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원군(完原君) 이만(李曼) 신도비(神道碑)
응봉면 평촌리까치골 완원군(完原君) 이만(李曼) 신도비(神道碑) 응봉면 평촌리 까치골에는 이조 현종때 문관인 이만의 신도비가 있다. 자(字)가 지만(志曼)이고 본관은 전주이며 종실(宗室)계(系)로서 형조 참의 휴의 아들이다. 그는 1627 (인조5)박사제자에 뽑혀 이듬해에 문과 장원급제하고 지평(持平)으로 정온(鄭蘊)을 옹호하다가 파면되었고 다시 동부승지에서 황해도 관찰사 되어 이듬해에 완원군(完原君)에 피봉되었다. 효종이 즉위하자 병조참판이되어 영남의 방어에 주력할 것을 주장하였다. 도승지로 있을 때 조정에서 성지(城地)를 수축하고 군사를 훈련 훈련시켰는데 이것은 병자호란(丙子胡亂) 강화약조에 위반되는 일이므로 청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책임을 추구하게 되니 만(曼)이 이 군대를 준비하는 것은 일본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하였으나 사신에게 무고한 자가 있었음으로 영변(寧邊)에 귀양가게 후에 석방되어 강도(江都)유수를 거쳐 호남. 관서 안찰사(按察使)있다가 참소로 파직되고 현종떄 호서(湖西)안찰사로서 있다가 백성의 기근을 구호하는 등 선정을 베풀고 호조참판에 승진하였다가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에 이르러 사퇴하고 낙향하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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