은 기침 소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벽 속에서는 겨울 귀뚜라미가 떼를 지어 벽이 무너지라고 울어 댄다. 여기서 ‘겨울 귀뚜라미’는 동료로부터 떨어져 나와 외톨이가 된 귀뚜라미를 일컫는 것이며, 떼를 지어 벽이 무너지라고 우는 것은 겨울밤의 고요를 깨는 귀뚜라미의 울음 소리가 그만큼 크게 들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외톨이가 된 귀뚜라미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고 있는 노인의 처지가 교묘히 일치하게 됨으로써 결국은 귀뚜라미는 노인의 감정이 이입된 사물임을 알 수 있다. 그토록 서럽게 울어 대는 귀뚜라미처럼 노인도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고독감과 함께 산촌의 적막함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때, 문밖에선 가는 눈발이 치는지 또는 함박눈이 한바탕 뿌려주는지, 어디선가 희끄무레한 달무리가 떠오르는 풍경을 제시하면서 시상을 끝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